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 칼럼] 약속의 빨간사과

사과 한박스가 택배로 도착했다. 나는 거실 소파에 앉아서 책을 보면서 빨간사과를 한입 베어 물었다. 상큼하게 달콤하면서도 아삭아삭한 사과의 살이 혀에 감촉되어지는 맛있는 사과다.

세척사과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딱 알맞은 크기의 사과여서 껍질채 그냥 먹기가 좋았다. 사과가 너무 크면 한번에 다 먹지 못하고 반을 잘라서 먹고 보관하게 되는데 작은 사과는 그럴 필요가 없이 한번에 다 먹을 수 있어서 좋다.

얼마전에 나는 ‘농부의 손녀와 사과’라는 수필을 썼었다. 그 내용 중에 나를 오해하고 내게 핀잔을 주었던 남편이 자신이 오해한것을 곧 깨닫고는 나에게 사과의 메세지를 정중하게 보내왔다는 글을 썼었다.

그 사과의 글에서 남편은 재미있게 하려고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기도하려다가 마음에 걸려서 ?(사과)를 드립니다. 가을에 사과가 나오면 진짜 새빨간 사과를 사줄께.”라는 메세지를 보내왔다.

그래서 나는 그 글의 말미에 눈을 부릅뜨고 남편이 약속한대로 빨간사과를 사 오는지 보겠다고 썼다. 그런데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지나도 남편은 사과를 사다 주기는커녕 까맣게 잊어 버린 모양새다.

그런데 뜻밖에도 엉뚱한 곳에서 사과가 왔다. 카페를 운영하는 한 선교문학 독자로부터 이런 문자와 함께…“선교사님~ ^^ 안녕하셨어요.답은 못드려도 보내주신 글들 잘 읽고 있습니다. ^^ 부군목사님께 사과 받으시기 전에 제 사과 먼저 받으셔요ㅎㅎ약소하지만..마음담아 보내드립니다^^”

요즘 코로나19로 카페도 잘 안되어 고전을 겪고 있는 분이었다. 진즉 카페를 내놓았지만 나가지 않아서 별 수 없이 운영해 가고 있는 상황에 있는 분이어서 사과 한상자를 받아 먹기가 그리 내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한편으론 선교문학 독자의 이런 선물은 격려가 되는 것도 사실이다. 사과에 대한 내 수필을 읽고 받은 감동으로 보내게 된 사과(먹는)라는 점이 내겐 또다른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또 대구에 사는 한 작은 미자립교회 사모님 한분은 치매 앓는 어머니 모시는데 쓰라고 두툼한 물티슈를 벌써 두박스째 보내 주었다. 물티슈가 두툼하고 커서 어머니 기저귀를 갈아 드리고 닦아 드릴때 사용하기에 아주 안성맞춤이었다. 물티슈를 사용할때마다 그것을 보내준 사모님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이상하게도 본인의 삶이 넉넉지 않은 사람들이 더 다른 사람의 필요에 민감한 것을 나는 자주 경험한다. 그래서 과부 사정은 과부가 안다고 하는 말이 있는 것인가 보다.

그래서 이해인 시인은 ‘내나이 가을에 서서’라는 시에서 “…(중략)이제는 은은한 국화꽃 향기 같은 사람이 되겠습니다. 내 밥그릇 보다 빈 밥그릇을 먼저 채 우겠습니다.받은 사랑 잘 키워서 풍성히 나눠 드리겠습니다…(중략)”라고 내 밥그릇보다 남의 빈밥그릇을 채우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것을 깨달았다고 노래한다.

그런데 어제는 딱 한번 만나서 식사대접을 했던 목사님이 우리 교회에 찾아왔다. 남편만 있을때 왔었다는데 그 목사님이 다녀가고 나서 남편이 나를 데리고 가서 교회 냉장고를 열어서 보여 주었다.

냉장고 안에는 무언가 잔뜩 들어 있었다. 하나 하나 살펴보니 흑임자 돈까스가 커다란 봉지에 패키지 되어 세봉지, 떡볶이떡 한봉지, 너비구이 산적같은것이 제법큰 5킬로그램들이는 되어 보이는 플라스틱통에 가득 들어 있었다.

텅비어 있던 냉장고에 먹거리가 한가득 들어차 있으니 갑자기 부자가 된 느낌이 들었다. 나는 마침 점심으로 교회 주방에서 라면을 끓이고 있었는데 속으로 떡첨 몇개 넣으면 더 맛있는데… 하고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런데 비록 길죽한 떡복이 떡이지만 눈이 확 띄었다. 얼른 가위로 떡뽁이 떡이 든 봉지를 자르고서 손으로 한주먹 움켜내어 씻어서 얼른 라면냄비에 넣었다. 그래서 그날 점심은 ‘떡라면’으로 아주 맛있게 먹었다.

또 한달여 전인가 대구의 한 사모님이 문자를 보내왔다. 잘아는 목사님 부부가 김포에서 최근 개척교회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김포라고 하니까 선교사님이 생각나서 함께 교제 나누시라고 연결해 드린다는 문자였다.

그러면서 사모님은 카카오뱅크로 돈까지 십만원을 보내 주었다. 함께 만나서 식사라도 하시면서 교제 나누라고 말이다. 그렇게 하여 서로 연락이 되고 그 목사님 부부는 우리교회를 방문했다.

처음 만남인데도 오랜 친구처럼 우리는 함께 맷돌손두부 집으로 가서 점심을 먹었다. 직접 커다란 맷돌로 갈아서 순두부를 만드는 집이어서 상당히 맛이 있는 집이다. 흡족한 식사를 하고 나왔는데 날씨가 너무 더웠다.

교회가서 냉커피를 만들어 먹어도 되지만 나는 근처에 생긴 ‘꽃빙’이라는 빙수집으로 두 사람을 안내했다. 양이 많은 대만팥빙수 두그릇을 시켜서 부부가 한그릇씩 먹었는데 사모님이 너무 행복해 하는 것이다.

사모님이 팥빙수를 먹으면서 너무 기뻐해서 내가 종종 팥빙수 먹으러 우리동네 오시라고 할 정도였다. 그처럼 즐거워 하는 사모님을 바라보면서 나는 팥빙수 집으로 손님들을 인도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몇번이고 들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교회에 와서는 내가 만든 냉커피를 마시면서 여러 대화를 나누었다. 자녀들은 다 키워 내보내고 나서 목사님과 사모님 부부가 새로이 개척교회를 시작한 것이다. 개척멤버도 없이 말이다.

어머니가 주간보호센터에서 돌아올 시간이 가까워 와서 교회를 나와서 목사님 부부가 돌아가기 위해 그분들이 타고온 자그마한 경차에 몸을 싣는 것을 바라보며 배웅을 했다. 막 건널목을 건넜는데 찰옥수수를 쪄서 파는 아저씨가 눈에 띄었다.

나는 얼른 건너편에 있는 그 목사님부부가 차를 타던 장소를 바라 보았는데 아직 차가 출발하지 않고 있었다. 나는 얼른 옥수수를 두봉지 싸 달라고 했다. 서둘러 뛰어 건널목을 건너서 그 목사님 부부가 타고 있는 자동차로 다가갔다.

사모님이 마침 화장실에 다니러 가서 차가 출발하지 않고 있던 중이라고 했다. 나는 찰옥수수 두개가 든 봉지를 내밀며 가시면서 드시라고 하였다. 그야말로 그날은 풀코스 손님접대를 한 셈이다.

나도 집에 돌아와서 찰옥수수를 먹었는데 얼마나 맛있던지 더 사오지 않은 것이 후회가 될 정도였다. 남편 K선교사도 드물게 보는 맛있는 옥수수라고 칭찬을 한다. 나는 무엇 보다도 이 맛있는 옥수수를 개척교회 목사님 부부가 차안에서 먹으면서 또 행복해 할 생각에 괜스레 흐믓해졌다.

그리곤 그후엔 다시 만날 기회를 만들지 못하고 있었는데 추석을 앞두고 이렇게 짭잘한 먹거리를 한박스 차에 싣고 찾아와 준 것이다. 서로 섬기고 섬김받는 것, 이것이 바로 사람 사는 세상의 아름다움이 아니겠는가?

남편이 사주겠다는 빨간사과가 남편이 아닌 예상하지 못한 독자로부터 온 날에 묵상해본 것을 글로 적어본다. 뭐든 좀 늦게 가는 남편은 아직도 나에게 약속한 빨간사과를 사주러 움직이려는 기색이 전혀 않보인다.

글쎄…사과 한상자를 다 먹고나면 남편이 사주는 빨간사과를 받아 먹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시월에 있는 내 생일날 선물이라며 빨간사과를 한상자 사서 들고 들어오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시 13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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