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 칼럼] 나 그대에게 드릴 것 있네

살다보면 재미있는 일이 많다. 남편 K선교사가 속한 시찰회에서 연락이 왔다. 쇠고기 3킬로그램을 나누어 줄테니 가까운 지역교회를 통해 받아 가라는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목회자들의 모임을 못하게 되어서 주는 선물이라고 한다.

나는 참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속한 노회에서는 노회나 시찰회 모임을 갖고 난 후 식사 대접 대신에 식사비를 현금으로 준다. 코로나 이후로 있었던 노회며 시찰회에서 모임후에 식사 하지 않고 벌써 몇번 현금을 받은 기억이다. 하여간 요즘은 코로나로 인해서 모여서 밥 먹는것 조차 눈치가 보이는 세상이니 말이다.

아무튼 남편이 소속된 시찰회의 목사회에서는 누가 낸 아이디어인줄은 모르지만 참 기발한 생각이 아닐 수 없었다. 아마도 쇠고기를 가지러 가서 목회자들간의 잠시의 교제도 나눌 수 있기를 바래서인지는 모르나 쇠고기를 택배로 보내 주지는 않았다. 각각 지정해준 교회로 방문해서 가져 가라는 것이다.

남편이 네이버 지도를 찾아 보더니 김포시 하성면에 있는 그 교회는 16킬로미터 지점에 있었다. 시간은 자동차로 20여분 걸리는 것으로 나온다고 했다. 내가 속한 시찰회도 아니고 남편이 소속된 시찰회에서 하는 행사이니 나는 원래 함께 갈 생각은 아니었다.

그런데 점심을 먹고 나서 출발하려는 남편을 보면서 바람도 쐴겸 나도 함께 갔다올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이 마음은 나중에야 알았지만 하나님이 감동으로 준 마음이었다.) 남편이 운전을 하고 나는 옆자리에 앉아서 출발을 했다.

김포는 아직도 농경지가 많아서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도 한적한 농촌 풍경이 보여서 상쾌하다. 더욱이 우리가 가는 교회 위치는 계속 한강을 끼고 달리는 길이다. 차창 밖으로 한강을 바라보니 시원함이 느껴졌다. 남편과 함께 동행 하길 참 잘했다 싶었다. 목적지 교회에 도착하니 담임목사님이 여목사님 이었다.

여목사님은 생강차를 대접해 주면서 쇠고기를 가지고 나왔다. 그런데 가지고 나온것은 쇠고기가 아니라 소갈비였다. 미국산 꽃갈비 3킬로그램. 와~ 이 정도면 우리 가족이 적어도 갈비구이를 만들어서 서너번은 충분히 먹을 수 있는 분량이다.

잠시 교제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유니클로 간판이 보인다. 아… 저곳은 김포 패션 아울렛인데 의류가게들만 모여 있는 곳이다. 그렇지 않아도 이곳에 날 잡아서 오려고 했었는데 너무 잘되었다 싶었다. 나는 운전하는 남편에게 패션아울렛으로 들렸다 가자고 했다.

왜냐하면 오래전부터 남편의 양복을 한벌 구입해야지 하고 내가 벼르고 있던 참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남편의 겨울 양복이 당장 필요한 그런 상황이었지만 시간을 못내고 있었다. 일부러 나와야 하는데 그게 쉽지가 않았다.

그동안 양복을 거의 안해 입은 남편 이었다. 올 겨울에 입을 겨울 양복은 다 낡아져서 당장 입을 양복이 필요 하였다. 철마다 양복이 한벌씩 있으니 입던 옷이 낡아지면 당장 입고 나갈것이 없어서 난감했다. 아직은 그리 춥지 않아서 춘추양복으로 버텼지만 말이다.

봄 가을엔 그나마 아이들이 그 계절에 결혼을 하면 양복 한벌씩 얻어 입어서 양복이 있었다. 그러나 겨울 양복은 꼭 사야할 상황이었던 것이다. 마침 결혼40주년기념으로 나는 남편에게 양복 한벌을 선물해야 하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양복을 파는 매장을 때맞추어 지나가게 되다니…

여러곳 둘러볼 필요도 없었다. 언젠가 여름 바지를 하나 산 양복가게가 눈에 띄었다. 남편이 어느집 바지보다 편하다고 칭찬을 하던 남성복 매장이어서 곧장 그곳으로 들어갔다. 아래층엔 캐주얼 복장들이 있었다. 양복을 사러 왔다고 하니까 이층으로 올라가라고 한다.

남자직원이 따라올라왔다. 편하면서도 품위있게 입을 양복을 소개해 달라고 했다. 직원은 네이비색상의 양복을 가르키며 옷감이 신축이 있고 아주 편하게 입으실 수 있을 것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그 직원이 하는 말이 다른 곳에서 백만원 넘는 옷을 산 사람도 자기네 매장 옷을 입어보면 그 옷만 입는다고 너스레를 떤다.

그 말이야 사실이건 아니건 우리는 백만원 넘는 그런 비싼 양복을 사 입어볼 일도 없을뿐더러 저렴한 중저가의 양복으로 잘맞고 편하면 되니까 신경쓸 필요도 없었다. 남편은 그동안 몸이 조금 더 불었는지 115사이즈가 맞는다. 110입었었는데… 내가 그동안 남편을 너무 잘 해 먹였나 보다 하하하…

사실 남편은 지금은 배도 좀 나오고 그렇지만 상당한 ‘베스트드레서’ 이다. 177센티미터의 키도 그렇지만 남편은 캐주얼 종류 보다는 언제나 정장 양복이 잘 어울리는 사람이다. 오죽하면 여자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을때 여학생들이 선생님들 가운데 ‘베스트드레서’로 선정했을 정도다.

남자고등학교의 남학생들과는 다르게 여학생들은 남자 선생님을 보는 눈이 더 예리하다. 여고 교사 시절 남편의 생일이면 학급 여학생 수 만큼의 장미와 다양한 선물을 하는 것도 여학생들이다. 남편 K선교사는 목사가 되기전엔 고등학교 국어교사였으니 여학생들에겐 더한층 인기가 있었다.

비오는 날이면 여학생들은 “선생님 오늘은 이야기 들려 주세요”하며 조르곤 했다. 오랫동안 가이드포스트의 평생 구독자 이며 리더스다이제스트를 항상 구독해서 읽었던 남편은 늘 이야기 거리가 풍부 하였다. 그래서 여학생들이 붙여준 별명엔 ‘베스트드레서’외에도 ‘스토리김(kim)이 또 있다.

남편은 네이비색상의 양복을 한벌 다 입어보았다. 아주 잘 어울렸고 치수도 잘 맞았다. 바지 길이만 잠시 줄이면 되었다. 매장 근처에 있는 커피숍에서 아메리카노 한잔을 사서 가지고 나왔더니 벌써 바지 길이도 남편의 기장에 맞추어 줄여서 양복 가방안에 넣어 준비해 두고 있었다.

우리가 매장으로 들어가자 직원은 곧 양복이 든 가방을 건네 주었다. 매장 직원은 가격은 못깎아 드리지만 포인트 5천원 빼 드렸고 양말 하나 서비스로 넣었다고 하였다. 정말 속전 속결로 양복을 구입했다. 매장에 들어가서 옷을 받아 나오기까지 20분 남짓 걸렸나보다.

내가 오랫동안 양복을 구입할 것을 묵상해서인지 양복을 파는 곳을 지나는 기회가 왔고 정말 수월하고도 만족스럽게 양복 한벌을 초스피드로 구입한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 양복 매장 광고판엔 양복189,000원 +1벌 이라고 쓰여 있어서 한벌을 사면 또 한벌을 준다는 것인줄 알았는데 우리가 산 옷엔 적용이 안되는 모양이었다.

양복 한벌만 가지고 돌아왔으니 말이다. 대개 이런 경우엔 매장에서는 “아… 그것은 이월상품이구요. 손님이 사신 것은 신상품이예요.” 라고 하면 그만이다. 어쨌거나 우리는 구입한 양복이 아주 마음에 들었으므로 기쁜 마음으로 옷을 가지고 돌아왔다.

주일날 남편은 내가 사준 그 양복을 입고 설교를 했다. 내가 사준 양복이어선지 오늘따라 남편이 더 멋있어 보이는 것 같다. 올해 우리 부부가 결혼40주년을 맞아서 진행된 일들이 참 재미있는것 같다. 처음엔 소홀한듯 했지만 점점 풍성해 졌으니 말이다.

결혼40주년 당일날은 미약하게 짜장면집에서 짜장면과 잡채밥을 먹고 하트모양 초콜렛을 먹으면서 감사했었다. 그런데 점점 발전해서 이튿날은 분위기 좋은 퓨전한정식 집에도 가고, 여행은 못갔지만 내게 꼭 필요했던 스마트폰을 남편에게 선물로 받았다. 남편에게 정말 필요했던 겨울 양복은 내가 선물했다.

지난 주일이 ‘결혼40주년기념일’ 이었으니 한주간 내내 기념을 한 셈이다. 나는 이번 주에 ‘결혼40주년기념 감사헌금’을 드렸다. 이렇게 하나님께 감사를 드림으로서 이제 ‘결혼40주년기념’에 관한 모든것을 마무리 했다.

앞으론 매년 결혼기념일을 맞을때 마다 이전과는 다르게 더 많은 감사를 드리게 될 것 같다. 그리고 여유가 된다면 내년 결혼 기념일에도 남편에게 양복을 한벌 사 줄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해 본다. ‘베스트드레서’ 에게 한가지 색상의 양복만 입게 하는것은 영 예의가 아닌것만 같으니까 말이다.

천지는 없어지려니와 주는 영존하시겠고 그것들은 다 옷 같이 낡으리니 의복 같이 바꾸시면 바뀌려니와(시 1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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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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