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남 칼럼] 선교지를 향하여

최수남 목사(EGF 다민족선교회)

1회: 주 예수께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 17:21b)고 하셨다. 즉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와 주권이 있는 곳이 곧 하나님의 나라이다. 그러므로 매일의 삶속에서 역사하시는 주님의 일하심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는 세워져가고 확장되어가기에 오늘도 우리는 주어진 삶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힘써 일하고 달려가고 있다.

나는 날 때부터 신앙의 가정에 태어나서 성장하였으며 교육대학을 졸업하고 초등학교 교사로서 평범한 신앙인으로 살기를 바랐었다. 그러나 주님은 허물이 많고 부족한 나에게 특별한 계획이 있어서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로 부르셨는데 남다른 모험심과 어릴 때부터 세계를 넓게 볼 수 있는 안목을 주셨다. 그 것이 불신가정에서 자라서 청년기에 특별한 계기로 신앙을 갖게 된 내 남편과의 불협화음속에서도 절묘한 조화를 이루게 하셨고 남편의 신학공부 후에 우리부부는 한국에서의 목회보다는 이방 나라에서 복음을 전할 꿈과 용기를 갖게 하셨다.

남편이 목사안수를 받으며 부목사로서 섬기던 교회에서 담임목사와 장로들과의 분쟁으로 인해 교회가 나뉘는 아름답지 못한 모습을 보면서 무엇이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인가?’를 더욱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복음을 듣지 못한 나라에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갈 마음을 우리 부부에게 강하게 주셔서 곧 바로 우리는 해외선교사로 1988년 여름에 남편이 속한 K교단에 지원하게 되었다.

3개월의 교단선교훈련 후에, 우리의 선교지로 정해진 이슬람(회)교의 최대 인구가 사는 인도네시아를 향하게 되었다. 그에 앞서 먼저 다른 나라의 선교사후보생들이 함께 공동체 훈련을 받는 ‘New Zealand Bible College’로 영어연수를 겸하여 우리 온 가족이 뉴질랜드의 Auckland로 향하게 되었다. 이 일은 첫 선교지에서 인도네시아어를 배우고 여러 나라 선교사들과 교제하는데 귀한 역할을 감당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후에 미국교회를 깨우는 목회를 할 수 있도록 주께서 미리 준비시키신 것이었다.

마침내 1989년 1월의 한 겨울에 고신총회선교부의 파송으로 정든 땅을 떠나서 복음을 들고 어린 두 자녀들과 함께 먼 타국을 향한 선교사의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 때 초등학생인 아들과 딸은 부모를 따라 겨우 A, B, C 만 배워서 이국땅을 향했고 그 당시에 우리 가족은 한 번도 타보지 못한 비행기로 김포공항에서 싱가포르를 거쳐서 19시간을 소요하고 도착한 땅, 뉴질랜드의 오클랜드는 마치 천국처럼 보이던 한 여름의 아름다운 곳이었다.

초등학교 초임 지인 합천에서 만난 미국인, 한부선 선교사와 ‘뉴질랜드 바이블 칼리지’ 동문이 된 호주인, 모신희 선교사를 이미 한국에서 만나 뵈었기에 그 학교의 선교사 후보생들이 조금은 친근감이 들었지만 무엇보다도 그들의 헌신된 삶이 우리를 감동시켰다.

물론 진정한 선교사의 모습을 많이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었지만 물설고 낯선 땅인 뉴질랜드는 우리 가족에게는 완전한 신세계였다. 서툰 영어로 시작된 우리의 선교훈련은 마치 이방 땅에 던져진 고아와 같은 느낌이 때로는 들기도 하였으나 몇 달이 지나면서 이웃 친구들과 함께 지내며 초등학교 4학년인 내 딸은 우리 보다 먼저 영어로 대화를 유창하게 하기 시작하였고 3학년생인 내 아들은 학교에 가기 싫다고 책가방을 몇 번이나 던지며 우는 모습을 볼 때 부모인 우리는 마음이 아팠으며 선교사 자녀들의 고충을 그 때에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는데.

나와 우리 아이들은 그 곳에 생활하면서 각종 유제품과 양고기로 서양식 식생활이 잘 적응되었지만 시골에서 자란 나의 남편은 된장과 한국전통음식이 먹고 싶어서 병이 나기도 했었다. 그 학교에는 뉴질랜드인과 호주인, 그리고 남태평양의 각국에서 온 신학생들뿐만 아니라 유럽과 미국에서도 와 있었는데 학교안의 가족기숙사에는 한국인으로는 우리 가족이 유일하였고 다행히 말레이시아에서 온 신학생 한 가족이 있어서 아시아인으로서 우리는 좋은 교제를 함께 나누고 지내던 중 어느 날 밤에, “계십니까?” 로 들려오는 반가운 한국말의 남자목소리.

2회: 이국땅에서 오랜만에 듣는 한국말에 얼른 현관문을 열어보니 낯선 한국남성이 서 있었다. 우리는 너무나 반가워서 얼른 들어오시게 했는데 그는 오클랜드에서 한인목회를 하시는 장00 목사님이셨다. 지금은 그 곳에 한인교회가 많이 있지만 1989년의 그 시절에는 유일한 한인교회였다. 이웃의 우리가 다니던 학교의 뉴질랜드 청년이 오후에 그에게 와서 우리학교에 한국인 한가정이 새로 들어왔다고 전하더란다. 그래서 당장 그날 밤에 멀리 우리 학교기숙사로 운전하여 왔노라고 그가 말하였다.

우리 가족은 참으로 반가웠는데 그와 시원하게 한국말로 얘기를 할 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족은 그 때, 영어를 빨리 배우기 위해서 집에서도 영어를 사용하였고 음식도 서양식으로 먹어서 한국말과 한국음식이 참으로 그리운 시절이었다. 그 목사님을 통해 중국인 시장에서 우리가 먹을 수 있는 동양음식들도 살 수 있었고 여러 가지 생활정보도 얻게 되었다.

그리고 주일에는 먼저 뉴질랜드교회에서 예배를 드린 후에 바로 먼 거리의 한인교회로 갔는데 한인성도 중에서 우리 가족을 매 주일 데리러 왔고 맛있는 한국식사와 교제를 나눌 수 있어서 우리에게는 적지 않은 위로가 되었다. 우리뿐만 아니라 외로운 타국에서 직장이나 유학차 온 한인들이 유일하게 교제하는 좋은 장소가 한인교회였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외국에서 생활하면서 복음을 접할 수 있었고 각 곳에서의 한인교회의 필요성을 그 때 나는 실감하게 되었다. 외국에 나가면 다 애국자가 된다더니 그 한인교회 성도들은 두고 온 조국을 위해 많이 기도하면서 헌신적으로 신앙 생활하는 모습을 보게 됨으로 해외교포들을 위한 각 나라의 한인교회의 소중함을 나는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반년이 지나가면서 오클랜드 시내에 있는 인도네시아교회도 소개받아서 오후 예배는 그 곳에 가서 함께 예배하였다. 비록 그 때는 그들의 언어를 몰랐지만 영어로 소통이 가능하여서 선교지에 가기에 앞서서 그들의 문화와 풍습을 미리 배울 수 있었다. 또 그들의 음식도 맛보면서 천천히 인니어도 그 교회에서 조금씩 배우게 되었다. 그들은 친절하였고 주님 안에서 같은 형제들이라 더 친근감이 들었다. 인도네시아가 과거에 400년 동안 네덜란드의 지배하에 있어서 그 영향으로 인하여 더러는 기독교인이 되기도 하였고 특히 중국계 사람들이 기독교의 독실한 신앙을 갖고 있음을 그 때 알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85%의 인도네시아 인들은 회교(이슬람)를 믿어서 세계 최다 무슬림들이 사는 나라가 우리의 선교지인 인도네시아다. 오클랜드시내의 그 인도네시아교회에서 내가 처음으로 배운 말은, “Sampai jumpa lagi!(다음에 다시 만나요!) 이다. 우리 인생은 언젠가는 헤어지고 또 만나기에 이 땅에서, 아니면 천국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대하며 사는 귀한 의미의 말이다.

마침내 우리가족은 정들었던 ‘New Zealand Bible College’ 와 한인교회를 떠나서 그 해 년 말에 인도네시아를 향해 출발하였다. ‘가루다인도네시아’ 비행기로 수도 자카르타를 향했는데 비행기 안에는 많은 회교도들이 함께 탑승하였고 이제는 정말 선교지로 향한다는 마음이 나를 긴장하게 했다. 과연 ‘수카르노 핫타’ 국제공항에 내리니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뜨거운 열기가
나의 몸을 감쌌다.

이제는 정신을 똑 바로 차리고 영적으로 어두운 이 땅에 복음의 빛을 증거 해야 한다는 중압감에 나의 마음은 더 긴장감에 사로잡혔다. 마중 나오기로 한 선교사도 못 만나고 우리는 갖고 오던 짐 가방을 하나 잃어버렸다. 뉴질랜드에서 처음 은행구좌를 개설할 때 그 은행에서 선물로 준 가방에 나는 쓸 만한 그릇과 수저 등 부엌용품을 넣어서 왔었다.

그런데 공항에서 짐을 찾는데 그 가방이 없어진 것이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도둑이 많으니 조심하라고 어떤 사람이 말해주었는데 아마도 은행마크가 새겨진 가방에 묵직한 무게 때문에 돈이 들었다고 생각한 것인지? 그 가방만 없어졌다. 다행히 몇 주 지나서 공항에서 연락이 옴으로 다시 가방을 찾기는 했었다. 공항을 나온 후, 우리가족은 짐을 싣고 숙소로 향하는 택시를 탔는데 갑자기 내 딸의 울부짖는 고함소리가 내 귀를 찢는 듯했다.

다음 회에 계속…

<바실레이아> 대륙을 넘나들며 복음을 전하는 저자가 살아온 수십 년의 시대, 교회, 선교에 대한 기억과 함께 한 가족과 개인의 이야기는 우리 역사의 한 단면을 들여다보게 한다. 특히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온 이야기는 읽는 이들에게 큰 감동과 은혜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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