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 칼럼] 설날과 녹두빈대떡

구정 명절을 쇠기 위해서 장을 보러 갔다. 그런데 물가가 어찌나 올라 있던지 장을 보기가 겁이 날 정도였다. 해마다 설이나 추석같은 명절이 돌아오면 우리집에서 꼭 해먹는 음식이 있다. 그것은 바로 녹두 빈대떡이다.

우리집은 다른 음식은 생략해도 이것 만은 꼭 해 먹는다. 나는 녹두를 구입하려고 마트에 갔다. 깐녹두 500그램 한봉지에 일만구천원인가 하는 가격표가 붙어 있다. 내 기억으론 작년에 비해 깐녹두 값이 두배나 올라 있는 가격이다.

나는 깐녹두봉지를 들고 한참을 망설였다. 이렇게 가격이 비싸진 깐녹두를 사서 녹두빈대떡을 꼭 해야하나? 에이~ 올해는 녹두전 부쳐 놓은 것을 시장에서 그냥 몇 장 사다먹고 때우고 말까? 나는 잠시 고민이 되었다. 그런데 깐녹두 가격만 오른 것이 아니다.

과일 야채 무엇하나 안오른 것이 없다. 하다못해 늘 양념으로 써야 하는 대파 한단도 평상시보다 두배 정도 올라 있었으니 말이다. 누군 그럴 것이다. 그렇게 비싸면 안 사먹으면 되지라고… 하지만 그게 말처럼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니다.

모처럼 명절에는 가족들이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내기 위해서 모이는 것이다. 그리고 모인 가족이 함께 전에 즐겨 먹으며 추억을 가졌던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것이야말로 큰 기쁨이다. 그러므로 가족들이 즐겨 먹는 음식을 명절에 장만하는 것은 가족 사랑을 위한 필수품목이다.

사실 손이 많이 가는 명절 음식은 명절에만 해먹게 되지 평상시엔 거의 잘 안만들어 먹는다. 녹두 빈대떡이 바로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올해도 녹두빈대떡은 깐녹두 값이 비싸더라도 꼭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망설임끝에 단호하게 깐녹두 500그램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녹두 빈대떡에 반드시 들어가야 제 맛이 나는 돼지고기 다짐육과 녹두나물도 샀다. 이제 녹두 빈대떡 재료를 다 샀으니 설 명절 맞을 음식 준비는 다 한 셈이다.

이처럼 녹두빈대떡 하나만 부쳐 먹어도 설음식을 다 먹었다고 할만큼 우리 집은 명절엔 다른 음식은 안할지언정 녹두 빈대떡은 꼭 해 먹는다. 나는 설 전날에 대구에서 올라오는 아들의 도착 시간에 맞추어 녹두빈대떡 부칠 준비를 하였다.

왜냐하면 녹두 빈대떡이 가장 맛있을 때는 따끈하게 막 부쳐냈을 때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틀전에 녹두빈대떡 부칠 재료 준비를 다 해 두었다. 하지만 아들이 오면 금방 구어낸 녹두 빈대떡을 먹이고 싶어서 녹두 빈대떡을 부치지 않고 미루고 있었다.

돼지고기 다짐육에 파마늘 참기름 후추등 갖은 양념을 해서 버무려 놓고 숙주도 깨끗이 씻어서 냉장고에 보관해 두었다. 녹두도 진작에 불려서 역시 냉장고에 보관해 두었다. 이제 아들이 들어오면 즉석에서 다 준비해 둔 녹두빈대떡 재료를 꺼내어 만들기만 하면 된다.

설날 하루 전날밤 8시가 좀 넘어서 아들이 집에 도착한다는 전화를 해왔다. 나는 곧 녹두빈대떡 부칠 준비를 시작 하였다. 불려논 찹쌀을 믹서기에 먼저 갈기 시작 하였다. 전에는 대부분 녹두만 갈아서 빈대떡을 부쳤었다.

그런데 올핸 찹쌀을 한홉정도 물에 담가 불렸다. 찹쌀 가루를 넣으면 녹두빈대떡 양이 좀 많아진다. 또 찹쌀이 들어가면 쉽게 부서지는 녹두가루를 끈끈하게 만들어 주어 빈대떡이 부서지지 않고 더 잘 부쳐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믹서기에 불려논 찹쌀을 넣어서 갈아낸 후 불려논 녹두를 갈았다. 잘 불려진 녹두는 금방 갈아졌다. 스텐으로 된 큼직한 양푼에 돼지고기 다짐육 양념한 것을 넣고 그 위에 잘 갈아진 찹쌀과 녹두 갈은것을 쏟아 부었다.

대파를 좀더 다져 넣고 녹두나물 씻어 놓았던 것을 넉넉히 넣어서 잘 섞었다. 이젠 넓은 팬에 기름을 두르고 부치기만 하면 되었다. 후라이팬도 명절때만 꺼내 쓰는 커다란 지짐용팬을 꺼내서 가스렌지에 올렸다. 자이제 드디어 녹두 빈대떡이 만들어 지는 순간이다.

두 개의 후라이팬에 녹두 빈대떡이 노릇노릇 맛갈스럽게 익어 갈때쯤 아들이 지하주차장에 도착했다고 전화를 걸어왔다. 나는 부지런히 상을 차렸다. 낮에 끓여 두었던 오징어무우국과 배추김치 그리고 막 구어낸 녹두빈대떡을 차려 주었다.

아들은 녹두 빈대떡 두장을 먹고 밥도 함께 먹어서 배불러서 더 못 먹겠다고 하더니 결국 녹두 빈대떡 한 장을 더 먹고야 만다. 하하 배불러도 녹두 빈대떡은 너무 맛있는 걸 어떡해… 그런 아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씩 소리 없이 웃는다.

그런데 녹두 빈대떡은 반드시 양념 간장을 찍어 먹어야 더 감칠맛이 난다. 진간장에 고추가루 마늘다진 것과 파다진 것을 듬뿍 넣고 참기름과 참깨를 넣어서 만든 양념장에 갓 구어낸 녹두 빈대떡을 찍어서 먹으면 정말 미각을 돋우어 준다.

이미 저녁 식사를 마친 남편도 녹두빈대떡을 석장이나 먹는다. 그리고도 부족한지 남편은 “나 조금 있다가 녹두빈대떡 더 먹을거야” 한다. 나는 속으로 명절인데 오늘 만큼은 살찐다고 잔소리 하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한다.

남편은 설겆이를 도와 주고 나더니 녹두빈대떡 두 장을 더 먹는다. “올해 녹두빈대떡은 정말 특별하게 맛있네 아주 환상적이야”하는 칭찬까지도 아끼지 않은 채 말이다. 나는 그런 남편의 모습에 내심 흐믓해지며 보람을 느낀다.

왜냐하면 비싼 깐녹두를 살때부터 올해는 녹두빈대떡 만들기를 생략할까 하는 생각을 했었기 때문이다. 결국 가족들이 맛있게 먹게 될 녹두 빈대떡을 만들기로 결정하고 재료들을 준비한 것이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이처럼 우리 가족들은 명절 하루전날 가족의 전통음식인 녹두빈대떡을 구어 먹으면서 행복한 시간을 가졌다. 녹두 빈대떡을 먹는다는 것은 단순히 부침개 하나 먹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녹두빈대떡을 먹으며 가족들은 각자 따뜻한 가족애의 추억을 떠올릴 것이기 때문이다.

명절에 부모님이 계신 집에 오면 맡게 되는 녹두빈대떡 냄새는 곧 고향의 냄새 부모님의 냄새 그리고 가족공동체의 냄새이다. 사실 이번 설명절에는 아들 하나만 집에 오니 많은 식구들이 모이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녹두빈대떡을 굳이 만들었다.

어머니와 남편과 아들을 위해서 만들기도 했지만 딸에게 보내주고 싶어서였다. 코로나로 인해서 못오기도 했지만 또 셋째 아이를 임신중이어서 이래 저래 힘들기도 해서 친정에 오지 못한 딸에게 녹두빈대떡을 보내 줄 계산까지 다하고 녹두빈대떡을 만들었다.

큰딸도 녹두 빈대떡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명절에 집에오면 금방 만든 녹두빈대떡 대여섯장 정도는 너끈히 먹어치운다(내가 부치는 녹두 빈대떡 한 장은 작은 손바닥 만한 사이즈로 양이 그리 많은 것은 아니긴 하지만 말이다).

명절에 노릇하고 바삭하게 구어진 녹두 빈대떡을 양념장에 찍어서 먹되 나박김치와 함께 먹으면 정말 일품이다. 산뜻한 나박김치와 함께 녹두전을 먹으면 부침개의 특성상 좀 느끼한 맛도 얼마든지 커버가 된다.

한주간 전 쯤 담가 논 불그레 핑크빛이 도는 국물의 나박김치가 막 맛이 들어서 시원하면서도 개운했다. 나박김치는 부침개를 먹은 뒷맛을 느끼하지 않게 깔끔하게 해 주기 때문에 녹두빈대떡과는 최고의 음식 궁합인 것 같다.

이번 구정에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내가 특별하게 마음을 써서 만든 녹두빈대떡을 온 가족이 앞다투어 맛있게 먹어 주어서 기분이 참 좋다. 나의 수고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행복한 명절을 보내게 되어 매우 기쁘다. 그리고 내년에도 녹두 빈대떡 부치는 건 잊지 말아야지 다짐해 본다.

“이에 내가 희락을 찬양하노니 이는 사람이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해 아래에는 없음이라 하나님이 사람을 해 아래에서 살게 하신 날 동안 수고하는 일 중에 그러한 일이 그와 함께 있을 것이니라(전 8:15)”

나은혜 선교사(지구촌 선교문학 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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