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익주 연재] 21. “모두가 골고루 잘 살아야 한다.”라는 사람에게

[LA=시니어타임즈US] 본지는 2020년 7월부터 최익주 선생의 <그렇게 선진국이 가능해?(가제)> – 국민의 반성과 국가적 전환점(부제)을 저자와의 합의 하에 글이 출판되기 이전에 연재를 시작한다. 연재는 회차별로 매주 한편씩 실리게 되며, 글의 배포는 무방하나 무단전재는 금한다. 글의 소유는 전적으로 저자 최익주 선생에게 있음을 알리며, 본지의 편집방향과는 무방하다.

<그렇게 선진국이 가능해?>는 저자가 20년여 전부터 대한민국이 인간적으로는 물론이고 총체적으로 한계에 봉착했고, 또다시 혼란과 위기와 망국의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라는 점을 인지함과 동시에 한계에 도달할 수밖에 없는 원인들을 연구했다. 이에 저자는 대한민국이 부디 새롭게 출발되기를 바라는 소망을 가지고 산업화 이후의 시기부터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일어난 일련의 최근 사건들을 통해 그 문제점 되짚으며, 앞으로 대한민국이 바르게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편집자주>

21. “모두가 골고루 잘 살아야 한다.”라는 사람에게

모두가 골고루 잘 사는 것을 ‘평등’, ‘평등한 세상’(사회)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이런 사람은 세상과 사회와 인간을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거나, 오히려 비양심적이거나, 위선적일 수 있으며, 여기서 자신을 똑바로 점검해보기 바란다.

평등과 불평등에 대해서

자유를 예를 든다면 ‘자유는 중요한 의미’다. 그런데 자유를 일방(독선, 독단)적으로 사용(남용, 월권)하면 반드시 남의 자유를 침해하게 된다.
(* 물론 적극적인 표현의 자유(미국의 수정헌법 2조)는 인간답고 정의로운 사회문화를 위해서 민주주의 시민이 확보해야 할 기초·필수 자질이다. 하지만 후진국들은 적극적인 표현의 자유를 구현하기가 쉽지 않고, 좀처럼 후진성을 극복하기 어렵다.)
자유처럼 ‘평등’도 중요하다. 하지만 당연히·막연히 평등을 주장하면 불평등보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들과 부작용들을 대가로 치르게 된다. 여기 내용을 주의 깊게 정독해서 대대적인 의식향상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첫째, 평등과 불평등이 동시에 공존하는 것이 세상(이치)

세상에서는 평등과 불평등이 동시에 필요하고 공존해야 한다. 왜냐면 세상과 인생의 이치 자체가 서로 상대(모순)적인 것들의 공존과 조화를 통해서 만상이 생겨났고, 만물이 생성되었고, 만사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밤과 낮이, 열과 냉이, 바다와 육지가, 달과 태양이, 밝음과 어둠이, 선과 악이, 정의와 불의가, 남과 여가, 너와 내가, 평등과 불평등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러한 상대적인 조건들 속에서 생성된 조화로운 결과물들이 훨씬 더 중요하고, 인간도 그러한 이치와 결과로 생성되고 태어나고 생계를 해결하면서 생존해가고 있다.
하지만 후진적인 사람들과 사회는 이처럼 상반된 것들을 오히려 적대적인 관계로 죽고 죽이거나, 없애려고 무리하기도 한다.
반대로 의식이 깨인 사람들은 상대(모순)적인 이치와 세상과 관계의 핵심을 이해하고, 감사하게 되고, 공존(상호작용)하면서 불평등을 줄여가고, 더 나은 삶과 행복과 발전과 번영을 누린다.
그래서 우리는 현실의 모든 것을 평등과 불평등으로 이분화하거나, 평등을 좋은 것으로, 불평등은 나쁜 것으로 혐오하고 적대시하면 안 된다.
이에 앞으로 우리는 평등과 불평등이 상호 조화와 균형을 이루도록 단점과 문제들을 서로 분담하고 감당하고 극복해가는 것이 진정으로 인간답고 정의롭고 아름답고 진취적인 세상과 인간과 인생이다.
다시 말해서 세상도 사회도 나라도 인생도 진행해가는 과정(발명, 사고, 재난, 실패, 실수 등)에서 반드시 불평등한 상황과 사건들과 사람들이 생겨난다. 이때 불평등을 없애야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관심과 애정과 노력으로 불평등을 줄여가야 한다.

둘째, 세상에서 중요하지 않은 것은 없어

세상에서 중요하지 않은 것은 없다. 그래서 자유도 평등도 공정도 범죄도 법도 선도 악도 모두 중요하다.
원래부터 세상에 있었던 것이나, 새롭게 생겨난 것이나, 좋은 것이나, 나쁜 것이나 중요하긴 마찬가지다. 왜냐면 세상의 모든 것(만상, 만물, 만사)은 나름대로 내력과 의미와 과정과 연관성과 영향력과 이해관계를 지니고, 누군가에게는 어딘가에는 그만한 이유와 가치가 있으며, 우리에게 다양한 관점과 연구과제와 사명과 방향과 삶을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의 뭔가에 대해서 단순히(곧바로) 잘·잘못과 옳고·그름과 이익·손해와 좋고·나쁨 등 단순 논리를 들이대는 것을 삼가야 하고, 최대한 실체(내력, 개념, 가치, 영향력, 연관성 등)를 파악해야 한다.

셋째, 불평등도 평등도 절대 없어질 수 없어

세상에 존재하는 뭔가(만상, 만물, 만사)를 없애버리려고 무리하는 것이 오히려 불평등과 불공정과 범죄다. 왜냐면 그러한 억지와 무리수는 더욱 심각한 잘못과 문제와 부작용을 초래하고, 갈수록 위선이 먹혀들면서 위선자들과 위정자들에게 놀아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류가 존재했던 이래로 훌륭한 인물들과 다양한 노력(자비, 평화, 사랑)과 갖가지 시도들(저항, 투쟁, 혁명, 개혁)과 수단들(법, 제도, 신, 사후, 구원, 수행)에도 불구하고 공정과 평등과 정의는 실현되지 않았다. 우리보다 현명한 부처와 예수와 소크라테스와 교황들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누군가가(문재인이) ‘공정’과 ‘평등’과 ‘정의’를 쉽게 들먹이거나, 장담했다면 황당한 정신병자이거나, 무능한 저능아이거나, 불순한 의도를 감춘 위선자이거나, 교묘한 언사를 둘러대는 사기꾼이거나, 그럴듯한 의미들을 명분 삼아서 멋대로 하겠다는 독재자이거나, 나라를 망치려는 역적인지 판단해봐야 한다.
물론 단순한 사람들도 차별과 불평등(제도, 정책, 체제, 사회 등)이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없어질 것이라고 착각하거나, 없애자는 선동(투쟁, 혁명)에 먹혀들어서 동조하기 쉽다. 심지어 세상을 지옥이라고 비하하면서 곧바로 곶감(지상낙원, 천국, 영생, 극락, 구원)으로 뻥튀기(비약, 보장)하는 사기꾼(교주, 독재자, 사기꾼)들을 평생 믿고 따르고 가져다 바칠 정도로 안타까운 사람들도 있다.
과거에 우리도 김일성만 죽으면 평화와 통일이 실현되고 인민들은 지옥에서 해방될 것처럼 착각했다. 이승만과 박정희만 죽으면 민주주의가 실현될 것으로 여길 정도로 독재도 민주주의도 쉽게 생각했다. 역시 친일파청산과 적폐청산을 강조하는 사람을 애국자로 착각했고,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줄 의인들로 착각했다.
오늘날에도 북한(개발도상국, 독재국)에 자유가 주어지면 민주주의가 가능할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도 있다. 나쁜 놈들을 강력하게 처벌하면 범죄가 없어지거나, 줄어들 것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독재도 자유도 평등도 민주주의도 공산주의도 불평등도 쉽게 없어지지 않으며, 없애버릴 수도 없다.

넷째, 평등으로는 불평등을 없앨 수 없어

평등과 불평등은 모든 면에서 동격이다. 선과 악도, 정의와 불의도, 여자와 남자도 동격이다. 그래서 동격인 평등으로는 불평등을 없앨 수 없고, 선으로 악을, 정의로 불의를, 여자로 남자를 없앨 수 없고, 없애려고 무리하면 대립과 분열과 혼란과 싸움이고, 없앴다면 곧바로 극심한 불평등과 독재와 전쟁과 지옥 등 비극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불평등을 줄이려고 해도 인류애라는 훨씬 더 수준 높은 고급개념이 필요하고, 월등한 철학과 진지한 과정과 성숙한 포용과 냉정과 열정과 의지와 집중력 등 수많은 과정을 대가로 치러야 한다.

다섯째, 평등은 커녕 불평등이라도 줄여야

현실(사회, 관계, 가정)이 불평등하다고 생각할수록 곧바로 평등을 강조하면 안 된다. 이는 소득으로 성장을 주도한다는 궤변과도 같다. 좀 더 심하게 표현하면 지옥에서 천국을 꿈꾸거나, 후진국에서 선진국을 떠올리거나, 독재자가 자유와 평등과 공정과 정의를 장담하는 것에 불과하다.
오히려 우리는 악화(불평등, 독재, 후진성)에게 양화(평등, 자유, 정의)가 구축(이용) 당하지나 않도록 몸담은 사회문화와 현실에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신중해져야 한다.

여섯째, 평등도 불평등도 영원할 수 없어

세상의 무엇인가가, 어딘가가, 누군가가 한동안 평등해지거나, 불평등해지거나, 우월해지거나, 열등해진다고 해도 절대 영원할 수 없다. 왜냐면 세상만사 인생사는 순환되고 교차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군가가 잠시 멈춰서 안주하고 타락하면 뒤떨어지기 마련이고, 무리하고 잘못해서 실패하면 밑바닥으로 떨어지기 마련이며, 늙고 병들면 더는 우월함도 평등도 불가능하다.
역시 낮으로만, 밤으로만, 남자로만, 여자로만 세상이 존재·운영될 수 없다.
그래서 평등과 불평등을 따지기 이전에 세상과 인간은 만상과 만물과 만사의 다양한 모순(대립, 보완) 관계 속에서 순환(공전, 자전)과 교차와 생성과 조화와 상생·상극하기 마련이고, 이를 전후로 길흉화복과 수복강녕과 생로병사와 생존경쟁이 당연할 수 있으며, 그 이상으로 발전하고 도약해야 하는 것이 세상사와 인생사다.

일곱째, 평등한 세상(사회, 인간, 인생)은 단 1초도 불가능할 수도

인간은 서로 다른 본능과 감각과 감정과 생각과 환경과 성장과 인연과 관계와 목적과 능력과 인생 여정을 거친다.
여기서 지극히 단순한 예를 몇 개 들어보자. 평등주의자들 100명이 모여 살아도 절대 평등해질 수 없다.

예 1) 100명이 아름다운 미모의 여인 한 명과 함께 하게 되었다.
이때 이들 100명은 여인을 똑같이(평등하게) 생각하거나, 표현하거나, 관계할 수 없다. 그래서 질투도, 오해도, 시비도, 싸움도, 결투와 혈투도, 사귐도, 무관심도, 사랑도, 이별도, 행복도, 배신 등 무수한 것들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이런 경우 100명에게 평등과 공평과 공정은 불가능하고, 최종 결과는 남자들의 노력에 상관없이 짝이 맺어지기도 한다. 왜냐면 여자가 자기 기준으로 남자를 선택해버리면 공정도 노력도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남자 100명과 여자 100명이 함께 있다고 해도 실질적인 평등은 불가능하다.

예 2) 100명 중 우수한 인재들과 훌륭한 인물들과 유능한 사람들은 평등에 만족하지 않는다.
우수하고 훌륭하고 유능한 사람들은 실패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 역시 불행과 고통을 감수·각오하고 더 이상의 뭔가(도전, 발명, 개척 등)를 시도한다. 그래서 성공하면 상응하는 혜택을 누리고, 공헌하면 특권을 누리기도 한다. 반대로 월등한 능력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실패하면 한동안 불행과 고통을 대가로 치르면서 평등에서 벗어난다.
물론 일반인들은 이들 덕분에 삶의 양과 질이 좋아지기도 나빠지기도 한다.
이때만일 일반인들과 실패한 사람들이 성공한 사람에게 결과(소득, 혜택, 손해)를 놓고 평등을 주장하면 어떻겠는가.

예 3) 100명이 제각각 무리한 운동이나, 위험한 시도나, 사악한 범죄나, 우둔한 짓을 저질렀다면 평등이 아니라 잘못한 결과와 크기에 의해서 인생도 미래도 좌우되어버린다.
이때 나머지 평등주의자들은 그들의 무리하고 위험하고 사악하고 우둔한 실패와 결말에 대해서 서로 잘못을 나누거나, 평등해지려고 하지 않는다.

예 4) 100명 중 선천적인 장애나, 평균 이하의 건강과 체력과 환경과 인연과 지능과 정신력과 게으름을 타고난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역시 평생을 무난하고 원망하고 적당하게 살아가려고 하는 소심하고 무능한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이들은 최선을 다해서 성공한 사람들에게 평등을 주장할 권리가 없으며, 오히려 반성하고 본받고 분발해야 한다.

예 5) 평등주의자 100명 모두가 엄마 뱃속에서 잉태를 시작으로 출생해서 무덤에 들어가는 순간까지 일평생 수많은 도움을 받아야 하고, 단 1초도 평등할 수 없고, 평등보다 중요한 것들이 훨씬 더 많다.

예 6) 세상은 고정·정지되어 있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이고 진행되고 변화되고 갖가지 현상들과 변수들이 동시에 작용한다. 그래서 100명이 모두 평등한 상황과 순간은 단 1초도 기대하기 어렵다.
물론 평등을 측정하는 객관적인 잣대는 있을 수 없고, 임의로 만들어본들 불평등의 씨앗과 뿌리가 된다.
그래서 막연하고 무책임하고 무질서하고 무원칙한 평등을 주장하기보다 자신 스스로 가치를 추구하면서 열정을 다하는 것이 훨씬 더 소중하다.

여덟째, 불평등을 줄이고 평등으로 바꿔 가려면

평등을 들먹이면서 불평등에 대한 불평과 불만과 원망과 시기와 질투와 비난과 투쟁과 적개심과 적대감을 조장하는 것은 평등을 방해함은 물론 평등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들을 망치고 허물어뜨리게 된다.
왜냐면 불평등을 줄이고 평등을 확대하려면 훨씬 더 월등한 인간애와 열정과 의지와 과정을 대가로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평등에 대해서 부정적인 태도로 불신을 조장하는 사람은 밤을 강제(투쟁)로 밀어내야만 낮이 찾아온다고 주장·선동·착각하는 것처럼 무지와 억지와 사기와 궤변과 위선과 역적 중 하나다.
이는 세상사와 인간사의 이치를 순환과 교차와 조화와 상생과 보완 관계가 아니라 대립과 투쟁으로 바라보면서 독재로 치닫는 전초전이다.
세상사와 인간사는 너무나 맑고 투명하고 정교해서 밤이 낮으로 바뀌는 과정에는, 불의를 줄이고 정의를 세우는 과정에는, 불평등을 줄이고 평등을 확대하는 과정에는, 간섭과 통제를 줄이고 자유를 보장하는 과정에는 참으로 냉철하고 따뜻하고 진지하고 성숙한 과정이 동반되고, 동반되어야 한다.
그래서 잘못된 문제와 범죄와 사람과 정책일지라도 바로잡거나, 개선하려면 갖가지 관점과 고민과 연구와 시간과 논의과정을 거쳐야 하고, 해결 가능한 방안들을 수립해야 하고, 또 다른 시행착오와 부작용들을 예상해서 감당하고 극복해야 한다.

아홉째, 위대한 사람들이 우리에게 평등을 요구한다면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뉴턴이, 상대성이론을 발견한 아인슈타인이, 질량보존의 법칙을 발견한 라부아지에가, 주기율표를 만들어낸 멘델레예프가 세상이 불평등하고 불공평하다고 불평하면서 다른 사람들도 합당한 뭔가(발견, 발명, 업적, 공헌, 희생)를 이뤄내라고 요구하면 어떻겠는가.
역시 위대한 업적(발견, 발명)의 결실(소득) 대부분을 자신들이 차지하는 것이 공정하고 평등하다고 주장하면 어떻겠는가.
세상과 인간을 위해서 희생하고, 발견·발명하고, 개척하고, 모험하고, 도전하고 희생했던 훌륭한 사람들이 평범한 우리에게 비행기와 컴퓨터와 휴대폰 등을 직접 만들어서 잘 먹고 잘살아보라고 주장하면 어떻겠는가.

열째, 모두가 평등하면 원시시대와 원시인을 면하기 힘들어

모든 인간이 평등한(똑같은) 조건(신체, 외모, 지능, 집중력, 인간성, 인연, 환경, 건강, 능력, 본능, 감각, 감정, 생각, 인생)을 가졌다면 세상에는 다수가 존재할 이유도 필요도 없을 것이다.
아마도 세상에는 인간이 한 명만 존재해도 될 것이고, 다수가 존재해본들 소나 돼지처럼 수량과 중량의 합계가 달라질 것이다. 왜냐면 아무리 무리(숫자)와 중량이 많아져도 개성과 존엄성과 다양성이 생겨날 수 없고, 조화와 균형과 평등도 무의미하고 무가치하기 때문이다.
역시 이러한 주제와 이야기도 불가능해지고, 더 나은 세상과 사회와 문화와 미래와 인생과 추억과 관계도 무의미해질 것이다.

『‘만민평등’(모두가 골고루 잘 사는 평등)을 주장하는 사람은 갖가지 모순과 궤변과 위선과 억지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왜냐면 자기보다 현명한 사람들의 월등한 능력과 훌륭한 업적과 위대한 생애와 억울한 희생과 의로운 고통처럼 훌륭하고 난해하고 극한의 인물(업적, 인생)과 평등해지려면 무척 힘겹고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역시 자기보다 어려운 사람들과 평등해지려면 자기 것을 나눠야 한다. 그래서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과 약자들과의 평등은 상상도 하지 않는다. (물론 겉과 속이 정반대로 위선과 궤변과 조작으로 똘똘 뭉친 일명 ‘강남좌파’라는 특권세력도 있지만) 실제로 ‘만민평등’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자기 수준 이상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미안함도 고마움도 모른 채 마치 당연한 진리와 인간미처럼 “인간이 평등해야 한다.”고 착각하고 주장한다. 특히 자신보다 훌륭하고 월등한 사람들에 대해서 자신보다 좋은 환경과 인연과 기회와 행운을 만난 것으로 여기고, 더욱더 평등을 주장한다. 그래서 이들은 자기보다 월등한 사람들에게 감사·지원하지 않으며, 자기보다 열악한 대상(약자들)에게도 죄송함을 모른다. 앞으로 우리는 입으로만 평등을 주장·장담하는 사람들을 바보나, 속물이나, 세상과 인간과 사회와 인생을 동물 수준의 지옥으로 전락시키려는 수준임을 알아야 한다.』

『오직 불평등한 세상은 없고, 오직 평등한 세상도 없다. 이런 세상과 생각은 상상에 그쳐야 하고, 이런 주장은 말장난에 불과하고, 이런 속임수(사기꾼, 위선자, 위정자, 독재자)를 쓰는 사람들은 물론 쉽게 속아 넘어가는 사람들은 불평등보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이고 문제아다.』

『모두가 골고루 잘 사는 평등한 세상(사회, 국가)을 주장·장담하면서도 적극적인 고민과 연구와 대안을 내놓지 않거나, 곧바로 불평등한 현실(사회, 나라)을 불평하거나, 재벌 등 특권층에 대한 원망과 불신과 불만과 적개심을 조장·선동하거나, 빈부의 차이로 연결해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체제를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세상도 인간도 사회문화도 인간관계도 절대 평등할 수 없고, 평등해서도 안 된다. 겉으로 똑같게 보이는 사자들과 말들과 강아지들도 태생부터 죽는 순간까지 모두와 똑같은 평등은 불가능하다.』

『인간은 자기보다 이하의 것들 곧 범죄와 범죄자들, 좋지 않은 사건과 사고들, 볼거리와 먹거리와 놀거리, 참담했던 과거의 잘못들, 애완동물들, 참담했던 과거(잘못)에 여력(관심, 정신, 체력, 비용)을 쏟거나, 소모하면 안 된다. 왜냐면 인간이 자기수준 이하의 것들에 여력을 소모하면 할수록 존엄성에서 멀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세월이 흐를수록 감각화·본능화·감정화·짐승화되어갈 위험(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발전이 아니면 퇴보이고, 중도(정지, 정체) 역시 퇴보다.’라고 한다. 그래서 인간은 언제 어디서나 항상 자기보다 월등한 것에 관심과 애정과 열정과 후원을 당연시해야 한다. 그래야 전체적으로 평균이 올라가고, 불평등이 줄어지고, 건전한 사람들과 유능한 인재들이 탄력을 받게 된다. 이것이 세상에 긍정적이고, 인간에 우호적이고, 서로에게 협조적인 자세와 관계와 인생과 바람직한 사회문화다.』

저자 최익주 선생은 전남 목포 출생으로 목포북교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광주광역시로 이사해서 북성중학교, 동신고등학교, 조선대학교 경영학과(78학번)를 졸업했다.

군생활을 오산비행장 방공포부대에서 병장 만기 제대, 3년간의 개인 사업을 했으며, 관세사무소에서 16년 동안 사무장으로 지내다가 광주세관과 관세청과 부정비리 문제로 싸움(형사소송)이 시작되었다. 대한민국의 실체와 실상을 깨닫고 인생을 180도 선회. 이후 밑바닥부터 다시 터득하고 통달해야 한다는 각오로 시민단체(2-3년), 택시기사(2년 6월), 생산공장과 건물경비(10년여)를 전전하면서 노동자 생활을 해왔다.

저서로는 <이제는 바꿔봅시다(1997.7.30.)> <대화로 여는 새아침(1999.9.20.)> <사랑하는 선·순·아에게 제1-4권(2018.7.13.)>이 있다.

다음은 “22. ‘죄는 미워하되 인간은 미워하지 말라.’와 ‘문재인의 ‘적폐청산’” 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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