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 칼럼] 연탄과 가을빛 사랑

나은혜 선교사(지구촌 선교문학 선교회 대표)

나는 가을을 매우 좋아한다. 그것은 아마도 내가 가을에 태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재미 있는 것은 나의 가족들 조차도 대부분 가을이 생일이라는 것이다.

나의 남편 K선교사와 두딸의 생일도 가을이다. 어디 그뿐인가 나의 큰 사위 역시 가을이 생일이다. 더욱이 우리 온 가족의 보배인 외손녀 로아도 11월생이다.

10월달에는 가족중 세 명의 생일이 들어 있고 11월에도 세 명의 가족의 생일이 들어 있다. 자, 이정도라면 내가 가을을 좋아하는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이 가을에는 따뜻한 가을빛 사랑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그것은 연탄 이야기이다. 뜬금 없이 웬 연탄 이냐고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혹자는 요즘에 연탄을 때는 사람이 있느냐고 묻는 분도 있을지 모른다. 사실 나역시 우리 나라에 아직도 연탄을 때는 가정이 적잖이 있다는 것을 최근에서야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L목사님 으로 부터 ‘동두천연탄은행’ 이야기를 들은 것은 한달도 훨씬 전이었다. 어려운 가정에 겨울 연료인 연탄을 배급해 주기 위해서는 후원해 줄 사람들이 많이 필요 하다는 것도…

당시 그 소식을 듣고 나는 연탄 백장값이라도 보내야 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다가 그만 깜박 잊어 버리고 있었다. 그래서 선한 일은 감동이 왔을때 지체하지 말고 빨리 해야 하나 보다.

그런데 얼마 전에 L목사님의 매일 나누는 힐링 글을 통해서 동두천에서 연탄은행 후원자의 밤이 열렸었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다. 전국에서 수백명의 사람들이 모였었다고 한다.

그런 소식을 들으니 문득 내가 연탄 백장을 후원 하려고 했었다는 기억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번엔 잊지 말고 보내야 겠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연탄 100장값이 아니라 200장값을 보내야 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 200장의 연탄값을 보내기 위해서 인터넷 뱅킹을 시작 하였다. 연탄 한장이 700원 이라고 하니 200장의 연탄이면 14만원이 되는 셈이다.

내 머리로는 분명히 200장 연탄값 14만원을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고 인터넷 뱅킹 지출을 시작 했다. 그런데 내 손가락이 20만원을 누르고 있었다.

물론 틀린 것을 바로 알았기에 금액 수정을 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연탄은행 소식 중에서 안타까운 한 대목이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그 내용은 이랬다.

요즘은 연탄은행에 후원이 날로 줄어 들어 올겨울을 따뜻하게 나도록 가난한 이웃들에게 연탄을 충분히 지급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그런 내용이 머리에 떠오르자 그냥 20만원을 보내기로 하였다.

남을 도우려고 할때는 그냥 따지지 말고 감동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왜냐하면 내 형편을 생각하고 계산하기 시작하면 십중팔구 처음 마음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나는 내 형편에 무리한 지출이라고 생각 하면서도 마음만은 아주 흐믓했다. 내가 모르는 어떤 가족에게 겨울을 따뜻하게 날 수 있는 땔감을 조금 이나마 대 주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그런 일이 있은지 오래지 않아서 오늘 내가 사는 김포 풍무동에 방문하기로 하신 분이 있었다. 그분은 다름 아닌 바로 동두천 연탄은행을 소개해 주신 L목사님 이었다.

내가 교회 건물 인테리어로 고민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얼마전에 교회 건물을 구입하여 인테리어를 다 마친 목사님 한분을 대동하고 먼길을 마다 않고 찾아와 주신 것이다.

두분 목사님은 아직도 회바닥에 아무것도 없는 자그마한 교회 건물에 들어 가서 살펴보며 교회 인테리어에 관련한 이런 저런 조언을 해 주셨다. 참 많은 도움이 되었다. 오전 인데 날씨가 매우 쌀쌀했다.

이곳은 택지개발 지역이라 아직 커피숍이 별로 없었는데, 최근에서야 예쁘게 인테리어를 하고 막 문을 연 카페가 있었다. 나는 손님을 모시고 들어 가서 따뜻한 커피를 마셨다.

그런데 이야기를 마치고 두분 목사님은 한사코 배가 안 고프다고 굳이 그냥 돌아가겠다고 하시는 것이다. 나는 내가 사는 동네에 오셨으면 당연히 내가 사 드리는 밥한끼는 꼭 들고 가셔야 한다고 주장을 폈다.

결국엔 내 주장에 그분들이 손을 들었다. 두 분 목사님이 점심을 들고 가시기로 한 것이다. 나는 근처에 있는 맛집이라고 할 수 있는 명태요리집으로 안내를 하였다.

식당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는 나에게 L목사님이 다가 오시더니 내 바바리 코트 주머니에 무언가를 꾹 찔러 넣으시는 것이 아닌가?

나는 깜짝 놀랐다. 만져보니 종이 봉투였다. 아마 헌금을 넣으신 모양이었다. 은퇴하신 원로 목사님으로 현직도 아니신데…웬 헌금을 다 하시나 하는 생각이 들어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명태요리집에 들어갔다. 따끈한 돌솥밥에다가 매콤한 명태찜을 날김에 싸서 먹으면 맛이 일품이었다. 매운것을 잘 못 드신다는 함께 오신 K목사님은 생선구이 백반을 시키셨다. 가자미 한마리와 고등어 반마리를 구어 주는데 이것도 맛있다.

L목사님은 명태찜이 너무 맛있다며 좋아 하신다. 흡족해 하시니 대접해 드린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두분 목사님을 배웅하고 집에와서 봉투를 열어보니 적지 않은 돈이 들어 있는 것이 아닌가. 내가 큰맘 먹고 보낸 연탄값보다 더 많은 금액의 돈이 들어 있었다.

사실 오늘 만난 L목사님은 얼굴로는 처음 뵈었다. L목사님도 글을 쓰시고 나도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사이버로 서로가 쓴 글을 나누며 알게 된 분이다.

물론 L 목사님은 나이로 보나 목회 경력으로 보나 나보다 많이 선배 이시지만 말이다. 인생과 사역의 선배로서 내가 적잖은 나이에 교회를 개척(엄밀히 말하면 이전인 셈이지만) 하려는 후배가 많이 안쓰러우셨나 보다.

그리고 L목사님이 오랫동안 관여하고 있는 동두천 연탄은행의 ‘불우이웃 연탄돕기’ 사역에 함께 해 준 나에게 고마운 마음이 있으셨나 보다.

L목사님이 내 바바리 코트에 찔러 넣어준 하얀 봉투속의 노오란 은행잎을 닮은 오만원권 여섯장은 꼭 가을빛이었다. L목사님에게 받은 가을빛 사랑이 내 마음을 또 환하게 비춰 주었다.

올겨울 유난히 추울 거라고 한다. 연탄 후원을 통해서 따뜻한 아랫목에서 강 추위를 이겨갈 이웃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가을이 깊어 가고 있다. 노오란 나뭇잎 사이로 보이는 파란 가을 하늘이 참 드높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눅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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