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 칼럼] 추석 아침상에 웬 머핀

새벽기도를 마치고 교회에서 돌아왔다. 남편은 교회에 남아서 계속 기도 하겠지만 나는 어머니 아침을 챙겨 드리러 일정한 시간에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

어머니가 식탁에 앉으셨다. 나는 “어머니 밥 드실래요? 아니면 빵(머핀)드실래요? “ 했다. 내 말에 어머니는 “빵” 하고 대답하신다. 나는 양송이 수프를 끓이고 머핀을 접시에 잘라서 담고 달걀후라이를 하나 부쳐서 아침을 차려 드렸다.

그런데 지인이 추석날 아침 운운하는 문자를 보내왔다. 나는 순간 당황스러웠다. “아… 오늘이 추석이던가. 세상에 추석날 아침에 시어머님에게 머핀(빵)을 드리다니… 지금까지의 추석날에 한번도 없던 일이었다.

보통 추석날 아침은 정성을 들여 음식을 장만한다. 토란을 넣은 쇠고기무우국에 고사리나물 도라지나물 같은 전통한식 반찬에 녹두전과 잡채, 불고기, 샐러드 등의 메뉴가 추석 아침에 먹는 우리집 아침이었다.

그런데 이번 추석날 아침은 머핀이라니…물론 어머니는 치매에 걸리셔서 날이 가는지 오는지도 모르신다. 당연히 추석날인것도 모르신다. 빵(머핀)으로 추석날 아침밥상을 차려 드렸다고 며느리인 내게 불호령을 내리지도 않으신다.

또 아침을 금식하는 남편도 상관이 없는 일이다. 아침메뉴가 빵이 되었든지 밥이 되었든지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런데 추석날 아침에 시어머님에게 머핀(빵)을 대접한 며느리인 내가 한심할 뿐이다.

나는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사실 요며칠 나는 자녀들과 실갱이를 벌리고 있었다. 나는 추석날 오라고 하고 자녀들은 코로나시대에 정부도 막는 귀향이니 부담스러워서 못가겠다 하고 말이다.

그래도 나는 자녀들이 추석에 집에 오기를 바랬다. 일년에 자녀들이 부모가 사는 집에 올 수 있는 기회는그렇게 많지 않다. 그러니까 추석과 구정외에는 독립해서 살고 있는 자녀들이 부모가 사는 집에 올 기회는 별로 없는 것이다.

나는 명절날 오랫만에 우리 집이 가족들로 북적이는 즐거움을 맛보고 싶었다. 게다가 손주들의 재롱을 페이스타임 같은 온라인으로가 아닌 실제로 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무엇보다도 귀여운 손주 아이들을 내품에 꼭안아 주고 싶었다.

성경 암송에 한창인 한참 귀여운 외손녀 로아는 물론이고 새로 태어난 외손자 로이가 기어 와서 벙긋 벙긋 웃으면서 재롱을 부리는 기분좋은 상상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외손녀 로아는 몇번 우리집엘 왔었지만 외손자 로이는 이번 추석에 왔으면 처음 우리 집에 오는 것이다.

로아는 전에 우리집에 오면 꼭 아침일찍 깨어서 할아버지 할머니를 찾았다. 우리가 새벽기도 하러 가서 아직 교회에 있는 이른 시각에 로아가 깨어나 할아버지 할머니를 찾는다고 딸에게 전화가 걸려오면 우리는 허둥지둥 로아를 보러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런데 추석을 며칠 앞두고 돌쟁이 로이가 열이 39도가 넘게 오른다고 연락이 왔다. 또 아이가 카시트에 타는걸 싫어해서 카시트에 앉히면 소리를 지르고 운다는 것이다.

이처럼 어린아이 때문에 장거리 운전을 해서 오는 것이 자신이 없어진 딸은 차라리 우리집에서 가까운 김포공항으로 비행기를 타고 올까도 생각해 본 모양이지만 결국 올라오지 않기로 했다.

그럼 아들이라도 올라오려나 하고 기대를 했는데 아들도 연락이 왔다. 아무래도 이번 추석은 그냥 대구에서 지내야겠다는 것이다. 아들은 만에하나 연로하신 할머니에게 혹 외부에서 사람이 와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이라도 되면 어쩌느냐고 한다. 그말에는 나도 할 말이 없었다.

이렇게 해서 자녀들이 모두 못오게 되었으니 나는 추석음식을 만들 의욕도 생기지 않고 시장을 보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도 어머니가 계시니 추석음식 준비를 조금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건 몰라도 북한이 고향인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녹두빈대떡은 만들어 드려야 할것 같았다.

전날밤 좀늦게 장을 봐다는 놓았지만 음식을 만들준비는 하지 않고 있었다. 나는 자녀들이 추석에 집에 오고 안오고 하는 문제에 신경을 쓰느라고 정작 추석날이 언제인지를 깜박했다. 그래서 평상시와 같은 조반을 준비했던 것이다.

추석날 아침을 어머니에게 따뜻한 탕국에 밥과 추석음식을 드리지 못하고 달걀후라이와 머핀(빵)과 스프로 간단하게 드리고 난 후 어머니에게 얼마나 죄송했든지 나는 마치 죄인이 된 기분이었다.

그래서 부랴부랴 점심엔 맑은 무우 탕국을 끓이고 일년에 주로 명절날만 사먹는 소갈비를 구어서 점심을 어머니에게 차려 드렸다. 그리고 저녁엔 준비해 두었던 녹두빈대떡 재료를 꺼내어서 녹두 빈대떡을 부쳐서 저녁을 차려 드렸다.

90이 넘은 연로한 나이 이시지만 입맛이 좋은 우리 어머니는 내가 만들어 드리는 음식마다 모두 맛있게 드셨다. 특히 녹두 빈대떡을 아주 맛있게 드신다.

이처럼 녹두전도 부치고 기름냄새가 집안에 퍼져나니까 명절 기분이 들었다. 아들과 딸이 왔으면 녹두빈대떡을 무척 맛있게 먹었을 것이다. 아들도 딸도 앉은 자리에서 손바닥만한 작은 녹두빈대떡 대여섯장은 거뜬히 먹는 실력이니 말이다.

어머니가 잘 드시는 잡채는 내일 만들어 드려야 겠다. 나는 오랜 경험상 명절 음식을 한꺼번에 다 해 놓으면 맛있게 먹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하루에 한가지나 두가지 음식을 새로 만들어 먹고 다음날 또 다른 음식을 만들어 먹으면 계속해서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

녹두빈대떡 30장 정도 부치는데도 땀이 뻘뻘 났다. 예전엔 추석에 녹두 빈대떡을 100장씩 부쳤던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일을 마치고 좀 쉬고 있는데 딸에게서 카톡이 왔다.

로아가 드리는 추석 선물이라면서 로아가 율동하면서 사도신경을 암송한 동영상을 보내왔다. 꽤 긴 사도신경을 율동하면서 완벽하게 외워내는 로아를 보고 있으니 나는 피곤이 눈녹듯이 사라짐을 느꼈다.

로아가 일하느라 지친 나의 몸과 마음에 활력과 기쁨을 선물해 준 것이다. 딸이 첨언하기를 “엄마 로아가 말썽을 일으켜 우리 부부가 다 힘들어 하고 있었는데 로아가 갑자기 사도신경을 외워 보겠다고 하더니 저렇게 완벽하게 외우지 않겠어요? 그래서 우리 마음도 다 풀렸어요. 호호… ” 한다.

자식 키우는 재미를 톡톡히 보고 있는 딸의 모습에 내 마음도 흐믓해 진다. 결혼후 10년 가까이 자녀가 없어 힘들어 했던 딸이기에 로아와 로이는 딸과 사위에게뿐 아니라 양가 모든 가족에게 더욱 특별한 하나님의 선물이다.

나는 비록 추석날인것도 깜박하고는 연로하신 시어머님에게 추석아침상도 제대로 차려 드리지 못하고 머핀으로 추석아침을 대접하는 실수는 했지만 그래도 감사하기로 했다.

이처럼 완벽하지 못한 나에게 그래도 섬길 수 있는 어머니가 계시고 보고만 있어도 마음에 엔돌핀이 퐁퐁 솟게 만드는 어여쁜 손녀와 손자를 주셨으니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으랴. 이젠 실수로 추석날 아침으로 머핀을 어머니에게 드린 나를 너그러이 용서해도 될것 같다.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엡 4:32)”

나은혜 선교사(지구촌 선교문학 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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