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서양(민주주의)과 동양(민주화)의 극단적 차이

[LA=시니어타임즈US] 본지는 2020년 7월부터 최익주 선생의 <그렇게 선진국이 가능해?(가제)> – 국민의 반성과 국가적 전환점(부제)을 저자와의 합의 하에 글이 출판되기 이전에 연재를 시작한다. 연재는 회차별로 매주 한편씩 실리게 되며, 글의 배포는 무방하나 무단전재는 금한다. 글의 소유는 전적으로 저자 최익주 선생에게 있음을 알리며, 본지의 편집방향과는 무방하다.

<그렇게 선진국이 가능해?>는 저자가 20년여 전부터 대한민국이 인간적으로는 물론이고 총체적으로 한계에 봉착했고, 또다시 혼란과 위기와 망국의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라는 점을 인지함과 동시에 한계에 도달할 수밖에 없는 원인들을 연구했다. 이에 저자는 대한민국이 부디 새롭게 출발되기를 바라는 소망을 가지고 산업화 이후의 시기부터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일어난 일련의 최근 사건들을 통해 그 문제점 되짚으며, 앞으로 대한민국이 바르게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편집자주>

2. 서양(민주주의)과 동양(민주화)의 극단적 차이

서양과 동양의 가장 심각한 차이는 서민들(인간성, 자질확보, 관심사, 인간관계 등)이다.

선진국의 국민들

선진국은 특권층과 기득권층과 서민이라는 구분이 없다. 그래도 기어코 구분한다면 암울했던 역사를 통해서 국민의 인간다운 삶을 고민하고 연구해서 법과 제도로 만들어낸 사상가(철학자, 자유주의자, 계몽운동가)들이 있고, 이에 공감하고 동의하고 믿고 함께해서 현실화시킨 대다수 국민이 있다. 그래서 이들 모두가 법과 제도를 구상하고 만들어내고 실천하는 당사자들 곧 주인과 주체와 주역과 주인공이다. 이를 요약하면 우리에게는 정치에 속하는 민주주의와 최고급 형이상학적인 개념들이 곧 이들에게는 문화다.

개발도상국의 서민들

후진(개발도상)국은 나약한 서민들을 차별하고 착취하고 학대해서 자신들의 호의호식과 입신양명과 부귀영화를 도모해온 특권계급(양반, 탐관오리)이 있고, 이들을 지탱해준 기득권층(공무원, 지식인, 언론 등)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에 짓눌리면서 당하는 피해자들 곧 서민들과 실패자들과 무지한 대중이 있다. 이는 후진국의 문화는 비인간적인 수준에서 엉망진창으로 형성되고 진행된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후진국들에서 서민들은 자긍심을 지니지 못하고, 서민 신분(신세)에서 벗어나는 것이 꿈이거나, 근심과 걱정 없이 잘 먹고 잘사는 것을 목적한다.

중요한 점은 서민들이 가해자인 특권층과 기득권층을 존중하지 않으며, 똑같은 서민들이 서민들을 더욱더 짓밟고 멸시한다는 사실이다. 왜냐면 누가 뭐라고 하든 서민들이 똑같은 서민(자신)들을 가장 잘 알기 때문이고, 서로를 강력하게 견제하고 비교하고 질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후진국의 공통점은 반성하지 않고 합리화한다는 점이고, 존중하지 않고 비난하고 공격하고 흉보고 질투한다는 점이며, 문화와 관행들이 합리적이지도 바람직하지도 못한다는 점이다.

우리 역사와 현대사에서 상놈들과 서민들

우리 역사에서는 양반들이 상놈들을 차별했고, 이는 신분제도에 의한 차별이다. 하지만 상놈들을 더욱더 악랄하게 차별하고 학대했던 사람들은 똑같은 상놈들이었다.

왜냐면 양반을 등에 업은 상놈들이 양반들보다 더 설쳐댔기 때문이고, 양반들보다는 상놈들이 상놈들과 부대낄 일들이 훨씬 더 많았기 때문이며, 상놈들이 상놈들을 훨씬 더 잘 알았기 때문이고, 상놈들은 무시를 많이 당해봐서 무시(보복, 정서)에 익숙해진 채 무시를 당연하게 여기기 때문이며, 어떻든 상놈들이 양반들보다 훨씬 더 무지하고 감정적이었다.

후진국들의 민주화

후진국들의 민주화는 감정(저항, 투쟁, 보복, 공격, 타도 등)이 위주이며, 선진국들처럼 인류애와 진지함과 성숙함에서 턱없이 미달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다수인 국민(서민, 민중, 대중, 지식인, 지도자 등)이 수준 높은 민주주의의 주인과 주체와 주역과 주인공이 될 수 없다. 특히 서민들은 민주화(인물, 세력)에도 끌려다니거나, 이용만 당해주거나, 진정한 변화(민주주의 정착)보다는 답답한 자신들(과거, 방식, 습성 등)을 고수하거나, 위·불·편법·청탁으로 특혜를 누리려고 하거나, 특권·기득권 계급에 잘 보이거나, 이에 가담해서 유유상종하려고 비위를 맞춰주는 등 오히려 비민주적·비인간적·반민족적인 짓들을 당연히 저지르고, 서양의 수준 높은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기는커녕 시늉하기에 급급한 채 이해조차 하기 어렵다.

우리의 한계

이 책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평범하면서도 밑바닥에서 살아온 서민이 오래 고민하고 연구하고 준비한 내용이다. 왜냐면 자유민주주의는 수준 높은 국민의식 곧 국민(지도자, 공직자, 정치인, 언론인, 전문가, 성직자, 시민단체, 서민들, 젊은이, 어린이 등)의 의식향상이 아니면 절대로 해결점도 전환점도 돌파구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평범한 서민이 이토록 오랜 세월 다양한 연구들을 진행해오는 동안에도 대한민국은 실패와 위기와 망국의 악순환이었다. 역시 나라를 이끌거나, 전면에서 활약했던 인물들과 세력들이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정착과 현대사의 정통성 확립에 성공하지 못했다.

이러한 방안과 취지도 무용지물이 되어버릴 가능성

오랫동안 서민이 준비한 여기 내용도 우리 국민에게 무시·외면당할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 왜냐하면 우리는 역사와 현대사에서도 훌륭한 인물들이 빛을 보지 못하고 꺾여버린 경우들이 훨씬 더 많았기 때문이다. 역시 서민(백성, 국민)들이 애써서 죽을 써서 출세(권력) 지상주의자들 좋은 일만 해준 채 또다시 불행과 고통을 감당해주는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감안하고 읽어주기 바란다.

저자 최익주 선생은 전남 목포 출생으로 목포북교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광주광역시로 이사해서 북성중학교, 동신고등학교, 조선대학교 경영학과(78학번)를 졸업했다.

군생활을 오산비행장 방공포부대에서 병장 만기 제대, 3년간의 개인 사업을 했으며, 관세사무소에서 16년 동안 사무장으로 지내다가 광주세관과 관세청과 부정비리 문제로 싸움(형사소송)이 시작되었다. 대한민국의 실체와 실상을 깨닫고 인생을 180도 선회. 이후 밑바닥부터 다시 터득하고 통달해야 한다는 각오로 시민단체(2-3년), 택시기사(2년 6월), 생산공장과 건물경비(10년여)를 전전하면서 노동자 생활을 해왔다.

저서로는 <이제는 바꿔봅시다(1997.7.30.)> <대화로 여는 새아침(1999.9.20.)> <사랑하는 선·순·아에게 제1-4권(2018.7.13.)>이 있다. 

 

다음은 “3. 비운의 대통령들과 말짱 도루묵인 대한민국”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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