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 칼럼] 아내를 행복하게 하려면

앗~ 도마를 놓고 무에 칼질을 하던 남편이 칼을 놓고 자기 손가락을 붙잡더니 응급약상자가 있는 곳으로 재빠르게 걸어간다. “왜요? 손 다쳤어요?” 내가 놀라며 남편에게 다가갔다. 남편 손가락에서 칼에 찢겨진 상처로 인해 피가 흐르고 있었다.

얼른 소독을 하고 반창고를 붙였다. 이제 손을 다쳤으니 남편은 더 이상 나를 도와줄 수가 없다. 남편이 손에 밴드를 붙이고 자신의 서재로 들어간 후 나는 남편이 자르다가만 무를 잘랐다. 그런데 이 무는 나박김치 재료니까 깍두기 보다 더 가늘고 납작납작하게 썰어야 한다.

지난 12월에 우리 집 김장을 적지 않게 담근 것 같은데 어느덧 김치 냉장고엔 배추김치만 남았다. 알타리김치도 10킬로그램 담갔는데 알타리김치 한통이 다 바닥이 났다. 백김치도 10킬로그램 한통을 담갔었는데 백김치 두 쪽만 남아서 거의 다 먹었다. 조금 담갔던 쪽파김치는 벌써 떨어졌다.

15킬로그램이나 담갔던 꽤 많던 동치미도 다 먹고 어제 김치통을 닦았다. 이제 남은 것은 배추김치하고 갓김치가 좀 남았다. 어른만 세식구라서 그런지 우리 집은 김치를 정말 잘 먹는 것 같다. 그나저나 아직도 겨울은 한참 남았는데 배추김치만 먹다가는 그것도 금방 떨어질 것 같다.

나는 아무래도 무 종류의 김치인 알타리 김치를 한통 더 담가야 할 것 같아서 마트에 갔다. 그런데 가을보다 총각무 가격이 배나 올라 있고 알타리단은 더 작아져 있다. 겨울이라 야채 값이 아무래도 비쌀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옆에 보니 제주무우를 박스로 파는 것이 보인다. 큰 무가 열 개 정도 들어 있는데 2만원이 채 안되었다. 제주 무를 한 박스 사서 알타리김치 대신에 깍두기를 담가 먹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트 직원이 제주무우는 단단하고 맛있다고 한다. 그래 그럼 이번엔 깍두기를 한번 담가보자.

무 한 박스와 새우젓과 파를 사 가지고 집으로 돌아 왔다. 아직은 겨울김치니까 부드럽게 익도록 깍두기에 찹쌀풀도 쑤어 넣고 새우젓 멸치액젓 파 마늘 생강 고춧가루 매실액기스를 넣고 깍두기를 맛있게 담가 놓으면 든든한 밑반찬으로 3월 달까지도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깍두기는 칼질을 많이 해야 한다. 무를 잘게 깍둑썰기로 썰어서 담가야하기 때문에 팔 힘이 많이 필요하다. 나는 최근에 왼쪽 팔꿈치 관절이 아파서 무거운 것을 들으려면 통증을 느꼈다. 때문에 겁이 나서 선뜻 깍두기 담기를 시작하지 못하고 무를 박스에 넣어둔 채로 하룻밤을 재웠다.

하지만 저 많은 무를 그대로 둘 수도 없었다. 무척 큰 무여서 냉장고에 넣는다고 해도 두세 개 밖엔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천상 빨리 깍두기를 만들어서 김치냉장고에 보관해야 할 텐데… 하지만 나는 선뜻 깍두기 담기를 시작하기가 좀 부담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남편에게 도움을 요청하자 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보! 깍두기 담가야 하는데 내가 팔이 아프거든. 무를 깍둑썰기로 잘라만 주면 되는데 좀 썰어 줄래요?” 하고 서재에 있는 남편을 불렀다. 남편은 흔쾌하게 “오케이~”하며 자신의 방에서 나와서 주방으로 걸어왔다. 드디어 나의 든든한 지원군이 온 것이다.

나는 무를 꺼내어서 무껍질을 벗겨내고 씻어서 남편에게 넘겨주었다. 아일랜드 식탁 위에 수건을 깔고 도마를 얹어 놓아 주고는 나는 모범적으로 무를 잘라서 남편에게 보여 주었다. 요만 요만한 크기로 자르라고 말이다. 그렇게 지침을 안 주면 남편은 아마도 깍두기를 너무 큼직하게 자를 수 있기 때문이다(예전에 그런 적이 있었다).

차분한 남편은 천천히 정성스럽게 무를 썰기 시작했다. 커다란 무를 우선 둥글게 일정한 간격을 맞추어 썰어서 쌓아 놓고 둥글썰기 한 무를 하나씩 놓고 가로 세로로 여러 번 칼질을 해서 정사각형 모양으로 자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깍두기를 썰고 있는 남편을 바라보니 마치 수학 공부하는 학생 같다.

내가 모범으로 보여준 조그만 네모 무 조각을 두 조각 앞에 놓고는 남편은 무척 신중하게 깍두기 크기를 제도 하듯이 하며 그 무우조각 두 개를 앞에 놓고서 거기에 무 크기를 맞추면서 무를 열심히 깍둑썰기로 집중하며 자르고 있는 모습이 자못 진지하기 조차하다.

그렇게 남편은 한참을 수고하였다. 드디어 남편의 도움으로 커다란 무 6개를 다 깍둑썰기 하였다. 두개의 스텐으로 된 뱅뱅돌이에 깍둑썰기한 작고 네모난 무가 가득 담겼다. 그것을 보고만 있어도 나는 벌써 깍두기를 다 담근 것처럼 뿌듯하고 기분이 좋았다. 나는 굵은 천일염 소금을 깍둑썰기한 하얗고 네모난 무위에 술술 뿌렸다.

그런데 거기까지만 했으면 남편이 피를 보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남편은 내가 썰어 달라고 준 큰 무 6개를 다 썰고는 내가 저쪽 주방 싱크대에서 썰다가 다른 일 때문에 잠시 일손을 놓고 있던 나박김치용 무를 가져다가 자신이 썰으려고 하였다. 그러다가 손을 베는 사고가 난 것이다.

나는 깍두기 써는 것은 남편에게 맡겨 놓고서 큰 무 한개와 쌈배추 한통 그리고 당근 한 개를 썰어 넣고 나박김치를 만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잠시 자리를 비웠다. 그런데 나박김치용 무 썰기는 깍둑썰기 보다 더욱 고난도의 기술을 필요로 한다.

사이즈는 깍두기 정도이지만 그것을 더욱 엷게 저며서 썰어야 한다. 나박김치는 무가 두껍게 썰어지면 맛이 별로이다. 가능한 무를 아주 얇게 썰어서 함께 넣은 쌈배추 조각과 불그레한 김칫국물과 함께 떠먹어야 사박사박하고 맛있다.

아무튼 내가 썰다가 잠시 멈추고 있는 나박김치용 무를 남편은 가져갔다. 나를 도우려고 그런 것이다. 그리고 나박김치용으로 무를 잘게 썰다가 그만 손을 벤 것이다. 나에게 나박김치용 무를 잘라도 되느냐고 물어 보고 하지 않고서 말이다.

만약 남편이 나에게 깍두기용 무는 다 썰었으니 나박김치용 무를 썰어도 되느냐고 물었으면 나는 하지 말라고 했을 것이다. 위에서도 언급 했듯이 나박김치용 무 썰기는 보다 섬세하고 얇게 썰어야 하기 때문에 깍둑썰기 보다 칼질이 어렵기 때문이다.

자, 여기서 주방의 진정한 실력자는 아내라는 것이 드러난다. 적어도 주방에서 만큼은 남편은 아내를 능가하지 못한다. 쌀 씻어서 밥을 안쳐 놓고 국을 끓이고 동시에 나물 데쳐 무치고 생선 굽고 볶음반찬도 한두 개 만들고 멀티시스템으로 팽팽 돌아가는 아내의 매일의 식사준비는 그야말로 전투준비와 같다.

그러나 어쨌든 지금은 내 남편이 손을 베었다. 다 내 잘못이다. 왜냐하면 늘 사용하던 주방 칼은 좀 무디어져서 그렇게 날카롭지는 않았다. 그런데 나는 아주 잘 드는 새칼을 남편에게 건네준 것이다. 많은 양의 깍두기를 썰으려면 남편이 힘들 것 같아 잘 드는 칼을 준 것인데 그만… 그 칼이란 놈이 무나 썰지 않고 내 남편의 손을 베다니…

이쯤에서 우리가 분명히 알게 되는 것이 있다. 주방에서 쓰는 칼의 주인이 누구인가? 하는 문제이다. 우리는 흔히 칼은 강도의 손에 들리면 살인 무기가 되고 엄마의 손에 들리면 가족들의 건강을 책임지는 맛있는 요리를 만드는 기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칼이 분별없는 아이의 손에 들리면 그야말로 자해가 되는 사고가 일어난다. 얼마 전에도 큰딸이 들려준 이야기가 있다. 딸의 지인이 부엌칼을 놓고 부주의한 사이에 그 지인의 어린 딸이 싱크대에 기어 올라가서 칼을 만져 그대로 손을 베어서 병원 가서 여러 바늘을 꿰매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무튼 남편은 그 위험한 주방 칼을 익숙하게 놀리지 못하면서도 아내인 나를 도왔다. 깍두기 무는 다 썰고 나박김치 무를 썰다가 비록 손은 베었지만 남편 K선교사는 아내인 나의 남편감정통장에 예금을 많이 해 둔 결과를 가져왔다.

그런데 인생을 살면서 살펴보면 아내를 아끼는 남편이야 말로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왜 그런가 하면 결국 나이 들면 애지중지 키웠던 자녀들은 다 자라서 부모의 둥지를 떠나가고 두 부부만 남게 되기 때문이다.

어느 날 문득 나는 생각해 보았다. 늙어서 가장 행복한 남자는 어떤 사람일까? 평생 쓸 만큼 돈을 많이 벌어 논 남자일까? 아니면 친구가 많은 남자일까? 그러다가 나는 늙어서 가장 행복한 남자란 아내와 함께 오손도손 살고 있는 남자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결혼 하지 않은 사람이나 이미 한쪽이 이 세상을 떠난 사람은 해당되지 않겠지만 말이다.

젊어서 너무 고생을 많이 한 여자는 나이 들면 골병이 들기 쉽다. 그래서 늘그막에 오래 앓아 눕거나 아니면 남편 보다 일찍 세상을 떠난다. 그런데 그렇게 혼자 남은 남편의 삶은 아내가 떠난 다음부터 그야말로 고단해진다. 아내와 함께 살고 있을 때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이 계속 발생하는 것이다.

대개 여성의 평균수명이 더 길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특히 젊어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너무 고단하게 산 여성의 경우 그 생명이 단축되는 경우가 많은 것을 나는 종종 보아왔다. 아내가 너무 고생하여 일찍 떠나면 홀로 남은 남편은 대단히 불행해진다. 그야말로 생고생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 가운데 남성 특히 현재 남편의 위치에 있는 분들이 있다면 아내를 위한 봉사에 몸을 사리지 마시라고 권하고 싶다. 당신의 아내는 만능 가사노동의 철인 5종 경기 우승자가 아니다. 여성은 나이 들면 특히 팔 힘이 약해진다. 대부분 팔 힘이 필요한 가사일은 그래서 남편의 도움이 더욱 필요하다.

그런데 남편은 결국 자신의 아내를 아끼는 것이 바로 남편인 자신의 앞날의 행복을 위한 확실한 투자라는 것을 머지않아 곧 깨닫게 될 것이다. 아무쪼록 이 땅의 남편들이여! 자신의 아내를 도와주고 힘써 아껴 주시기 바란다. 비단 깍두기 썰기만 아니라 집안일은 정말 해도 해도 끝이 없다.

청소기를 돌리는 일도 팔의 근육이 약한 아내보다는 남편들이 더 잘 할 수 있는 일이고 쓰레기 버리는 일, 화장실 청소하기, 아이들과 놀아 주고 아내를 쉬게 해 주는 일은 아내를 건강하게 만들고 그 얼굴에 여유로운 미소를 띠게 만든다.

남편의 배려로 아내가 건강하고 아내가 잘 웃는 집은 행복한 집이다. 그와 반대로 남편이 두려워서 말은 못하면서도 마음에 불만과 불편함이 있는 그런 아내는 얼굴에 미소를 지을 수가 없을 것이다. 아내의 행복은 곧 가정의 행복이라고 할 만큼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

남편인 당신이 아내를 행복하게 해 주기로 결단한다면 무엇을 어떻게 도와주어야 할지가 잘 보일 것이다.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가사일은 그냥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라 가사노동이라는 것이다. 아내보다 힘이 세게 태어난 남편인 당신이 이제 그 힘을 마음껏 발휘할 때가 왔다.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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