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승훈 칼럼] 두 가지 관점

여승훈 목사(남가주 보배로운교회)

어제는 전도 대상자에게 복음을 제시하는 과정에서 매우 단순하면서도 현실적인 문제에 대하여 언급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자신은 영생 같은 것은 관심이 없다 하면서 자신이 관심 있는 것은 지금 현재 자신의 현실 생활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가라고 말하였습니다. 이것은 많은 현대인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생각이라고 봅니다.

그런 현대인들의 생각에 대하여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말로 설명해 주는 것 뿐 아니라 실제로 그런 삶을 살고 있는지 여부를 점검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전도 대상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해서는 믿지 않기 때문에 눈으로 볼 수 있는 현실세계에서 무엇인가 뚜렷하게 나타나야 된다는 생각 입니다.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특징은 모든 소망의 근거를 눈에 보이는 환경에 두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일이 형통하면 소망을 있다고 말하고 일이 형통하지 못하면 소망이 없다고 말합니다. 시련이 없고 평탄한 날이 찾아오면 소망이 있다고 말하고 시련이 찾아오면 소망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 진리는 눈에 보이는 환경에 소망을 두라고 말하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면 일이 형통할 때나 일이 형통치 않을 때나 시련이 없을 때나 시련이 찾아왔을 때나 변함없이 소망을 가지고 넉넉히 이기는 자로 살아가게 됩니다.

이 세상은 크게 두 가지 관점을 가진 사람들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환경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과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비록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육신은 철저하게 눈에 보이는 환경에 지배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눈에 보이는 환경에 대한 관점과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대한 관점 사이에서 끊임없는 영적 갈등을 겪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영적 갈등에서 눈에 보이는 환경에 대한 관점으로 우리의 마음이 기울어지면 낙심하고 절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대한 관점으로 우리의 마음이 기울어지면 낙심과 절망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승리자로 살아가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의 마음이 매우 중요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마음이 어떻게 하면 눈에 보이는 환경에 대한 관점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로 기울어질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믿음’ 입니다. 다시 말하면 눈에 보이는 환경에 지배받는 우리의 연약한 육신을 붙들어 주시는 하나님의 손을 붙잡는 믿음 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를 붙들어 주시기 위해서 손을 내밀어 주고 계십니다. 우리는 단지 우리를 위해 이미 내밀어준 그분의 손을 잡기만 하면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깊이 되짚어 보아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위해 이미 내밀어준 하나님의 손을 잡는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에 대한 이해입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우리를 위해 이미 내밀어준 하나님의 손을 붙잡는 것입니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우리가 그분의 손을 붙잡을 수 있는 것입니까? 성경 말씀을 통해서 계시된 하나님의 존재와 활동을 모든 상황 가운데서 인식함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내밀어준 손을 붙잡을 수 있습니다.

모든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이 존재하시는 살아계신 분임을 인식하는 것과 또한 그분은 우리를 위해 활동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믿음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가도록 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확실한 것이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환경 가운데서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땅으로 나아갈 수가 있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대한 소망으로 살아가는 믿음으로 노아는 모든 사람들이 죄악 가운데 살아가고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120년이란 오랜 세월동안 방주를 지을 수 있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대한 소망으로 살아가는 믿음으로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은 세상의 온갖 핍박과 박해로 인하여 비참하게 죽어가면서도 낙심과 절망 대신에 승리자로 확신을 가진 채로 죽어갔습니다. 결국 죽음의 순간에도 승리자로 확신을 가지며 죽어갈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을 붙들어 주시는 하나님을 인식하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를 붙들어 주시는 하나님을 인식하는 믿음이 우리 모두에게 절실히 필요 합니다. 그 믿음은 구체적으로 하나님이 존재 하시는 살아계신 분이라는 인식과 그 하나님은 모든 상황 가운데 활동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의 활동을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묵상하기를 소원 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어느 때나 존재 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언제나 어느 때나 활동 하십니다.

오늘도 이렇게 외치고 선포하며 나갑시다. 예수님은 나의 하나님, 나의 구세주, 나의 삶의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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