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 칼럼] 초록 생명의 힘

우리 선교회 사무실겸 지은나교회엔 스무명 정도 앉을 수 있는 작은 카페가 있다. 이름하여 ‘깊은 바다 카페(deep blue cafe)’ 이다.

나는 새벽예배를 마치고 카페 주방에서 물마신 컵을 씻고 난 후에 물을 흘려 보냈다. 그러다가 혹시나 쓰레기가 있지나 않을까 하고 싱크대 물빠지는 배수구의 플라스틱 뚜껑을 열고 들여다 보던 나는그만 깜짝 놀라고야 말았다.

그러나 다음 순간에 나의 입가엔 흐믓한 미소가 떠올랐다. 도대체 주방배수구안에서 무엇을 발견했기에 하면서 나의 이해 못할 행동에 궁금해 하실분도 있을 것이다. 자, 이제 궁금증을 풀어가 보도록 하자.

배수구에 얹혀 있는 플라스틱 뚜껑을 열자 스텐레스 배수용 용기에 파아란 초록 생명들이 한가득 자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여기까지 글을 읽은 분들은 “웬 주방 싱크대 배수구안에서 새싹들이 자라지?” 라고또 매우 의아해 하실 것이다.

사실 우리 카페 주방은 평일엔 요리는 거의 하지 않는다. 물을 쓰는 것은 주로 찻잔을 씻든가 과일을 씻는 용도로만 사용하는 편이다. 그러니까 한주간 전쯤인가 보다. 참외를 깎아먹기 위해서 참외속을 파내고 참외껍질은 음식물 쓰레기통에 잘 처리를 했다.

하지만 물에 떠내려간 조그만 참외씨들은 배수구에 걸려 있다가 종종 찻잔을 씻으며 흘려 보내주는 물을 받아 먹으며 카페주방 배수구 물받침 안에서 초록생명의 싹을 틔운 것이다.

배수구 뚜껑이 덮여 있어서 아무도 들여다 봐 주지 않았어도 참외씨들은 불평하지 않고 조용히 초록생명을 잉태하고 있다가 시간이 흘러가자 하나 둘 딱딱한 껍질을 깨고 새 생명을 밀어낸 것이다.

마침 우리 카페 주방은 서쪽 창가에 있어서 오후엔 햇빛도 깊이 들어온다. 그리고 하루에 한 두번 혹은 서너번씩 컵을 씻으면서 가끔씩 흘려 보내주는 물을 양분 삼아서 그들은 분주하게 생명의 싹을 틔울 준비를 한 것이다.

어쩌면 곧 발견되어 배수구에서 쓰레기통으로 직행할지도 모를 운명이라는 것도 그들은 두려워 하지 않고 말이다. 다만 그들에게 주어진 여건 속에서 생명 만들기에 충실 하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배수구 가득 초록 생명을 틔워서 그 조그만 씨에서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벋어 올려 초록나비 모양의 잎을 만들어 내었던 것이다. 이제 자기들끼리 앞다투어 자라 올라가며 ‘초록생명축제’를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깊은 바다 카페’ 주방엔 내가 매일 음악을 틀어 둔다. 조용한 피아노 연주곡이나 바이얼린으로 연주한 G선상의 아리아를 틀어 놓기도 하고 새벽엔 새벽기도에 어울리는 경음악을 틀어 놓는다.

참외씨들은 ‘깊은바다카페’ 주방의 배수구 안에서 그런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며 생명을 틔울 힘을 얻었을지도 모른다. 간접적이긴 하지만 오후내내 찾아와 참외씨들을 애무해 주었을 몇 줄기 햇볕과 사랑에 빠졌을지도 모른다.

충분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죽지 않을만큼 가끔 흘려 보내주는 물세례를 받으며 그들은 흠씬 목욕을 하고 목마름에서 해갈을 하곤 했을 것이다.

아마도 어쩌면 참외씨들은 카페로 들어서는 내 발자국 소리가 가장 반가웠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누군가가 들어 와야만 물을 쏴아~싱크대 배수구로 흘려보내 줄테니까 말이다.

이처럼 공기와 햇볕과 수분이 공급되어지는 배수구 안에서 참외씨들은 모두 생명 발아의 용트림을 준비했고, 마침내 뿌리를 만들어 내리고 줄기를 벋어올려 초록색 나비모양의 앙징맞고 예쁜 잎을 만들어 낸 것이다.

나는 생전 처음 보는 이 놀라운 광경을 바라보다가 배수구 뚜껑을 옆에 놓고 조심스레 그 생명들을 손을 넣어 꺼내기 시작했다. 플라스틱 컵에다가 그 생명들을 옮겨놓고는 물을 흠뻑 부어 주었다.

하루 이틀 사흘… 나비모양의 간단한 초록잎에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줄기도 자라서 뻗어오르면서 또 다른 초록 잎들을 틔웠다. 이젠 제법 넓직해진 참외잎을 바라보며 나는 감탄을 터뜨렸다.

남편 K선교사는 그 예쁜초록 생명들이 우리가 깎아 먹고 버린 볼품 없는 작은 참외씨가 배수구에 걸려서 싹을 틔운 것이라는 내 설명을 듣고는 몹시 흥미로워 하였다.

“와~ 그럼 우리 이거 화분에 옮겨심어서 키우면 참외도 따먹을 수 있는거네”한다. 이 가냘프고 예쁜 초록생명을 보면서 노랗고 커다란 참외가 달린 모습을 금방 상상해 내다니 그의 상상력도 참 놀랍다.

아무튼 우리는 매일 초록생명들을 들여다 보고 보살펴 주는 것이 기쁨이 되고 있다. 어디다 두어야 초록이들이 더 잘 자랄까 고심 하면서 창가에도 놨다가 카페 탁자로 옮겼다가 한다.

요즘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은 평안하다고 말 할 수는 없다. 연일 터지는 뉴스마다 사람을 깜짝 깜짝 놀라게 만든다. 나라가 어찌 될까 사람 사람마다 염려가 많다.

이처럼 세상이 심란할 때 일수록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성실하게 잘 해내야 할것 같다. 참외씨들이 불편한 환경에서도 환경탓 하지 않고 싹을 내고 줄기를 벋어 초록잎의 생명을 만들어 내어 신의 창조역사에 동참하였듯이 말이다.

플라스틱 컵속에서 옹기 종기 초록색 나비모양의 참외순들이 앞다투어 물마시기 시합을 벌이는 모습을 다시한번 가만히 들여다 본다. 참 신기하다.

자연의 순리를 따라 인내하며 초록 생명의 싹을 틔운 작은 참외씨들이 참 대단해 보인다. 초록 나비잎 자체가 이미 귀엽고 사랑스럽기만 하다. 그들의 생명의 힘에 찬사가 터져 나온다.

우리도 오늘 저 초록이들에게서 인내를 배우고 어떤 여건에서도 생명을 만들어내는 충실한 태도를 배워야겠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똑바로 직시하면서도 진실하고 성실하게 살아가야 하겠다.

“진실로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시 36:9)”

나은혜 선교사(지구촌 선교문학 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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