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 칼럼] 의미 있는 기념오찬

우리 부부의 결혼40주년기념일이 하루 지난 월요일날 점심에 남편이 나를 초대했다. 장소는 파주에 있는 분위기 좋은 퓨전한정식 집이다. 처음 가보는 집이지만 TV광고를 통해 알게된 식당인데 괜찮아 보였다.

결혼기념일 당일 저녁엔 간단하게 중국집에서 짜장면과 잡채밥을 먹었지만 남편은 그래도 ‘결혼40주년기념’ 이라는 타이틀에 맞추어 좀 더 근사한 곳에 가서 나에게 점심을 사 주고 싶었나보다.

김포에서 파주 까지는 그리 멀지 않아서 시간은 30분 정도 걸렸다. 2만원대 3만원대 5만원대의 세가지 퓨전한정식 메뉴 가운데 우리는 중간으로 주문했다. 5만원대는 너무 비싸고 그래도 결혼40주년 기념인데 중간정도인 3만원대는 시켜야지 하면서…

야채샐러드를 시작으로 줄줄이 음식이 나왔다. 맛이 괜찮은 편이었다. 마지막으로 돌솥밥에 된장찌개와 밑반찬이 나왔다. 역시 한국사람에겐 된장찌개가 잘 맞는다. 된장찌개와 돌솥밥으로 식사 마무리가 개운하게 잘되었다. 숭늉까지 시원하게 먹고나니 뒷맛도 깔끔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내가 이야기를 꺼냈다. “음식값이 너무 비싼거 같아요. 그돈이면 차라리 중국집에서 두 세번 맛있는 중국음식을 더 먹을껄”그랬더니 남편은 “괜찮아 40년만에 먹는 비싼음식인데 뭘…나를 위해서는 비싼 밥이지만 당신을 위해서는 5만원대로 먹었어도 되는데…”한다.

예전에 결혼하기 전에 내가 본 친정 엄마는 자기희생의 화신같은 사람이었다. 거기에다가 인내심은 어떻게 강한지 “인내의여왕”상이 있다면 우리 엄마에게 주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하곤 했다. 얼마나 그 힘든 시집살이며 무심한 남편으로 인한 힘든 삶들을 잘도 참아내셨는지…

난 그것이 너무나 싫었다. 그래서 내가 결혼생활을 시작했을때 나는 무조건 희생하거나 참고 살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내 몫을 당당히 챙기며 살겠다고 생각했다. 우리 엄마의 희생일변도의 삶이 너무나 싫어서 말이다.

그래서 우리 엄마 같으면 식구들이 먼저 다 먹고 자기 몫을 안 남겨도 당연하게 여겼지만 나는 달랐다.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먼저 식사를 시작한 식구들에게 “내것도 남겨놔”하고 주방에서 소리치곤 했다.

또 특별한 간식이나 아이스크림을 사와서 식구들이 먼저 먹기 시작해도 나는 “난 아이스바가 아니라 콘으로 먹을거야 제일 맛있는것으로 내꺼 꼭 남겨놔” 하고 주문하곤 했다.

그런데 “나는 엄마처럼 그렇게 바보처럼 희생만 하고 살지는 않을거야 “ 그런 생각을 가지고 결혼한 나에게 신혼때 일어난 우리집 유명한 일화가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식구들이라면 다 아는 “달걀후라이 세개”이야기이다.

신혼초 단간방을 월세로 살고 있었을 때였다. 부엌은 요즘처럼 입식이 아니고 밖에 부엌이 따로 있는 그런 집이었다. 남편에게 아침상을 차려주고 도시락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출근해야 하는 남편이 먼저 식사를 하게 되었다.

어느날 나는 달걀 후라이 세개를 부쳐서 접시에 담아서 밥상에 놓았다. 조금 후에 남편의 도시락을 싸들고 방으로 들어온 나는 밥을 먹으려고 자리에 앉자 마자 기가막힌 표정이 되었다.

왜냐하면 접시 위에 내 몫으로 한개는 남겨 있으라라고 생각했던 달걀 후라이가 한개도 없었기 때문이다. 남편이 세개를 다 먹어버린 것이다. 두개는 남편 몫으로 한개는 내 몫으로 만든 달걀후라이 인데…

나는 그것이 얼마나 섭섭했든지 그 일을 두고 두고 이야기 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 사건 이후에 태어난 우리 아이들까지 다 아는 일명 우리집의 유명한 ‘달걀후라이 세개’사건이 되었다.

그런 일이 있어선지 남편은 전처럼 생각없이 밥을 먹으면서 맛있는 반찬에 자주 손이 가다가도 반찬이 조금 남으면 깜짝 놀라면서 젓가락으로 음식을 밀어 놓으면서 “어..어.. 이거 당신꺼야 남겼어. 아휴~ 까딱했으면 다먹을뻔 했네” 한다.

그런데 그렇게 몇 가지 일에서는 내것을 주장하고 내꺼라고 하는 나이지만 어느새 내 속에 있는 엄마의 희생 DNA 가 발동하는 모양이다. 나이 들어가면서 점점 엄마의 삶의 태도들이 나에게서 나타난다는 것을 느낀다.

전통적인 한국형 아내의 어머니의 그리고 며느리로서의 정도의 삶을 살아간 우리 엄마의 삶이 어느새 내 삶의 모델이 되어 있는 것이다. 사실 난 엄마처럼 그렇게 희생적이고 무조건 참고 안으로만 삭이고 사는 그런 엄마가 참 어리석다고 생각했었다.

그랬던 내가 다른 사람을 위해서는 아깝다든가 그런 생각을 별로 하지 않고 돈을 쓰는데 나를 위해서 무엇을 하려고 할땐 괜히 주저되는 것이다. 이건 틀림없이 우리 엄마의 희생적 삶의 DNA가 내게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은 어렸을때 가정에서 보고 자란 것이 그래서 무서운 것인가 보다. 성인이 되어서 자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부모를 닮아 가고 있기 때문에…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결혼같은 중차대한 일을 결정할때는 결혼대상자는 물론 그 부모가 어떻게 살아온 사람들인지를 따져 보는 것이 아닐까

상담심리학에서 그런 말을 한다. 남녀 두 사람이 만나서 결혼을 해서 가정을 세우지만 실은 여섯 사람이 한 집안에 살고 있는 셈이라고… 그게 무슨 말인가 하면 남편과 아내가 몸은 단둘이 살고 있지만 실은 정신은 각각 양가의 부모가 한집에서 사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그만큼 사람은 자기가 태어나서 자라난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것은 근거있는 주장일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결혼전 남녀에게는 결혼 예비학교를, 이미 결혼한 부부들에게는 부부학교를 공부하라고 권한다.

또 성경적 어머니상을 가르치는 어머니학교나 아버지학교 그리고 가정훈련학교 같은 프로그램들을 통해서 사람의 심리 저변에 자리 잡은 부정적인 성향들을 성서적인 관점으로 바로 잡아주고 치유해 주기도 한다.

요즘 나는 내딸에게서 내 모습을 볼때가 종종 있다. 딸은 남에게 베푸는 일에는 전혀 아끼지 않는다. 누군가 필요를 호소하면 당장 자신의 것을 정리해서 보내준다. 수년전에도 딸은 사촌이 경제적인 어려움을 당했다는 말을 듣고는 자기가 넣고 있던 적금을 해약해서 다 보내 주기도 하였다.

딸은 타인을 위해서는 그런 긍휼의 마음을 선천적으로 가진것 같다. 남에게는 동정심이 충만한 딸은 자신을 위해서는 지독하게 아끼고 잘 쓰지를 않는다. 아빠 엄마인 우리 부부가 그렇게 살아 왔으니 딸이 무엇을 보고 배웠을지 알 수 있는 일이다.

딸은 대학 다닐때 입었던 옷을 결혼 후 수년동안 입고 다니기도 하고 새옷을 해 입는것을 별로 본 적이 없다. 새옷좀 해 입으라고 하면 딸은 자기는 이쁘니까 아무거나 입어도 괜찮다고 한다. 딸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 엄마인 나를 닮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은 자신이 어떻게 대접 받는가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사람은 자신이 대접 받은대로 남을 대접하기 때문이다. 나의 고향교회 목사님은 교회학교 학생부 아이들에게 절대로 짜장면만을 사주지 않으셨다.

당시 가장 저렴해서 보편적으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짜장면 이었지만 목사님은 교회 학생부 아이들에게 돈까스며 오므라이스 같은 가격대가 높은 음식을 종종 사주셨다. 그러면서 다른 성도들에겐 교훈을 주셨다. “사람은 대접을 받은대로 대접을 하기 때문에 저 학생들이 짜장면만 대접 받으면 나중에 짜장면만 대접할 겁니다.”

1997년 우리 가족이 선교지로 파송되어갈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우리가 사역했던 육군사관학교 영관급 장교부인인 집사님 한분이 우리 가족을 초청했다. 63빌딩 부페집이었다. 지금이야 흔하지만 당시 부페는 아주 비싼음식이었다. 더욱이 63빌딩 부페는 아주 비쌌다.

이십여년전인데 일인당 3만5천원을 했으니 상당히 비싼 음식이었다. 집사님은 우리 가족을 선교지로 보내면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고 싶다고 하면서 그 비싼 부페를 우리 가족에게 대접했고 구역원들이 헌금해서 모은 꽤큰돈을 헌금해 주었다.

그런데 내 기억속에 그때 대접 받았던 그 부페음식이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이다. 그후 수 없이 음식 대접을 받았지만 그때 그 6.3빌딩에서 부페를 먹었던 것이 특별히기억 나는 것은 꼭 음식이 맛있어서가 아니다. 우리 가족을 이처럼 귀하게 대접해 준 그 집사님의 사랑이 기억 나는 것이다.

결혼 40주년기념오찬으로 먹은 밥값이 아까운 생각이 들어서 별 이야기가 다 나온셈이다. 하지만 이제 우리 연배는 자신에게 좀 너그러워도 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좀 비싼 음식을 먹어도 죄책감 느끼지 않아도 되는 그런 나이가 된 것 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무튼 남편 K선교사는 결혼 40주년 기념으로 좀 비싼밥 아내에게 한번 대접하고 수지 맞은 셈이다. 왜냐하면 앞으로 남은 인생 누가 지은 밥을 남편이 먹을 것인지 생각하면 답은 꽤 쉽게 나온다.

자신을 위해서는 우리동네에서 제일 저렴한 3,900원 짜리 짜장면을 즐겨 먹는 남편이 부가세까지 일인당 38,500원이나 하는 퓨전한정식을 나에게 사주면서 “당신을 위해서는 5만원짜리 먹었어도 되는데… “ 라고 한 말을 내 영원히 기억하리라.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 7:12)

글/사진: 나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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