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배령’의 아이들(정인이를 추모하며…)

나는 요즘 우리 어머니 때문에 드라마를 보는 일이 많아졌다. 우리 집에서 거실에 있는 하나 밖에 없는 TV에 어머니가 보시도록 지나간 드라마 등을 틀어 드리다 보면 나도 모르게 흥미가 생기면서 드라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최근에 어머니가 즐겨 보시던 드라마는 ‘곰배령’이라는 제목의 드라마이다. 일반 드라마들이 15회 정도의 분량이라면 ‘곰배령’은 무려 30회 분량으로 길다. 우선 이 드라마에 눈이 갈 수 밖에 없는 이유 중에 하나는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곰배령의 설경 때문이다.

요즘은 드론으로 촬영을 할 수 있어서 그런지 아름다운 산과 들의 경치들이 한눈에 들어 오도록 촬영하기 때문에 경치를 감상하기에는 너무 좋은 것 같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아름다운 산골의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것 만으로도 이 드라마의 가치에 점수를 주고 싶을 정도이다.

나는 매번 성실하게 못 본 회도 있지만 드라마의 시작과 끝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파악했다. 그 내용은 대략 이렇다. 곰배령의 진동리라는 마을에 농사를 지으면서 살아가는 몇 몇 가정이 있다. 곰배령 진동리에서 오미자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70대의 정부식 노인이 주인공이다.

정 노인은 젊었을 때 여배우를 지망할 만큼 아름다운 아내와 결혼하고 가정을 이루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인생관이 달라서 일찍부터 결별하고 남편은 곰배령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고 아내는 남매를 데리고 서울에서 공장일 등 온갖 궂은 일을 하며 자녀 둘을 대학에 보낸다. 그리고 아들과 함께 필리핀으로 이민을 간다.

그러나 딸 재인은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서 이혼하고 은수라는 이름의 딸 하나를 데리고 사는 남자와 결혼하여 딸 현수를 낳는다. 하지만 남편의 사업실패로 십년의 결혼생활이 파탄에 이르게 된다. 남편은 재인에게 이혼을 요구한다. 말인즉슨 빚문제로 가짜로 이혼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재인은 이혼해 주지 않고 두 딸을 데리고 10년간 결별하고 살았던 곰배령의 친정 아버지를 찾아간다. 재인은 아이들만 아버지에게 맡겨두고 다시 서울로 간다. 정노인은 친손녀 현수는 이뻐하지만 피가 섞이지 않은 은수에게는 퉁명스럽게 대한다.

그러나 총명한 은수는 자신이 부당하게 대접 받는 것에 대해서 반발한다. 정노인은 자신의 딸 재인이 자기가 낳은 친딸 현수 이상으로 전처의 딸인 은수를 사랑하는 것을 알게 되고, 또 은수의 가출 사건을 겪은 후에 정노인은 은수를 친손녀처럼 여기고 편애하지 않게 된다.

한편 곰배령에 등산객들을 고객으로 영업을 하는 유일한 통나무카페에는 신우균이라는 전직 경찰관이 아들 하나를 데리고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아들 승우는 아빠의 성을 따른 신승우가 아니라 윤승우이다. 승우는 결혼도 하지 않은 총각인 신우균의 친아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우균은 살인 혐의가 있는 승우의 친아버지 윤호진의 집을 급습해 윤호진을 검거하던 중 범인의 남겨진 어린 아들 승우의 맑은 눈을 보며 아이에게 애정을 느낀다. 그래서 그는 검거한 살인범죄자의 아들인 승우를 키우기 위해 경찰을 그만두고 아이를 데리고 곰배령으로 들어온다.

그는 대출을 받아서 통나무집을 짓고 카페를 운영하며 승우를 남부럽지 않게 키운다.

우균은 승우의 친아빠가 무죄인것을 확신하고, 살인자의 누명을 쓰고 복역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승우의 친아빠 윤호진과는 형 동생하며 지내고 영치금을 넣어주며 돌보아 준다.

승우는 잠시 자신을 키우고 있는 아빠에게 반항하지만 총기 넘치는 승우는 곧 자신을 사랑으로 키워주고 있는 아빠 신우균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정서가 안정된다. 그리고 자신이 친아빠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반드시 법관이 되겠다고 결심한다.

이처럼 은수, 승우는 입양아 아닌 입양아로 살아가는 아이들이다. 그런데 또 한명의 입양아가 있다. 부모가 다 죽고 없는 병도라는 말을 더듬는 남자아이다. 이 병도를 한국전쟁 중에 결혼식날 북으로 끌려간 남편이 돌아올 날을 기다리며 일생을 수절하고 살아가는 팔복할머니가 데려다가 키운다.

은수는 자신의 친엄마를 알고 있고 가끔 친엄마가 보고 싶어하면 엄마집에 가서 자고 오기도 하지만 여전히 자기를 키워준 엄마인 재인을 사랑하고 신뢰한다. 은수는 자신을 키워준 엄마와의 관계는 자신의 친아버지인 강태섭이 현재의 엄마와 이혼을 하든 하지 않든 견고하다는 엄마 재인의 말을 믿고 건강하고 밝게 자란다.

팔복할머니가 키우는 병도는 어릴 때 겪은 심리장애로 말을 심하게 더듬지만 할머니의 사랑 속에서 안정된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팔복할머니가 치매에 걸리고 급기야 죽게 되면서 병도를 정노인에게 키워 달라고 부탁한다. 그리하여 정노인의 딸 재인은 세 아이를 양육하게 된다.

입양아를 배로 낳지 않고 가슴으로 낳은 아이라고들 한다. 곰배령에서 보여주는 친부모가 아닌 가슴으로 낳은 부모 역활을 하는 이들의 선함과 의로움과 인내가 돋보인다. 결국 아이들이 자라는데 필요한 것은 사랑뿐이라는 것을 곰배령이라는 드라마에서는 보여준다.

자기에게 이혼을 강요하며 가장 노릇을 못하는 남편의 자식인 은수를 친자식과 똑같은 마음으로 키우는 재인을 통해서 진정으로 성숙한 엄마는 어떤 엄마인가를 보여준다. 재인은 은수를 낳아준 엄마가 은수를 보고 싶다고 하면 은수를 보내주고 심지어 은수의 친모까지도 돌본다.

그렇게 건강하게 기른 엄마 재인을 보면서 공부를 잘하는 은수는 자라서 특수아동을 돌보는 선생님이 되고 특수 아동들을 돌보는 학교를 세우겠다는 건전한 꿈을 갖는다. 정 노인은 그런 은수에게 자신의 집을 뺀(집은 아내에게 물려줌), 한참 번창하는 양파가공으로 협동조합에서 자신에게 들어오는 수익금 전부를 은수에게 물려 줄 것을 유언한다.

특수학교를 세우려면 재정이 필요할 것이라고 하면서 말이다. 총각의 신분으로 살인범의 누명을 쓴 승우의 아빠를 대신해 승우를 키우는 우균은 승우 앞에서 언제나 쩔쩔매는 아들바보이다. 승우는 중학생이 되고 철이 들면서 자신이 얼마나 큰 특혜를 받은 사람인지를 깨닫게 된다.

진동리 마을 사람들은 천애 고아가 된 병도를 키우는 것은 정 노인 집에서 키우지만 병도를 위해 장학금을 마련해 주기로 한다. 온 마을이 결손 아동에 대해 관심과 사랑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정 노인은 말한다. 이 강원도 산골에 결손 아동들이 많은 이유는 인생의 끝까지 내몰린 사람들이 갈데 없어서 곰배령으로 오기 때문이라고…

그러나 곰배령으로 온 아이들은 훈훈한 인심이 있는 그 산골 속에서 정서가 안정되고 몸과 마음이 건강한 아이들로 자란다. 또한 자신들이 받은 사랑을 약자에게 나누어 주는 사람이 되겠다는 성숙한 생각을 하며 자라간다.

16개월 아기인 정인이가 입양아동으로 갔다가 신체적인 학대를 받아 그 작은 몸이 췌장이 끊어지고 여러 곳에 골절을 당해 더 이상 아픔을 견디어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갔다. 많은 이들이 정인이 무덤을 찾아가서 먹을 것과 장난감을 놓아주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추모하고 있다.

나는 드라마 속이긴 하지만 정인이가 곰배령 진동리에 사는 재인이나 우균이나 팔복할머니 또는 정노인 같은 인간미 넘치는 그 누군가에게 입양되어 왔더라면 은수, 승우, 병도 같은 아이들과 함께 건강하게 해맑게 자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하며 안타까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정인이는 비록 자기를 낳아준 부모에게 버림받고 자신의 양부모에게 학대 받아 이땅을 떠나게 되었지만 지금 정인이는 하늘나라에서 천사들에게 둘러쌓여 예수님의 품안에서 이땅에서 맛보지 못한 가장 행복한 천국의 영생을 즐기고 있을 것이다.

반대로 정인이가 이 땅을 떠날 수 밖에 없도록 원인을 제공한 사람들에겐 이땅에서 의 삶이 곧 지옥같을 것이다. 자신이 낳았든 입양을 하든 한 생명을 키워내야 하는 것은 엄중한 책임감이 갖지 않고는 그리고 끝없는 인내가 없이는 어려운 일이다.

2018년와 2019년 두해 동안에 우리나라에서 아동학대로 숨진 아이들이 70명에 달한다고 한다. 놀랍게도 아동 학대로 숨진 70명의 아이들 중 정인이 한명만 입양아이고, 나머지 69명은 친부모의 학대로 사망했다고 한다.

아이를 키울만큼 성숙하지 못한 채 어른이 되고 아이를 낳은 사람들이 저지른 일이다. 그러나 아직도 아동학대 신고 건수가 4만건에 이르고 그중에 3만건이 아직 미해결 상태에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미래의 정인이가 그 미해결된 아동학대 3만건 속에 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신고되지 않은 아동학대는 더 많을지도 모른다. 작년 한해 우리나라 출산율이 가장 낮았다고 한다. 그래서 어떤 지자체에선 세번째 아이를 낳는 가정에는 오천만원을 지급하자는 말도 나오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아동 학대 같은 어린 생명을 경시하는 이런 사회악부터 해결해야 하지 않을까?

정인이가 아동학대를 당하고 있다는 의사와 어린이집 교사등의 세번의 신고에도 제대로 조사해서 아이를 보호 하지 못한 사회의 시스템이 안타깝다. 첫번째 신고에만 철저히 대응을 해서 정인이를 양부모와 격리했더라도 정인이는 지금 살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제발 두번째 정인이 세번째 정인이가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69:1의 비율로 숨진 입양아동만이 아니라 친부모에게 학대 당해 숨지는 무방비 상태의 아기들도 보호해야 한다. 자기가 낳은 생명이니 내 마음대로 해도 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러려면 우리 모두가 어린 생명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필요하다고 본다. 비록 친부모로 부터는 관심과 배려를 받지 못했어도 가슴으로 낳은 부모로부터 한량없는 사랑을 받으며 씩씩하고 건강하고 다른 사람을 돕는 사람으로 자라나는 은수와 승우, 병도 같은 아이들이 이 나라에 많아져야 한다. 시리고 아픈마음으로 정인이를 추모하며 이 글을 쓴다.

“내가 폭행을 당한다고 부르짖으나 응답이 없고 도움을 간구하였으나 정의가 없구나(욥 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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