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 칼럼] 남이 발견한 내 안의 빛


2020년을 보내는 마지막 날이 밝았다. 아니 아직은 새벽이니 날이 밝아 오지는 않았지만 머지 않아서 동이 터 올 것이다. 그리고 또 하루가 변함없이 시작되고 일상의 일들이 전개될 것이다. 그다음에 한번 더 저녁이 오고 새아침이 밝아 오면 2021년이 시작된다.

한 해를 마무리 하면서 보람 있었던 일이 무엇이 있었을까 잠시 생각해 보았다. 지난 한 해 동안 기쁜 일도 있었고 슬프고 속상한 일도 있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나에게 늘 샘솟는 기쁨을 준 것은 우리 로아(외손녀)의 성경 암송하는 모습을 지켜 보는 것이었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이제 4돌이 지난 로아가 귀여운 몸짓과 율동을 하며 성경구절을 암송하고 나서 두손을 모으고 두눈을 감고 아멘~ 하는 모습을 볼때면 세상 근심이 다 사라지는것만 같다. 아가때부터 성경말씀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가는 로아가 그렇게 예쁘고 고마울 수가 없다.

또 하나 나에게 잔잔한 기쁨을 선사해 준것이 있다. 그것은 이해의 마지막날을 이틀 남겨 두고서 남편과 함께 읽어 오던 성경통독을 다 마친 일이다. 지난 7월말에 성경통독을 시작해서 년말을 앞두고 다 읽었으니 5개월쯤 걸린 셈이다.

특별한 시간 제약 없이 새벽기도때 성경을 읽었다. 보통 30~40분에서 한시간을 읽고 점심 먹고 30분 읽고 이런 식으로 성경을 통독해 나갔다. 남편이 성경 한 장을 소리내어 읽고 나면 다음엔 내가 소리내어 한 장을 읽는 그런 방식으로 편하게 성경을 읽어 나갔다.

우리가 성경 통독을 하기 위해 택한 성경은 개역성경이 아니라 표준새번역성경이다. 표준새번역성경은 비교적 쉽게 번역되어 있어서 이해가 빠르기도 하지만 늘상 보는 개역성경보다는 다른 버전으로 성경을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경통독은 나와 남편에게 이 어려운 코로나 시기를 잘 지나도록 큰 힘을 주었다. 무엇보다도 날마다의 기도생활을 더 잘할 수 있도록 에너지를 공급해 주었다. 보너스로는 남편과 마주 앉아서 성경을 읽는 그 자체가 나에겐 행복한 시간이었다는 것이다.

성경을 통독하면서 어떤 장을 읽을 땐 내내 눈물이 앞을 가릴만큼 성령에 감동이 되어 읽을 때도 있었다. 또 어떤 장을 읽을 때는 “그래 바로 이거야 이게 지금 우리 나라의 현실과 똑같네”하면서 무릎을 탁 치기도 한다. 이처럼 성경통독은 우리 부부를 격려하고 깨닫게 하는 마력을 발휘했다.

내년에는 좀 더 부지런히 성경을 읽어야 하겠다. 보통 하루 두 시간 소리내어서 성경을 읽으면 두 달이면 신구약 성경을 한번 통독한다. 새해엔 매일 한시간씩 성경을 소리내어 읽을 계획을 세워 본다. 하루에 한시간 성경 읽기는 큰 무리가 되지 않고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다.

한시간을 계속 내기가 어렵다면 30분씩 나누어서 성경을 읽으면서 한시간을 채워도 좋을 것이다. 하루 한시간 성경을 소리내어 읽는다면 성경 통독은 네 달 정도 걸릴 것이다. 그러면 일 년에 성경을 세 번 통독하게 된다. 다음은 성경통독과 무관하지 않은 한 사건을 소개해 본다.

두어달 전의 일이다. 나는 가을 노회에 참석하고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코로나 시대인 요즘은 어떤 모임에서도 식사를 거의 안하기 때문에 그 때도 식사는 없이 여러가지 먹을 것을 담은 간식을 비닐팩에 넣어서 노회에 참석한 목사님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나는 그 간식을 먹지 않고 가방에 넣었다. 집에 가지고 가서 남편과 함께 먹으려는 생각에서였다. 그래서 나는 곧장 교회로 발걸음을 옮겼다. 남편 K선교사가 선교회 사무실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교회가 있는 건물 앞에 사거리에서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렸다.

녹색의 신호등이 들어와서 나는 길을 건너기 시작했다. 어서 교회로 가서 남편과 함께 내가 가져온 간식을 꺼내서 커피 한 잔과 함께 먹어야지 하는 기대로 발걸음이 나도 모르게 빨라지고 있었다. 막 건널목을 건너서고 바로 앞에 있는 우리교회가 있는 프라자 건물 입구로 진입을 했을 때 였다.

우리 교회가 있는 프라자 건물을 관리하는 소장님이 문 입구에서 꾸벅 인사를 하였다. 나도 “안녕하세요 소장님” 인사를 했다. 그런데 소장님은 프라자 건물 문안으로 들어온 나를 보고 몇걸음을 따라오면서 나에게 말을 걸었다.

“저… 제가 밖에서 프라자 건물안으로 들어 오다가 다시 밖으로 나갔어요. 길 건너편에서 누가 오는데 얼굴이 환~하게 빛나는 사람이 오길래 누군가 자세히 보려고 다시 건물 밖으로 나왔거든요. 그리고 바라보고 있었는데 목사님이시네요.” 하며 웃는다.

나는 소장님의 뜻밖의 말을 듣고 쑥스럽기는 하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6층인 우리 교회로 들어와서 탁자에 간식을 꺼내 놓으면서 나는 남편에게 금방 있었던 그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마침 관리소장님이 우리 층에 볼일이 있는지 현관유리문 밖 복도를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남편이 나에게 얼른 “여보! 그 간식 소장님 드려요. 좋은 소리 해 주셨는데…” 한다 나는 얼른 냉장고에 있던 사과쥬스 한팩을간식이 들어 있는 지퍼백에 더 넣어서 유리문을 밀고 나갔다. 그리고 막 우리 층에서 내려 가려는 소장님을 불렀다.

“소장님 이 간식 출출할 때 드세요.” 하면서 간식이 든 지퍼백을 내밀었다. 소장님은 제법 묵직한 간식봉지를 받고서 “아유~ 뭘 이런걸 다 주세요” 하면서도 얼굴 만면에 웃음꽃이 활짝 피어난다. 간식봉지를 건네고 교회안으로 들어오는 나를 보고 남편이 바라보며 씩~ 웃고 있다.

사실 남편과 다정하게 나누어 먹으려고 노회 갔을때 먹지 않고 챙겨온 간식이었다. 하지만 내 얼굴에서 환한 빛을 보고 말해준 관리소장님에게 간식봉지를 드리고나자, 나는 내가 먹은것 보다도 더 뿌듯함을 느꼈다. 물론 먼저 간식봉지를 드리라고 제안한 남편은 더 기뻤을 것이다.

문득 오래전 선교지에서 있었던 그 일이 기억났다. 선교지에 들어가면 일단 그 나라 언어를 배워야 하기 때문에 선교사들은 대개 선교지 나라의 대학의 언어과정에 입학을 한다. 나도 내가 들어간 도시의 대표적인 대학에 들어가서 현지 언어를 배우고 있을 때였다.

내가 언어를 공부하던 반은 모두 외국인들만 모아 놓고 언어를 가르치는 반이었다. 우리를 가르치던 여자 교수가 수업은 끝나고 언어를 배우는 학생들과 사적인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되었을때이다. 모든 사람 앞에서 그 여자 교수가 나를 지명하면서 말했다.

“당신 얼굴에서는 광(光:빛)이 나요. “라고 말하면서 그녀는 교수답게 설명까지 덧붙였다. “그런데 그 광(光)은 당신이 피부가(나는 젊을때 선천적으로 피부가 좋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좋아서 나는 광이 아니고 다시 표현 한다면 그건 당신 안에서 나오는 이름모를 광(光)이예요.”

나는 그때 그 여교수의 말을 듣고 놀랐다. 그렇구나 내 안에 있는 빛(예수님)을 사람들이 알아보는구나. 낯설고 물설은 이역만리 선교지에 와서 전혀 나를 모르는 현지의 여교수로 부터 들은 증언, 나의 얼굴에 광(光:빛)이 난다는 말은 내가 분명한 그리스도인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사실 내 얼굴에서 빛이 난다는 증언은 이외에도 여러사람에게서 들었다. 내안에 모시고 사는 이(예수그리스도)가 내 속에서 자꾸만 빛을 뿜어내시는가보다. 새해엔 내 안의 빛되신 그리스도를 더 많이 드러내고 증거하는 해가 되도록 기도해야 하겠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요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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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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