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현 칼럼] 영화 미나리 유감…반 기독교적 메시지에 대해

미나리 사진=인스타그램/페이스북

이 영화를 성령님이 보게 하시고, 이 영화를 논하게 된 이유는 각종 국제영화제 75관왕 157개 노미네이트에, 심지어 아카데미상 유력시(6개 부문 후보)되는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감독님이 정이상(Issac Jung)이니 신앙인이신 것 같고, 미국이나 한국의 신앙인들이 이 영화를 “기독교가치를 담은 좋은 영화”라고 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천만의 말씀입니다. 아주 교묘하게 기획된, 사단의 교회 부수기와 기독교 뭉개기 영화라고 저는 단언합니다. 신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어 보이는 배우들의 표정, 시나리오 곳곳에 의도적으로 배치된 핵심메시지(대사)들, 허무를 담아 유통하는 카메라 앵글의 가증한 작동 등…!

연기들은 물론 아주 잘 했습니다. 감독과 각본의 의도를 어쩌면 그렇게 잘 묘사했는지요.

이 영화가 던지고 싶은 메시지는 몇 가지로 요약됩니다. 첫째, 교회와 설교는 인간의 실존과 근본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둘째, 그럴듯한 포장에 가려졌을 뿐 기독교는 단지 귀신을 쫓는 퇴마사와 인간의 두려움을 일시적으로 은폐하는 나약한 자들의 종교일 뿐이다. 셋째, 기독교와 예수는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존재다. 넷째, 보이지 않는 것보다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다섯째, 허무를 이기는 것은 오직 인간의 육적인 합심(合心)과 이성적인 지혜의 총량뿐이다.

미 기독교매체 <크리스천 헤드라인>은 “전형적인 기독교관을 나타나는 종교영화는 아니지만, 제이콥과 모니카(남녀 주인공 이름)는 예상치 않은 기독교적 축복을 경험했다. 가족 친화적인 영화이고 인내와 희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물론 정신 차리지 않고 무심코 보면 누구나 이런 오류에 빠질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함정입니다. 이것이 적들의 노림수입니다. 악한 세력들은 이 시대 미디어와 엔터테인먼트를 장악하여 우리의 영과 혼을 뒤흔들어 놓습니다. 아주 치밀하게 정조준 합니다.

감독이 의도했든 안했든 이 영화는 반기독교적 메시지를 던지기 위해 처음부터 의도된, 기획의 산물이라고 저는 단언합니다. 감독의 어린 시절 자전적 영화라서 무언가 리얼리티가 더해지고, 불필요한 영화적 군더더기가 없어 보이는 영화적 출중함은 갖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다른 복음’을 전하는 영화입니다. 복음의 순수성에 물탄 복음을 전하는 ‘다른 복음’의 코드입니다. 코로나19 이후로 새로운 질서를 선포하고 강권하는 어둠의 세력들에게, 매우 거치적거리는 기독교세력을 대적하는 영화입니다.

[갈]1: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갈]1:8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갈]1:9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갈]1: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건너간 젊은 남녀부부(제이콥과 모니카)의 갈등 해결사이자, 힐링 해법의 제시자로 할머니(모니카의 친정어머니/윤여정)가 등장합니다.

문제는 이 할머니의 입을(대사) 통해 새로운 아메리칸 드림(적들이 말하는 인류의 진정한 뉴월드 오더)이 제시된다는 것입니다.

아메리칸 드림이 신기루임을 두 남녀 한인을 통해 적나라하게 폭로합니다. 물론 아무리 성경적 기반을 두고 예배에 집중을 해도, 인간들의 추구와 공동체에는 언제나 어두운 면이 있고, 때로 갈등이 중첩되어 가고, 쉽게 돌파되지 않는 삶의 난관들이 불청객처럼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이 모든 문제를 기독교와 예수라는 이에게 교모하게 돌립니다.

힘없는 늙은이들의 경로당 잔치 같은 예배의 모습, 무시로 방언을 하고 귀신을 쫓는 폴(Paul)이라는 노인의 퇴마사 같은 모습, 하나같이 속물 같고 너나없이 유약하며 이슬람보다 하등한 율법에 묶여 생을 고뇌하며 퇴락해가는 3류 인생들로… 기독교인들의 실상을 그려갑니다.

감독이 제시하는 것은, 결국 미나리가 해법입니다. 어디서든 잘 자라는 미나리! 왕성한 번식력의 미나리! 흙의 속성을 민첩하게 파악하고 흙에 철저히 동화되어 흙의 생을 찬양하며, 그 향기를 물씬 풍겨내는 땅과 말착된 미나리!

미나리를 미국에 전파하는 이 할머니도 좀 당황스런 할머니입니다. 쿠키를 잘 굽고 손주를 잘 돌보는 자상한 할머니가 아니라, 화투를 가르치고 헌금을 훔치며 돈이나 잘 챙겨주는 할머니!

아이러니하게도 아주 현실적인 이 할머니가 지혜로운 표상이요, 신기루와 허무를 쫓아내는 연륜 있는 돌파의 귀감이자 모범으로 제시됩니다.

희생도 아니요, 섬김도 아니요, 그저 흙적인 해법과 육적인 술수에 탁월한 지혜와 역량을 가진 이 할머니가, 결국 실수로 불을 냄으로 말미암아 두 부부의 묵은 갈등과 분열이 해소되는 웃지 못 할 영화적 장치는 참으로 가증합니다.

다민족 이민사회이자 ‘Melting Pot’ 이라고 불리는 미국인이라면 누구나 한국가족의 짠내 물씬 한 좌충우돌 이민이야기가 공감대를 얻기에 충분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테마를 끌고 와서 스크린을 통해 들려주고 싶은 제작진의 숨은 의도는 무엇일까요?

새 시대를 열고자 하는 세력들은 “우리가 판을 깔아놓으면 이렇게 미나리처럼 음습한 곳 저변에서 소리 없이 순응하며 땅벌레처럼 번식하며 살아라..!” “너희는 흙이니 흙처럼 그저 무성하게 뿌리를 내리고 살아라..!” 라고 지시, 강요하는 듯 합니다.

눈에 보이는 돈과 번식의 결과로서의 딱 먹을 것만큼의 주어진 양식과 그에 대한 기꺼운 감사, 그리고 너희는 다 한 가족이니 아웅다웅 함께 누워(영화의 말미에 바퀴달린 집 마룻바닥에서 온 가족이 체념한 듯, 함께 누워 자는 컷이 등장) 삶은 그런 것이려니 체념하고 따지지 말고 주어진 질서에 순응하고 살아라…! 이것이 이들의 메시지인 듯 합니다.

영화배우 브래드 피트가 제작을 했다고 합니다. 휴머니즘을 주창하는 그가 해석한 ‘다른 복음’의 나름 신선한 콘셉트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미디어를 잡고 있는 적그리스도세력은 이처럼 꾸준히 줄기차게, 아주 전략적으로 기독교에 물타기를 합니다. 새로운 기독교를 제정하려 합니다. 모든 종교를 통합하려 합니다.

그렇습니다. 종교통합의 교본으로 제시된 영화가 바로 ‘미나리’입니다.

1776년 건국된 미국의 건국이념이자 정신이자 뿌리인 성경적 가치와 인애, 그리고 주님 아래 하나의 몸으로 연결된 ‘킹덤 패밀리’의 근간을, 이 영화는 단호히 거부합니다. 애초부터 부정합니다. 나름대로 대안(代案)을 제시하고자 하나, 그 의도가 무척이나 사악합니다.

기독교와 자본주의의 결합은 실제로 아플 수밖에 없습니다, 몸살이 나게 되어 있습니다.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신실한 신앙인들이 풀어가야 할 과제이자, 우리에게 주어진 거룩한 담론입니다.

이 땅은 불안정하고 부조리하며 그렇기에 주님의 말씀으로 경작해야 하며,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가정, 종교, 문화, 정치, 경제(비즈니스), 교육 등 이른바 7대(8대) 영역들을 가나안 정복전쟁을 하듯, 우상을 섬멸하며 새롭게 기경해야 할 영역들입니다.

빛으로 갈아엎고 생명의 씨앗을 심으며 하나님의 법도로 추수할 때까지, 인내하여 수고해야 마땅한 땅입니다. 그렇게 묵은 땅이 생명의 땅으로 바뀔 때, 비로소 땅과 하늘은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되어 갈 것입니다.

할머니 윤여정의 입을 통해 새롭게 신봉할 가치라는 것은, 기독교의 창의적이고 공격적이며 혁신적인 요소들을 버젓이 경멸하며 조소(嘲笑)합니다.

‘아칸소’라는 땅은 원래 미국 남부의 바이블벨트 지역입니다. 캘리포니아에서 교회 공동체가 싫어 떠났지만 또다시 교회를 가고 싶어 하고 예배를 사모하는 모니카, 결국 이단과 같은 퇴마사 이미지의 폴을 식사에 초대하고 집안의 악령을 쫓는 모습들, 주일이면 예배당대신 허허벌판 아칸소를 나무 십자가를 지고 고행(苦行)을 하는 폴의 모습을 통해, 기독교는 저급한 종교로 처참하게 짓밟힙니다.

영화 초반부터 등장하는 한국사람(조연으로 등장)이 있는데, 모니카가 왜 아칸소에는 교회가 없냐는 질문에 냉소적인 표정으로 “여기 온 한국인들은 한국교회를 떠나서 이곳에 온 이들이에요” 라고 대답합니다. 정말 작의적이고 악의적인 인서트 컷(insert cut)입니다.

“얘..! 기도해주지마! 천국 안 봐도 돼” 하며 손주 데이빗(David)을 꼭 안아주는 할머니의 모습은 인본주의의 대표적인 장면, 즉 우리말로 ‘뽕필’을 자극하기에 충분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다음세대를 대표하는 손주 데이빗에게 이 말을 하는 장면을 삽입한 의도는 살짝 소름이 돋습니다.

실제로 이 영화는 반기독교적 메시지를 녹여내기 위해 철저히 계산된 카메라웤과 대사들로 꽉 들어찬 아주 노랗게 농익은 영화입니다.

특히 이 영화는 그릇된 가족애를 조장합니다. 언뜻 보면 아름다워 보이는 가족에 같아 보이지만 한국적이고 전통적인 가족애도 아닙니다. 아메리칸드림이 녹아있는 초기 미국의 기독교적가족에도 아닙니다. 그저 현실에 뿌리박은 삭막한 가족애, 그 칙칙하고 허무한 현실을 배태한 흙의 논리와 땅의 질서를 찬양하는, 조악하고 가난한 가족애(가족哀)일 뿐입니다.

어둠의 세력들은 이 영화를 통해 새로운 보편성을 제시하려는 것입니다. 기독교라는 이름의 새로운 삶의 가이드라인을 가르치려는 것입니다. 바로 코로나19로 덧입혀질 새로운 질서로의 편입! 그것은 바로 전체주의와 부합하는 가족애입니다.

교회와 예배와 기도의 능력을 불신함과 동시에, 그 거룩한 신성과 하늘로부터 부어지는 신선한 권능을, 검붉은 흙에 파묻고 미나리로 덮어버리려는 심산입니다.

이 영화가 웅변하는 것처럼, 가족을 지키는 힘은 육체나 지성이나 혼적인 유대감이 아닙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를 입어야 가능합니다. 전적으로 말씀이 집행되어 가족을 사랑의 법으로 통치할 때 ‘킹덤 패밀리’는 성령 안에서 하나로 지어져 가는 것입니다.

이 영화는 런닝타임 내내 싱싱함도 살아있음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에게 부여해주신 청지기의 정신과 은혜로운 돌파도 없습니다. 땅을 다스리라는 명령도 공허하며, 예배는 그저 공염불입니다.

감독과 제작진은 기독교를 많이 오해하고 있는 듯 합니다, 기독교를 한낱 종교로 폄훼하려는 것 같습니다. 기독교의 본질인 사랑과 섬김과 희생과 다스림과 통치는 아예 새로운 질서를 가로막는 늙어빠진 주검의 관속, 차디찬 미이라쯤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복음만이 언제나 새로운 질서이자 진정한 치유이자, 혁명적인 방법론이자 궁극적인 해법입니다. 말씀만이 시대를 새롭게 하고, 땅을 새롭게 기경하며, 우리가 사는 진리의 성읍(城邑)에 진정한 샬롬을 가져다 줄 수 있습니다.

혼돈과 흑암, 그리고 갈등의 증폭가운데 있는 아메리카는 새로운 대안을 찾습니다. 그것은 바로 기독교 본질의 회복입니다. 7,500-8,500만 크리스천들이 복음의 본질에 올인하는 것입니다. 이것만이 유일한 해법입니다.

동성애와 낙태, 좌파와 인종차별 등은 오직 주님의 헤세드 사랑과 그 사랑의 은혜를 체험한 이들의 부활한 삶의 증거로만 극복되고 화해되며 이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

세련되고 고상하고 매우 현실적이며 극히 이성적인 듯 하지만, 제작자 브래드 피트는 저열한 휴머니즘 추종자일 뿐입니다. 가족애를 지향하는 듯 하지만, 또 하나의 변태 전체주의자일 뿐 입니다.

이 영화 제작진들은 성경에 다소 무지하고 그저 종교에 천착할 뿐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빛입니다. 빛은 뚫고 나갑니다. 어둠을 찢습니다. 흑암의 권세를 부숩니다. 무엇이든 뚫어내는 돌파력이 있습니다. 강한 운동력이 있습니다.

이 빛을 통해서만 진정 생명이 잉태되고, 기나긴 산고(産苦)를 통해 새 생명을 출산합니다.
분별역이 어느 때 보다도 절박한 시점입니다. 분별의 눈을 달라고 성도들은 기도할 때입니다.

기독교의 핵심인 십자가 사랑을 통해 내가 죽고 예수만이 드러날 때. 진정 새로운 질서가 잉태되고 새로운 세상이 도래할 것입니다. 그것은 오직 새로운 영에 의해 시작됩니다. 영이 새로워져야 혼과 육이 새 옷을 입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골]3: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골]3:2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골]3: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골]3:4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골]3: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골]3:6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골]3:7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골]3:8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골]3:9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골]3:10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김철현 집사(아리랑컵밥 대표)

The following two tabs change content below.

편집국

시니어 타임즈 US는 미주 한인 최초 온라인 시니어 전문 매거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