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계명,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7) 제4계명 :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켜라 : 건강한 삶을 위하여

 

10계명,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7)

4계명 :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켜라 : 건강한 삶을 위하여

출애굽기 20 : 1 – 17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들어가는 말

“안식”(Sabbath)이란 말은 “중지” 또는 “휴식”을 뜻하는 말로써(창세기 2:2, 출애굽기 16:23, 30), 모세는 이날을 “하나님을 위한 날”(출애굽기 16:23)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출애굽기 16:29)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두 가지 의미가 본문 말씀 십계명에서 밝히 드러났습니다. 즉 안식일이 거룩하신 하나님 “여호와께 속한 것”(출애굽기 31:14)이므로 그를 위하며 그에게만 영광 돌리는 “하나님의 날”임과 동시에 인간에게는 휴식으로 인한 원기 회복이라는 점에서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의 선물은 선택받은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까지 모두에게 적용되는 선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하나님의 선물에는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6일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하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본문 말씀 제4 계명은 안식의 선물과 함께 노동의 신성한 의무도 함께 주어지는 계명이므로 안식의 복은 진정한 의미에서 엿새 동안 열심히 일한 자에게만 주어지는 복일 뿐 엿새 동안 빈둥빈둥 노는 자에게는 제한되는 복입니다. 한편 “안식일”의 의미가 “휴식”, 또는 “중지”라고 해서 모든 일상적인 생활까지도 중지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제4계명에서 금하는 것은 단지 인간적인 오락이나 쾌락 그리고 자신의 기쁨을 위하는 일 등의 행위의 금지일 뿐 하나님께 경배하는 일과 이웃을 돌보며 자비를 베푸는 일 등의 행위는 오히려 안식일에 강조되기 때문입니다.

안식일 제도는 태초부터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구별하시고 복 주심으로 안식하셨던 날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제도가 십계명으로 명문화됨으로써 역사에 공식적으로 등장하게 되었고, 안식의 마땅한 규례로 정해지게 되었습니다. 십계명의 네 번째 계명 중 첫 마디가 “안식일을 지키라”는 말씀입니다. 이 계명은 이제 막 시내산에서 주신 율법이 전에 이미 있었던 것을 율법의 형태를 빌어 구체적으로 강조하신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중심 내용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이 넷째 계명까지가, 사람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해야 할 도리를 다룬 십계명의 앞 부분에 해당됩니다. 즉 십계명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4계명에는 하나님에 대한 사실이 진술되고 그 다음 5-10계명은 인간에 대한 사실이 진술됩니다. 그 가운데서도 4계명은 성격상 전반부와 후반부의 경계를 이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이미 나온 세계명에서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바가 주장된 다음, 사람들 상호간에 지켜야 할 도리를 다룬 뒷 부분의 계명들로 넘어가기 전에 이 넷째 계명이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이 넷째 계명은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를 영원히 상징합니다. 어느 시대에 있어서나 사람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세속적인 일에서 떠나 영적인 일로 완전히 돌아서야 합니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성별하신 안식일을 준수함으로써 매일의 생활이 하나님의 지혜 안에서 계획되고 평가된다는 것을 기억하게 됩니다. 그는 일주일에 단 하루동안이라도 자신의 영적인 본성이 영적 진리들을 붙잡는 데 전념할 수 있도록 육체적인 활동에서 돌아섬으로써 자신의 전 존재가 하나님의 것이며 자신의 행복은 하나님의 통치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되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인간에게 있어 육체와 영혼은 분리될 수 없으며 일상생활의 매 순간마다 육체와 영혼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적절한 상호 관계 속에서 상대의 힘을 돋우는데 이바지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안식 일은 이같은 인간 본성의 근본적인 법칙을 보여 주는 영구한 상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현 세상에서 인간이 살아 숨 쉬는 기간 동안에 안식일의 가치는 평일 때문에 생겨납니다. 일곱째 날 즉 안식일은 평일의 진정한 의미와 최종적인 취지를 부단히 암시해 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안식일과 평일의 관계를 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넷째 계명의 진정한 의미와 준수 방법을 올바로 파악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면 우선, 넷째 계명이 내포하고 있는 두 가지 명령을 고찰한 후 그것을 오늘날에 적용시켜 보도록 하겠습니다.

넷째 계명에 대한 이해

이 계명은 오직 안식일만을 언급한 것이라고 사람들은 말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이 계명 중 일곱째 날을 언급한 부분의 중요성은, 그 나머지 부분이 안식일을 제외한 엿새와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때 비로소 충분하게 평가됩니다. 우선 넷째 계명에서 설명적인 부분을 제거해 보면, 그것이 간단한 두 가기 명령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첫째,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둘째,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라.”

사람에게 정하신 하나님의 뜻은 사람이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곱째 날이 되면 일을 멈추고 하나님을 예배해야 한다는 것 또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행하여지는 엿새 동안의 일이라는 것은 사실 그 자체가 가장 고상하게 드려지는 실제적인 예배입니다. 또한 숙고와 명상과 경배의 시간을 갖는 일곱째 날의 예배는 가장 고귀한 영역에 속하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두 가지 명령은 각각 서로를 보완합니다. 따라서 전혀 일하지 않는 자는 예배드릴 자격이 없습니다. 또한 쉬지 않고 예배만 드리는 자는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앞으로 분명하게 드러날 몇 가지 이유 때문에 지금은 안식일의 의무에 대해서만 말씀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십계명의 앞부분에 있는 최종적인 진술 곧 이 넷째 계명이 말하고 있는 바는, 사람이 일하고 예배 드릴때에만이 비로소 처음 세계명에 나타난 하나님과의 이상적인 관계를 성취한다는 것임을 분명히 알고 시작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이에 대한 이유는 사람이 하나님과 유사하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사람의 본성의 모든 면은 하나님의 사고와 행동에서 나온 것입니다. 또한 사람의 본성은 하나님의 사고와 행동을 기초로 해서 만들어졌습니다. 따라서 결국 한 인격 안에서 합일을 이루는 사람의 본성은 오직 하나님의 영역 안에서만 그 최고의 가능성들을 성취합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육일간 천지 창조를 하신 후 7일 때 쉬신 것처럼 인간에게 먼저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현대 문명의 복잡한 체계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일하지 않고도 살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사는 것은 하나님이 세우신 이상을 떠나버린 바람직하지 못한 일입니다. 사람은 그의 육체에 필요한 모든 것을 보유하고 있는 세상에 살고 있으나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만 합니다. 사람은 생존에 필요한 곡식을 흙에서 얻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먼저 흙을 일구고 엎드려 노동을 해야만이 비로소 그가 필요한 것들을 흙에서 얻어낼 수 있습니다. 수확은 일을 통해서만 얻어지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은 먹을 것을 얻기 위해 흙을 일구지만 사람의 노동에 풍성한 수확이라는 면류관을 씌워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한편 노동을 해야 한다는 이 사실 자체는 타락의 결과가 아닙니다. 노동은 하나님께서 창조시부터 본래 의도하신 것 중의 하나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타락하기 이전 에덴동산에 거처하면서부터 “그것을 다스리며 지켜야” 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람들은 점차로 자연이라는 보고에 깊이 감추어진 하나님의 비밀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이 모든 비밀들을 바르게 알고 적절히 활용하면 인류의 필요를 채우는 활동을 할 수 있는 능력이 보다 증대될 것입니다. 거대한 인류 집단은 넷째 계명의 이러한 면에 복종하는 데 있어서 언제나 자발적이 아니라 많은 경우 필요성에 의해 복종합니다.

아무튼 피조물의 필요를 완전히 아시는, 사랑이 무한하신 하나님은 사람이 엿새 동안은 힘써 일하다가 일곱째 날에는 이 세상에서의 일을 그만 두고 자신의 영혼의 활력을 도모하기 위해 보다 상위 영역으로 들어가도록 규정하십니다. 안식일에 대한 히브리 사람의 본래 개념은 우울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쁜 것이었다는 사실은 충분히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안식일은 기쁜 날이며 육체와 영혼의 피로를 풀게 하는 휴일이었습니다. 즉 이 날은 사람이 고된 일을 그치고 즐거움을 누리며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자신의 본래의 능력을 실현할 수 있는 날이었습니다. 여호와를 생각하는 즉 하나님을 친근하게 느끼면서 무한자와 친교를 나누는 사람은, 현재는 비록 영광된 미래의 수습 기간에 불과한 이 지상에서 살고 있다 할지라도 보다 넓은 삶 곧 천국을 미리 맛볼 수 있었으며 또 그렇게 함으로써 다음에 올 한 주간의 일에 새롭게 헌신하며 그 일의 의미를 보다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안식일에는 종교적인 면과 더불어 현실적인 의미가 있었습니다. 사람은, 안식일에 평온히 휴식을 취하며 남은 엿새 동안은 부지런히 움직이며 해야 할 일에 열심히 임해야 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일하는 엿새 동안 내내, 안식일에 묵상하였던 것들의 고결함과 공의로부터 힘을 공급받으며 의미있게 일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명령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라”은 이 두 가지 명령은 서로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결코 분리시킬 수가 없으므로 사실상 하나입니다. 따라서 한 가지 명령에 복종하지 않으면 다른 명령도 복종할 수 없습니다. 반면에 한 가지 명령에 복종할 때 다른 명령도 지킬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일을 해야 예배를 드릴 수 있고 예배를 드림으로써 일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추게 되는 것입니다.

넷째 계명의 현대적 적용

이상의 사실을 고려해 볼 때, 안식일이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특정 시대, 특정 민족에게만 속하는 개념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전 인류에게 해당되도록 정하신 것이며, 인간이 탄생하기 전부터 이미 예정된 시간의 경륜의 일부였습니다.

한편 기독교 시대에 와서 일곱째 날 즉 안식일이 첫째 날 즉 주일로 바꿔 사실은 매우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비록 날을 바꾸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성경에는 전혀 기록되지 않았을지라도, 기독교의 영적 사실들에 의해서 안식일은 주일로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그리스도가 오실 때까지 사람들은 안식일을 바라보고 일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오신 이후로는 주일로부터 한 주일이 시작됩니다. 요컨대 구약에서는 안식일이 일에 의존해 있었고 신약에서는 일이 주일로부터 생겨납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주일과 안식일 논쟁을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부분에서 다루기로 하고 여기서는 오늘날도 여전히 유효한 안식일 개념이 타락한 인류에 의해 훼손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일찍이 인류가 경험하지 못한 가장 바쁜 시대이며 투쟁적인 생활과 신속한 활동을 요구합니다. 따라서 사람들이 이미 효력을 상실한 것은 무엇이든지 거들떠 보지도 않고 다만 아직까지 효력이 있는 동안만 당분간 그것을 존중하는 그런 시대입니다. 무력해진 것들은 제거되며 오직 인류의 복지에 이바지하는 것들만이 보존되는 시대인 것입니다.

이러한 시대의 양상은 넷째 계명에 대해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앞에서 이미 지적했듯이 현대 생활의 여러 조건은, 거대한 인류 집단 속에서 점점 더 많고 강도 높은 일을 하도록 요구합니다. 부드럽고 인정 많은 하나님의 법 뿐만 아니라 가혹하고 잔인한 인간 사회의 법도 사람에게 “너는 일을 해야만 한다”라고 말합니다. 이 명령을 복종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오늘날 가장 유감스러운 사회 문제로 취급됩니다. 돈 많은 사람이든 상류 계급의 사람이든 번화가에 사는 사람이든 서민층의 사람이든,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자기가 속한 일터에 자기 몫의 수고를 지불함으로써 양식을 얻지 않는 한, 음식을 먹을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가 사람들이 굉장히 많은 일을 하는 시대라는 앞의 입장으로 돌아가서 생각해 볼 때,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며 하나님을 소홀히 한 것이 결국은 안식일에 관한 하나님의 법을 소홀히 생각하거나 반대하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무서운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무신론자들은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 아버지의 자비로운 동정심을 상징하는 중요한 시간인 안식일을 완전히 무시할 것입니다. 안식일을 끊어버리면 필연적으로 이를 제정하신 하나님의 왕권을 부정하는 결과가 발생합니다. 국민 생활에서 일곱째 날의 안식을 없애버릴 때마다 반드시 따라오는 인간의 모든 타락 현상은 무신론의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바울은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atheists)라는 말로 무신론자들의 상태를 생생하게 묘사하였습니다.

그러나 안식일에 대한 가장 교활하고도 위험한 공격은, 공격하는 자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안식일을 세속화하려는 자들의 공격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통치의 원리에 의해 자기들에게 주어진 안식일을 악용하여 어리석은 쾌락을 추구하며 끊임없이 광적인 행동을 함으로써 자신들이 하나님의 통치를 벗어나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하는 자들입니다. 사람들에게 참된 가치를 바라볼 눈이 있고 소리 없이 진행하는 영원한 사실들을 이해할 수 있는 마음만 있다면, 환락의 도시 파리에서 한번 지내 보십시오. 여기서 안식일의 신성함과, 인간 본성이 신성을 모독하는 결과로서 나타나는 인간 본성의 영광스런 모든 것들이 타락되었으며, 타락되어 가고 있음을 아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넷째 계명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태도

넷째 계명에 대해 오늘날 교회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우리의 구주 그리스도에게서 찾아야 합니다. 안식일에 관한 그리스도의 태도는 그의 말씀과 행동에서 자주 나타났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언행을 통하여 안식일 준수에 대한 옛 계명의 속박하는 성격을 완화시켰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예수 그리스도의 행위와 가르침을 완전히 오해한 것입니다. 이 점과 관련해서 먼저 기억해 두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께서 유대인의 메시아로서 자신의 사명을 이행하시는 중에 안식일에 관해 여러 말씀을 하셨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행위와 말씀을 명백하게 해석하기란 극히 어려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기독교 시대에 와서, 안식일의 본래 개념은 속박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그릇되게 주님의 말씀을 인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사실 서로 구별하여야 할 다른 일들을 구별하지 못하는 처사입니다.

주님의 여러 말씀은 유대적인 질서 하에서 지켜졌던 안식일의 참된 의미를 보다 풍부하게 계시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은, 안식일 제정의 본래의 개념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또 멀리 세상 끝날까지 밝혀 주는, 훨씬 적용 범위가 넓은 말씀입니다. 주께서는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길을 따르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사람을 위해 주어진 이 큰 선물을 하나님이 정하신 목적대로 사용해야 합니다. 더욱이 주께서는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예수께서 예수의 다른 이름인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인자”라고 하신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주님은 여기서 확실히 자신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다만 안식일 제정에 대한 하나님의 최초의 의도를 완전히 성취하는 대표자로서 자신에 대하여 말씀하심으로써 자신이 안식일의 파괴자가 아니라 안식일의 주인임을 주장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안식일의 주인되신 주께서 완성하신 사역으로 말미암아, 기독교 시대에는 모든 활동이 안식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즉 그리스도의 수난의 십자가와 장사되신 무덤에서 벗어나신 부활의 아침의 영광에서 구약의 안식일은 신약의 주일로 변하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구원의 새로운 영역에 들어온 자들은 언제나 무한한 그리스도의 사랑의 법에 따라 주일을 충실히 지켜야 합니다.

안식일의 제정

안식일의 제정은 그 기원의 창조 때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창세기 2:3). 따라서 안식일의 준수에 관한 것도 이와 때를 같이 하여 주어진 것으로 인식해야 옳은 것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것은 안식일은 아담에게서 노아의 세계로 이르는 전 인류에게 주어진 율법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주어진 율법이 아니라는 점을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안식일이 제정된 이유

1) 하나님께서 쉬는 날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칠 일에 쉬었음이라”는 말씀에서 우리는 안식일이 제정된 이유를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엿새 동안의 창조 사역 후 제칠 일째 되는 날 쉬셨다는 것입니다. 기서 우리는 여호와께서 인간에게 자신의 안식에 준한 일곱째 날에 안식의 의무를 주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 거룩한 날

“나 여호와가 복되게 하여 그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는 말씀 속에서 하나님께서 이날을 제정하신 것은(모든 율법이 그러하지만) 인간의 육체와 영혼에 복되고 거룩한 유익을 위하여서 제정하신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날이 특별히 다른 날보다 복되고 거룩한 날이 된다는 것은 육체의 안식으로 새로운 일에 의욕적인 창조력으로 정진할 수 있는 휴식이 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보다 더욱 복되고 거룩한 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예배를 통하여 걱정과 근심에서 평안과 위로로, 순간적인 것에서 영원한 것으로, 천한 것에서부터 고귀한 것으로, 불화한 것들로부터 영원한 평화로 인도되기 때문입니다.

3) 예배드리는 날

이날은 단순히 육체적이나 영적인 안식의 날이 아닙니다. 세상의 생활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에게 경배드리는 가장 고귀한 날입니다. 이러한 일련의 신앙생활은 우리의 육체와 영혼에 하나님의 복을 받아 누리게 되는 귀중한 복의 날인 것입니다. 믿지 않는 자들을 향한 가장 힘 있는 설교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또한 가장 이상적인 무언의 전도를 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천국의 영광을 모르는 그들을 향하여 가장 찬란한 천국의 영광을 보여주는 것과 같습니다.

구약의 안식일과 신약의 주일

한 주일의 마지막 날인 토요일에 주어진 구약의 율법에서 명하신 안식이 한 주일의 첫날인 주일로 변경되어 지켜진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1) 창조와 은총의 차이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창조의 사역 후에 쉬신 육체적인 의미의 안식일입니다. 그러나 신약의 주일은 육체뿐만 아니라 그 심령과 영혼의 안식을 동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죽어서 지내신 안식일을 지나 구원과 영생의 부활을 하셔서 우리에게 구속의 은총을 베푸신 이날을 안식일에 상응하여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2) 율법과 은혜의 차이

율법은 은혜의 그림자와 같은 것입니다. 율법은 천지가 없어지는 그날까지 결코 없어질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더 완전한 은혜로 말미암아 보충되어지고 완성되어져 그 속에 흡수되어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 율법의 안식은 사람들에게 죄를 깨닫게 하는 능력만을 나타내지만 신약의 은혜는 그 죄의 사함과 함께 신령과 진정의 예배로 인도하는 은혜의 안식일인 것입니다.

안식일의 중요성

안식일에 대해 성도들의 주의를 요구하는 이 계명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만약 율법의 안식일을 폐지한다면 이와 함께 교회도 폐지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고 명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날을 지키느냐 못 지키느냐는 성도가 신앙을 지키느냐 못 지키느냐 하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교회가 존재하느냐 못하느냐의 문제가 걸린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지나간 시대에서의 핍박자들의 칼과 총이 폭력의 핍박을 가하였지만 그 결과는 기하급수적인 복음의 전파였습니다. 이러한 시대가 지나자 진리를 왜곡시키는 학설의 궤변으로 우리의 신앙을 파괴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오히려 신앙의 확고한 학문적 위치를 제공하는 결과를 가져다주어 신학의 찬란한 꽃을 피우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시대에서 핍박자들은 실로 가공할 위력의 무기로 우리의 신앙을 파괴하고 있으며 실제로 수 많은 사람들의 신앙이 파괴된 것을 볼 수 있으니 성도들의 신앙을 세속화시키는 것입니다. 안식일은 복되고 거룩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날이 세속화되어 방탕과 방조의 흥청거림의 날로 전락되어가고 이로 말미암은 신앙의 파괴는 피비린내 나는 박해 속에 죽어간 성도들의 숫자보다도 더욱 많아질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날을 복되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날로 경외하는 가짐으로 우리의 신앙을 지킵시다.

안식일의 진정한 복은 6일 동안 자신의 직분과 생활에 최선을 다한 자만이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학생이 공부를 소홀히 한다든지, 주부가 가정에 소홀한다든지 또는 직장에 속한 자가 자신의 직무에 불성실 하는 등 6일 동안 자신의 직무에 성실치 못한 자는 안식의 복에 참여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안식일을 주신 주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이 계명이 갖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오늘 이 시대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이 계명을 지킬 수 있습니까? 오래 전 한국에서 교회를 섬길 때입니다. 보수적인 교회로 알려진 C 교회 한 교인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분은 교회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진 곳에 살고 계셨는데, 주일이 되면 상당히 어렵게 교회에 나가셨습니다. 왜냐하면 주일은 거룩한 안식일이므로 돈을 쓰면 안 된다고 가르침을 받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집이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지만, 주일에는 걸어서 교회를 가고, 또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지금은 C 교회가 강남으로 이사를 가서 교회가 집보다 훨씬 더 멀어졌고, 지금은 고령이신데 어떻게 교회에 나가시며 신앙생활을 하는지 궁금합니다.

또 한번은 Philadelphia의 한 장로님의 질문입니다. 장로님은 구역(속회)을 맡아서 돌보고 인도해 오셨는데, 한번은 주일예배를 마치고 다른 구역 식구들과 같이 Picnic을 가서 게임도 하고 하루를 즐겁게 지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다른 교인들로부터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지 않고, 야외에 나가서 놀았다고 비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장로님은 자신이 과연 안식일을 범한 것인가?라고 물어 오셨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과연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킨다는 것은 어떻게 행하는 것을 의미합니까? 이 계명은 과연 오늘 우리들에게 어떤 삶을 요청하고 있습니까?

이번 시간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이 네 번째 계명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이집트에서 나온 후,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소유가 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른 백성들과는 구별된 삶,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지침으로 율법, 특별히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십계명 가운데서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이 명령은 다른 민족들과 비교해 볼 때, 상당히 독특한 것이었습니다.

고대 근동의 민족 가운데는 날들을 7일 단위로 구분한 민족들도 있었습니다. 또 특별한 절기를 맞을 때, 안식을 하게 하는 나라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주일의 하루, 정확히 말하면 금요일 해지면서부터 토요일 해질 때까지를 안식일로 지킬 것을 명령받은 나라나 백성은 없었습니다. 이 안식일에 대한 계명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진 독특한 명령이었습니다. 이 명령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두 가지 사실을 기억하라고 하셨습니다. 출애굽기 20:1-17에 기록된 십계명에 따르면,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세상 모든 만물을 만드시고 쉬셨다는 사실에 기초합니다. 그래서 이날에는 자신뿐 아니라 자녀와 온 가족, 나아가 종들과 손님들 또 가축까지도 아무 일도 하게 하지 말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러나 신명기 5장에 기록된 십계명에 의하면, 안식일에 또 하나 새로운 의미가 더해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구원하여 내신 것을 안식일에 기억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이로서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온 세상 만물을 만드시고, 제7일에 안식하신 것을 기억할 뿐 아니라, 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에서 구원하여 내신 것을 기억하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무슨 이야기입니까? 안식일은 바로 하나님의 창조의 은혜와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는 날로 지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안식일을 지키면서 그들이 누구인가? 자신들의 identity를 새롭게 깨닫고 정립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지음 받은 백성이며 또한 출애굽을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체험한 백성들임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것을 새롭게 다짐할 수 있었습니다. 안식일을 지킴은 하나님의 백성 된 중요한 표시였습니다. 그들이 바로 세상 모든 민족 속에서 택하심을 입는 백성,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임을 그들은 안식일을 지키면서 새롭게 체험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예언자 에스겔은 그가 기록한 에스겔 20:19-20에서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너는 나의 율례를 따르며, 나의 규례를 지켜 행하고, 또 나의 안식일을 거룩하게 할찌어다.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에 표징이 되어 너희로 내가 여호와 너희 하나님인줄 알게 하리라 하였노라.”

이제 어떻게 안식일을 지킬 것인가를 말씀드리기 전에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오늘 그리스도인들은 더 이상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이 문제에 대하여 논란이 있는 것을 여러분 아실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오늘도 안식일을 지킵니다. 또 제7일 예수 재림교, 줄여서 안식교를 믿는 사람들은 오늘도 안식일을 지킵니다. 그리고 이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성경적인 삶을 살아가는 길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안식일 대신 “The Lord’s Day”, 주일을 지킵니다. 안식일은 한 주간의 마지막 날인 반면, 주일은 안식 후 첫날, 즉 한 주간의 첫날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교회가 주일을 지키게 된 중요한 원인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안식 후 첫날,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사셨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사도행전이나 바울의 편지를 보면, 그리스도인들이 안식 후 첫날 함께 모였던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성경이나 교회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처음 교회는, 특별히 대부분이 유대인들이었던 때는, 안식일을 지키고, 또 안식 후 첫날 모였던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아닌 이방인들이 많아지면서 모이는 날이 안식일에서 점차 주일로 옮겨간 흔적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처음 교회에서 주일에 모일 때는, 유대인들이 안식일을 지키듯 하루를 온전히 쉴 수는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 가운데는 노예나 종들도 있었는데, 이들은 쉬고 싶어도 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이른 아침, 혹은 밤늦게 모여서 함께 예배드리며 떡을 떼었습니다. 그리고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출애굽을 기억하는 안식일의 의미는 그렇게 절실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들에게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원천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점차 안식일을 지키는 대신에 주일을 지키게 된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도 안식일을 지키지 않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날, 주일을 지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무덤 문을 열고 다시 사신 날을 기억하면서 주일을 지킵니다. 한 주간의 마지막 날이 아닌, 첫날, 안식 후 첫날을 우리는 구별하여 지킵니다.

이제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이 네 번째 계명을 주일을 지키는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지켜갈 것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어떻게 주일을 거룩히 구별하여 지킬 수 있습니까? 과연 주일을 거룩히 지킨다는 것은 어떻게 사는 것을 뜻합니까? 먼저 전제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주일을 거룩히 지키는 삶을 위해서 우리는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는 삶 속에서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비록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주일을 지키지만, 우리는 이날을 바로 지키는 지혜와 정신을 안식일을 지키는 삶 속에서 배울 수 있습니다. 이제 이 같은 전제 위에서 몇 가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하나는, 이날, 주의 날을 거룩히 지키는 길은 일을 그치고 쉬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은 힘써 일하게 하시고 하루를 쉬게 하셨다는 이 사실처럼 감사한 일이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신체 리듬과도 일치되는 것으로, 건강한 육신을 지니고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따뜻한 배려를 여기에서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쉼을 낭비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중요한 사람일수록 바쁜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것처럼 착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중요한 사람이라 해도 쉼, 안식이 필요합니다. 쉼이 없이는 건강을 지켜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혹시 일주일 내내 일하시는 분들께서는 쉬라고 하면, 팔자 좋은 소리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실지 모릅니다. 그러나 한번 생각해 보실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일하시는 것입니까? 과연 정말로 먹고 살 수 없어서 그렇게 일하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조금 더 벌기 위해서 그렇게 일하시는 것입니까?

안타까운 소식을 들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이민 오셔서 고생, 고생하시다가 이제는 살만하게 되었다고 할 때, 건강에 이상이 와서 쓰러지는 경우를 볼 때입니다. 여러분,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겠습니까? 무엇을 위하여 그렇게 몸을, 건강을 쓰시는 것입니까? 우리 몸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우리 몸의 리듬을 아시고, 무엇이 필요한지, 또 언제 쉬어야 하는지를 잘 아십니다. 그러기에 안식일, 쉼의 날을 주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의 뜻과 배려를 무시하고, 쉼 없이 일하는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주의 날은 쉼의 날입니다. 쉬는 것은 낭비하는 것이 아닙니다. 건강을 지켜가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쉼의 날을 지키라는 계명 속에 담겨있는 귀한 뜻입니다.

또 하나는, 주의 날을 바로 지키는 것은 이날을 주님께 예배드리는 날로 지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창조주 하나님, 그들을 이집트에서 구원해 내신 하나님을 기억하며 안식일을 지킨 것처럼 우리도 이날, 주의 날에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께 예배드립니다. 그리고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다가 다시 사신 부활의 사건을 기억하면서, 하나님께 예배드립니다. 주일을 기억하고 거룩히 지키는 것은 예배드리는 것을 빼놓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또 하루 쉬는 날 정도로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사람들에게 이날은 거룩한 날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구별된 날입니다. 이 예배를 통해서 우리의 속사람은 새롭게 힘을 얻고, 새 생명을 맛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일은 육신 뿐 아니라, 우리의 영과 혼, 전 존재가 쉼을 얻고 새 힘을 얻는 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주일을 주심으로 우리의 전 존재가 건강함을 지켜가기를 원하십니다. 주일을 주신 이면에는 우리 인생이, 몸과 마음과 영혼, 전 존재가 건강하게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따뜻한 사랑, 사려 깊으신 배려가 담겨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일은 예배의 날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을 만나고 예배드리는 기쁨의 날입니다.

또 하나는, 주일을 거룩히 지키는 길은 이날을 가족과 함께 지키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을 살펴보면 안식일을 지킬 때 본인은 물론 아들이나 딸, 나아가서는 남종과 여종, 집에 머무는 손님, 심지어는 가축들까지도 일을 하게 하지 말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이 안식의 명령은 온 가족이 함께 지켜야하는 명령이라는 말씀입니다. 어떤 가정을 보면, 주일을 지킴에서 온 가족이 같은 길을 걷지 못하는 경우를 봅니다. 아직도 온가족이 하나님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경우도 있지만, 어떤 때는 교회 일에 너무 바빠서 이날도 뿔뿔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지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하나는, 주일을 거룩히 지키는 것에서 우리 모두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안식일을 지켜온 유대교 전통의 영향은 주일에 무엇을 해서는 안 된다는 금지사항에 관심을 많이 갖습니다. “미쉬나”라는 유대인들의 책을 보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될 일이 39가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씨 뿌리는 것, 경작하는 것, 추수하는 것, 키질, 편지 2통을 쓰는 것, 불을 피우는 것, 끄는 것, 물건을 이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 노동 등등이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다고 비난을 받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을 바로 지키는 길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지, 결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안식일에 무엇, 무엇을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선을 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일깨워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안식일 법을 어떻게 이해하셨습니까? 4복음서에는 안식일 논쟁에 관한 기사가 많습니다. 안식일에 제자들이 밀 이삭을 잘라 먹은 사건(마태복음 12:1-8, 마가복음 2:23-28, 누가복음 6:1-5), 안식일에 손 마른 사람을 고친 사건(마태복음 12:9-13, 마가복음 3:1-6, 누가복음 6:6-11), 안식일에 18년간 귀신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여인을 고친 사건(누가복음 13:10-17), 안식일에 고창병에 걸린 사람을 고친 사건(누가복음 14:1-6), 안식일에 38년 된 병자를 고친 사건(요한복음 5:2-18), 성전에서 안식일에 관한 말씀을 선포한 사건(요한복음 7:14-24), 그리고 안식일에 날 때부터 눈이 먼 자를 고친 사건(요한복음 9:1-41)에서 볼 수 있듯이 예수님과 유대인들 사이에 벌어진 안식일 논쟁은 상당히 뜨거웠습니다.

하나님께서 안식일에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여기서 ‘일’을 유대인들이 ‘창조행위’로 본 것이 문제였던 것입니다. 창조행위는 하나님의 일입니다. 창세기 1장에 나타난 하나님의 창조행위에는 세 가지 범주의 일들이 있습니다. 첫째는 어둠이 빛이 되게 하는 것, 둘째는 혼돈이 질서가 되게 하는 것, 셋째는 죽음이 생명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안식일에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이 과연 이 세 가지 범주의 일을 하지 말라고 하셨는가라는 물음을 던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그렇지 않다”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 가지 범주의 창조행위를 안식일에 더욱 적극적으로 해야 할 살림의 일로 보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성막 건축과 관련된 39가지의 일을 창조행위의 39가지 범주로 보고, 이것들을 안식일에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의 범주로 확대해석한 것을 비난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안식일에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하신 말씀에서의 은 하나님의 일, 곧 세 가지 범주의 창조행위가 아니라, 인간들의 일, 곧 죽임의 일을 말한다고 봅니다.

빛의 일보다는 어둠의 일, 질서의 일보다는 혼돈의 일, 생명의 일보다는 죽임의 일들을 일삼는 것이 인간들의 일입니다. 이런 일들을 안식일 하루만이라도 멈추고 하나님께 예배하며 그분의 창조의 일을 묵상하고 본받으라는 것이 안식일에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계명의 참 뜻이라고 예수님은 우리에게 암시하셨습니다. 이 부분이 가장 잘 드러난 장면이 마태복음 12장 9-13절입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갔을 때, 거기 말라버린 한쪽 손을 가진 사람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려고 물었습니다.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이 옳습니까?”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어떤 사람에게 양이 한 마리있는데, 그 양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구해 내지 않겠느냐?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마가복음 34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그리고는 그 사람의 손을 고쳐주셨습니다.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다고 하신 말씀은 유대인들이 안식일에 창조행위, 곧 선을 행할 수 없다고 한 주장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주장입니다. 요한복음 5장 말씀에,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38년 된 병자를 고치셨습니다. 그 병자를 향해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8절). 그러나 이 한 마디는 안식일에 2미터 이상 물건을 운반할 수 없고, 2,000큐빗(900미터 정도) 이상 걸을 수 없다고 생각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이었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것이 창조행위라면 그 창조행위는 안식일에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계명을 어기는 것이 아니란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반대로 살림의 일을 비난하고 질타하는 유대인들이야말로 참된 안식일의 의미를 왜곡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안식일을 잘 지키는 것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창조의 일을 본받고, 살림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5장 19절에서 말씀하시기를,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21절 말씀에 의하면,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시는 것”입니다. 이 죽은 자를 살리는 일을 아들 예수님도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일을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것을 보고 배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유대교의 제7일 안식일 개념이 기독교에 와서는 제8일 일요일 곧 주일로 바꿨지만, 안식의 개념은 동일하다고 봅니다. 한 주간 세상에 살면서 세상의 일, 죽임의 일들을 많이 합니다. 일주일 가운데 단 하루만이라도 하나님 앞에 나와서 예배하고 하나님의 일, 복음의 일, 살림의 일을 행하기도 하고 묵상하고 반성하면서 마음의 평화와 위로를 얻는 것이 참 안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빛의 일, 생명의 일, 복음의 일은 적극적으로 행하고, 어둠의 일, 죽임의 일, 세상의 일은 멈추는 것이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는 일인 것입니다.

주님의 가르치심은 주일을 바로 지키는데도 적용이 될 수 있습니다. 무엇, 무엇을 하지 않는 것도 필요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주일에 무엇을 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주일을 거룩히 지킴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주일을 거룩히 지킴을 우리는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접근보다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접근의 길을 찾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날에 선을 행하고 사랑의 삶을 사는 것, 이 삶을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형제와 자매들을 격려하고 돌아보는 것,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날을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바로 활용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이야기 가운데 예배를 드리고 나아가서 야외에서 성도들 간에 사귐과 교제를 나누는 것은 귀한 일입니다. 이 일을 안식일을 범했다고 비판하는 것은 주일을 주신 하나님의 참 뜻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주일은 무엇, 무엇을 하지 않는 날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이날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안식일의 주인되시는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가치 있게 이날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마무리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너희로 알게 함이라(출애굽기 31:13). 이같이 이스라엘 자손이 안식일을 지켜서 그것으로 대대로 영원한 언약을 삼을 것이니(출애굽기 31:16)”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더럽히는 자는 이유를 막론하고 죽이라고 명령하셨습니다(출애굽기 31:14-15, 35:2). 안식일에 나무하러 간 자가 발각되자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그를 반드시 죽이라고 하셨습니다(민수기 15:32-26).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놀랐습니다. 안식일을 범하는 자를 죽이라고 하신 명령에는 사탄이 알지 못하는 비밀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친자식들을 죽이시겠습니까. 안식일을 범한 자는 그 집과 성문을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운다고 하셨습니다(예레미야 17:19-27). 그렇게 자랑하던 집과 성문이 다 불에 타고 맙니다.

안식일은 존귀한 날입니다. 하나님을 우습게 여기고 가족들 먹여 살리겠다고 안식일에 대책을 세우는 사람들, 잘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안식일을 지키면 몇 십 배를 줄 텐데 왜 지키지 않느냐고 탄식하십니다(사무엘상 2:29-30).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을 돌이킨다고 하십니다(예레미야 18:10).

BC 586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과 시위대 장관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을 침략해 여호와의 전과 왕궁을 불사르고 예루살렘의 모든 고관대작, 귀인들의 집을 불살랐습니다 (열왕기하 25:9-12, 예레미야 52:12-14). 하나님의 백성들인데 왜 바벨론 포로로 끌려갔습니까.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느헤미야 13:17-18).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깨닫게 하시기 위해 6년 동안 농사짓되 7년째에는 땅이 피곤해 쉬어야 하니 경작하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레위기 25:2-5). 대신 6년째에는 3년 치를 풍성하게 거두게 해주겠다고 하셨습니다.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키지 않았습니다. 돈 벌 욕심에 농사를 지었습니다. 그렇게 잃어버렸던 안식년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70년간 종살이하게 하심으로써 고스란히 찾으셨습니다. 땅이 안식년을 누림같이 안식한 것입니다 (역대하 36:21, 예레미야 25:11-12, 29:10, 레위기 34-35). 말씀에 순종하지 않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종이 되고 말았습니다.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입니다.

성도 여러분! 아무리 바빠도 안식일이 하나님의 날인 것을 잊지 마십시오. 안식일에 만나가 있을까 하고 바깥에 나갔지만 거두지 못했습니다. 안식일은 돈 버는 날이 아닙니다. 안식일을 지키면 필요한 만큼 하나님이 벌게 해 주십니다. 안식일을 지킴으로써 남아 있는 안식 세계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 나라 갈 때까지 안식일을 철두철미하게 지켜 자손만대에 복을 받고 모든 생활에 이김의 역사가 있기를, 건강하고 소원대로 성취되는 역사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결론적인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네 번째 계명,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이 명령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주어진 네 번째, 마지막 명령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신 거룩한 삶의 길, 독특한 삶의 길에 대한 명령입니다. 이 명령 속에는 우리의 전 존재, 몸과 마음과 영혼이 건강하게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배려가 담겨져 있습니다. 또 이날을 가족과 함께 뜻있게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기대가 담겨져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 계명은 도덕률 혹은 윤리적인 명령일 수도 있지만,생명률이라고 지적한 사람이 있습니다. 건강한 삶을 살아가게 하시는 하나님의 처방이란 의미에서입니다. 우리 생명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주신 귀한 명령이라는 의미에서입니다. 한 신앙의 선배는 제4계명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요약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일이나 재물의 노예가 아니라,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며 거룩한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는 인생이라는 것을 허락하시고 확인하기 위하여 안식일의 계명을 주셨다.”

유대인들의 안식일 성수는 생명을 바치는 절대적인 것이었습니다. B.C. 2세기 중엽에 일어난 마카비 독립 전쟁 때 유대인들은 적군의 공격을 받아도 그것이 안식일에 일어난다면 자기 보호를 위해 일체 싸워서는 안 된다고 하였고 이를 노린 시리아 군대가 독립군을 안식일에 공격 하루에 1,000명을 살육하고 말았습니다. 그 후 유대인들도 안식일에 공격은 안 해도 방어는 해야 한다고 그 생각을 바꾸었지만 그들의 안식일 개념은 그 후에도 더욱 철저히 지켜졌습니다.

우리는 진정 주일을 생명처럼 여기고 지키고 있습니까? 안식일은 언약의 표징입니다. 즉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언약의 관계임을 고백하는 표식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임을 고백하며 확인하는 것입니다. 이 관계를 고백함으로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는 것이 됩니다. 안식일을 구별하여 지킴으로 하나님이 창조주 즉 모든 만물의 주인임과 나의 주인은 주님이시라고 고백하며 주님에게 순종한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일하지 않고 안식일을 구별하여 지키는 것은 나는 내가 일해서 먹고 사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므로 하나님이 주시는 복과 은혜로 사는 존재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잘 지키는 것이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제대로 인식하고 사는 것이며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안식일을 잘 지킴으로 하나님이 창조주 되심을 고백하여 우리의 영원한 주인되시는 하나님께 순종하며 그 베푸신 은혜에 감사하며 앞으로도 끝없이 베풀어 주실 은혜와 복을 사모하며 살아야합니다. 그 결과 하나님이 주시는 복과 은혜를 누림으로 행복한 인생을 살아야합니다. 이제 하나님과 주님이 제정하신 안식일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아 주일의 쉼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나아가 삶의 재충전을 가지는 복된 시간을 가지는 주일이 되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적용을 위한 질문 *

  1.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이 계명이 나에게 가져다 준 부담과 오해가 있었다면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1. 안식의 날을 주신 것이 인간 생명이 건강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배려라는 사실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떤 의미에서 그렇습니까?
  1. 안식의 날을 바로 지키기 위하여 내가 고쳐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이 강해는 목사님들의 설교와 참고 문헌들을 인용하여 편집한 설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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