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 칼럼] 금식후의 따뜻한 아침상

오늘 아침에는 흰쌀죽을 끓였다. 참기름을 두르고 불린 쌀을 넣고 눋다 정도까지 한참을 볶다가 소금 약간으로 간을 하여 끓인물을 넉넉히 붓고 은근히 끓인 흰죽은 고소하면서도 감칠맛이 있었다.

나는 맞은편에서 죽을 드시는 어머니에게 “어머니 참 맛있지요?” 했다. 어머니는 말없이 씩~ 웃으신다. 며느리가 종종 잘 끓여 주는 죽이니 어련히 맛있지 않겠느냐는 듯한 표정으로 말이다.

나는 아직 소화 안되는 음식을 먹으면 안될 것 같아서 시레기 된장국 안에 들은 쇠고기 조각 몇 개를 건져서 옆에 앉은 남편 K선교사의 죽그릇에 얹어 주었다. 그랬더니 남편은 그 쇠고기 조각을 앞에 앉은 어머니 죽그릇으로 다시 옮겨 놓는다.

이렇게 우리는 양보와 섬김의 미덕을 쌓으며 화기애애하게 웃으면서 아침죽을 먹었다. 웬일로 어머니는 죽을 다 드시고 나서도 숟가락을 놓기가 아쉬운 표정이셨다. 나는 얼른 어머니의 감정을 알아채고는 “어머니, 죽 더 드려요?” 했다.

정량 이상을 잘 안드시는 어머니는 보통 때 같으면 고개를 저으시며 “ 됐다”고 하실 텐데 오늘은 가만히 계신다. 나는 얼른 죽을 한 주걱 더 퍼서 어머니 밥그릇에 넣어 드렸다.

그걸 본 남편 K선교사도 입맛이 당기는지 죽그릇을 가져다가 더 덜어서 먹는다. 내가 끓인 죽을 식구들이 이렇게 잘 먹어주니 고맙다. 그런데 오늘 아침 이렇게 화목한 밥상 분위기가 며칠 전 저녁엔 완전히 딴판이었다.

그날은 어머니를 씻겨 드리는 날이었다. 치매를 앓으시는 어머니는 요즘 씻겨 드린다고 해도 이불을 뒤집어쓰시거나 아픈 척 하시면서 거절하기가 일쑤였다. 그래도 그날은 순순히 하겠다고 하셔서 목욕을 시켜 드렸다.

그런데 목욕하는 내내 어머니는 화를 내셔서 나는 정말 난감했다. 나보다 10센티미터나 키가 더 큰 체격의 어머니를 씻겨 드리는 일은 나에게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나도 어머니를 씻겨 드리자면 몇 번이나 허리를 펴고 쉬었다 해야 할 정도로 힘이 들었다.

그런데 그보다 더 힘든 것은 어머니가 씻겨 드리는 나에게 협조해 주지 않을 때이다. 머리를 감겨 드리면 귀에 물 들어 간다고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으신다. 그리고 화를 내신다. 몸을 닦아 드리고 물을 부어 드리면 뜨겁다 차다 소리를 지르고 불평을 하신다.

이렇게 어머니의 불평과 잔소리를 들어가며 목욕 시켜 드린 날은 나도 힘들고 지치기 일쑤다. 그런데 그날은 목욕 후 바로 저녁때가 되어서 쌀국수를 끓여 드렸다. 그런데 이번에도 어머니는 또 화를 내고 불만을 표시 하신다.

국수가 왜 이리 끊어지냐느니 왜 국물이 이렇게 뜨겁느냐니 하시면서 툴툴거리며 식사를 하신다. 나는 방금 목욕시켜 드리며 마음에 쌓인 것이 있었기 때문에 그냥 넘어가지 못하고 한마디를 하고야 말았다.

“어머니 음식을 익히면 처음엔 당연히 뜨겁지요. 먹는 사람이 식혀서 먹어야지요. 그럼 조금 있다가 식은 다음에 드시면 되잖아요.” 그랬더니 국수를 좋아하는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다 드시고 국물까지 싹 다 마셔 버리신다.

그런데 함께 식사했던 남편은 그런 내가 못마땅했던 모양이다. 이튿날 노회 참석을 하려고 길을 나서는 나에게 한마디 한다. “당신 회개 해야겠어 나보다도 하나님이 안 기뻐하실 것 같아”

사실 나보다는 남편이 훨씬 더 많이 어머니에게 퉁박을 줄때가 많다. 자기 친어머니니까 그렇겠지만… 어머니에게 잘 하다가도 어머니가 유치한 행동을 하실 때마다 아들은 가끔 잔소리를 하는 것이다.

그럴 때 마다 어머니는 치매 병으로 그런 것이니 당신이 이해하고 사랑으로만 대해야 한다고 어머니를 포용하고 편을 드는 것은 오히려 나였다. 그런데 내가 너무 힘들어서 한마디 한 것을 가지고는 하나님까지 들이대며 나에게 회개를 해야 한단다.

그래서 시어머니가 어려운가 보다 내가 어머니에게 했던 말 정도는 내 친정 엄마에게 했다면 아무 문제되지도 않을 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남편의 눈에는 자신의 어머니에게 며느리인 내가 불친절하다고 느끼면서 벌써 마음이 불편해 지는 모양이다.

아무튼 지금 내 심정을 누가 이해해 줄까? 남편이 어머니를 좀 씻겨 봤으면 좋겠다. 그러면 내 어려움을 이해 할 텐데… 아무튼 그런 일이 있었다. 노회를 참석하고 돌아와서 내 마음에는 왠지 금식기도를 해야겠다는 감동이 일었다. 어머니께 잘못한 죄를 하나님께 회개해야 하니까

수요일부터 금식을 시작했다. 3일 작정을 하고 시작한 것이다. 하루를 잘하고 이튿날 아침까지 금식을 잘했다. 그런데 남편이 미안한지 자기가 하루 금식을 돕겠다고 둘째 날 아침부터 금식을 시작한다.

나는 남편과 관계없이 계속 금식을 진행 하려는데 점심때부터 머리가 지끈거리고 아프기 시작한다. 금단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할 수 없이 남편이 나의 대타로 금식해 주는 것을 감사하며 죽을 끓여 어머니와 점심과 저녁 두 끼를 먹었다.

삼일 째는 다시 금식을 시작했다. 남편은 하루 금식을 대신 해 주고는 식사를 했다. 나는 그렇게 남편의 도움까지 받으면서 힘들게 삼일 금식을 마쳤다. 그리고 금식 기도가 끝나고 맞은 이튿날 가족 아침상엔 식탁 가득 화목의 웃음꽃이 피어 오른 것이다.

또 이번 금식 기간 동안 외손녀 로아가 고열로 잠시 의식을 잃고 쓰러져서119에 실려 병원에 가는 사건도 발생했다. 딸이 비명을 지르며 급하게 전화를 걸어왔다. “엄마 로아 고열로 쓰러졌어 어떻게 해. 빨리 기도해줘” 단발마의 소리를 지르고는 전화를 끊었다.

이게 웬 날벼락인가 그렇게 잘 놀던 우리 로아가… 하지만 나의 마음은 평안했다. 하나님께서 이 일도 포함해서 금식 기도를 시키셨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로아는 병원을 다녀오고 곧 열이 내리고 괜찮아 졌다.

이번 금식 기도를 통하여 중요한 책을 책장에서 발견해서 읽기 시작한 것도 큰 은혜이다. ‘악의 비밀’이라는 제목으로 영적 분별력을 강화 시켜 주는 책이다. 이래저래 금식 기도는 하기가 어렵지만 하고나면 얻는 유익은 매우 많다.

매달 정기적으로 삼일을 금식하며 미국에서 영적인 사역을 해 나가던 여전도사님 생각이 났다. 나도 앞으로 나를 쳐서 주님께 복종하기 위해서는 매달 삼일씩 금식하며 기도 하는 것도 생각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마귀가 아무리 우는 사자처럼 돌아 다녀도 우리가 주님께 바짝 붙어서 그가 원하는 것을 해주지 않으면 된다. 불평불만 교만 자고 두려움 판단 정죄 등등의 죄를 짓지 않으면 그러면 우리가 이긴다.

그래서 금식 기도는 이 땅에 사는 동안 영적 전투에 노출 되어 있는 그리스도인에게는 매우 강력한 영적무기이다. 금식 후 따뜻한 아침식탁을 가족과 함께 보내면서 드는 소고이다. 아… 고소한 흰죽 맛이 금세 그립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

나은혜 선교사(지구촌 선교문학 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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