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 칼럼] 매의 눈과 생활속의 지혜

우리 삶 가운데는 늘 필요한 물건이 있기 마련이다. 문제는 그 필요한 물건을 어떻게 공급 받는가 하는 것이다. 물론 가장 손쉬운 것은 돈을 주고 필요로 하는 물건을 사는 것이다. 요즈음은 매장에 직접갈 필요조차 없다.

온라인으로 올라와 있는 상품을 선택한 후 결제만 하면 내가 필요한 물건이 곧장 배달되어 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정에 여유가 별로 없다면 어떻게 할까? 요즘 우리집 남편 K선교사 서재에 문제가 발생했다. 오래된 중고 책장 선반이 잔뜩 꼿혀 있는 책의 무게에 못이겨서 드디어 휘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책장의 선반이 휘어진 것은 책을 빽빽하게 많이 꼿은 탓도 있겠지만 책장 자체가 튼튼하지 못한데도 원인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오가며 지나치는 아파트안 쓰레기 하치장에 튼튼해 보이는 멀쩡한 책장이 나와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가로 3단 세로 5칸의 가로길이 1200센티미터 짜리 꽤나 큰 책장이었다. 아무튼 우리집 휘어진 책장 보다는 훨씬 튼튼해 보였다. 그 책장을 일단 아파트 현관 입구에 빈공간에 옮겨다 놓았다. 그런데 그렇게 삼일쯤 지났을까 했을때 똑같은 장소에 우리가 가져다 논 똑같은 책장 또 하나가 나와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하나로는 부족했었는데 이렇게 같은 책장으로 짝을 맞추게 되다니…더욱이 똑같은 사이즈의 같은 브랜드의 책장이니 금상첨화였다. 하지만 책을 빼서 내리고 다시 옮기고 하는 것이 보통일이 아니었다. 우리는 언제 날 잡아서 둘이 하든지 방법을 찾아 보자고 했다.

가족 단톡방에 큰 책장 두개를 들여 왔는데 책장에 책 옮기는 일이 큰일이라고 했더니 큰딸은 “사람 부르세요”하고 간단하게 댓글을 달았다. 참나…돈 안들이려고 버려진 책장을 가져다 쓰는데 책 옮기는것을 사람을 사서 하라니 나는 딸의 말이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날 이었다. 내가 외출하고 돌아와보니 남편 서재가 말끔하게 정리 되어 있는것이 아닌가? 새로 들여온 튼튼한 책장에 책들이 다 옮겨서 꼿혀져 있고 휘어진 헌 책장은 현관 밖으로 내다가 놓아져 있었다. 나는 깜짝 놀라서 남편에게 언제 이걸 혼자 다 했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남편이 씩~ 웃으면서 하는 말이”
응,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셔서 쉽게 책을 새로운 책장으로 옮길 수 있었어”라고 한다. 남편의 설명을 들어보니 일단 책장 하나를 휘어진 책장과 마주 보게 들여 놓고서 선채로 예전 책장의 책을 빼서 옆책장에 옮겨 꼿는다.

다음엔 휘어진 책장을 들어내고 또 하나의 새로운 책장을 제위치에 놓은후에 역시 선채로 책을 빼서 새로운 책장에 옮겨 꼿는 방식으로 했더니 허리도 안 아프고 두 시간 만에 거뜬하게 가로 1200센티미터 책장 두 개에 책을 다 옮길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감탄해 마지 않았다.

내가 생각했던 방식은 일단 책을 다 빼서 방바닥에 쌓아 놓은후 헌책장을 들어내고 새로운 책장을 넣은 후 방바닥에 쌓여 있는 책을 들어서 다시 책을 새로운 책장에 꼿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일어났다 앉았다 하면서 하게 되어서 허리도 아프지만 일도 많이 더디어 지게 된다. 그래서 사실 엄두가 안나던 일이었다.

일단 새로운 책장에 책을 다 옮겨 놓고 보니 선반이 두껍고 튼튼한 책장에 책들이 나란히 꼿혀 있는 것이 참 보기 좋았다. 전의 책장은 책장 모양도 각기 다른데다가 가득 꼿힌 책 무게에 선반이 휘어져서 보기에도 좋지 않았다. 아무튼 나는 책장에 반듯하게 꼿혀 있는 책들을 보며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남편이 툭 한마디를 던진다. “그런데 책상이 좀 좁아서 좀 불편해” 한다. 하긴 남편이 쓰고 있는 책상은 학생용으로 많이 쓰이는 폭이 60센티미터인 좁은 책상이다. 선교지에서 돌아와서 책상이 필요해지자 내가 영등포에 있는 중고가게에 가서 사서 쓰다가 남편에게 준 책상이다.

나는 작은딸이 쓰다가 결혼하여 남게된 역시 비슷한 모양의 학생용 책상을 쓰고 있었다. 얼마전 한샘에 갔다가 서재코너를 둘러보니 새 책상은 꽤나 비싸던데… 아무튼 지금 새 책상을 사기는 어렵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최선은 무엇일까하고 나는 생각해 보았다.

책상의 좁은 폭은 넓혀 줄 수 없지만 길이는 비슷한 높이의 물건을 옆에 놓으면 책상을 길이로라도 넓게 쓰도록 보충해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산책을 갈겸해서 아파트 안에 여러 곳에 설치된 쓰레기 하치장에 나와 있는 쓸만한 물건들을 한번 찾아보기로 했다.

우리가 사는 아파트는 2500여 세대가 살고 있는 넓은 아파트 단지여서 여러 곳에 쓰레기 하치장이 있다. 사람이 많이 살다보니 쓸만한 많은 물건들이 종종 나오게 된다. 당근 마켓이나 중고가게에 가져다 놓으면 충분히 돈받고 팔 수 있는 물건들도 귀찮으니까 그냥 버리는것이 많다.

드디어 한 곳에서 적당한 물건이 내 눈에 띄었다. 그것은 베이지색의 설합통이었다. 책장형 책상에서 나온 것이다. 아마도 우리집에 있는 책상과 색상도 비슷하지 싶었다. 나는 남편에게 핸드카트를 가지고 오라고해서 설합통을 옮겨다가 잘 닦아서 남편의 책상 옆에 붙여 놓았다.

그런데 설합통을 책상 옆에 붙여놓고 나서 남편과 나는 함께 탄성을 질렀다. 왜냐하면 그 설합통은 바로 우리가 쓰고 있는 책상과 같은 메이커의 같은 색상의 설합통이었기 때문이다. 이미 있던 설합통과 완전히 똑 같았다.

햐~ 어떻게 우리가 쓰고 있던 책상과 아주 똑같은 책상의 설합통을 누가 쓰다가 내 놓았을까? 참 신기하게 느껴졌다. 상태도 깔끔하고 좋았다. 남편의 서재에 비록 새책장 과 새책상은 사서 들여놓지 못했지만 이웃이 쓰던 것을 무료로 가져다 쓰는 것이니 이것도 참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언제인가 기회가 되면 나는 남편방의 서재에 새 책장과 넓직한 새 책상을 꼭 사서 놓아주고 싶다. 다른 것엔 욕심이 없는 남편이 이 세상에서 제일 욕심을 내고 사랑하는 물건이 있다면 그건 아마 책일 것이다. 그래서 남편은 적은 용돈으로도 쉴 새 없이 책을 산다.

하지만 나는 남편이 자주 책을 사는 것에 대해서 일체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 책을 사서 보는 것이 남편에게 있어서 삶의 기쁨인것을 잘 알기에 말이다. 열심히 책을 읽고 문장을 다루니까 치매예방은 확실하겠구나 하는 다른 한편의 위안도 가져 보면서 말이다. ^^

물론 남편은 바로 우리 집앞에 있는 청소년 도서관에 수시로 들려서 자주 책을 빌려다가 보고는 반납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도서관에는 남편이 원하는 책은 1/3정도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남편이 보고 싶고 필요로 하는 책이 있으면 사는 것이다.

물론 ‘알라딘 중고샵’ 같은 온라인 중고책도 남편은 많이 구입하는 편이다. 또 전자책이 비교적 저렴하여서 종종 구입해 보기도 한다. 하지만 전자책의 단점은 책에 줄을 치면서 정독과 묵상하며 읽기가 좀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역시 종이책을 사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책을 사랑하는 남편 K선교사에게 책과 관련된 모든 것은 단연 최고의 관심사 일 수 밖에 없다. 책장, 책상등도 포함해서 말이다. 그런데 내가 튼튼한 책장과 설합통을 쓰레기 하치장에서 발견해서 서재를 더 좋게 만들어 주니 남편은 기분이 좋았나 보다.

남편은 나에게 “당신은 ‘매의 눈’ 을 가졌어. 어떻게 그리 꼭 필요한 물건을 알아보고 찾아낼 수 있을까 “하고 칭찬 아닌 칭찬을 한다. 나도 칭찬으로 응답했다. “당신은 어찌 그리 지혜로워요? 아들을 대구서 올라 오라고 해서 아빠 서재에 책좀 옮겨 주라고 하려고 했는데 지혜를 써서 혼자 다 옮겼네요.”

우리 부부는 없는 가운데서도 이처럼 죽과 장단이 잘 맞으니 잘 살아가는 모양이다. ‘매의 눈’을 가진 여자와 기도하며 지혜를 받은 남자가 사는 우리 집은 그래서 웬만한 불평은 그냥 패스하며 산다. 서로 건강하게 함께 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상대방을 ‘고마운사람’으로 느끼는 오늘이기 때문이다.

“내가 보니 지혜가 우매보다 뛰어남이 빛이 어둠보다 뛰어남 같도다(전 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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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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