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 칼럼] 어머니의 설빔

구정을 앞두고 우리 어머니에게 뜻밖에 설빔이 생겼다. 그건 아주 고상한 라이트그레이(밝은회색)색상의 겨울 패딩이다. 그 옷은 실용성 있게 후드 모자가 달려 있다. 그리고 종아리까지 길이가 내려오는 따뜻하고 포근해 보이는 패딩(padding:옷을 만들때 오리털이나 솜을 넣어 누벼 만드는 옷)이다.

우리 어머니의 옷장에는 오래전에는 유행 했었지만 지금은 잘 안입는 옷들이 몇개 들어 있다. 매우 비싸 보이는 털코트도 있고 니트웨어로된 묵직한 코트도 있지만 어머니는 그런 옷은 전혀 입지 않으신다. 왜냐하면 그런 옷들은 멋스럽긴 하지만 우선 무겁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내가 모시고 있는 수년간 거의 그런 옷들은 한번도 걸쳐본적 조차 없다. 오히려 최근 몇 년동안 어머니는 내가 사드린 가벼운 패딩 긴코트와 점퍼식 오리털 점퍼를 주로 입으셨다. 노인에게 있어서 옷이란 우선 실용성이 좋아야 한다.

노인의 의복은 가볍고 따뜻한 것이 가장 좋은 옷이다. 그래서 우리 어머니는 겉옷으로는 겨울용 오리털 점퍼와 긴패딩을 번갈아 입으시면서 수 년동안 혹한의 겨울을 보냈다. 사실 어머니의 외출이라야 매일 주간보호센터를 가시는 것이지만 말이다.

그런에 이번 설날을 앞두고 뜻밖에 새 패딩이 생긴 것이다. 그것도 아주 우연한 기회에 주어진 선물이었다. 사실 우리집 형편은 가족 누구라도 새 옷을 선뜻 사입을 정도로 여유가 있지는 않다. 새옷을 산다는 것은 아무튼 비싸기 때문에 살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바로 어머니의 설빔은 당근마켓을 통해서 주어진 뜻밖의 선물이었다. 어느날 나는 당근 마켓에 올라온 물건들을 보고 있었는데 바로 내가 어머니에게 사 드린 패딩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그런데 가격이 말도 안되는 가격이었다 단돈 삼천원!!

당근 마켓에 올라와 있는 물건들은 새것도 있지만 대부분 중고 물건이다. 그렇지만 입던 옷이라도 겉옷은 보통 만원 혹 이만원 이렇게 가격이 올라와 있고 고급스럽고 질이 좋은 새옷 같은 경우는 수만원에서 수십만원까지도 나와 있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불과 삼천원에 겨울용 긴 패딩이라니… 그것도 상품 설명을 읽어보니 새옷이라는 것이다. 옷 주인이 상품을 소개 하면서 자신의 어머니에게 패딩을 사 드렸는데 안 입으셔서 내 놨다고 설명이 붙어 있었다.

그러면서 옷을 입어 보다가 주머니가 튿어진 흠이 있어서 그냥 싸게 삼천원에 내 논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얼른 구매신청을 하고 사겠다고 예약을 했다. 패딩을 파는 사람은 내가 사는 같은 동네의 다른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었다.

나는 약속을 하고 도보로 걸어가서 옷을 받아 가지고 왔다. 나는 고마운 마음에 잔돈을 바꾸면서 샀던 포도제리 한봉지를 옷을 가지고 나온 아가씨에게 건네었다. 패딩옷을 가지고 나온 아가씨도 뜻밖의 나의 호의에 만면에 웃음을 띠고 고마워 했다.

패딩은 옷걸이에 걸린채로 나에게 전달 되었다. 예쁜 옷걸이 인데 옷주인은 옷걸이도 그냥 가져 가시라고 한다. 나는 옷을 집에 가지고 왔다. 그리고 곧바로 패딩의 주머니 상하로 튿어진 부분을 꼼꼼하게 꿰매었다.

패딩 양쪽 주머니를 단단하게 박음질 방식으로 바느질했다. 자, 이제 드디어 어머니의 설빔이 완전하게 준비되었다. 저녁에 주간보호센터에서 집으로 돌아온 어머니에게 새로 사와서 내가 바느질로 손질을 한 패딩을 입혀 드렸다.

그런데 그옷은 마치 어머니를 위해서 준비된 옷인양 기가 막히게 우리 어머니에게 딱 잘 맞았다. 남편 K선교사도 옆에서 지켜 보다가 감탄을 한다. “야~ 어머니 정말 잘 어울려요. 참 멋지고 근사하네요.”

이젠 늙으셔서 키가 줄었어도 160센티가 넘는 큰 키의 어머니는 체구도 적당 하셔서 날씬한 편이다. 스타일이 좋은 어머니는 어느 옷을 입어도 잘 어울린다. 내가 구입해 온 패딩은 색상이나 디자인 어느 면에서나 손색없이 어머니에게 잘 어울렸다.

나중에 남편은 만면에 웃음을 띠면서 나에게 넌지시 그런 말을 한다. “어머니 입으시는 겉옷이 몇년 되어서 사실 하나 새로 사 드렸으면 하는 생각을 내심으로만 가지고 있었어… 그런데 당신이 이렇게 어머니에게 잘 어울리는 옷을 구해왔네”

평소엔 여간해서 자기 속을 잘 드러내지 않는 남편도 이번엔 속 마음을 드러낸 셈이다. 아마 남편의 내심에 어머니에게 겉옷 하나 사 드렸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번에 당근 마켓에서 내가 구해다가 어머니에게 드리게 된 따뜻하고 포근해 보이는 패딩이 남편은 퍽이나 마음에 들었나 보다.
우리 부부가 치매를 앓는 어머니를 돌보는 데는 몸으로 하는 수고와 함께 적지않은 비용이 들어간다.

사람이 살아가는데는 먹는 것 입는 것 그리고 생필품과 소모품들이 필요하다. 집에 한 사람이 늘어나면 전기세 수도세도 확 달라진다. 아기가 하나 있으면 그 조그마한 아기를 키우는데 드는 비용은 정말 만만치가 않다.

스스로 기본적인 생리현상을 처리하지 못하는 노인을 모시고 사는 것도 아기 키우는 것과 똑같다. 아기를 키울때 기저귀가 필수품이듯이 우리 가정에 날마다 필요한 필수품이 바로 어머니를 돌보는데 필요한 성인기저귀와 패드이다.

그런데 이것도 가격이 만만치가 않다. 요즘은 어머니의 상태가 더 심해져서 더 기저귀를 많이 사용하게 되어 기저귀 구입 비용이 늘어났다. 집에서도 필요하지만 주간보호센터에도 성인기저귀를 한통씩 사서 보내 주어야 한다.

한번에 몇 만원씩 성인용 기저귀를 구입해도 요즘은 금방 떨어진다. 그러니 기저귀 사는 비용도 우리집 형편에는 큰 부담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날 당근 마켓에 성인용 기저귀와 패드 사진이 올라왔다.

기저귀가 상당히 많아 보이는데 어림잡아 10만원 이상 될것 같았다. 그런데 2만원에 가져 가라는 것이다. 나는 속으로 저 댁에서 노인을 모시다가 아마 돌아가셔서 필요없어졌나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웬지 숙연한 마음이 들었지만 내가 당장 필요하니 성인 기저귀를 사겠다고 구매의사를 밝혔다.

마침 같은 동네여서 자동차를 가지고는 갔지만 금방 도착했다. 성인 기저귀와 패드를 자신의 차에 싣고와서 내게 전달해 준 분은 남자 분이었다. 96세 장모님을 모시고 살았는데 치매와 노인 질환으로 걸을 수 없게 되어서 요양병원에 모시게 되었다고 한다.

내가 짐작했던 것처럼 돌아가셔서 필요 없어진 성인 기저귀는 아니었다. 병원에서 다 충당이 되니까 미리 많이 사놓았던 기저귀며 패드가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노인용 워커와 목욕용 의자까지도 차에 싣고 와서 성인용 기저귀와 함께 나에게 건네 주었다.

노인 모시는데 필요할 것이라고 하면서… 당근마켓 거래는 그래서 단순히 중고 물건을 사고 파는 것 뿐이 아니다. 자신들이 애정을 가지고 사용하던 물건을 누군가에게 넘겨 주면서 상대방을 생각하는 마음, 즉 그 안에 서로의 사정을 생각하는 인간애가 흐른다.

나는 자동차에 성인용 기저귀를 가득 싣고 돌아오면서 은근히 흐믓한 기분이 들었다. 한동안 성인용 기저귀값이 들어가지 않을 것이기에 말이다. 누군가 했던 말이 기억이 난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으면 없는 사람도 다 살기 마련이라고… “

실감이 나는 말이다. 이처럼 당근마켓을 통해 어머니를 모시는데 꼭 필요한 물품들을 최근에 이것 저것 채움받은 나에겐 심히 공감이 되는 말이다. 기저귀를 싣고 운전을 해서 집으로 오면서 문득 내 모습이 성경에 나오는 이방여인 룻의 모습과 흡사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룻은 시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남의 밭에 나가 이삭을 주어서 곡식을 만들어 시어머니를 섬겼다. 나는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서 동네 여기 저기를 다니면서 겉옷을 구해오고 성인용기저귀를 구해오고 있지 않은가?

룻은 먹거리를 나는 의복류를 구하는 것이 내용이 다르긴 하지만 나보다 약한 노인을 돌보는 정신과 정성은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 새로 구해드린 패딩을 입고 주간보호센터에 가시는 날 어머니는 매우 기분 좋은 모습으로 흡족해 하셨다.

주간보호센터에서 돌아온 어머니가 새패딩옷을 벗어서 이리 저리 만져 보신다. 나는 그런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어머니의 눈빛에 따뜻한 미소가 서려 있다. 포근한 은회색의 새 패딩을 다시 쓰다듬어 보는 어머니의 손길에 행복바이러스가 넘실거린다.

“이에 룻이 보아스의 소녀들에게 가까이 있어서 보리 추수와 밀 추수를 마치기까지 이삭을 주우며 그의 시어머니와 함께 거주하니라(룻 2:23)”

나은혜 선교사(지구촌 선교문학 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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