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LA 한인타운 ‘지붕위의 한인들’ 이번에도 지켜냈다

1992년 4.29 폭동 당시 약탈자들을 향해 총을 쏘는 데이빗 주 자경단원,

[LA=시니어타임즈US] 미네아폴리스에서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 경찰로부터 목조르기로 사망한 후 발생한 미국의 전국적인 폭동 사태가 로스앤젤레스에도 번졌으나 지난 1992년 4.29폭동 때와는 달리 LA 한인타운은 거의 피해가 없었으며 이제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사태는 소멸되고 있다.

이는 4.29 폭동 때 2,300여개의 한인업소가 전소되거나 파괴된 것과 비교해서 엄청난 차이이며 이번 사태에서 한인타운이 이렇게 잘 성공적으로 피해 없이 방어해낸 것은 4.29 때 경험으로 즉시 자경 순찰대가 출동되었고, 그동안 소위 지붕위의 한인들(Rooftop Koreans)로 미국 사회에 한인들은 자신들의 타운을 무기로 즉시 방어한다는 이미지가 굳혀져 있는 것과 또한 미국 주 방위군이 사태가 번지기 전 즉각 타운내 요소에 배치된 점이 그 요인으로 보이고 있다.

1992년 4월 29일 발생한 로스앤젤레스 폭동은 그야말로 미국 한인사회가 경험한 최악의 사태였으며 2,300여 한인업소들이 불타거나 파괴 되었고, 당시 자경단으로 참가한 2세 이재성 군이 사망하였으며 그 정신적 피해 또한 심각하였다.

그동안 한인사회에서는 수년전부터 또 하나의 폭동이 발생하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가 논의되어왔다. 미국 사회의 폭동 주기를 보면 대략 30년 간격으로 폭동이 발생한다는 것이 정설인데 실제 60년대 초 로스앤젤레스 와츠의 흑인폭동, 그리고 1992년 로스앤젤레스 폭동이 있었으며, 드디어 30여년이 지난 지금 다시 2020년에 폭동이 발생한 것이다.

필자도 1992년 당시 폭동을 경험하였으며 당시를 회고해볼 때 이번 폭동 사태는 당시 한인타운에서 발생한 것에 비할 때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당시 1992년에는 한인타운이 거의 전소되었으며, 특히 미국 주류 언론에서 한인들이 폭동의 원인이고 주 피해자라는 것이 보도되는 것이 더욱 괴로웠다.

당시에도 흑인 로드니 킹이 백인 경찰로부터 무차별 구타당한 것이 언론에 보도된 것이 원인이었는데도 언론에서는 한인 두순자 여인의 흑인 소녀 총격사살만을 집중적으로 보도하였고 피해자도 한인들 중심이다라고 왜곡 보도하였다.

 2세들의 2020년 자경단 조직

이번 2020 폭동도 미네아폴리스에서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 경찰로부터 과잉 목조르기로 사망한 사진이 언론에 보도되고 이것이 촉발되어 폭동이 전국적으로 번진 것으로 그 사태 발생과정은 유사하다.

1992년 4.29 폭동 때에는 폭도들이 한인타운을 휩쓸며 업소들에 불 지르고 약탈을 자행하였으며 이에 대응하여 한인 업주들과 자원 자경대들이 지붕위에 올라가 약탈자들에 총을 쏘는 장면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일약 ‘지붕위의 한인들(Rooftop Koreans)’이라고 불렸으며, 이는 미국인들에게 한국인들은 공격을 당하면 가만두지 않는다는 용맹성이 뚜렷이 인식된 계기가 되었다. 당시 데이빗 주 씨와 리처드 박 씨가 약탈자들에게 총을 쏘는 장면이 언론에 크게 보도되었고 이들이 지붕위의 한인들을 대표하게 되었다.

이후 이들의 총을 쏘는 장면이 언론과 소셜 미디어에서 돌면서 이들의 용맹성은 미국인들의 뇌리에 박히게 되었다. 이번 2020년 폭동사태를 볼 때 한인타운은 일부 약탈이 있었지만 대체로 건재하였으며, 28년 전 이들 자경단의 활동 기억으로 약탈자들이 감히 한인타운을 넘보지 않은 것이다. 현재 한인타운의 약탈행위는 8가와 옥스포드 몇 한인 업소들, 윌셔의 미국 약국 소매점 CVS, 코리아타운 일부 유리창, 그리고 3가의 일부 타 한인업소 정도만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인 자경단은 또한 이번에도 출동하여 해병전우회 서부지회가 폭동 발생 후 즉시 한인회와 함께 조직을 재건하고 자체 순찰에 나서 한인타운 방어에 나섰고, 또한 2세들도 이들만의 자경단을 조직하여 라이플로 무장한 사진을 소셜 미디어에 올렸다. 이외에도 한인타운 방어 Defense Koreatown이 조직되어 소셜미디어에 한인타운 상황과 자경단 활동 사진을 올렸다.

라스베가스의 한인 자경단

이외에도 주 방위군이 지난 4.29 때와는 달리 사태 발생 즉시 배치되어 올릭픽과 웨스턴 갤러리아 마켓 앞, 코리아타운 플라자, 윌셔와 웨스턴에 장갑차와 함께 진주하여 강력한 타운 방어에 나선 것도 큰 힘을 더하였다.

1992년 당시에는 주 방위군이 방화와 약탈이 거의 끝난 무렵에 늦게 출동되어 아무런 효과도 없어 오히려 진주한 방위군들을 향해 일부 한인들이 왜 늦게 왔냐고 비난하기도 하였다. 현재 주 방위군 병력은 아직도 한인 요소에 배치되어 있어 약탈 방지에 큰 힘이 되고 있다. 이는 한인상공회의소가 중심이 되어 당국에 크게 요청한 것이 주효한 것으로 다시 한 번 지난 1992년 후 발전해 온 한인사회의 위상을 실감할 수 있게 되었다. 당시 한인상공회의소 하기환 회장은 자경단 조직에 큰 역할을 하였으며 한남체인 마켓과 가주 마켓이 자경단 활동으로 무사할 수 있었다.

이제 폭동사태가 가라앉으면서 한인사회는 진정을 맞고 있으며 점차 정상으로 돌아가는 모습이다. 이번만큼은 한인들이 단결하여 즉시 행동에 나서 주 방위군과 함께 타운을 잘 성공적으로 지켜내어 크나큰 감동과 교훈이 되고 있다. 앞으로도 이 같은 폭동 소요사태가 발생한다면 이번의 교훈으로 다시 한 번 타운을 잘 지켜낼 것이며 한인사회는 우리들의 타운은 우리 스스로가 지킨다는 믿음아래 계속 발전해나갈 것이다.

한인타운에 폭동 발생 후 즉시 출동되어 약탈을 방지한 주 방위군

국제부 김태수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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