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 칼럼] 가장 소박한 첫돌 기념

어제 딸에게서 카톡이 날아왔다. 제아들 로이의 첫돌을 기념하는 축하 사진이었다. 그런데 케이크가 하나가 아니었다. 식탁위에는 작은 케익 한조각에 촛불 한개가 달랑 꼿혀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그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세상에 이런 첫돌 케이크는 처음본다. 아마 세상에서 가장 검소한 첫돌기념 케이크 일것 같구나 호호호…” 그런데 그 조그만 단 한조각의 케이크를 둘러싸고 로아네 가족들이 기뻐하며 박수를 치고 있는 모습이 나는 너무 사랑스러웠다.

재롱둥이 외손자 로이가 10월 4일 첫돌을 맞았다. 로이가 태어난 지 꼭 일년이 된 것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 로이가 첫돌을 맞이하기 까지는 크고 작은 많은 일들이 있었다.

나의 사랑하는 큰딸의 가정에 하나님께서 자녀를 허락하신 것은 4년전 딸인 로아가 태어나면서 부터이다. 사실 20대 중반에 비교적 일찍 결혼한편인 딸의 가정이지만 10년 가까이 자녀가 없었다.

착하고 자상한 사위는 변함없이 제 아내인 딸을 사랑하고 위로하고 다독여 주며 말했다. 아이가 없어도 괜찮다고… 하지만 딸은 성경에 나오는 자식이 없어서 한없이 괴로워하고 슬퍼했던 한많은 여인 한나처럼 자식 없음을 힘들어하고 괴로워했다.

로아가 태어나기 수년전에 나는 딸과 함께 여행으로 중국에 간적이 있었다. 마침 사위가 조금 장기로 해외출장을 갔던 때였을것이다. 나는 딸과 단둘이 중국에 가서 모처럼 모녀만의 즐거운 시간을 보내었다.

한참 더울때여서 수영도 하고 맛있는 태국 음식과 중국 음식도 사 먹으면서 행복한 모녀만의 시간을 보내었다. 그러나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가도 저녁에 쉴 시간이 되면 딸은 울곤 했었다.

결혼 후 자녀가 없는 딸의 아픔은 종종 오열이 되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쉽게 자녀를 가졌던 나의 위로는 딸에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아마 딸과 같은 입장으로 아파하는 사람이 위로했더라면 딸은 얼마간 위로를 받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침대에 엎드려 괴로워 하며 우는 딸을 바라보며 어미인 나는 같이 우는 것밖에 해 줄 것이 없었다. 왜 하나님은 내 사랑하는 딸에게(내가 이 딸을 임신하고 낳기 전에 산만한 배를 안고서도 새벽기도를 다니며 많은 축복기도를 해준 딸인데) 아이를 주시지 않는 것일까?

시간이 갈수록 딸은 자포자기 하는 마음이 되었다. 이때 딸의 심정은 어땠을까? 마치 자신이 무슨 죄라도 있어서 자녀가 생기지 않는것처럼 자신을 정죄하면서 심정적인 괴로움에 더 힘들었진 않았을까… 그러던 어느날 이었다.

딸은 까다로운 검사와 병원출입을 하면서 의사의 도움을 받았다. 그후 딸이 임신임을 확정 받은날 우리는 꿈인지 생시인지 분별이 안될만큼 기뻤다. 아…드디어 딸의 가정에 자녀가 생기는구나

이렇게 태어난 아이가 나의 첫외손녀 로아이다. 첫딸을 얻고 온세상을 얻은것처럼 기뻐하던 사위와 딸… 선교사끼리 사돈을 맺은 양가 가정의 기쁨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사위도 맏아들이니 로아는 그 집안에서 첫 손녀였고, 우리집안 역시 첫 외손녀였다.

그렇게 로아는 양가 가족과 딸부부의 친구와 주변지인들의 사랑을 담뿍 받으면서 무럭 무럭 자랐다. 로아가 웃는 웃음, 그애의 손짓하나 발짓 하나에도 우리 모두는 행복해 했다.

로아가 태어나고 2년이 지난 후에 딸은 둘째 아이를 갖게 되었다. 태아는 잘 자라 주었다. 딸은 만삭이 되었고 드디어 작년 10월4일 로이가 고고의 성을 울리며 이 세상에 태어났다. 2.85킬로그램의 건강한 남아였다. 누나 로아와 3년차이로 아들이 태어난 것이다.

나는 한주간 딸을 돌보아 주고 산후도우미 아주머니에게 부탁하고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런데 기차 안에서 딸의 연락을 받았다. 딸이 웬일인지 자꾸 열이 나서 감기인가 하고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입원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의사선생님은 피검사를 해보더니 염증수치가 높아서 먹는 약만으로는 치료가 어렵고 입원 치료를 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입원한 후에야 패혈증인 것이 발견되어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나를 기다리는 시어머님과 남편을 뒤로 할 수 없어서 아예 우리 가족 모두 어머니와 남편도 함께 자동차로 대구로 내려가기로 하였다. 마음이 착잡했다 제발 딸에게 아무일도 없어야 할텐데…

병원에 입원해서 패혈증 치료를 받느라고 딸이 집에 오지 못하고 입원해 있던 한 주간 나는 산후 도우미아주머니와 함께 두아이를 돌보아야 했다. 아직 엄마만 찾는 어린 로아와 신생아인 로이를…

그나마 낮에는 로아가 어린이집에 갔고 신생아 로이만 돌보면 되니 괜찮았지만 산후 도우미 아주머니가 집에 돌아간 저녁서부터 밤 시간은 두아이를 돌보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로아가 엄마를 부르며 밤마다 꺼이 꺼이 슬프게 우는 소리를 듣노라면 내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초유를 신생아에게 먹이기 위해서 딸은 입원해 있는 병원에서 젖을 짜서 냉동실에 얼려 놓았다. 그러면 사위가 퇴근하면서 가져다 줄때도 있지만 때론 내가 낮에 병원에 가서 그것을 가져다가 녹이고 데워서 신생아인 외손자 로이에게 먹였다.

감사하게도 한주간 만에 딸은 패혈증이 나아서 집에 돌아왔다. 다행이었으나 출산때 피를 많이 쏟은 딸은 얼굴이 창백했다. 딸은 손목이 약해서 손목보호대를 가느다란 손목에 끼고 있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나는 딸이 쇠고기를 많이 먹어야 피가 많이 생긴다고 알고 있었기에 그저 대구에 내려가면 쇠고기를 사다가 불고기로 재워놓고 돌아오곤 했다. 그러나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한다고 피가 금방 막 생기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딸은 로아를 낳고 손목이 아파 설겆이며 손을 쓰는 일을 힘들어 했다. 그런 딸을 위해 사위는 자신의 용돈을 절약해서 식기세척기를 하나 사다 주었다. 딸의 친구들이 식기세척기를 사주면 둘째가 생길것이라고 덕담을 해 주었었다고 하더니 정말 둘째가 태어난 것이다.

손주 로이가 점점 젖살이 오르고 자라갈수록 딸의 몸도 조금씩 조금씩 회복되어져 갔다. 로이의 재롱도 점점 많아져갔다. 아랫니가 뾰족하게 두개 올라온것 뿐인 로이는 그래도 뭐든 먹으려하는 아주 먹보이다.

로이가 돌전에 걷기 시작하더니 이젠 제법 집안에선 걸어서 안가는데가 없다. 기어만 다니다가 서서 걸어다니니 로이는 얼마나 신났을까. 엄마의 부엌 살림부터 욕실안까지 안가는데가 없고 안참견하는것도 없다.

얼마전에는 로이가 세탁기 안에도 참치 한 통을 넣어 주고 건조기 안에도 참치 한 통을 넣어 주었다. 아기 로이는 세탁기나 건조기도 밥을 먹어야 한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종종 제 누나 로아가 자기 놀이터를 침범하는 동생에게 “저리가 저리가~ “하며 야단을 치지만 로이는 끄떡도 않는다. 자기가 버티면 누나가 져준다는 것을 아는 모양이다.

이처럼 존재감 확실한 귀염둥이 로이가 세상에 태어난지 일년이 되어 첫돌을 맞은 것이다. 널찍한 식탁위에 무지개 조각케익 한조각, 그위에 꼿힌 첫생일을 밝히는 하나의 촛불이 밝게 타오른다.

마치 많은 어려움을 뚫고 승리하여 이 세상에 태어난 승자의 깃발이 펄럭이듯이 가족들의 열렬한 축하 박수속에 로이의 첫돌 기념 케이크의 촛불이 사랑스럽게 흔들린다.

Happy birthday to Roi(로이)
God bless Roi

“아이 사무엘이 점점 자라매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더라(삼상 2:26)”

나은혜 선교사(지구촌 선교문학 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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