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익주 연재] 박정희와 김대중의 당선 순서를 바꿔보면

[LA=시니어타임즈US] 본지는 2020년 7월부터 최익주 선생의 <그렇게 선진국이 가능해?(가제)> – 국민의 반성과 국가적 전환점(부제)을 저자와의 합의 하에 글이 출판되기 이전에 연재를 시작한다. 연재는 회차별로 매주 한편씩 실리게 되며, 글의 배포는 무방하나 무단전재는 금한다. 글의 소유는 전적으로 저자 최익주 선생에게 있음을 알리며, 본지의 편집방향과는 무방하다.

<그렇게 선진국이 가능해?>는 저자가 20년여 전부터 대한민국이 인간적으로는 물론이고 총체적으로 한계에 봉착했고, 또다시 혼란과 위기와 망국의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라는 점을 인지함과 동시에 한계에 도달할 수밖에 없는 원인들을 연구했다. 이에 저자는 대한민국이 부디 새롭게 출발되기를 바라는 소망을 가지고 산업화 이후의 시기부터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일어난 일련의 최근 사건들을 통해 그 문제점 되짚으며, 앞으로 대한민국이 바르게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편집자주>

19. 박정희와 김대중의 당선 순서를 바꿔보면

필자는 오래전에 현대사를 연구하다가 대통령들의 당선 순서를 이리저리 바꿔보았고, 특별한 결론이 내려졌다.

첫째, 이승만이 아니라 김구가 초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더라도 독재자가 되었거나, 김일성에게 남한을 가져다 바쳤거나, 김일성에게 적화되었거나, 혼란과 망국의 지경을 피하지 못하고 중간에 쫓겨났을 것이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둘째, 이승만(민주주의 실시)과 박정희(자본주의 경제계획과 경제개발 성공)를 대신할 대통령은 없었다.

셋째, 이승만과 김대중의 당선 순서를, 박정희와 김대중의 당선 순서를 바꿔보았는데 김대중도 독재(자)했을 수밖에 없었다.

넷째, 박정희는 독재했지만 실패해서 비운으로 끝났다. 하지만 김대중은 독재에 성공했을 가능성이 컸다. 왜냐면 김대중은 박정희에 비해서 훨씬 더 열악한 출생(환경, 인연)과 열등한 성장환경이었고, 열등의식의 반작용으로 출세욕과 소유욕과 정권욕과 지배욕과 명예욕과 영웅 심리에 강하게 영향받았고, 열등하고 열악했던 환경과 성장으로 인해서 비열하고 야비하고 교활한 수법들을 동원했을 것이 확연했기 때문이다.

다섯째, 김대중이 먼저 대통령이 되었다면 독재만이 아니라 어마어마한 부정부패와 비자금을 축적했을 것이다.

그렇게 되었다면 북한은 김일성 독재로, 남한은 김대중 독재를 통해서 전혀 다른 현대사와 남북관계가 되었을 수도 있다.

김대중이 전혀 다른 대통령이 되었을 가능성은?

물론 김대중을 이승만과 박정희와 순서를 바꿨다면 반드시 나쁜 결과만이 아닐 수도 있다. 왜냐면 김대중이 먼저 대통령이 되었다면 박정희 정권으로부터 탄압을 받지 않았을 것이고, 해외 도피 생활도 없었을 것이며, 북한 정권(김일성과 조총련)의 유혹에 걸려들 일도 없었을 것이고, 김일성과 당당하게 대적해서 승리했을 수도 있으며, 자유민주주의로 방향을 잡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어본 독자들의 생각은 어떨까?

성급한 판단보다는 아래 내용을 읽어보고 다시 한 번 양심과 상식과 정의를 바탕으로 김대중에 대한 평가 겸 결론을 내려 보기 바란다.

※ 1) 필자가 김대중의 측근과 나눴던 대화

필자는 김대중의 측근에게 이런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측근들이 동교동 자택에 모여서 사담을 나누던 중

“김대중도 이승만과 박정희 때 대통령이 되었다면 독재자가 되었을 것이라는 말이 나왔으며, 당시에 함께 있었던 모두가 적극적으로 공감하고 동의했고, 절대 이런 이야기가 밖으로 새나가지 않도록 비밀로 하자.”라고 했다는 말을 전해줬다.

필자가 김대중의 측근에게 이 이야기(“김대중도 독재자였을 것”)를 직접 듣게 된 당시 상황을 소개한다.

내가 먼저 그(측근)에게 “선생님 제가 대통령들의 당선 순서를 이리저리 바꿔봤습니다. 특히 김대중을 이승만과 박정희와 당선 순서를 바꿔봤습니다. 그런데 김대중이 먼저 대통령에 당선되었더라도 독재했을 것이라는 결론이 내려졌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측근이 깜짝 놀라고 심각해지면서 필자에게 “어디서 들은 이야기인가요?”라고 물었다.

“제가 연구한 결과입니다.”라고 말하자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의심의 눈빛을 보냈다.

필자는 그에게

“이승만과 박정희의 인생은 정통파(순수파와 열정파)여서 독재에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김대중은 교활하고 지능적이어서 북한의 김일성처럼 독재에 성공했을 것이라는 결론이 내려졌습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해주었다. 그러자 그는 한 번 더 놀라는 모습을 보이면서 내 말(연구)을 믿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왜냐면 동교동의 측근들은 “김대중이 독재에 성공했을 것”이라는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 2) 필자가 김대중 측근에게 들었던 또 다른 이야기

“김대중과 이희호의 손에 한 번 들어간 것은 다시 나오는 법이 없다”라고 측근들이 푸념할 정도로 부부가 똑같이 돈(선물)을 좋아하고, 인색하다.

“나는 김대중과 같은 혐의로 함께 감옥에 갔는데 오히려 출소는 내가 더 늦었다. 나는 거의 반병신이 되어서 지팡이를 짚고 출소했고, 곧바로 동교동(김대중 자택)에 인사를 갔다. 모여 있던 측근들이 반갑게 나를 맞이(환영)해주었고, 나는 안채로 들어갔다. 김대중과 이희호에게 출소 인사를 하고 돌아 나오는데 이희호 여사가 엄지손가락 크기의 웅담을 하나 건네주면서 ‘빨리 회복하세요.’라고 했다. 내가 나오자 측근들이 동시에 나를 주시했다. 내가 ‘웅담을 주시더라.’라고 보여주자 측근들은 약속이나 했듯이 동시에 ‘와’ 하고 손뼉을 치면서 한바탕 웃었다. 왜냐면 두 사람의 손에 한 번 들어간 것은 다시는 나오는 법이 없었는데 웅담을 받아오는 이변이 생겼기 때문이고, 모두가 놀라워하면서 축하해줬다.”

“정부에서 중요한 법안을 통과할 때는 관행처럼 3당 총채(김종필, 김영삼, 김대중)에게 봉투를 하나씩 건네주곤 했다. 무난하게 통과해주길 바람과 동시에 감사함의 표시로 미리 예의를 차리는 것이었다. 그럴 경우 김종필과 김영삼은 봉투(수표)를 받아서 호주머니에 넣었다. 그런데 김대중은 반드시 봉투를 열어서 금액을 확인했으며, 금액이 적으면 봉투를 돌려줘 버린다. 그럼 정부에서 금액을 추가해서 봉투를 다시 주면 그때는 확인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 넣는다.

그러면 김종필과 김영삼은 대정부질문에 불출석해버린다. 하지만 김대중은 참석해서 대정부 질문을 해서 관계자들을 당황하게 한다. 하지만 정부에서 추가로 답변할 때는 김대중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넘어가 준 것이다.”

“광복회 회장이 국회의원(비례대표)을 하겠다고 주변에 의향을 표시하면서 십시일반으로 지원을 부탁했다. 이 말을 들은 지인들은 ‘지원하겠다.’라고 예의(형식)상 약속했다. 회장은 지인들을 믿고 김대중 쪽에 3억을 약속했다. 당시에 공식 가격은 5억이었는데 광복회 회장이어서 2억을 깎아준 것이란다. 하지만 회장이 실제로 모금하자 겨우 1억이 걷혔다. 그래서 1억을 들고 김대중을 찾아가다가 거절당하고 끝났다.”

그는 마지막으로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김대중은 요직(공천 등)을 결정할 때 공식 가격이 정해져 있었고, 목숨을 걸고 투쟁해온 측근들도 알아서 챙기도록 노골(공개)적으로 허용했으며, 어떻든 자신도 챙겨주도록 암시(유도)했다.

노무현은 김대중이 공식 가격을 정해놓은 것을 알고 이를 나쁘게 생각했다. 그래서 노무현은 대통령이 되어서 공식 가격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자발적으로 주지 않으면 기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노무현은 핵심측근들이 돈 심부름을 하다가 대부분 감옥에 갔다.”

필자는 그(측근)에게 이렇게 말했다.

“김대중은 살벌하고 고단한 정치와 현실의 밑바닥에서 정치철학과 통솔력을 갖추지 못하고 마치 장돌뱅이처럼 정치꾼과 장사치처럼 살아버렸고, 노무현은 변호사 출신이어서 김대중보다 자신(측근)이 한 수준 높다고 착각하면서 변호사답게 안 걸리는 법을 알았던 차이입니다.

하지만 대통령은 합리적인 인생철학과 미래비전과 탁월한 개혁 의지·방안과 지도자로서의 통찰력과 통솔력이 생명입니다. 반대로 잘못된 관행들에 의존하면서 겨우 법과 국민에게 안 걸리거나, 감시를 피해 가는 수준과 방식으로는 어림없습니다. 노무현은 되로 받을 대가(죗값)를 임기가 끝나면 말로나 가마니로 뻥튀기에서 받을 것입니다.”

(※ 실제로 그는 대통령이 되어서 핵심측근들 상당수가 감옥에 갔고, 임기가 끝난 이후에 자살하는 죗값을 치렀다.)

(※ 다음은 노무현 대통령의 지도자 자격 부족과 인간성 결여 등이 집중적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필자가 중년에 180도 인생이 바뀐 배경(부정비리 사건,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노무현을 접해보게 된 이유 등)을 정리하기로 한다.)

저자 최익주 선생은 전남 목포 출생으로 목포북교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광주광역시로 이사해서 북성중학교, 동신고등학교, 조선대학교 경영학과(78학번)를 졸업했다.

군생활을 오산비행장 방공포부대에서 병장 만기 제대, 3년간의 개인 사업을 했으며, 관세사무소에서 16년 동안 사무장으로 지내다가 광주세관과 관세청과 부정비리 문제로 싸움(형사소송)이 시작되었다. 대한민국의 실체와 실상을 깨닫고 인생을 180도 선회. 이후 밑바닥부터 다시 터득하고 통달해야 한다는 각오로 시민단체(2-3년), 택시기사(2년 6월), 생산공장과 건물경비(10년여)를 전전하면서 노동자 생활을 해왔다.

저서로는 <이제는 바꿔봅시다(1997.7.30.)> <대화로 여는 새아침(1999.9.20.)> <사랑하는 선·순·아에게 제1-4권(2018.7.13.)>이 있다.

다음은 “20. 우리 현대사의 원리와 대통령들의 당선 순서(원리)” 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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