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계명,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2) 십계명을 지키는 성도의 자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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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계명,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2)

십계명을 지키는 성도의 자세는?

출애굽기 20 : 1 – 17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로라

들어가는 말

시내산에서 모세가 받은 십계명 가운데 처음 네 계명은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 중 첫째 계명은 예배의 절대 유일의 대상이 하나님임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마치 성경의 맨 처음이 ‘태초에 하나님’으로 시작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십계명의 맨 처음도 유일신 하나님에 대한 선언으로 시작합니다. 즉 다신론적인 당시 시대 상황 가운데서 오직 하나님 여호와만이 참신임을 천명함으로써 바른 신관을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십계명은 십계명의 제정자이신 유일신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규정하면서 시작함으로써 이 이후에 나오는 계명들의 정당함의 근거를 확보하고 있습니다.

줄거리

하나님의 이름

십계명의 제일 계명에는 신앙의 유일한 대상이신 참신의 이름을 두가지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여호와’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입니다. 먼저 하나님이 자신을 일컬어 선언한, 여호와JEHOVAH)라는 이름의 깊은 의미에 대해 알아 보겠습니다. 이 여호와(Jehovah) 라는 말은 세 개의 히브리어 단어가 합성되어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세 단어는 다음과 같습니다. Yehi(그는 존재할 것이다), Hove(존재하도 있다), Hahyah(그는 존재했다). 이 세 단어에서, 첫 단어의 첫 음절인 YEH-(i)와 두번째 단어의 두번째 음절인(h)-OV-(e), 세번째 단어의 마지막 음절인 (hy)-(ha)-AH가 합성 되어 여호와(YEHOVAH)라는 단어가 합성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라는 이름에는 그것을 구성하는 세 단어의 의미가 모두 들어 있으며, 그것은 다음과 같은 뜻을 갖게 됩니다. “장차 계실 분이며 지금 계시는 분이고 이미 계셨던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바로 이와 같은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은 지극히 높으시고 영원하시며 스스로 계시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여호와란 이름에서 암시되어지는 바와 같이 하나님은 존재하기 때문에 존재하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은 유한한 인간의 지성으로는 영구히 풀 수 없는 커다란 신비요, 인간이 아무리 분석해도 거의 알 수 없는 사실입니다. 사람이 마음 속으로 미래 세대로 끝없이 뻗어나간다 할지라도 거기서 하나님은 “나는 장차 있을 자이다”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또 사람들이 생명과 질서와 신비와 계시의 모든 기이한 현상이 나타나는 현재 순간을 생각한다 할지라도, 바로 이곳에서 하나님은 “나는 지금 있는 자이다” 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이 마음 속으로 가능한 한 무한히 먼 과거를 생각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나는 전에도 있었던 자이다”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이 자신의 기원에 대해서나, 현재 상태, 혹은 자신의 미래의 운명 그 어느 것에 대해서 생각하든지, 하나님은 바로 그곳에서 “나는 존재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나는 JEHOVAH” 라는 말씀으로 나타나는 하나님의 위대한 계시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첫째 계명은 이러한 사실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더 나아가 “나는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하나님'(God)이란 말은 ‘엘로힘'(Elohim)으로 예배의 최고 대상을 뜻하는 ‘엘로아'(Eloah)의 복수형입니다. 이는 ‘강하다’, ‘능력 있다’란 뜻을 지닌 어원을 갖는 말로써 하나님께서는 강한 권능과 위엄을 지니신 세상의 주관자란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 곧 앞으로도 있고 지금도 있으며 전에도 있던 예배의 최고 대상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처럼 과거 현재 미래에 항상 계시는 권능과 위엄의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이 그 얼마나 자랑스럽습니까? 첫째 계명은 바로 이 사실에 근거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한 이러한 전제 없이 이 계명을 생각하는 것은 그 계명의 중요한 의의를 쓸어버리는 것입니다.

나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곧 에베소서 1:3-6에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하는 말씀과 같은 도리의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을 출애굽 시키신 여호와 하나님이시며, 우리를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사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신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하지 말라고 제 일계명으로 주신 것이다. 그러면 ‘여호와’는 어떤 이름이며 ‘하나님’은 어떤 이름입니까? 성경에서 하나님에 대한 대표적 이름은 셋으로서 ‘하나님’ ‘여호와’ ‘주’이십니다. 그러면 그 이름이 가진 뜻은 각각 무엇입니까?

1. 하나님

(창세기 17:1-7) 아브람의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세워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 아브람이 엎드린대 하나님이 또 그에게 일러 가라사대 내가 너와 내 언약을 세우니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될지라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함이니라 내가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니 나라들이 네게로 따라 일어나며 열왕이 네게로 따라 나리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와 네 대대 후손의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하나님’이라는 이름은 전능자 하나님이심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은 히브리어로 ‘엘’로서 한글로 번역하면 하나님이며, 전능자는 히브리어로 ‘샷다이’로서 한글로 번역하면 전능자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하나님’으로 그 이름을 나타내셨을 때의 고유한 뜻은 전능자 하나님이 그의 자녀들에게 복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2. 여호와

(출애굽기 6:2-8)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로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고 가나안 땅 곧 그들의 우거하는 땅을 주기로 그들과 언약하였더니 이제 애굽 사람이 종을 삼은 이스라엘 자손의 신음을 듣고 나의 언약을 기억하노라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나는 여호와라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어내며 그 고역에서 너희를 건지며 편 팔과 큰 재앙으로 너희를 구속하여 너희로 내 백성을 삼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어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지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로라 하셨다 하라

‘여호와’라는 이름은 구속자 하나님이심을 나타냅니다. 여호와는 히브리어 ‘예호와’로서 한글로 번역하면 ‘여호와 또는 야훼’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여호와’로 그 이름을 나타내셨을 때의 고유한 뜻은 구속자 하나님이 우리를 죄와 마귀와 사망의 권세에서 구속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3

(창세기 18:30-32)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 주여 노하지 마옵시고 말씀하게 하옵소서 거기서 삼십 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가라사대 내가 거기서 삼십 인을 찾으면 멸하지 아니하리라 아브라함이 또 가로되 내가 감히 내 주께 고하나이다 거기서 이십 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가라사대 내가 이십 인을 인하여 멸하지 아니하리라 아브라함이 또 가로되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말씀하리이다 거기서 십 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가라사대 내가 십 인을 인하여도 멸하지 아니하리라

‘주(主)’는 심판자 하나님이심을 나타냅니다. 주는 히브리어 ‘아도나이’로서 한글로 번역하면 나의 주이십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주’라는 이름을 나타내셨을 때의 고유한 뜻은 선악 간에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하여 자기 백성들에게 십계명을 제시하기 전에 서문에서 “나는 너를 애굽 땅 종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출애굽기 20:2)로 자신을 소개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자신을 소개하신 것은 우리가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하나님은 어떤 일을 하셨는가, 그리고 하나님과 나의 관계는 무엇인가를 먼저 분명히 깨달아야만 비로소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우리의 삶의 방향과 지침을 바로 알 수 있고, 동시에 십계명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순종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십계명 연구에 앞서 이 서문이 하나님에 대하여 우리에게 가르치는 바를 알아야 합니다.

(1) 십계명을 주신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이십니다.

십계명 속에 다섯 번이나 되풀이되어 나타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출애굽기 20:2, 5, 7, 10, 12)는 언약의 하나님에 대한 호칭입니다. “여호와”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자신을 알리시기를 원하셨던 데서 나온 하나님의 고유한 이름입니다. 430년간(마소라 본문. 출애굽기 12:40) 애굽의 종살이로 하나님의 모든 언약을 잊어버리고 거의 절망의 상태에 처하여 있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자신을 이렇게 소개하기를 원하셨습니다.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이는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라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니라”(출애굽기 3:15). 하나님은 이 말씀을 통하여 수백년 전에 믿음의 조상들에게 약속한 바를 신실하게 그대로 성취할 “언약의 하나님”으로 자신을 그 백성들에게 알리도록 모세에게 명령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십계명 서문에서 자신을 “여호와”로 소개하신 것은 지난날 그 언약을 따라 실제로 “너희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하나님” 곧 언약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 십계명을 준다는 사실을 먼저 확인시키고자 하신 것입니다. 성경에 하나님의 언약을 혼인예식 때의 남자의 서약에 비교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남자가 아내 될 사람에게 자의(自意)로 사랑하고 보호하고 부양할 것을 보증하는 서약을 하나님의 언약과 비교한 것입니다. “너를 지으신 자는 네 남편이시라 (이사야 54:5)고 하신 것은 하나님과 우리와의 사랑의 언약 관계를 확인시켜 주신 말씀입니다. 우리와 언약의 관계 곧 결혼생활의 관계에 계신 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순종을 요구하여 십계명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언약이 구약시대에는 주로 아브라함과 이삭 그리고 야곱의 씨를 통해서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하나님의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아브라함의 씨가 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졌습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우리는 예수님께서 중재하시는 언약을 따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에베소서 1:3, 로마서 8:32) 우리에게 주시기로 서약하셨다는 것을 확실히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고 영원히 변하지 않는 신실한 언약 안에서 우리의 남편되시는 그 하나님의 사랑의 법에 순종하는 일을 우리 생활의 당연한 의무와 법칙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2) 십계명을 주신 하나님은 구속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십계명을 주시면서 자신의 언약을 따라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 땅 종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신 구속의 하나님으로 자신을 소개하셨습니다. 이것은 십계명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미 애굽으로부터 자유하게 하신 후에 주신 구원받은 백성들의 삶의 법칙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의 종 되었을 때 “이 열 가지 법칙을 지키는 자들에게 자유를 주겠다”고 하셨다면 그들은 애굽에서 영원히 해방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애굽에서 하나님의 언약을 잊어버리고 다른 신을 섬기면서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는 생활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언약에 신실하신 여호와 하나님은 종살이하던 그들을 애굽에서 구출하여 내시고 참된 자유를 되찾게 해 주셨습니다. 먼저 그 백성을 자유하게 하시고 그 다음에 그들에게 십계명을 주셔서 그들이 보장받은 그 자유를 계속 보존할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그 백성에게 십계명은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구원의 결과로서 그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사랑과 특별한 배려였음을 알 수 있다. 유대인들을 애굽의 노예에서 구속하신 하나님은 갈보리 산 어린양의 대가를 지불하시고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애굽같은 사단과 죄의 속박에서 구속하여 주셨습니다. 이 놀라운 구속의 은총을 통해 보장받은 참된 자유를 계속 보존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야고보서 1:25)으로서 십계명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은 구원받은 자녀에게 더 많은 자유와 평강을 안겨줍니다. 이 서문에서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나와 너”의 인격적인 관계로 말씀하신 것도 우리가 십계명을 지키는 일이 하나님 앞에서 우리 스스로 인정받을 수 있는 선행을 쌓아가는 일이 아니라, 구속의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는 전인격적인 응답임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말씀으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1) 입법자 되시는 하나님

본문 말씀에서 말하고 있는 “이 모든 말씀”이란 십계명을 가리킵니다. “이 모든 말씀”의 의미하듯이 십계명은 제적인 사회생활의 완전한 법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지혜와 권능으로 하나님의 권위를 스스로 입증하시며 또 모든 사람들에게 십계명을 주셔서 하나님을 섬기는 법도와 사회적인 생활의 규례를 제정 선포하셨습니다.

2) 지켜야 할 십계명

진리의 실제적 표준이요, 신앙의 법도이며 상황의 완전한 규례로 선포된 이 10계명은 진리를 향한 인생의 좌표요, 천국을 향한 성도의 좌표이기에 모든 사람들이 이 말씀을 믿고 행해야 합니다. 이 말씀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살아 움직이며 그 속에서 하나님의 권능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 말씀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능력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더욱이 이 말씀은 수천 년 인류사의 흐름 속에서 지각이 변하고 사람들의 마음이 변하며 학문과 문화의 수준에 현격한 차이와 변화를 겪는 와중에서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신앙과 생활의 표준으로 변함없이 지켜짐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인류의 역사 속에 입증하였습니다. 이렇게 지나온 역사 속에서 발견되어지는 이 모든 것이 또한 오늘과 내일이라는 미래의 인류 역사 속에 또다시 뚜렷한 흔적을 남기며 지켜져야 할 진리의 말씀입니다.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고난이란 때때로 하나님께서 신앙의 연단을 위한 도구로 활용하십니다. 성도들은 이 고난을 통한 연단을 잘 참고 견디어 낼 때 비로소 신앙의 찬란한 빛을 발하게 되고 그 진가를 증명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성도들의 영광스러운 고난의 극복이 결코 성도들의 힘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애굽 땅의 종 되었던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신 능력은 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의 능력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능력도 아닙니다. 이 능력은 오직 그들의 괴로움을 돌아보시고 그들을 구원하셔야 되겠다는 하나님의 능력이었습니다.

밤이 지나 새벽이 오고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와서 파릇한 새싹이 움트는 것은 자연의 섭리이기에 앞서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마찬가지로 고난 후의 영광 또한 하나님의 섭리하심의 권능이요 영광인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께서 스스로 하신 모든 약속을 지키시기 위하여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의 영광을 스스로 보이심으로 그들을 애굽 땅 종 되었던 곳에서 이끌어 내신 것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로라

우리는 이 말씀 속에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직 스스로 계시며 홀로 인류와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 그리고 피조 세계의 모든 것을 마지막으로 심판하실 심판 주 하나님 이러한 하나님의 위엄과 권위 앞에 우리는 두려워 떨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렇게 위엄과 권위만으로 모든 사람들을 보살피시며 사람들의 고난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하늘 그 높고 귀하고 거룩하신 보좌에서 내려오시어 스스로 낮고 천한 사람들을 찾아오신 선하신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버림받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과 함께 영존하시며 그들을 위하여 지금도 쉬지 않고 사랑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우리는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로라” 이 얼마나 우리에게 고귀한 말씀인지 우리의 언어나 문자로는 이루 다 형용할 수 없는 말씀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 스스로 짊어지고 수고하던 모든 짐을 벗어 드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신앙의 법도대로 하나님을 섬기며 또한 우리의 사회생활의 규례를 짊어지고 신앙과 삶이 고상함을 유지함으로써 정녕 하나님께서 영원히 함께하시는 복을 누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로라

출애굽 원년 제3월 6일(주전 1446년, 출애굽 한 지 50일), 모세가 제 4차로 산에 오르기 직전에 하나님께서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에게 직접 큰 음성으로 선포하신 말씀(명령)이 곧 십계명입니다(신명기 5:22). ‘십계명’이라는 표현은 세 군데 기록되어 있는데(출애굽기 34:28, 신 4:13, 10:4), 정확히는 히브리어로 ‘아세레트 하데바림’, 곧 ‘열 말씀들’(the ten words)이라는 뜻입니다. ‘10(열)’이라는 숫자는 만수(滿數)로서 ‘부족함이 없이 꼭 필요한 만큼, 가득 찬 상태’를 뜻하며, 기본수의 종결을 상징하고 ‘되돌아가는 수’이기도 합니다. 십계명의 조항 수가 ‘열 개’라는 사실만으로도 순서와 내용이 부족함이 없이 하나님의 뜻을 모두 담고 있는 절대 우위의 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십계명의 서문(출애굽기 20:1-2)에서는 가장 먼저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일러 가라사대”라고 선포함으로 하나님 자신이 이 십계명의 출처요 입법자이심을 밝혔습니다. 십계명은 그 주신 과정이 신성하고 영광스러울 뿐 아니라 십계명이 기록된 돌판이 지성소에 있는 법궤 속에 특별히 보관된 것으로 보아(출애굽기 25:16, 21-22, 40:20, 신명기 10:1-5, 열왕기상 8:9, 히브리서 9:4), 다른 모든 법보다 우월합니다. 십계명은 이스라엘 백성뿐만 아니라 전 세계 만민을 위해 선포하신 삶의 근본적 명령으로, 영원히 폐하여질 수 없는 만대의 명령입니다(마태복음 5:17-19).

  1. 자유와 사랑과 은혜의 복음으로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십계명 서문을 통해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출애굽기 20:2)라고 하여, 이 십계명이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을 함축하고 있음을 강력하게 외치고 있습니다. ‘애굽 땅’은 우상 숭배하는 죄악의 땅을 상징하며, 거기서 살던 이스라엘 백성을 건져내신 것은 하나님의 크신 자비와 긍휼입니다(레위기 17:7, 여호수아 24:14, 에스겔 20:5-9). 십계명은 본래 무섭고 두려운 계명이 아니라, 자유 없는 노예들에게 진정한 자유를 선물해 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복음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멀리하고 세상 신을 섬기며(요한복음 12:31, 14:30, 16:11, 고린도후서 4:4) 사단 마귀의 종노릇 하면서 비참하게 살던 우리를 십자가의 피로 구속해 주셨습니다(로마서 3:24, 고린도전서 1:30, 에베소서 1:7, 골로새서 1:13-14, 베드로전서 1:18-19). 우리는 참 진리이신 예수님(요한복음 14:6) 안에서만 진정한 해방과 구원을 맛볼 수 있습니다.

  1. 거룩함과 영광스러움 속에서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십계명을 전달하는 광경은 그 준비부터 너무나 신성하고 장엄하며 영광스러웠습니다. 백성은 십계명을 받기 전에 하나님의 명령대로 옷을 빨아 성결케 하고 3일 동안 여인을 가까이 하지 않았습니다(출애굽기 19:10-11, 14-15). 하나님께서는 산 사면으로 지경을 정하시고 산을 범하지 못하게 철저히 경계하셨으며(출애굽기 19:12-13), 다시 모세에게 신칙(반복하여 경고)하도록 엄히 명하셨습니다(출애굽기 19:21-25).

그리고 십계명을 주실 때 이스라엘 백성은 우레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는 광경과 심히 큰 나팔 소리로 인하여 다 떨었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는 가운데(출애굽기 19:16-18, 20:18) 불 가운데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신명기 4:33, 5:24-26). 백성들은 큰 두려움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였고, 하나님을 온전히 경외할 수 있었습니다(출애굽기 20:18-21, 신명기 5:23-27).

이스라엘 백성은 천군 천사들이 호위하는 가운데 율법을 모세를 통해 전달 받았으며(신명기 33:2), 하나님께서는 친히 그 십계명을 모두 기록해 주셨습니다(출애굽기 31:18, 32:15-16, 신명기 4:13, 5:22, 9:10, 10:2-4). 그리고 십계명이 기록된 두 돌판을 특별히 명하신 재료와 규격대로 만든 나무궤 속에 보관하도록 하셨습니다(신명기 10:1-5).

  1.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으로 주셨습니다.

시내산에서 전 이스라엘 백성에게 직접 들려주신 첫 말씀은 바로 십계명입니다. 430년 동안 주권을 잃고 지내다가 출애굽 한 지 두 달도 채 되지 않은 상황에서(출애굽기 19:1-2, 민수기 33:3), 독립된 나라를 건설하고 거룩한 백성이 된 일은 유사 이래 예를 찾아 볼 수 없습니다(신명기 4:32-33).

십계명은 과거에 지나가 버린 말씀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서 운동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히브리서 4:12). 십계명의 서언에서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일러 가라사대”(출애굽기 20: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영원하신 하나님(창세기 1:1)께서 친히 명하신 계명이므로, 반드시 지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으로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을 주시기 전에 ‘말씀하시는 분(나)’과 ‘그 말씀을 받는 사람(너)’을 구분하여, 십계명이 ‘나와 너 사이의 언약 관계’임을 분명히 선포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을 종 되었던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하나님께서 이제부터는 “너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사실을 반복하심으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은 끊을 수 없는 언약 관계임을 강조하셨습니다.

십계명은 ‘언약(베리트)으로 주신 것입니다(출애굽기 34:27, 신명기 4:13). 또한 십계명을 기록한 두 돌판을 가리켜 “언약의 돌판들”(신명기 9:9), “언약의 비석들”(히브리서 9:4)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이 영원한 언약이라면(창세기 17:7, 역대상 16:17, 시편 105:10) 십계명도 영원한 만대의 언약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계명은 이스라엘 백성에게뿐 아니라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 개개인에게 경건한 삶의 절대 기준으로 계속 적용됩니다.

  1. 하나님께서 친수로 두 돌판에 쓰셨습니다.

십계명은 신구약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친수로 직접 쓰셔서 주신 말씀입니다(신명기 4:13). “친수로 기록하신 것이요”를 직역하면 ‘하나님의 손가락으로 쓰인’이 됩니다(신명기 9:10). 십계명은 종이나 나무가 아닌 돌판에 쓰셨는데, 쉽게 변하지 않고 새겨진 그대로 영구 보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두 돌판의 양면, 이편과 저편에 글자를 새겼다는 것 외에(출 32:15), 각 돌판의 앞뒤로 각 조항들이 어떻게 나뉘어 기록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십계명 전체의 히브리어 자음 수는 출애굽기 20장 기준으로 모두 579자이며, 신명기 5장 기준으로는 667자입니다. 각 계명마다 기록된 분량은 균일하지 않고 큰 차이가 있으며, 제 4계명이 월등히 많고(십계명 전체 1/3 이상), 제 2계명(십계명 전체 1/4 이상), 제5‧10계명, 제 3계명, 제 1계명, 제 9계명, 제 6‧7‧8계명 순입니다.

모세가 시내산에 마지막 8차로 입산하여 또 한 번 40주야를 금식 기도하였을 때(신명기 9:18),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여 준비하게 하신 두 돌판에 처음과 같은 내용의 십계명을 쓰셔서 모세에게 주셨습니다(출애굽기 34:1, 28, 신명기 10:1-5). 두 돌판에 기록된 십계명은 하나님께서 직접 쓰신 말씀들이며 영원한 효력을 지닙니다.

  1. 하나님께서 주신 주의 증거입니다.

성경은 십계명이 기록된 돌판을 ‘증거의 판’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출애굽기 16:34, 25:16, 21, 31:18, 40:20). ‘증거’를 뜻하는 히브리어 ‘에두트’는 ‘증인, 목격자’를 뜻하는 ‘에드’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십계명의 말씀들이 바로 우리에게 하나님의 산 증인이 되고 또 우리를 하나님의 목격자가 되게 합니다.

시편 119편에서는 십계명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전체를 ‘증거’라고 말씀하고 있으며, 이 증거는 “주의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계명을 등지거나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나는 삶을 살아서는 안됩니다. 구약의 율법과 선지자들의 모든 증거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것입니다(로마서 3:21). 십계명의 말씀들이 우리 속에 온전히 체화되어 심비(心碑)에 기록될 때, 언약 백성인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증인이 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어 하나님의 무궁한 사랑을 온 세상에 선포할 수 있는 것입니다(마태복음 5:16, 고린도후서 3:2-3).

  1. 신구약 성경 모든 계시의 압축입니다.

예수님께서 간략하게 요약하신 두 계명은 마태복음 22:37과 39절에 각각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째 되는 계명은 “너의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명기 6:5), 둘째 되는 계명은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레위기 19:18)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2:40에서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이 강령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 “강령”은 헬라어 ‘크레만뉘미’이며, ‘매달다, 매달리다’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두 계명을 압축되는 십계명에 모든 율법과 말씀들이 매달려 있다는 뜻으로, 십계명은 모든 말씀의 머리요 압축인 것입니다.

‘열 말씀’으로 이루어진 십계명은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온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완전하게 요약된 계시이고 신구약 성경 모든 계시의 압축입니다. 이 ‘열 말씀’들을 근간으로 모든 율법의 세부 조항이 세워졌으며, 특히 출애굽기 20:22-23:33, 신명기 6-26장은 십계명을 중심으로 혹은 그 순서를 따라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구약 성경 전체의 강령인 십계명을 알지 못하면, 기독교 복음의 진수를 깨달을 수 없습니다. 나아가 십계명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영생의 본질이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이신 예수 그리스도(골로새서 1:27, 2:2)를 온전히 알 수 없습니다. 십계명을 하나님의 구속사적 경륜 속에서 상고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를 밝히 깨달아 영생의 선물을 다 받으시기 바랍니다.

* 적용을 위한 질문 *

  1. 10계명을 삶의 현장에서 심각하게 느껴본 적이 있으십니까?
  2. 10계명을 지키기 위해 애써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3. 10계명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해왔다면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4. 어떻게 하면 10계명을 내 삶 속에 적용할 수 있습니까?
  5. 어떻게 하면 10계명에 순종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까?

이 강해는 목사님들의 설교와 참고 문헌들을 인용하여 편집한 설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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