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불의(不義) 앞에 침묵하지 않았다

예수가 본디오 빌라도에서 고난을 받으며 지키고자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이자 정의 그리고 그릇된 것 앞에 침묵하지 말며 죽음은 곧 천국의 부활이었음을 몸소 실천하려 했던 것이다. 그렇게 예수는 불의 앞에 침묵하지 않았고 죽음으로 ‘다 이뤄냈다’는 말을 남기며 가장 아름다운 항거를 했다.

최근 한국 교회를 보고 있자면 과연 용감하고도 아름다운 예수의 항거가 남아 있는지, 그리고 정의를 파괴하는 일 앞에 나아가 목숨까지 내 던지며 항거할 의지가 있는지 무척 의심스럽다. 최근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전광훈 목사를 보라.

우리는 그를 두둔하려는 것도 아니고 비난하려는 것도 아니다. 코로나19 전파자라는 죄목을 단 그가 광화문 광장에서 외치려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세상을 이제 떠나도 아깝지 않을 나이의 성난 군중들이 광장에 나와 외치려고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무엇이 그들을 코로나19 위협에도 불구하고 광장으로 내몰았는가? 우리는 그 본질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지난 8월 15일 광화문에 모인 성난 군중들의 외침은 자유 대한민국을 지키자는 것이다. 중국의 노예, 북한의 노예가 되어가는 조국의 현실 앞에 작은 힘이라도 끌고 나와 자유대한을 외친 것이다. 현 정부의 안일한 안보 태세와 북한에 대한 맹목적 사랑 그리고 세대간 분열과 가정의 파괴 앞에 그들은 그것을 바로잡자고 외치려 나온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외침은 수퍼 전파자라는 주홍글씨에 쌓인 채 그들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 항거하고자 하는 목표는 사라지고 연일 비난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그 무엇보다 사랑제일교회를 비롯해 개신교 교회에 대한 비난과 분노의 방향 찍기는 마치 누군가의 목표가 성공했음을 보여주는 것 같다. 그리고 교회들 대부분은 지금 너무나 몸을 사리고 스스로 단죄를 하며 자아비판에 열중 인 것 같다.

광화문 광장에 나온 목소리는 불의에 대한 항거다. 정권의 연일 계속되는 비리, 핵심 인물들의 부도덕, 몰염치. 조국 사태에 이어 윤미향, 부동산 사태. 그 외 더 이상 말로 하기도 힘든 현 정권의 불의에 죽음을 무릅쓰고 외치며 나왔다.

코로나 재확산에 대한 원인을 따져보자면 815 집회 이전의 것들을 생각해봐야 한다.임시 휴일을 정해 놀러가라고 장려했던 정부. 후베이성 입국자를 받은 정부. 그 외 코로나 종식이라는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트려 국민들의 긴장을 풀어헤친 정부. 815광장에 모인 이들 모두는 바로 이 것에 항거라고 외친 것이지 바이러스를 전파하려 모인 것은 절대 아닐 것이다.

진심으로 작금의 상황에 대한 명확한 해석과 행동을 한국 교회는 가져야 한다. 비난의 화살이 교회로 쏠릴 때 필요한 것은 진실 규명이지 교회 스스로의 자아 비판이 아니다. 한국 교회는 언제까지 불의 앞에 무릎 끓고 마스크를 쓴다는 것이 침묵을 말하는 것이라 자위하고 있을 것인가? 예수는 불의 앞에 침묵하지 않았다. 한국 교회가 명심하고 깨어나야 할 때다.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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