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 길드려진 국민, ‘정치적 동물농장’ 사육 가축된다.

미래 세대 위한 자유시민 교양 교육 필요

꿈자리가 좋았거나, 뭔가 축하할만한 기대되는 사건이 벌어지면 ‘로또’라는 복권을 사게 된다. 물론 허망하게 꽝으로 결론나지만, 복권구입 이후 추첨할 때까지, 정말 전혀 근거 없는 몽상으로 정신이 오락가락한다.

정부가 또다시 코로나사태로 인한 ‘국민피해지원금’을 만지작거리고, 이미 한번 지원금을 맛보았던 대한민국 국민들은 또다시 당연히 정부로부터 받아야 할 권리인양 돈 쓸 기대에 들떠 있다.

국가의 대국민 포퓰리즘이 확대되면 될수록 행정부의 중앙집권화는 강화된다. 국민들은 이 사실을 까마득히 모른다. 또 늘어나는 국가부채는 결국 자식세대들이 갚아야 할 미래의 빚이라는 사실도 잊어버린다. 그저 공짜 점심을 바라는 기대치만 날로 높아간다.

미국독립선언서와 프랑스인권선언서의 초미를 장식하는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다”(All Man are Born Equal)는 지구촌 민주사회의 보편적 가치가 되었다.

그러나 평등원칙과 1인1표의 투표제도로 모든 사회가 진정한 평등사회가 되었는가를 돌이켜보면 각기 다른 현실적인 양상들이 벌어진다. 개별국가마다 서로 다른 문화적, 역사적 습속(Mores)으로 인해 천차만별로 나타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모든 정치체제의 정치권력은 소수 엘리트가 지배

정치적으로 자유민주주의 또는 전체주의라든지, 또 경제적으로 자본주의 또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라든지 간에, 모든 정치권력은 결국 대중이 아니라 소수의 엘리트들이 지배한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단지 자유민주주의 또는 입헌주의는 법으로 선거를 통한 유효지배기간을 설정하고, 지배엘리트들이 상호 경쟁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전체주의는 경쟁을 인정하지 않는 채, 무한대의 권력을 추구하는 소수 또는 유일통치자가 지배한다. 이런 차이가 있을 뿐이지, 어느 체제든 소수의 엘리트들이 권력을 장악한다는 데에는 그 차이가 없다.

사회 각계각층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민주사회는 여러 형태의 직능별 대표성을 갖고 있는 엘리트 군들이 다양하게 존재한다. 정당, 관료, 군, 기업, 언론, 노동, 교육, 시민사회 등등에서의 대표자들이 권력경쟁을 벌인다. 때로는 이익집단과의 연계로 여러 가지 부패문제들이 양산되기도 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민주적 평등제도와 헌정질서의 안정적 관리로, 형식적인 법과 질서가 공고히 지켜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인간의 본성과 연관된 산술적으로 통계되지 않는 심리적인 요인들이 있다.

즉 인간의 자만심(Pride), 질투심(Envy), 증오심(Hatred), 허영심 (Vanity) 등으로 인해서 민주적 평등사회내부에서의 극심한 균열양상들이 흔히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들을 알 수 있게 된다.

◇정치적 무관심은 사기 선동가 불러

주권자로서 지존의 권한을 가진 평등한 국민 개개인들이 자신만의 심리세계에 빠져서, 상호 별개의 다른 세상을 추구하고 살아가게 된다면, 이는 곧바로 정치에 대한 무관심(Political Indifference)으로 반영된다. 주권자인 국민의 관심이 배제된 정치세계는 사기와 기만, 선전, 선동에 능한 온갖 형태의 선동가(Demagogue)들로 넘쳐나게 된다.

민주적 평등사회를 위협하는 또 다른 큰 변화요인은 바로 ‘돈’(Money)으로 통하는 물질주의의 만연이다. 현재 대한민국 국민들의 80% 이상이 도시에 살고 있다. 그리고 지금도 아우성들이지만, 아파트가격 상승문제는 대한민국이 산업화하기 시작한 이래, 지난 50년 동안 국민들의 가장 큰 사회적 관심요소였다.

대부분의 아시아인들이 동일한 성향을 갖고 있지만, 특히 한국사람들의 땅에 대한 관심은 유별나다. 불과 얼마 전까지 돈을 벌면 무조건 토지를 사고, 개인사유지의 확대야말로 근원적인 부의 축척으로 알고 살았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현재 대부분의 대한민국 도시인들은 아파트라는 건물 속에서, 시쳇말로 공중에 둥둥 떠서 산다. 진정 이 짧은 시간의 변화 속에 땅을 밟고 산지가 마치 아마득한 옛날이 된 것처럼 느껴지고 있다.

이제 이 도시에 사는 유권자들이 갖는 초미의 관심은 사람의 몸 전체를 흘러 다니는 혈류와 흡사하게, 모든 인간의 관심사와 상호 연결된 ‘신경전달물질’인 ‘돈’이 되어 버렸다.

자유민주주의사회에서 건전한 시민을 양성하는 시민교육이 무너지고 대한민국사회 자체가 엄청나게 좌경화되면서, 상식과 양식, 이성과 교양에 대한 관심이 사라진 채 남녀노소 모두는 ‘돈’이라는 물질주의에 빠져서 헤어나지를 못하고 있다.

◇대한민국, 좌경화되면서 상식과 이성 사라지고 물질주의 빠져

그러니 이런 저런 부실한 명분을 끌어다가 권력주체가 돈을 살포하더라도, 모두가 잘한다고 박수칠 수 있는 사회가 되어버린 것이다. 책임과 양심을 수반하는 개인의 자유를 내팽겨 치고, 평등사회 속으로 숨어버린 나약한 개인은 결국 얼굴을 마스크로 가린 채 집단속에서 안락함을 찾게 되었다.

그리고 최소한의 개인적 도덕심을 져버리고, 스스로 비도덕적이며, 광폭하기 짝이 없는 집단의 한 부속품이 되어버렸다.

이런 주권자의 우민화현상은 권력을 추구하는 지도엘리트 계층에서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통치행위에 책임을 지고 당당하게 정책을 추진해 나가는 엘리트유형들이 사리지고, 엘리트들도 집단속에 숨어서 이런 저런 눈치만 보고 오직 ‘인기영합주의’(Populism) 라는 ‘모두를 위한 위대한 영웅’만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개인과 지배엘리트들 모두 집단속에 숨어버린 상황에서, ‘이승만’과 ‘박정희’라는 걸출한 개인으로서의 영웅탄생은 대한민국에서 이제 불가능해 졌다. 다만 그렇게 말도 많고 탈도 많던 각개각층의 집단구성원 모두가 만장일치로 찬성하는 포퓰리즘이라는 집단적 현상만이 ‘모두의 영웅’으로 작동하고 있다.

획일적 평등사회에서 물질주의와 포퓰리즘에 빠진 집단속의 개인이 마지막으로 향하는 길은 어디인가? 그리고 이런 시대의 방향성을 미리 탐지하고 시민, 국민, 인간이란 의미는 지우고, 민중, 인민, 사람 등의 의미를 강조하는 문정권의 반대한민국적 행위의 끝은 과연 어디인가?

◇민주주의가 민주주의 파괴하지 않으려면 ‘시민의 덕목’ 필요

루소(J. Rousseau), 몽테스키외 (B. Montesquieu), 토크빌 (A. Tocqueville) 등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을 관철시켰던 철학자들의 공통어 (Key Word)는 바로 “민주주의가 민주주의를 파괴시키지 않도록 만드는 유일한 방법은 ‘시민의 덕목’ (Civic Virtue)에 있다”는 말이었다.

지금 자유대한민국은 물에 빠졌다. 그러나 허우적거리지만 말고 바닥까지 완전히 내려가야 한다. 그리고 그 바닥을 힘차게 발로 차서 수면위로 다시 올라와야 한다. 토크빌이 우려했듯이, 대한민국은 인간의 덕목도 갖추지 못한 채, 왕보다도 더 큰 권한을 가진 (More Than King, Less Than Man)유권자들로 가득 차있다.

많이 늦었지만 의식 있는 자유지식인들이 나서서, 지금부터라도 미래세대를 위한 ‘자유시민 교양교육’을 실질적으로, 또 구체적으로 시도해 나가야 할 것이다. 필자도 지난 20년 동안 대학강단에서 이런 저런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찻잔 속 미풍에 그쳤다면, 이런 결과를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전교조가 합법화되었다. 16개 시도교육감 중 대구 경북만 제외하고 14곳이 좌파교육감들로 채워진 대한민국에서, 자유민주주의가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이런 결과에 대한 자유지식인들의 깊은 반성과 성찰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Mea Culpa, Mea Culpa, Mea Maxima Culpa…)

강량 주필,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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