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 칼럼]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

내가 필진으로 있는 ‘중국어문선교회’에서 발행하는 ‘중국을 주께로’가 200호를 맞았다. ‘중주’가 짧지 않은 세월을 참 잘 달려왔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것은 끊임없이 자신을 쳐서 주님께 복종 시키며 헌신해온 분들의 노고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중국을 주께로’를 창립하고 지금까지 지켜온 대표인 박성주 장로님 부부의 헌신이 있었다.

다음은 실무를 맡아 일해 온 총무님과 간사님들 특별히 ‘중국을 주께로’의 편집장인 차하경 간사님의 수고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수고한 발란티어들이 있다.

내가 ‘중국을 주께로’ 와 인연을 맺은 것은 중국선교 때문이었다. 중국어 훈련을 받고 중국에 선교사로 가기 위해 중국 어문 선교회를 찾게 되었었다. 이제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해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려고 한다.

내가 30대였던 시절 어느 수요일 저녁이었다. 우리 부부는 교회의 모든 공예배에 빠짐없이 참석하며 열심히 믿음생활을 했었다. 그 수요일 저녁 목사님의 설교 제목은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였다.

수요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남편과 대화를 나누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남편도 나도 그날 설교에서 목사님이 말씀하신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는 바로 우리 두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는 집으로 돌아오면서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야 할 삶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우리 부부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예수님을 따라 가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 후 우리에게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한 훈련의 삶이 시작되었다. 매사에 교회와 관련된 일은 바로 나의 일이었다. 교회가 어려워지고 목사님이 병들고 힘들어질 때면 누구보다도 앞서서 기도하면서 나는 그 기도의 짐을 기꺼이 지고 싶어 했다. 진심으로 우리 교회를 사랑했으니까 말이다.

또한 우리 부부는 복음의 증인이 되기 원하였다. 그리고 우리가 선교사로 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 깨달음이 있고 강도 높은 훈련이 시작되었는데 말씀과 기도훈련은 기본이었다.

매일 큐티와 새벽기도를 통해 영성을 키워 주셨다. 당시 우리 가족은 노원구 상계동에 있는 벽산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그리고 교회는 동부이촌동의 온누리교회를 나갔다.

고 하용조 목사님은 성도들이 새벽을 깨우게 하기 위해서 교회를 풀가동하게 했다. 그래서 새벽기도가 끝나고 집에 갔다가 직장에 가는 것이 늦어지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식당을 새벽부터 열었다.

나는 새벽기도를 너무나 참석하고 싶었다. 그러나 상계동에서 동부이촌동은 이웃마을이 아니었다. 더욱이 자동차도 없는 내게는 불가능해 보였다. 그러나 뜻이 있으면 길은 있는 법인가 보다.

나는 기도하던 중에 한 집사님이 기억이 났다. 매우 신실한 여집사님인 그분은 의정부에 살고 있었다. 나는 그분에게 전화를 걸어 새벽기도에 같이 나가자고 제의를 했다.

그분도 간절한 기도제목이 있었던 터라 그렇게 하기로 하였다. 집사님은 새벽에 자동차로 의정부에서 상계동 우리집에 와서 나를 태우고 온누리 교회로 갔다. 실로 너무도 사모하는 기도생활이었다.

새벽기도를 마치면 집사님은 혼자 의정부로 돌아가고 나는 교회에 남아 충분히 기도를 했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교회 식당에는 권사님들이 따뜻한 쇠고기 무우국에 흰쌀밥을 만들어 놓고 기도 마치고 나오는 성도들을 기다렸다.

김치와 김, 쇠고기 무우국 이런 정도의 간단한 아침이지만 추위를 녹이고 부르짖고 기도하느라 쏟은 에너지로 인해 허기진 배를 채워 주기엔 너무나 훌륭한 식사였다.

그리고 나서 나는 당시 받고 있던 선교훈련을 받으러 갔다. ‘중국어문선교회’에서 하루 종일 중국어를 배웠다. 선교훈련의 일환으로 중국어 훈련을 받으러 다닌 것이다. 그런데 모든 훈련이 그렇듯이 훈련을 받기 위한 준비 역시 훈련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온누리교회에 와서 새벽기도를 참석하고 ‘중국어문선교회’에 가서 하루종일 그 훈련을 받아내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쳐서 복종시켜야 했다. 새벽 2시-3시 사이에 졸린눈을 비비고 일어났다.

새벽기도를 가기 위해 집을 출발하기 전에 가족들의 일상을 위한 모든 준비를 해놓고 출발해야 했기 때문이다. 먼저 아침밥을 짓고 학교가는 아이들 도시락을 싸놓고 아침상을 식탁에 차려 놓는다.

남편 K선교사는 당시 장신대 신대원생이어서 학교에 가야 했다. 위로 두 아이는 중학생 이어서 저희들 스스로 준비하고 차려 논 밥을 먹고 도시락을 들고 학교에 가면 되었지만 아직 초등학생으로 어린 막내가 문제였다.

무엇보다 머리를 길게 기른 막내의 머리를 빗겨주지 않으면 몽두난발을 하고 학교에 가게 생겼으니 그게 큰 문제였다. 나는 한 방법을 찾아내었다. 뜻이 있으면 길은 항상 있으니까 말이다.

나는 세상모르고 잠든 막내를 안아서 침대에 머리를 대도록 잠든 아이를 엎어 놓고는 머리를 빗겼다. 긴 머리를 곱게 빗겨 땋아 내려서 단정하게 한 다음 다시 눕혀 재우고는 새벽기도를 참석하러 집을 떠나는 것이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부름 받은 제자가 되는 길은 그래서 쉬운 길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부지런해야 한다. 게으르고 잠자기를 좋아해서는 결코 갈 수 없는 길이다.

왜냐하면 기도하지 않는다면 제자의 길은 이미 갈 수 없는 길이기 때문이다. 기독교 역사에 기도하지 않은 사람을 하나님이 쓰신 적이 있었는가를 찾아보면 기도의 중요성을 잘 알 수 있는 일이다

제자의 길은 먼저 기도훈련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기도해야 믿음의 은사를 비롯한 각양 사역에 필요한 은사를 받을 수 있고 기도해야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능력을 받을 수 있다.

엠마오로 가던 두제자인 나와 남편 K선교사는 선교지에서 비자 제한을 받아 다시 우리의 예루살렘인 고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변함없이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기로 결단하고 있다.

최근 인테리어를 마친 예배당은 그래서 필요해진 것이다. 전도해서 훈련하여 엠마오의 두 제자 같은 제자를 키워내야 하니까 말이다. 그래서 오늘 하나님은 또 무슨 일을 하실지 무척 기대가 된다.

아울러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 함께 해 주었던 ‘중국어문선교회’에 감사드린다. 그리고 내가 쓰는 선교문학이 ‘중국을 주께로’에 실리는 것 또한 내게는 아주 큰 기쁨이다.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중국을 주께로’가 발행되기를 축복한다.

“그 날에 그들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면서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 하더라(눅 24: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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