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계명,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1) 하나님께서 왜 그리스도인에게 10계명을 주셨습니까?

 

10계명,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1)

하나님께서 왜 그리스도인에게 10계명을 주셨습니까?

출애굽기 20 : 1 – 17

1)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2)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로라 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4)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6)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7)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8)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9)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10)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11)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13) 살인하지 말라 14) 간음하지 말라 15) 도둑질하지 말라 16)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 17)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

들어가는 말

기독교는 성경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은 성경이 가르치는 신앙의 대상을 성경이 가르치는 방법에 따라 예배하며, 또한 모든 생활의 기준을 성경에서 찾아야 합니다. 그런데 실상 성경이 가르치는 바가 무엇인지 정확히 아는 것은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까닭에 기독교 내에도 많은 교파가 있고 심지어는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면서도 이단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조차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 원리의 보편적인 기초가 되는 십계명에 대해서는 모든 사람들이 그 중요성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 구체적인 해석에 있어 다소 논란이 없는 것은 아니나 인간 생활의 기초가 되는 가장 중요한 규범으로 인정하는 점에서는 쉽게 공통점을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십계명은 구약 시대 뿐 아니라 전기독교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는 자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기본적인 규범으로 인정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그 내용에 있어서는 담백한 일면을 지니고 있으나 지금으로부터 3500여년 전에 주어진 규범이므로 다소간의 해설이 필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또한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된 성경은 어떤 한 부분을 해석할 때 보다 폭 넓게 성경의 다른 부분과 유기적인 관계를 생각하며 해석해야 합니다. 십계명 역시 구약 다른 부분의 기록과 신약의 언급 및 특히 율법의 완성자이신 그리스도의 사역과 비교하여 해석할 때 보다 깊은 의미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한편 성경 가운데 십계명은 단순한 형태로는 출애굽기 20:1-17과 신 5:6-21에 중복되어 기록되어 있으며 일부 계명들은 성경 여러곳에 산재되어 반복되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출애굽기에 기록된 십계명을 기준으로 하여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시내산에서 모세가 받은 이 십계명은 흔히 두 부분으로 구분합니다. 그 가운데 전반부 1-4계명은 절대자 하나님에 대해 인간이 지켜야 할 규례를 담고 있고, 후반부 5-10계명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 상호간에 지켜야 할 규례를 담고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이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무엇보다도 우선하여야 함을 보여 주는 동시에 하나님을 바로 섬기는 자는 인간 상호간의 관계에 있어서도 성실하여야 함을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또한 이는 사람이 정신과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그의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기독교 윤리의 세부 지침을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주신 십계명은 한 시대를 위한 법이 아니라 영구불변적인 가치를 지니는 법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십계명이 상세한 법규나 세부적인 규칙이 아닙니다 일련의 원리라는 점에서도 확인됩니다. 즉 십계명은 어떤 상황을 전제하고 이를 해결하고자 주어진 규칙이 아닙니다. 십계명이 인간에게 주고자 하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바른 태도입니다. 따라서 아무리 환경이 변하고 상황이 달라져도 이 태도는 달라질 수 없으며 단지 시간과 상황에 따라 이 원리를 적용하는 방법은 다소 변경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이러한 십계명의 근본적인 원리와 더불어 현재의 상황 속에서 십계명이 어떻게 적용되어야 하는지의 문제까지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애굽에서 400년간이나 종 노릇하던 이스라엘이 출애굽한지 3개월후에 주어진 이 십계명으로 인하여 그들은 명실상부한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되었다. 오늘날 우리 역시 죄에 종 노릇하던 자에 불과했으나 하나님의 부르심과 그리스도의 속죄의 권능으로 인하여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바른 삶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우리에게 남아 있는 유일한 사명입니다. 이러한 사명감을 가진 자에게 십계명은 삶의 방향을 알려주는 훌륭한 이정표가 될 것이고 이러한 이정표에 따라 살아갈 때 하나님의 칭찬을 받는 삶의 승리자가 될 것입니다.

헛셀 포오드의 십계명 강해설교 내용 가운데 이런 예화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흑인 하인과 같이 바다낚시를 갔습니다. 저녁나절 돌아오면서 피곤해진 주인은 하인에게 말하기를, 모터보트의 키를 꼭 잡고 있어라. 그리고 저기 보이는 북극성만 보고 달리면 무사히 집에 도착한다. 그동안 나는 좀 자야겠다. 이 주인은 배의 방향타를 하인에게 넘기고 깊은 잠에 들었습니다. 한참 있다가 하인이 다급한 목소리로 주인을 깨우며 말했습니다. 주인님, 주인님 이 보트가 어찌나 빨리 달리는지 북극성을 지나치고 말았어요, 다시 다른 별을 가르쳐 주셔야겠습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은 이 십계명을 옛날 수천 년 전에 주신 말씀이지 지금은 맞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어떤 배도 북극성을 앞질러 갈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가장 귀하게 모든 율법의 요약으로 우리에게 쉽게 지킬 수 있도록 주신 십계명을, 마치 북극성을 지나쳤다고 착각하는 흑인 하인처럼 지나 버린 도덕, 지나 버린 윤리는 이 세상에 없습니다.

이집트에서 400년 동안 종살이를 하다가 해방된 선민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the Promised Land) “가나안 복지”를 향해 민족적 대이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일찍이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라”(창세기 12:2)고 약속하신 대로 이 민족으로 하여금 위대한 국가를 건설하게 하시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a land flowing with milk and honey)에 정착하게 하시려고 작정하셨습니다. 그러나 한 나라를 건설하고 운영함에 있어서는 법이 필요했고 헌장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모세(Moses)로 하여금 온 이스라엘 백성을 “시내산”(the Mount Sinai) 앞에 모으게 하시고 그들에게 율법을 하사하셨는데, 그 율법의 정수요 요약이 곧 “십계명”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말하기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셔서 “은혜의 복음”(The Gospel of Grace)을 선포하신 이 마당에 율법, 특히 “십계명” 같은 것은 철폐되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들은 크게 오해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 자신께서 율법의 가치와 중요성에 대해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로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태복음 5:17-18)고 강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십계명을 과소평가 내지 부정하려는 많은 사람들은, “모세가 살던 시대와 우리 시대는 다르다” 십계명은 히브리 민족에게 준 “도덕법”(the Moral Law)이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필요 없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십계명의 진정한 의의를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 역사는 변천하고 문물은 달라져도, 예나 지금이나 하나님은 변함없으시며, 인간의 본성도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십계명은 한 민족 이스라엘에게만 주신 “민족법”(the national law)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 민족을 교량으로 해서 동서고금의 전 인류에게 주신 엄숙한 “국제법”(the international law)이라는 것을 알아야 분명히 합니다. 이에 관해 캘빈(John Calvin, 1509∼1564)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율법은 거울과 같아서 우리는 그것을 통해 우리의 무력함과, 그 무력에서 나오는 죄와, 이 두 가지 결과로서의 저주받은 추태를 바라본다” (Thus the Law is like a mirror in which we behold our impotence, our iniquity which proceeds from it and the consequence of both our obnoxiousness to the curse).

줄거리

십계명이, 오늘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에게 정말로 중요한 이유는,

  1. 하나님께서 직접 주신 율법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율법은 하나님께서 그의 종들을 통하여 기록하였으나, 이 십계명은 하나님께서 친히 두 돌 판에 기록하였습니다. 이것은 이 계명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입증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십계명은 인간에게 주신 모든 법의 어머니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십계명은 인간의 도덕률의 근원이며 기독교 윤리의 근본으로 이 계명의 입법자는 하나님 자신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계명은 단순한 율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 신률입니다.

  1. 모든 율법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십계명을 주신 후 일종의 십계명의 주석과 같은 70개의 율법을 주셨습니다(출애굽기 20:22-23:33). 그러므로 십계명은 모든 율법의 핵심입니다. 율법은 대개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일반법과, 종교법과, 도덕법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십계명을 주석한 것입니다. 십계명을 담은 법궤를 언약궤(신명기 31:26. 사무엘상 4:5. 히브리서 9:4) 그것을 기록한 책을 언약서(출애굽기 24:7) 또는 언약 책(열왕기하 23:21, 역대하 34:30)이라고 했습니다. 비록 짧은 내용이지만 인간의 삶 전체를 망라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계명을 지키느냐 않느냐에 따라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선민이 되느냐 아니면 멸망한 존재가 되느냐 하는 긴장과 준엄함이 내포된 생사의 근거가 된 것입니다.

  1. 주님께서 귀하게 여기시고 교육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도 산상보훈을 말씀하시면서 십계명의 내용을 많이 인용하셨습니다(마태복음 5:17. 마태복음 18) 어떤 율법사가 예수님께 나아와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라는 질문에 예수님은 대답하시기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고 십계명을 요약하셨습니다. 또한 신약 성경은 지금도 여전히 십계명의 정신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1계명 (디모데전서 2: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2계명(요한일서 5:2)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3계명(야고보서 5:12)

내 형제들아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나 땅으로나 아무 다른 것으로도 맹세하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렇다 하고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 하여 정죄 받음을 면하라

4계명(히브리서 4:11)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함이라

5계명 (에베소서 6:1)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6계명(야고보서 2:11)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7계명(고린도전서 6:18)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느니라

8계명(에베소서 4:28)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저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9계명(골로새서 3:9)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10계명(에베소서 5:3)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에게 마땅한 바니라

은혜 아래 있다는 말씀은 율법의 저주에서 해방되었다는 말씀이지 이 말씀은 율법이 무용지물이 되었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율법 가운데 의식 법은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말미암아 자동으로 폐기되었으나 율법의 참된 정신은 아직도 강조 되어져야 합니다. 이 말씀은 율법이 무용지물이 되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율법 가운데 의식 법은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말미암아 폐기되었으나 율법의 참된 정신은 아직도 강조 되어져야 합니다.

  1. 복음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십계명에 근거를 두고 시작합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기독교가 어떠한 종교나”고 물으면 대다수가 대답하기를 “사랑의 종교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입니다. 그렇지만 어떠한 사랑입니까? 맹목적인 사랑이나, 그저 용서하는 정이 아니라, 의로운 사랑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바로 알기 위해서 이 사랑이 어디에서 시작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복음은 본시 준엄한 율법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너는~ 말라, 말지니라”는 율법을 근거로 해서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나는 것입니다(로마서 3:20). 율법은 마치 거울처럼 범죄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여 드러냄으로 우리로 하여금 죄를 각성시켜 죄 사함을 받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와야 한다는 것을 가르칩니다(갈라디아서 3:24).

십계명을 해석하는 몇 가지 원리

십계명은 그 중요성과 신령한 깊이 등으로 보아도 해석하기가 곤란하므로 조심스럽게 해석하여야 합니다.

  1. 영적으로 보아야 합니다.

신령한 하나님께서 주셨기 때문에 성령의 도우심을 의지하고 영적으로 보아야 합니다. 형태로만 즉 문자적으로만 보면 오해하기가 쉽습니다. 이 말씀은 성경을 심령 상태까지 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신명기 6:5, 히브리서 4:12). 성경에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단순히 “살인하지 말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배경에 있는 영성 곧 분노, 미움, 모욕, 잔학, 무정, 이런 동기까지도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옛 그레고리안 라틴어 찬트에 보면 “사람의 법은 손만 묶지만 하나님의 법은 마음을 묶는다”는 노래가 있습니다.

  1. 대구의 원리가 있습니다.

가령 “하라”고 명령한 것은, “말라”까지 그 명령이 연장됩니다.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령하신 것에는, “안식을 범하지 말라”는 뜻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또 이것뿐만 아니라 “엿새 동안 힘써서 네 모든 일을 하라”라는 것까지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1. 으뜸이 되는 원리가 있습니다.

각 계명마다 비슷한 범주에 속한 모든 것을 다 포함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은, 자녀가 부모에 대한 의무를 명한 것입니다. 동시에 부모가 자녀를 공경하게끔 가르칠 의무도 명한 것입니다. 또 “살인하지 말라”에는, 분노, 모욕, 증오, 등도 포함됩니다. (출애굽기 25:3-5, 아모스 3:5. 골로새서 3:5. 디모데전서 6:10)

다윗은 비록 우리아의 아내를 직접 죽이지 않았으나 요압에게 편지를 보내어 그를 싸움터에 앞장서게 해서 죽게 한 것은 마찬가지로 살인죄에 속합니다(사무엘하 12:9). 이는 모의해서 저지른 죄도 포함되며(사무엘상16:21) 동조하는 것(사도행전 8:1). 나쁜 본을 보여 주는 것도 포함이 됩니다.

  1. 선후와 우열의 원리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본분과 사람에 대한 본분은 선후와 우열의 차이가 있습니다. 첫째 돌 판은 더욱 중요하고 기본이며 제 1계명은 나머지 모든 계명의 열쇠 (하나님을 잘 섬겨야 다른 것을 잘 할 수 있기 때문)이기 때문에, 둘째 돌 판은 첫째 돌 판에 양보하여야 합니다. 곧 예를 들면 “네 부모를 공경하라”하고, “하나님을 섬기라”하고 맞부딪힙니다. 이러할 때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 그것은 우열의 원리에서 하나님에게 먼저 순종해야하는 원리가 서야 합니다.

십계명의 서문에서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을 조목마다 명령하시기 전에 하나님은 자신이 누구신가를 먼저 밝힙니다.

발신자~

애굽에서 구원해 내신 구속자 여호와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구원해 주시는 사랑의 구주이십니다. 계명을 주시기 전에 구원자란 사실을 밝히심으로서 이스라엘 백성으로하여금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그 계명을 지킬 법적 의무가 있음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수신자~

이스라엘 백성 곧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 “종 되었던 집”(출애굽기 20:2)이란 “집(베트)”은 감옥이나 지하 감옥을 가리킵니다.(창세기 39:21) 그러므로 정확하게 말하면 노예로서 고역하던 감옥을 의미합니다. 사실 출애굽 전까지 노예 민족으로 생활하든 이스라엘 백성에게 애굽은 하나의 거대한 감옥과 다름이 없었습니다(출애굽기 13:3). 오늘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도 과거에는 종 된 생활을 하였습니다.

  1. 죄의 종이었습니다.(로마서 6:15-23)

키케로(Cicero)는 “모든 상태 중에서 노예는 최악의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로마서 6:12)라는 말씀을 살펴보면, 죄는 몸을 지배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죄는 심령까지 혹사하며 결국은 죽이고야 맙니다(로마서 6:23). 다른 노예는 육신만 괴롭히며 밤에는 휴식을 얻고 법에 따라 노동하지만 이 죄의 종이 되면 그 사람의 영혼을 괴롭히며 무자비해서 결국은 방향 없이 이리저리 끌려 다니다가 마지막에는 망하게 하고야 맙니다.

  1. 사단의 종이었습니다.

사단은 어떤 존재입니까?

1) 이 세상의 사자(使者) 곧 임금입니다(요한복음 12:31, 14:30).

2) 이 세상의 신(神)입니다(고린도후서 4:4).

“이 세상 신”이란 원문에, “이 시대에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마귀가 이 세상 사람의 신이 되어 그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우리의 영혼을 괴롭게 합니다(사도행전 5:11).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마음속에 거짓 마귀가 들어감으로 그들의 영혼이 죽고 육신이 죽은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의 영혼을 죽이고 맙니다.

4) 하나님 자녀의 믿음의 길을 훼방합니다(데살로니가전서 2:18, 요한계시록 12:9).

5) 죄인들의 마음은 사단의 별장과도 같습니다(마태복음 12:44).

이러한 종의 상태에서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원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십계명은 1계명에서 4계명까지와 5계명에서 10계명으로 구분되는데, 첫째 부분은 하나님에 관한 계명이요, 둘째 부분은 인간에 관한 계명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것을 율법과 예언서의 요약인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증거하시면서 율법의 전 부분을 “사랑”이라는 완전한 하나의 의미로 함축시키셨습니다. (마태복음 22:37-40)

그렇다면 모세의 율법이 주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혹자는 주님께서 오심으로 모든 율법이 완전 폐지되었다고 말하면서 십계명의 존재 자체를 부인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하려 함”(마태복음 5:17)이라는 주님의 선언에 의해 여지없이 반박되어지고 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율법의 폐함과 완전함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해해야 합니다. “폐함”이라는 의미는 주님의 복음으로 인해 율법의 “행위 계약적 구원 사상”이나, “정죄자로서의 의미”가 파괴되었다는 것이며, “완성”이라는 의미는 “구원받은 성도들의 생활 규범과 성결의 수단”으로서의 “완성”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십계명의 현실적 효용성은 첫째로 하나님께만 속하는 의와 인간에게 속하는 불의를 동시에 드러내 주며(갈라디아서 3:24), 둘째로 무서운 형벌을 선고함으로 범죄를 예방하며, 셋째는 위에서 말한바 신앙인들의 생활 규례입니다.

십계명을 지키는 성도의 자세는?

  1.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 깊은 곳에서 계명을 지키도록 요구하십니다.

여기 하나님께서 창조주의 권위나 심판주의 위엄에서가 아니라 구속주의 사랑으로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계명이니까 의무적으로 지킨다는 개념이 아니라 마음 중심에서 우러러 나오는 삶을 원하신 것입니다.

  1. 보상주의적 삶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사랑하심으로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구원하여 내시고 계명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계명은 은혜의 관계의 것이고, 보상주의의 것이 아닙니다. 구원이 먼저이고 그 다음에 구속된 백성에게 지켜야 할 계명이 임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 율법은 인간에게 베풀어진 더욱 큰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입니다(로마서 13:8,10).

세상의 윤리와 도덕에 십계명만큼 큰 영향을 준 것은 없습니다. 이 십계명은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까? 십계명은 과연 케케묵은 과거의 수천 년 전의 이야기입니까? 오늘 우리의 믿음 생활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합니까? 인류의 역사에서 십계명만큼 윤리와 도덕의 체계에 영향을 미친 것도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또 각 나라의 사법 체계에도 십계명은 많은 영향을 주어 왔습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지 않으셨다면? 이란 책을 쓴 Florida의 James Kennedy 목사님은 기독교가 인류의 도덕에 미친 영향을 말하면서 야만족이었던 유럽의 Frank족, 앵글로 색슨, Vikings 족속들을 변화시킨 것 역시 기독교 신앙의 도덕성이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 기독교 신앙의 도덕과 윤리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십계명입니다. 교회의 역사에서 새롭게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이 공부하는 내용 가운데는 사도신경과, 주기도문과, 십계명이 꼭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도신경이 무엇을 믿는가?라는 신앙의 내용을 가르쳐 준다면, 주기도문은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 기도 생활에 대해서 가르쳐 줍니다. 그리고 10계명은 그리스도인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의 문제를 일깨워 주기에 신앙교육의 중요한 내용으로 포함되어져 왔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그의 백성들에게 의무와 책임을 요구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구원의 하나님을 보이셔서, 그의 백성들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계명들을 따르도록 하셨습니다.

  1. 십계명은 구약 성경 출애굽기 20장과 신명기 5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두 기록 사이에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크게 다른 것은 없습니다. 저는 출애굽기 20장에 기록된 것을 중심으로 말씀을 전하면서 조금 다른 것은 그때그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인도로 이집트에서 해방되어 시내산 기슭에 이르렀을 때입니다. 19장 말씀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부르셔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에서 구원하셨는지를 상기시킨 후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그리고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라고 명하셨습니다. 모세가 와서 백성들의 지도자인 장로들을 불러서 말했습니다. 그러자 온 백성들이 대답했습니다. “우리가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다 행하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언약의 관계, Covenant Relationship이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이 언약이란 말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표현하는 중요한 말로써 약속의 관계를 뜻합니다. 마치 신랑과 신부가 어떤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사랑하겠다고 약속함으로 부부의 관계가 이루어지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언약의 관계를 맺어 하나님의 소유가 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주신 계명이 바로 10계명입니다.

이 10계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첫 번째 부분은 제 1계명부터 제 4계명에 이르는 것으로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과의 관계에서 지켜야 할 명령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만을 섬기고, 우상을 만들거나 섬기지 말며,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고,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명령입니다. 두 번째 부분은 제 5계명부터 10계명에 이르는 것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지켜야 할 명령을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고, 살인하지 말며, 간음하지 말고, 도둑질하지 말며,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고, 이웃의 것을 탐내지 말라는 명령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십계명을 두 돌 판에 친히 새겨서 주셨다고 성경은 전하고 있습니다. 처음 것은 금송아지를 섬기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서 모세가 내어 던짐으로 깨어졌지만,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두 돌 판을 준비하게 하셔서 다시 써 주셨습니다. 이 두 돌 판은 법궤 안에 보존되어 오다가 이스라엘 나라가 멸망하면서 행방불명이 된 것으로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1. 이제 좀 더 구체적으로 십계명이 가지고 있는 특정적인 모습을 살펴보겠습니다.

(1) 무엇보다 먼저 십계명은 하나님께서 자기 소유로 삼으신 백성들에게 주신 계명임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계명이 나오기 전에 먼저 말씀하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베풀어주신 구원의 은혜입니다. 본문 20:1-2절 말씀을 살펴보면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일러 가라사대 나는 너희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라.” 여러분, 무슨 이야기입니까?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에게 명령하시기 전에 먼저 당신이 누구신지, 당신께서 그 백성들을 위해 어떤 역사를 이룩하셨는지를 밝히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누구십니까?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분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무슨 일을 행하셨습니까? 그들을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당신의 소유,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십계명은 이렇게 하나님께서 구원하여 내신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신 명령입니다.

(2) 둘째로 십계명은 단순한 도덕이나 윤리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신앙과 그 믿음에 따르는 삶을 포괄하는 것입니다. 흔히 하는 표현을 빌리면 종교와 도덕이 종합되어진 것입니다. 고대 근동에는 십계명과 비슷한 법들이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주전 18세기 바벨론을 다스렸던 왕이 세운 함무라비 법전입니다. 또 한국 역사에도 보면 옛날에 8조 금법이란 것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법규들은 대개가 제 5계명 이하,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십계명은 제 1계명부터 제 4계명에 이르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지켜야 하는 법도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십계명은 하나님을 섬기는 도리와 백성들이 함께 살아가는 길, 도덕을 종합하고 있습니다. 신앙과 삶의 길이 하나로 종합되어서 주어지고 있습니다.

(3) 셋째로 십계명은 그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보여줍니다.

이 계명은 백성들이 모여서 논의한 결과를 채택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주신 법들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계명은 명령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면 좋다”는 권유형이 아닙니다. “Thou shall…” 혹은 “Thou shall not…”, “할찌니라…” 혹은 “하지 말찌니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기에 십계명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이란 순종, 아니면 불순종밖에 없습니다. 순종도 아니고 불순종도 아닌 타협을 통한 제3의 길이란 있을 수가 없습니다. 내가 만들어 놓은 하나님이라면 그것이 가능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성경의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다면 우리는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순종 혹은 불순종의 선택뿐입니다. 그러나 이 순종은 명령이기 때문에, 징벌이 두려워서 하는 그런 순종은 결코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시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의 역사를 말씀하신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 무슨 이야기입니까? 우리의 순종은 두려움 때문에 하는 순종이 아니라, 그 은혜에 대한 감사함 때문에 하는 순종이라는 것입니다. 그의 백성들을 이집트에서 건져주신 하나님의 사랑, 그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고백이 바로 십계명에 대한 순종의 동기요, 원동력이 된다는 것입니다. 십계명에는 그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러기에 어떤 사람은 10계명에 대하여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십계명이 이렇게 짧고 요점이 분명한 것은 어떤 committee에서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고백은 십계명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는 고백입니다.

(4) 넷째로 십계명이 갖는 특징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거룩한 공동체로 세우기 위한 길로 하나님께서 계명을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이집트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란 오합지졸들이었습니다. 질서가 없고 훈련도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영화 “십계”를 보면 여호수아의 나팔 소리에 따라 규모 있게 움직이지만, 사실은 문제투성이었습니다. 보리밥같이 흩어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진정한 공동체로, 훈련받은 하나님의 백성들로, 특별히 주변의 민족과는 다른 거룩한 백성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십계명을 통하여 그들은 길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갈 것인지, 어떻게 백성들끼리 공동체로 살아갈 것인지를 배웠습니다. 십계명에는 바로 그 백성들을 이집트에서 건져내신 하나님께서 새로운 환경, 새로운 상황 속에서 거룩한 공동체로 자라가게 하시려는 따뜻한 사랑의 배려가 담겨 있었습니다. 그들을 세우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이 계명 계명마다 숨겨져 있었습니다.

  1. 이제 이 같은 십계명과 오늘 우리와의 관계로 초점을 옮겨 보겠습니다.

여러분, 지금부터 적어도 수천여 년도 훨씬 더 되는 그 옛날,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은 이 십계명이 오늘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특별히 그리스도인들은 구약의 율법으로부터 자유함을 얻었는데, 아직도 십계명에 얽매일 필요가 있습니까? 십계명이란 이제는 더 이상 설 땅이 없는 케케묵은 옛날이야기가 아닙니까?

(1) 먼저 십계명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신약과의 관계를 살펴보겠습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구약의 율법을 어떻게 대하셨습니까? 마태복음 5장의 산상설교를 잘 살펴보면, 이 문제에 대한 적절한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온전하게 하러 오셨다고.”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결코 율법을 쓸모 없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율법을 바로 지키지 못하는 것, 외적인 행동에만 얽매어서 내적인 마음의 상태의 중요성을 잊어버린 위선적인 율법주의자들을 책망하셨을 뿐입니다.

또 부자 청년에게 네가 계명을 지켰느냐고 먼저 물으신 것을 보아도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중요성을 결코 도외시하지 않으셨습니다. 율법의 문제에서 가장 비판적인 자리에 섰던 사도 바울 역시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받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지만, 율법은 그리스도인들이 죄를 깨닫게 함으로 우리를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인도하는 “몽학선생” 즉, “개인교수, 가정교사”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율법은 우리의 신앙의 훈련에서도 도움이 될 수 있음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결국 십계명이 구약의 율법이기에 지킬 필요가 없다는 주장은 잘못된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복음 안에서 살아가지만, 이 십계명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일깨어줍니다. 이 십계명을 지킴으로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계명들은 오늘 이 시대 속에서 믿음의 사람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의 문제에 대하여 귀한 지침을 제공해 줍니다.

(2) 그리고 수천 년도 더 되는 옛날에 주어진 십계명이 오늘 이 시대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

케케묵은 이야기라는 주장에도 우리는 반론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그때 십계명을 주신 하나님은 오늘도 살아 계십니다. 그 때 10계명을 주신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그 때 10계명을 주신 하나님을 오늘 우리가 믿습니다. 그러기에 10 계명은 케케묵은 옛날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오늘도 귀를 기울여야 하는 말씀이요, 오늘도 지켜야 하는 진리의 말씀입니다.

익명의 사람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When the Lord gave us Ten Commandment, He did not mention amendments. 하나님께서 10계명을 주실 때 개정될 것을 말씀하지는 않으셨다.” 하나님께서는 역사 속에서 10계명의 개정을 말씀하신 적이 없으십니다. 그러기에 10계명은 오늘도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오늘 이 시대의 문제는 오히려 이 10계명을 잃어가는 데 있습니다. 10계명을 케케묵은 옛날이야기라고 돌려세우는 데 있습니다. 수십년 전 미국 학교에서 문제는 복도에서 뛰는 것, 껌 씹는 것, 교실에서 선생님 말 듣지 않는 것 등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어떻습니까? 수많은 총기난사 사건을 비롯하여, 수많은 사건들이 뉴스에 보도됩니다. 마약, 강간, 절도, 10대 임신 같은 문제들이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수십년 사이에 과학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했습니다. 삶은 무척이나 부요하고 편해졌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만큼 행복해졌습니까? 도덕적으로 그만큼 건강해졌습니까?

종교와 국가의 분리로 학교에서 하나님을 몰아내었을 때, 도덕적 상대주의가 침입해 들어옴으로 오늘 우리는 이 엄청난 현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10계명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게 되는 이 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10계명 율법이라고 내 팽개칠 것이 아닙니다. 케케묵은 옛날얘기라고 외면할 것이 아닙니다.

오늘이야말로 10계명을 다시 찾아 지켜야 할 때입니다. 10계명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에 귀를 기울일 때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신 이 귀한 사랑의 선물을 다시 붙들어야 할 때입니다. 도덕과 윤리가 흔들리는 이 시대는 다음 이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What a scarcity of news there would be if everybody obeyed the ten commandments!” “모든 사람이 10계명을 지킨다면, 뉴스거리를 찾아보기가 얼마나 힘들 것인가!”

이 강해는 목사님들의 설교와 참고 문헌들을 인용하여 편집한 설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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