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 칼럼] 김장철은 감사의 계절

세상이 참 많이 변했다. 요즘은 겨울이 와도 김장을 안하는 가정이 적잖게 있을 것이다. 각종 김치 종류를 마트에 가면 얼마든지 쉽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전에는 겨울이면 집집마다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 바로 김장이었다.

오죽하면 초겨울을 ‘김장철’ 이라고 불렀다. 김장날은 그만큼 우리네 가정에 중요한 겨울 먹거리를 준비하는 일종의 양식을 준비하는 행사날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각가정에서 김장을 하는 것은 큰 행사였다. 김치는 겨우내 먹어야할 중요한 반찬이기 때문에 김장은 연례행사 같이 매년 꼭 해야만 했으니까 말이다.

김장을 안했다가는 그 긴 겨울을 무얼 먹고 살것인지 걱정을 해야만 했었다. 그렇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김장철이 돌아와도 김장을 못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김장을 하려면 배추, 무우를 비롯해서 고춧가루,마늘, 생강, 젓갈 등 부속으로 들어가는 재료들이 많았다.

그래서 가난한 집에서는 젓갈 같은 비싼 재료는 못쓰고 그저 배추를 소금에 절였다가 고추가루와 마늘 파만 넣고 소금으로만 간을 하여 담기도 했다. 그런데 간만 잘 맞추면 이렇게 소박하게 담근 소금김치가 겨우내 땅속에서 익어서 오히려 젓갈을 넣은 김치보다도 더 깔끔하게 시원한 맛을 내는 김치가 되기도 하였다.

나의 친정집에도 김장을 하면 보통 200포기이상 300포기 정도를 담갔다. 우선 밥을 먹을 입인 식구 수가 많았기 때문에 그렇게 많이 담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조부모님, 부모님 우리 5남매 도합 9식구가 한집에서 살았으니 말이다.

수돗가에 큰 통들이 몇개나 있고 그안에 수백통의 배추를 절여 놓는다. 그런데 절이는 배추는 반드시 한 두번은 뒤집어 주어야 잘 절여진다. 한밤중에 우리 어머니는 수돗가로 가서 배추를 뒤집어 놓으시곤 했다. 나는 자다가 깨서 달빛아래 배추를 뒤집고 있던 어머니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 보았던 기억이 있다.

이튿날 소금에 잘 절여진 배추를 씻는 일도 큰일 이었다. 워낙 김장을 하는 배추의 양이 많다보니 배추를 씻은 후에 배추에 속을 넣어 김장을 마무리 하기까지는 많은 손이 필요했다. 그래서 동네 아주머니들이 품앗이로 도와 주어야만 대량으로 담그는 김장은 완성할 수 있었다.

김장을 하는 주인집에서는 김장을 도와주는 사람들을 먹일 음식을 준비한다. 돼지고기 수육을 삶아서 무우채와 김장을 하고 떨어진 잎으로 무친 배추쌈을 싸서 먹기도 하고, 찹쌀에 팥이며 밤이며 온갖 고명을 넣어서 지은 찰밥을 배추된장국과 함께 내놓기도 한다. 김장 하는 날은 한마디로 큰 행사일과도 같은 날이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나는그렇게 친정에서 큰김장을 하는 것을 보고는 자랐지만 내가 결혼하여 35세 까지는 김장철이 돌아오면 친정 엄마가 오셔서 김장을 담가 주셨다. 직장 생활만 하다가 결혼해서 아이셋을 키우며 쩔쩔매는 내가 김장을 할 엄두를 못내는 것은 당시엔 어쩌면 당연 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매년 겨울 김장철이 돌아오면 우리엄마는 엄마집에 김장을 해 놓고는 우리집에 와서 김장을 담아 주시곤 했다. 지금도 기억이 나는 것은 친정엄마가 사위가 잘 먹는다고 보쌈김치를 정성껏 담아 주시던 일이다. 나는 손이 많이 가는 보쌈김치를 엄마가 돌아가시고는 담가본 기억이 별로 없다.

그런데 친정 엄마가 돌아 가시고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게 되었을 때였다. 어느해 겨울 시어머님은 나에게 배추 백포기를 사다가 김장을 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아파트에 살았기때문에 그많은 배추를 절일 수 있는 곳은 목욕탕 안에 있는 욕조밖에는 없었다.

당시엔 아직 젊은 30대였던 나는 배추 백포기를 소금을 뿌려 절여는 놓았는데 그다음 일이 아주 까마득했다. 왜냐하면 나도 매년 친정엄마가 김장을 해 주셨기 때문에 이렇게 많은 김장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어머님은 내가 있을땐 절대 부엌에 안 나오시는 분이다.

죽이되는 밥이되든 나혼자 하라는 것이다. 배추는 절여 놓고 나혼자 한숨을 푹푹 쉬고 있을때 내가 나가던 교회의 우리구역 식구들이 고무장갑을 들고 우리집으로 찾아 왔다. 구역식구들의 도움으로 그해 김장을 무사히 잘 끝내었던 고마웠던 기억이 있다.

올해 나는 작은 김장을 했다. 그리 크지 않은 배추 12통으로 김장김치 20킬로그램과 백김치 10킬로그램을 담갔다. 백김치는 고추가루가 안 들어가서 맵지 않기 때문에 연로하신 시어머님을 위해서도 우리집에서 자주 담가 먹는 김치이다.

해마다 만들어 먹는 동치미를 담그려고 했더니 동치미 무우는 이미 다 들어가고 없었다. 그래서 일반 무우를 몇개 사다가 절임고추와 쪽파와 갓 그리고 배를 깍아 넣고 동치미도 15킬로그램들이 한통을 담갔다. 올해는 깍뚜기는 생략하기로 했다. 대신 남편이 좋아하는 알타리김치를 여유 있게 담글 생각이었다.

쪽파도 넉넉히 사서 쪽파김치도 조금 담갔다. 여수 돌산갓도 한단 사서 절여 두었다가 찹쌀풀과 젓국에 양념을 해서 담갔다. 올해는 그 어느해 보다도 김장김치를 여러 종류를 담근 셈이다. 예전에는 갓김치와 쪽파김치는 나는 좋아 하지만 식구들은 안 좋아해서 잘 담가 먹지 않았었는데…

그런데 알타리김치(총각김치)를 담그면서 재미 있는 에피소드가 발생했다. 나는 김장을 시작할때 알타리무우 4단을 샀다. 그런데 알타리무우청 잎새를 떼어 내고 다듬어서 절이니까 알타리무우의 양이 얼마 되지를 않았다. 그래서 양념을 좀 남겨 두었다가 이튿날 알타리 한단을 더 사가지고 왔다.

그런데 알타리 한단을 더 버무려서 넣었어도 10킬로 들이 김치통이 다 차지를 않는다. 우리집 김치냉장고는 김치냉장고중에 제일 작은 사이즈여서 10킬로그램 김치통 딱 네개만 보관할 수 있다. 때문에 나는 10킬로들이 김치통에 알타리김치를 꽉채워 담그고 싶었다.

이튿날 남편 K선교사가 운동하러 공원에 나가자고 했을때 나는 오늘은 운동삼아 좀 멀지만 마트에 걸어갔다가 오자고 했다. 알타리 한단을 얼른 더 사서 가지고 올 생각이었다. 사 가지고 온 알타리 한단을 다듬고 절여서 양념을 더 넣고 버무려 넣었더니알타리김치를 담은 김치통이 얼추 찼다. 하지만 꽉 차지는 않는다.

이상하다. 전에 보통 알타리 5단을 절여서담그면 10킬로그램 들이 김치통에 꽉찼던 기억인데… 알타리 6단을 담았는데도 김치통이 다 차지 않다니… 아하~ 아마도 알타리 단이 줄어든 모양인가 보다. 그래도 아무튼 이 정도면 이젠 알타리김치 담그기도 패스이다.

배추김치, 백김치, 알타리김치, 동치미, 쪽파김치, 갓김치까지 담가 두었으니 이젠 겨울 반찬 걱정은 안해도 된다. 쌀만 사다가 밥을 지어서 위의 여섯가지 김치를 종류별로 꺼내어 된장찌개 하나면 훌륭한 겨울 식탁이 되지 않을까 싶다.

남편이 파를 다듬는 일이라든가 알타리 무우 껍질을 벗기는 일등 일부분 도와 주기도 했지만 어쨌든 김장담그기는 보통 일은 아니다. 양념을 만드는 일이며 주부의 손이 많이 가는 일이다. 하기사 겨울을 날 김장김치를 만드는 일이 어디 그리 쉬울 수만 있을까.

그런데 예전의 주부들은 김장을 하고나면 대부분 대중 목욕탕엘 간다. 뜨거운 탕에 몸을 담그면서 김장을 하면서 많이 사용한 근육들을 쉬게 하고 피곤을 풀기 위해서다. 하지만 요즘은 코로나로 인해 대중목욕탕엘 갈 수도 없다. 나도 집에서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아서 간단한 반신욕이라도 하는수 밖에 없을것 같다.

사실 나는 수백포기 김장을 하던 예전의 어머니들과는 비교도 안되는 아주 작은 김장을 했을뿐이다. 그것도 조금씩 추가 하다보니 삼일이나 걸려서 겨울 김장을 한셈이 되었다. 오늘 벌써 맛이 들은 쪽파김치를 꺼내어 된장찌개와 함께 점심을 먹으면서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제 겨울 김장을 다 했으니 올겨울 반찬은 걱정 없네요.” 라는 내말에 남편도 한마디 한다. “그러게 옛날엔 겨울에 김장하고 겨울에 땔 연탄만 들여 놓으면 겨우살이 준비 다 했다고 했었지.” 누가 들으면 촌스럽다고 할 말을 우리는 나누고 있다.

우리 딸이 들었다면 분명히 “엄마 누가 요새 김치만 먹어 우린 하루 한끼만 밥을 먹어서 김치 많이 안먹어” 했을 것이다. 딸네는 아침은 주로 빵을 먹는 집이니까…하하하…아무튼 오늘 점심도 남편은 지난번 담가 두어서 한참 맛이 들은 알타리 무우김치를 먹음직스럽게도 서걱서걱 베어 먹는다.

내가 “이번에 담근 쪽파김치 맜있네요. 완전 밥도둑이야” 했더니 쪽파김치엔 별 흥미가 없는 남편은 밥도둑에 대한 다른 견해를 편다. “난 알타리김치만 있으면 밥한그릇 다 먹어. 내겐 알타리김치가 밥도둑이야” 한다. 내가 알타리 김치를 한단 한단 추가해서 담근 이유를 이제 독자들도 아셨을 것이다^^

이처럼 밥이 없어지는 줄도 모르게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반찬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또 김치 한가지만 있어도 밥한그릇 뚝딱 해치울 수 있는 밥맛이 있다는 것은 또 얼마나 감사한가? 무엇보다 삼일 김장을 해 낼 수 있는 내건강을 그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는가?

생각해 보면 이 세상에는 돈주고 살 수 없는 것이 참으로 많다. 방금 언급했던 건강이 그렇고 가족간의 화목이 그렇다. 무엇보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내 곁에 살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이며 감사인지 그리고 축복인지를 알아야 한다. 그래서 김장철은 건강을 확인하는 감사의 계절이라고 나는 정의한다.

“그것은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며 그의 온 육체의 건강이 됨이니라(잠 4:22)”

나은혜 선교사(지구촌 선교문학 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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