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 칼럼] 위로의 날 에피소드

얼마 전에 나는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라는 제목의 수필을 썼다. 작년 한 해에 거의 모든 선교후원이 중단된 사태를 맞이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 글은 나 스스로를 격려하면서 이미 없어진 치즈 때문에 좌절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진 글이었다.

또 한편으론 그 없어진 치즈 대신에 하나님께서 새로운 치즈를 준비해 놓으셨을 것이라는 믿음과 희망을 담은 글이기도 하였다. 그런데 그 수필을 읽은 월드뷰(Worldview) 지원 기도모임의 권사님 한분이 카톡을 보내왔다.

“나 목사님…우리가 있잖아요. ~ 너무 낙담마세요. 기도 같이할게요.” 형제의 어려움 앞에서 기도해 주겠다는 권사님의 아름다운 마음이 참 고마웠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을까 했을 때 돌아오는 주일 오후에 월드뷰 기도팀들이 우리교회를 방문하겠다는 연락이 온 것이다.

우한발 코로나19(COVID19)가 기승을 부리는 이때에 힘들어 하는 나를 위로하기 위해서 대부분 먼거리에 살고 있는 월드뷰 지원 기도팀들이 방문하겠다는 소식부터가 내게는 위로가 되었다. 참 쉽지 않은 일인데…….

나는 월드뷰 지원 기도팀들의 방문에 감격하면서 무언가 나도 작은 정성이라도 준비해 두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동네 마트에 갔더니 봄알타리가 싱싱했다. 알타리와 쪽파를 사서 집에 가지고 와서 다듬고 씻고 절였다.

봄김치니 그냥 담을 수도 있었지만 찹쌀 풀도 해서 넣고 정성을 들였다. 그렇게 얼마간의 나의 수고를 거친 후 알타리김치가 맛있게 담가졌다. 이제 우리 교회를 방문하는 가정 수대로 덜어서 담으면 되었다.

나는 또 나박김치를 담갔다. 봄엔 입맛을 잃기 쉽다. 매 끼니마다 뜨거운 국을 끓이는 것도 뭣해서 가끔은 나박김치를 국대용으로 시원하게 먹어도 좋기 때문이다. 우리 집엔 90 노령의 어머니가 계시니 음식도 어른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야 한다.

무우를 네모나게 얇게 썰어서 살짝 절이고 쌈배추 한포기도 씻어서 작게 잘라서 함께 절였다. 색이 예쁘라고 당근도 한 개 썰어 넣었다. 그리고 파 마늘을 넣고 고춧가루를 불린 후 채에 받혀서 고운 고추가루물을 부으면 되었다.

보통 이렇게만 담아도 나박김치는 맛있다. 그런데 이번엔 특별히 봄향기 물씬 나는 미나리도 넣기로 했다. 마침 대구에 사는 사모님이 미나리를 한 박스 보내 주셨기 때문이다. 나는 사모님에게 웬 미나리를 다 보냈느냐는 카톡을 보냈다.

그런데 사모님이 보내온 답장은 마음이 좀 짠한 내용이었다. 최근 요양병원에서 간병하던 중국 국적 조선족 간병인에 의해 전파 되어서 우한발 코로나19 확진자가 많이 나오고 사망자도 많이 나온 청도 대남 병원 이야기를 여러분도 알고 있을 것이다.

바로 그 청도에서 미나리 농장을 하는 권사님이 미나리가 안 팔린다는 말을 듣고서 그 사모님은 그 권사님을 돕기 위해서 자신도 미나리를 한 박스 사고 내게도 미나리 한 박스를 사서 택배로 보낸 것이었다. 정말 먹음직한 새 파랗고 싱싱한 미나리였다.

미나리 줄거리는 잘라서 씻어서 통에 담아 놓았다. 초절임 겉절이를 해 먹으면 맛있을 것 같았다. 미나리 잎사귀와 미나리 앞대공 부분도 하나도 버리지 않고 모아서 끓는 물에 살짝 데쳐 두었다. 참기름을 두르고 양념을 해서 무쳐 놓으면 미나리나물은 아주 감칠맛 나게 맛있다.

그렇게 따로 담아논 미나리 줄거리를 작게 잘라서 나박김치에 넣었다. 핑크빛 불그스레한 고춧물에 하양(무우) 노랑(쌈배추) 빨강(당근) 파랑(미나리줄기)가 어울려서 봄나박김치의 색깔이 참 예뻤다. 무엇보다 봄나박김치에 미나리가 들어가면 향이 아주 일품이다.

드디어 지난주일 오후 두시 반에 맞추어 월드뷰 지원 기도팀들이 속속 도착했다. 한분을 빼고 전부 부부동반 이었다. 조심하기 위해서 모두 알아서 서로 뚝 뚝 떨어져 앉았다. 내가 예배를 인도했고 남편 K선교사가 설교를 했다.

예배를 마친 후 우리교회 로비의 원탁에 빙 둘러 앉아 원탁교제가 시작 되었다. 지난달 기도 모임도 우한발 코로나19로 인해 안 가졌기 때문에 월드뷰 지원 기도 팀원들은 더욱 반가운 만남이 된 셈이다.

준비된 다과와 과일과 차를 마시며 시간 가는 줄 모르는 교제가 이어졌다. 교제가 충분히 되어 졌다고 느꼈을 때 내가 제안을 했다. 모인 김에 기도회를 갖자고 말이다. 우리는 여러 가지 기도제목을 놓고 합심하여 열심히 한 삼십분 이상을 기도 했다.

기도를 마치고 보니 곧 땅거미가 질 시간이었다. 나는 미리 준비해서 냉장고에 보관해 두었던 알타리김치와 나박김치를 꺼내어 가정별로 선물했다. 아마 어딘가를 방문했다가 김치를 선물로 받는 일은 드물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 모두들 기뻐했다.

나 역시 기뻤다. 내가 정성 들이고 수고해서 만든 알타리김치와 나박김치가 월드뷰 지원기도팀 한가정한 가정의 저녁 밥상에 오를 생각을 하니 기분이 매우 좋아졌다. 월드뷰 지원기도팀들이 돌아간 후 헌금을 계수했다.

적지 않은 액수였다. 아마 우리 지은나교회가 시작된 이래 가장 많은 헌금일 듯 했다. 나는 순간 사무실 책상위에 놓인 곧 내야 하는 관리비 고지서와 전기요금 고지서가 생각났다. 이제 그걸 낼 수 있겠구나……. 날자 넘기지 않고서 말이다.

월드뷰 지원 기도팀들이 각각 자신들이 타고 온 자동차를 타고 돌아간 후 나는 남편과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 저녁을 챙겨 드려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는 저녁을 금식하고 있지만 어머니는 꼭 식사를 차려 드려야 하기 때문에 발걸음이 빨라졌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면서 남편과 대화를 나누다가 나는 정말 기막힌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남편 K선교사는 오늘 방문한 월드뷰 지원 기도팀들이 왜 오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잘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내가 남편에게 물었다. “아니, 내가 쓴 수필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를 당신 안 읽었어요?” 그러자 남편은 아주 천연덕스럽게 대답한다. “아니, 안 읽었어. 바빠서……. 무슨 내용인데?”

아니… 이럴 수가… 이 사람이 바로 내가 40년간 함께 살고 있는 남편이다. 이처럼 매사에 나의 인내는 단련을 받는다. 뭐든 급할 것 없는 남편 K선교사 덕분에 아마도 부족한 내가 이만큼 사람 만들어졌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 일은 또 하나의 에피소드가 되었다.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로 고민하던 우리 가정에게 월드뷰 기도지원팀의 따뜻한 위로를 받으면서도 정작 당사자인 남편은 그 이유를 모르고 있었다니 말이다.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사 40:1)

나은혜 선교사(지구촌 선교문학 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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