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 칼럼] 트롯과 경제의 상관관계

음악은 시대정신을 반영한다고 한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가장 핫한 장르의 음악이 있다면 트롯(트로트)이 아닐까 싶다. 특히 트롯을 하는 가수 가운데 어린이들이 상당 수 있어서 대중들은 그들의 깜찍함과 귀여움때문에 더욱 트롯에 빠져드는 것 같다.

거실에서 트롯가수의 노래를 듣던 어머니가 나를 보고 턱짓으로 남편의 서재 쪽을 가르치셨다. 그러더니 어머니는 나에게 “아저씨(당신아들)오라고 해 이거 함께 보자구” 하신다. 나는 웃으며 “안올거예요.” 했다. 그러자 어머니는 또 재촉을 했다. “아저씨 오라고 해 잠깐 보고 가면 좋잖아.”

내가 어머니의 재촉에 못 이겨서 결국 남편을 불렀다. “여보! 어머니가 좋은 노래 나온다고 와서 함께 듣자고 하셔요.” 그러자 남편은 아무 대꾸도 없다. 나는 어머니에게 “그것 보셔요. 애비는 자기 일이 있어서 안와요.” 하고 설명을 해 드렸다.

그런데 어머니는 아무래도 안 되겠는지 “내가 가서 불러 와야지.” 하시면서 소파에서 일어 나시더니 균형이 맞지 않는 걸음걸이로 기우뚱 기우뚱 걸어서 아들의 서재가 있는 방으로 가신다. 아들의 방문을 열고 뭐라고 하셨는지 모르지만 어머니는 혼자 돌아와 앉으면서 중얼거렸다.

“에이~ 아저씨 안온대. 잠시와서 함께 보고 가면 좋잖아” 우리 어머니는 요즘 트로트에 빠져 있다. 방에서 주무시다가도 김태연의 ‘바람길’이 들리면 너무 소리가 좋아서 나왔다며 거실로 나오실 정도이다. 올해92세이신 어머니의 시대엔 트로트가 당연히 유행이었을 것이다.

유명한 트로트 가수들 중에 많은 분들이 소천했지만 아직도 여전히 노래를 부르는 노장 트로트 가수들도 많다. 그런데 최근 인기를 얻으며 활동하는 트로트 가수들은 기성세대 가수들이 아니다. 젊은이들이 대부분이고 아예 어린이들, 중고생들도 많다.

나 역시 트로트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었다. 원래 음악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주로 클래식을 즐겨듣고 경음악을 주로 듣는 나였다. 그렇다고 어떤 가수를 콕 찝어 팬이 되거나 한적은 없었다. 그런데 어느날 와이타임즈라는 유튜브 뉴스를 보는데 편집인이 그런 말을 했다.

자기는 다른건 몰라도 미스터 트롯은 꼭 본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들은 것이 아마 작년 추석이 되기 전쯤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관심을 가지고 유튜브에서 트롯을 찾아서 들어 보았다. 미스터 트롯에서 한참 활동을 하고 있는 어린 소년 정동원의 노래를 듣게 되었다.

그런데 이 소년이 어찌나 노래를 잘하는지 트로트 가사의 호불호를 떠나서 일단 그 소년이 노래를 참 잘한다는 것에 점수를 주고 몇곡을 찾아 들었다. 정동원이 부른 노래 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보릿고개’와 ‘여백’이다.

부모가 일찍이 이혼해서 할아버지 할머니 밑에서 자란 정동원은 어쩌면 조부모밑에서 자랐기에 저처럼 어린 나이에 가수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돌아가신 정동원의 할아버지가 노래를 매우 잘할뿐만 아니라 노래를 좋아하는 분이었다.

그는 어린 손자를 데리고 노래자랑 같은 대회를 찾아 가기도 했고 손자를 세워서 노래를 하게 하기도 했다. 그리고 손자에게 음악적 재능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노래연습할 장소를 마련해 주고 색소폰을 가르쳤다. 그렇게 손자를 거의 국민손자(가수)의 반열에 올려놓고 할아버지는 안타깝게도 폐암을 앓다가 돌아가셨다.

그렇게 내가 트로트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때 추석무렵에 언텍트(비대면)공연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나훈아씨의 공연을 텔레비젼을 통하여 지켜 보았다. 특히 그가 부른 수많은 노래중에 ‘테스형’이라는 신곡은 그 공연이 끝난 후에도 하늘 높은줄 모르고 인기가 치솟아 올랐다.

수 없이 많은 가수들이 ‘테스형’을 리메이커 해서 노래를 불렀다. 심지어 ‘테스형’ 노래를 가르치는 노래교실 까지도 여러개 온라인에 등장했다. 그리고 그 다음에 트로트계를 떠들석하게 한것은 미스트롯일 것이다.

미스트롯엔 특히 중등생인 전유진, 초등생인 김다현, 김태연 같은 여학생과 여자 어린이 가수들이 등장하여 인기를 한 몸에 받았다. 그중에서도 나는 김태연 어린이의 트로트 노래를 들으며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국악 신동으로 불리는 태연양은 이미 성인보다도 더 감정이 풍부하여 깊은 감성과 곡해석 그리고 노래의 기교 등으로 정평이 나 있다. 미스터 트롯 미스 트롯을 통털어 981점 이라는 가장 높은 심사위원들의 점수를 받았을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이처럼 트롯이 국민들에게 어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트롯의 가사는 대부분 서정적이기도 하지만 대개는 원망스럽고 슬프고 한스러운 가사가 많다. 한이 많은 노래이기에 매우 충만한 감성을 가지고 불러야 사람들의 마음을 울린다.

20여년전 우리 가족이 선교지에 들어갔을 때이다. 그때가 97년도였는데 그 나라는 우리나라가 한참 발전 도상국일 때 유행하던 노래들이 한참 유행이었다. 특히 외국 팝송들은 완전히 우리나라에서 내가 청년 때 음악다실이나 베이커리에서 듣던 음악들이었다.

‘해뜨는집’ 이라든가 엘비스 프레슬리가 불렀던 ‘고향의 푸른잔디(green green grass of home)는 내가 청년시절 많이 듣던 팝송들이다. 그런데 선교지의 시장통에서 거리에서 이런 노래들이 흘러 나오고 있었다. 남편 K선교사는 흥미로워했다. “우리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온 것 같아 하하하…” 정말 그런 느낌이었다.

그때 우리가 갔던 그 나라는 개방한 지 얼마 안되어 경제가 막 발전하기 시작한 때였다. 나는 그때 알게 되었다. 나라의 경제적 발전과 대중음악이 함께 간다는 것을… 지금 우리나라는 경제가 어려워 지면서 사람들의 마음은 가난해지고 있다.

그래서 템포가 느리고 가사마다 절절이 한이 많이 서린 슬픈 트로트에 매력을 느끼는 것은 아닐까? ‘보릿고개’ ‘대전부루스’ ‘간대요글쎄’ ‘바람길’등등…그 쓸쓸하고 구슬픈 노래를 열살도 안된 어린이가 어른보다 더 구성지게 불러서 사람들은 감동하고 또 환호하지만 나는 왠지 슬프다.

아이들이 불러야 할 노래가 아닌데 싶어서 말이다. 아이들은 아이들의 정서에 맞는 동요를 불러야 하지 않을까?”꽃과 같이 곱게 나비같이 춤추며 무럭무럭 크는 우리~” 이런 동요처럼 자기 나이에 맞게 노래도 불러야 하고 공부도 해야 하고…놀기도 해야 하고 같은 또래끼리 경쟁도 해야 하고…

그런데 어른들 틈에서 놀라운 가창력으로 트롯을 부르는 어린 가수들을 보면서 노래를 잘 부르는 것에 대해서는 나 역시 감탄을 금할길 없지만, 왠지 마음 한구석에선 근심이 되기도 한다. 어린이들의 구성진 트롯 노래에 마냥 환호하는 사회의 관심에도 저으기 염려가 앞선다.

어제 점심후 남편과 모처럼 찾아갔던 우리동네 유일한 빙수집이 문을 닫는다고 한다. 나는 마음이 안 좋았다. 그래서 나는 빙수집 사장님에게 말을 건넸디. “조금만 더 견디어 보시지요. 코로나도 곧 끝나겠지요. 이 옆에 영화관도 곧 오픈하면 김포 젊은이들이 다 몰려올텐데… 그때가 되면 이 빙수집이 제일 잘 될거예요.”

나의 간곡한 권면에도 사장님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마음이 아팠다. 특별한 날 멀리 안가고도 집 근처에서 인절미 팥빙수를 즐길 수 있었는데 이젠 그런 호사도 못 누리겠구나… 하는 마음과 함께 소상공인들의 비명소리가 이곳 저곳에서 들리는 것만 같았다.

이틀전인가도 남편과 함께 교회에서 기도하고 집에 돌아 오다가 나는 뜬금없이 팥죽이 먹고 싶다고 했다. 그러자 남편은 오늘 우리가 갔던 빙수집을 비롯해 파리바케트, 뚜레주레등 동네에서 단팥죽을 팔만한 곳을 다 둘러 보았지만 단팥죽은 팔지 않았다.

그러자 남편은 “저어기 쎄븐일레븐에 가볼까 비슷한 거라도 있는지…” 24시간 하는 그 편의점엔 공장에서 나온 인스턴트 단팥죽을 팔았다. 단팥죽을 사면서 나는 주인에게 말을 걸었다. “많이 어려우시지요? 알바도 못 쓰시고 사장님이 직접 파시네요.”

그러자 그 편의점 사장님은 자신의 형편을 알아주는 내가 고마웠든지 마음에 있는 말을 했다. “많이 어려워요. 누구에게나 할말은 아니지만 저 사실 우리집 알바보다도 수입을 적게 가져간 달도 많아요. 에휴~ 어쩌겠어요 버텨야지요”

24시 체인점들은 완전히 소매점이기도 하지만 뭐든 조금씩 비싸다. 수퍼에서 파는 가격보다 훨씬 비싸게 양반밤단팥죽을 두개 샀지만 남편과 나는 돌아오면서 작은 것이지만 우리가 단팥죽을 사기를 참 잘했다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편의점 사장님이 조금이라도 위로 받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아무튼 우리나라 경제는 많이 어렵다. 방송국에선 트로트 가수들을 내세워 화려한 트롯대회를 열고 우승자에게 왕관을 씌워주고 상금을 내 걸지만 국민들의 삶은 팍팍하기만 하다. 그 팍팍한 삶을 위로 받고 싶어서 트로트의 한맺힌 가사가 주류인 트롯을 듣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한을 달래려고 말이다.

어서 우리나라 경제가 회복되어서 경제 발전에 부응하는 활발하고 진취적이고 템포가 빠른 음악들이 유행되었으면 좋겠다. 트롯이야 경제가 어떻든 언제나 변함없는 팬들이 있기 마련이니까. 생전 듣지도 않던 트롯을 어머니 때문에 텔레비젼을 켜 드리다가 들으면서 트롯과 경제의 상관 관계에 대한 소고를 다 써 보았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 우리의 구원의 반석을 향하여 즐거이 외치자(시95:1)”

나은혜 선교사(지구촌 선교문학 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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