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 칼럼] 특별한 기도기간

나은혜 선교사(지구촌 선교문학 선교회 대표)

나의 모교회에서의 일이다. 개척교회로 시작했던 우리교회는 성도들간에 깊은 신뢰감이 형성되어 있었다. 문제만 생겼다 하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몇몇 은혜 받은 성도들은 삼삼 오오 교회로 모여들어 기도회가 시작되곤 하였다.

그리고 대부분 자생적인 그 기도회의 인도는 내가 맡았다. 가장 어린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성도들은 내가 성령충만한 체험한 것을 알았기에 나에게 부탁했던 것 같다. 나는 주일날 메모해 놓은 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다시 정리해서 성도들에게 나누고 기도제목을 주고 기도하게 했다.

때로는 교회에 어려움이 왔을때 성도들 스스로 줄금식표를 만들어서 자발적인 금식 기도를 하면서 문제를 해결해 나가곤 했다. 절대 목사님이 하라고 시킨 것이 아니었다. 순수하게 교회를 사랑하는 성도들의 자발적인 행동이었다.

당시 우리교회 담임목사님은 말씀과 성령이 충만한 분으로 매 주일 선포되는 말씀은 꿀송이 같았다. 수십년전 들었던 설교제목을 내가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것만 봐도 말씀이 얼마나 살아 있었는지를 알 수 있는 일이다.

반면에 목사님은 뛰어난 영성과는 다르게 육체는 아주 약하신 분이었다. 심장판막증을 앓고 있던 목사님은 강대상에 서실때 마다 있는 힘을 다하여 설교하시곤 했다. 목사님은 단에 서실때 마다 성도들을 향하여 마지막 설교를 한다는 심정으로 설교를 하신다고 하였다.

그런데 그렇게 강단을 지켜 나가던 목사님이 쓰러지셨다. 교회는 비상이 걸렸다. 그런데 교회에 문제가 있을 때마다 함께 모여서 기도하던 중보기도자 집사님들이 한결같이 나에게 기도원에 가서 목사님과 교회를 위해 특별기도를 하고 오라고 하는 것이다.

나는 당시 삼남매의 어머니였고 막내는 겨우 8개월로 아직도 젖을 먹이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나 집사님들은 자발적 교회 중보기도 모임을 내가 인도했기 때문에 나를 대표로 보내려고 하는 것이다.

나야 물론 기도하는 일만큼은 가슴 뜨겁게 사모하는 일이었지만 아직 젖먹는 아기를 두고 갈 수 있을것 같지는 않았다. 그런데 집사님들은 이미 막내가 젖을 뗄 때가 되었고 우유 먹이면 되니까 한얼산에 올라가서 기도 하고 오라는 것이다.

당시 고등학교 교사였던 남편도 교회 일이라면 내일 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어서 다녀 오라고 했다. 그리하여 유치원 다니는 5살 된 아들과 4살 박이 딸, 그리고 한 살 짜리 막내딸을 교회의 성숙한 인품을 지닌 집사님에게 떼어 놓고 교회 중보자라는 사명을 띠고 한얼산에 한주간 올라가게 되었다.

요즘의 성도들이 들으면 미쳤다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시 예수님에게 미친 우리교회 성도들과 나의 삶은 신앙과 너무나 직결되어 있어서 마치 초대교회 같았다. 성도들끼리도 매일 보고 싶어서 일부러 교회에서 만나서 기도하고 함께 밥을 먹곤 하였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하여 나는 혼자서 청평에 있는 한얼산기도원에 올라가게 되었다. 문제는 기도 하겠다는 일념은 좋았는데 내가 젖먹이의 엄마로서 정기적으로 젖을 안 먹이면 고통이 따른다는 생각을 미처 못하고 기도원으로 올라간 것이다.

집회에 참석하고 있는데 젖이 불어 젖이 흐르다 못해 나중엔 땡땡하게 부풀어 아파오기 시작하였다. 어쩌다 기도원에 엄마가 데리고 온 아기들이 보이면 내 아기가 아닌데도 젖을 물리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제 엄마가 있는데 나에게 젖을 주라고 할리가 만무했다.

그렇다고 중대한 결심을 하고 올라온 중보기도기간을 도중 하차할 수는 없었다. 나는 오전 집회가 끝나고 청평 시내로 점심을 드시러 가는 강사 목사님을 찾아갔다. 그리고 기상천외한 부탁을 하였다. 점심 드시고 오실때 약국에 들려서 젖짜는 유축기좀 사다 달라고 했던 것이다.

물론 밤 집회에도 말씀을 전하기로 된 강사 목사님은 유축기를 사다 주셨다. 나는 유축기로 화장실에 가서 젖을 짜서 버리면서 집회에 참석하고 기도를 하였다. 젖을 짜서 버릴때마다 젖을 먹는 막내가 생각났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당시는 기도원에서 매주 5박 6일의 집회를 하던 때여서 월요일 부흥집회를 시작하면 토요일날 오전에 집회가 끝났다. 마지막 집회 시간에 이천석 목사님이 말씀 하셨다. 이곳에 한주간 참석하신 여러분은 이미 성령의 능력이 임했으니 산에서 내려가면 가장 질긴 영혼을 붙들고 전도 하면 반드시 역사가 나타날 것이 라고 하였다.

피곤 하다고 해서 집에 가서 잠을 퍼질러 잤다가는(이천석 목사님의 표현) 능력이 다 사라져 버리니 잠을 자서는 절대 안된다는 것이다. 능력이 충만할때 곧장 전도하러 가라고 하는 것이다. 한주간 만에 집에 오는 젖먹이 아기 엄마인 나는 어서 집에 가서 아기를 받아 젖도 먹이고 싶고 유치원 다니던 위의 두 아이들도 안아보고 싶었다.

하지만 목사님의 말씀에 순종 하기로 하였다. 그래서 기도원에서 돌아오자 마자 집으로 안 가고 택시를 잡아 타고는 친정집으로 향하였다. 당시 89세인 우리 친정 할머니를 전도하기 위해서였다. 할머니는 중풍에 걸려 오른쪽 상반신과 하빈신 전부를 못 쓰셨다.

그런 몸이면서도 마음만은 얼마나 강팎하신지 내가 예수 믿으시라고 전도를 하면 “나는 죄없다 너나 믿어라”하시는 분이었다. 당시 나는 할머니의 구원을 놓고 40일 작정 새벽기도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할머니의 구원에 대한 열망이 더욱 간절했을 때였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기도원에서 내려오자마자 할머니에게 전도하러 달려간 나에게 할머니는 예전에 말씀 하시던 대로 “너나 믿어라”가 아니었다. 아니 전혀 뜻밖의 대답을 하시는 것이다. 그것은 “믿고 싶지만 내가 다리를 못쓰는데 어떻게 믿니?” 라고 양순 하게 대답을 하시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할머니의 말은 예수 믿으려면 교회에 가야 하는데 내가 못 걸으니 어떻게 교회에 가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내 귀에는 이미 할머니의 마음에 하나님께서 역사하고 계시다는 것이 깨달아 졌다. 그래서 얼른 할머니께 대답을 해 드렸다.

“할머니, 예수 믿고 구원 받는 것은 교회에 안가셔도 돼요. 이 자리에서 예수님 영접하시고 입으로 시인 하시면 구원 받을 수 있는 거예요.”그 다음 단계는 아주 쉬웠다. 언제 그렇게 강팎한 분이었던가 싶게도 할머니는 내가 인도 하는대로 순순히 자신이 죄인인것을 고백 하셨고 예수님을 자신의 구세주로 영접 하셨다.

그후 나는 휠체어를 빌려서 할머니를 모시고 교회에 가서 교회 등록을 해 드렸다. 할머니 89년 평생에 처음으로 교회에 가신 것이다. 자동차도 없고 교회는 상가 이층으로 엘리베이터도 없어서 청년들의 도움을 받아야만 휠체어째 들어 올릴 수가 있어서 단 한번 교회에 가시고는 못 가셨다.

하지만 믿음으로 주님을 영접한 할머니에게 주님은 함께 해 주셨다. 나는 목사님을 모시고 가서 세례를 받게해 드렸다. 할머니는 목사님의 병상세례를 위한 질문에 또박 또박 예수님이 자신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돌아 가셨다고 고백을 하시고 세례를 받으셨다.

중풍이셨지만 식사는 잘 하시던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두어달 전부터 식음을 전폐 하셨다. 물 종류만 겨우 마시면서 금식 아닌 금식을 하셨다. 통통하던 할머니는 많이 마르게 되셨지만 얼굴만은 아주 평화로웠다. 그것을 지켜보던 나는 하나님께서 할머니를 천국에 데려가시기전에 금식하게 하여 회개의 기간을 주신후 데려 가시려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꼭 40일을 그렇게 금식을 하시더니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할머니가 천국에 입성하던 날 오전에 이상하게 친정에 가고 싶어서 갔더니 친정 어머니는 좀전에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하였다. 나는 방에 들어가서 이미 돌아가신 할머니의 얼굴을 만져 보았다.

할머니의 모습은 부드럽고 따뜻했으며 아주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마치 평소에 주무시던 모습 그대로였다. 나는 이미 영혼이 떠난 할머니와 단둘이 있어도 조금도 무섭지가 않았다. 그래서 “할머니 잘가 나중에 천국에서 만나”라고 속삭이며 할머니 이마에 입을 맞추어 드렸다.

우리 할머니의 구원은 교회 중보자로 쓰임 받았던 나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었다. 그후로 나는 어떤 질긴 영혼도 기도로 준비만 되면 구원받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기도의 능력은 이처럼 위대하다. 지옥에서 천국으로 한 영혼을 이동시키는 능력이 기도에 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막 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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