[나은혜 칼럼] 용서속에 맺힌 선한 열매

나은혜 선교사(지구촌 선교문학 선교회 대표)

내가 그녀를 다시 만난 것은 페이스 북에서 였다. 우연히 페이스 북에서 친숙한 그녀의 이름 석 자와 사진을 발견 했을 때 가슴이 두근 거렸다. 페북에 올려진 그녀의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그녀는 나름 정장을 입고 목걸이를 하고 있었지만 얼굴은 고생에 찌든 얼굴이었다. 곱고 귀염성 있던 얼굴이었는데, 사진속 그녀는 미소를 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힘들게 살아온 흔적이 역력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니 나는 가슴속 깊은 곳이 아련하게 아파왔다.

“돈을 떼먹고 야반도주(夜半逃走)를 했으면 행복하게 잘 살지나 않구…” 아무래도 나는 그녀를 사랑했었나 보다. 그러기에 세월을 훌쩍 넘어 30여년이 지나서 페북에서 만난 그녀의 곤고해 보이는 얼굴을 처음 보는 순간인데도 마음이 아린 것이리라.

그녀는 고향교회에서 나와 함께 신앙생활을 했던 권사님 이었다. 나보다 8년 정도 나이가 많아서 내가 언니처럼 따랐던 사람이었다. 청주 시골에서 자란 나에게는 서울서 명문 여고를 나오고 이대에 입학했으나 사랑 때문에 학업을 포기하고 남편의 고향인 청주로 내려온 그녀가 참 멋있게 여겨졌었다.

그녀는 신앙생활도 열심이었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목사님을 잘 대접했고 신앙의 모범을 보여서 개척교회였던 우리 교회에서 30대 초반에 권사임직을 받았다. 그런데 그녀가 일천번제 기도를 한다며 매일 교회에 나와서 헌금을 드리며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천번제가 다 끝나갈 무렵 응답이라면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새 사업의 결과는 부도가 나고 끝나 버렸다. 더욱이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개인적으로 빌린 돈은 갚지도 않고 어느날 온 가족을 이끌고 야반도주(夜半逃走) 해 버렸다.

당시 우리 가족도 그 피해자 속에 들어 있었다. 교편을 잡고 있던 남편이 무려 3번이나 연대보증을 서 주었던 것이다. 결국 우리 가정에도 어려움이 찾아 왔다. 힘들게 처음 장만한 아파트를 팔고 작은 평수의 임대 아파트로 이사를 할 수 밖에 없었으니까…

그런데 이상한 것은 남편도 나도 그 일로 시험에 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매일 새벽기도회를 나가며 성령충만 해서인지 하나님은 우리 부부의 마음을 지켜 주셨다. 그녀를 미워하기보다 불쌍히 여기며 위해서 기도해 주었다. 그녀에게 떼인 거의 집 반 채 값의 돈은 하나님께 꾸인 것이라고 생각하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런데 야반도주(夜半逃走)를 한 그녀로 부터 한 달 후에 편지가 왔다. 자신을 믿고 보증을 서 주었는데 정말 미안하다면서 돈을 벌어 꼭 갚겠다는 내용이었다. 물론 답장을 받을 생각으로 보낸 편지도 아니었고 나 역시 답장을 할 필요도 없었다.

다만 나는 그녀와 함께 같은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할 때보다도 더 그녀를 위해 기도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축복 하셔서 빚을 다 갚고 떳떳하게 살게 되기를 기도했다. 당시 초등학생이던 그녀의 두 아들의 학업도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기를 기도했다.

그리고 나는 선교사가 되었고… 종종 그녀가 잘 살고 있을까 궁금해지기도 했었다. 그런데 30여년 만에 그녀의 소식을 접할 수 있었으니 참으로 반가웠다. 더욱이 그녀를 통해 그녀의 아들의 페이스 북에도 들어가 보게 되었다. 그녀의 아들중 하나가 자라서 군목이 되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녀의 목사 아들의 딸이 신학교에 들어갔다는 소식도 알 수가 있었다. 그러니까 그 권사님은 아들을 목사로 만들었고 손녀도 신학교에 보낸 것이다. 힘들게 살면서도 신앙을 잘 지켰구나. 아이들을 신앙으로 키워 냈구나 … 생각하며 나는 가슴이 뿌듯해짐을 느꼈다.

물론 나는 처음부터 그녀를 용서했고 불쌍히 여겼지만 그렇다고 그녀가 후에 편지를 보낸 것처럼 약속을 지켜 돈을 보내 준 것은 아니었다. 나는 오히려 그녀에게 돈을 받기보다 하나님께 받기를 원하여 기도하곤 했다. 그래서 “하나님! 가난한 자에게 준 것은 하나님께 꾸인 것이라고 했으니 하나님께서 저에게 갚아 주세요.”

사실 선교지에서 그리고 지금까지 하나님은 나에게 얼마나 많이 갚아 주셨는지 모른다. 그래서 더욱이 나는 그녀에게 받을 필요가 없었다. 내가 주안에서 사랑했던 그녀가 살아 있고 그녀의 아들이 목사가 되고 손녀딸이 신학교에 입학한 것이 나에겐 돈을 돌려받는 것보다 훨씬 기쁜 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그녀에게 돈을 떼이고 집을 팔아야 했고 작은 임대아파트로 이사하게 되었을 때, 그녀를 미워하고 증오하면서 용서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현실적으로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을 것이다. 다만 내가 미워하고 용서하지 못함으로서 나만 미움의 노예가 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도 못하는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부부는 참으로 현명하게도 용서라는 지혜로운 길을 선택했다. 그래서 그녀에게도 하나님 앞에서도 당당할 수가 있었고, 하나님은 그 일로 나에게 상급을 많이 주셨다. 나는 용서에는 상급이 있다고 믿는다. 내 아이들이 선교지에서 대학을 가게 되었을 때 우리가 받는 선교후원금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많은 학비를 하나님은 다 채워 주셨다.

하나님은 용서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가 하나님의 속성을 닮은 삶을 살아 나갈때 하나님은 참으로 기뻐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은 나에게 보여 주신 것이다. “네가 내 딸(그 권사님)을 용서함으로 맺은 선한열매를 보거라.” 페북을 통해 하나님은 그것을 증명해 주셨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잠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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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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