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 칼럼] 기초연금과 가정경제

평소 지하철 탈 일이 그리 자주 있지는 않았지만 나는 최근에 선릉역 근처에 갈 일이 몇번 있었다. 그리고 내 생애 처음으로 공짜 지하철을 타보았다. 바로 시니어패스(경로우대교통카드)가 나왔기 때문이다.

우리집에서 기초연금 수혜자는 세사람이다. 우리 가족 100%가 기초연금 수혜자인 셈이다. 92세인 어머니는 오래전부터 기초연금을 받으셨다. 재작년 부터는 남편이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올해 내 법정 생일 한달전인 1월에 기초연금을 신청하라는 통지서가 날라왔다.

문서 작성을 다 하여 신청을 했더니 지난 3월에 생일달과 합하여 두달치인 48만원이 통장으로 입금 되었다. 월 24만원이 기초연금인 셈이다. 어머니와 남편은 매월 30만원이 기초연금으로 나왔었다.

그런데 내가 기초연금을 받기 시작하자 부부합산 48만원으로 바뀌어서 부부는 개인당 24만원씩 받게 되는 셈이다. 아무튼 세식구가 받는 기초연금은 토탈 78만원이다. 이처럼 온 식구가 기초연금을 받을 수 있는것은 생각해보면 우리나라가 이만큼 발전했고 잘 살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사회 복지가 아주 잘되어 있는 나라들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아직도 멀었지만 말이다. 나는 십여년전에 캐나다를 간 적이 있었다. 토론토는 미국의 시카고에서 가깝다. 우리 부부는 시카고 윗튼대학에서 열렸던 세계선교사대회를 마치고 캐나다 토론토에 들렸던 것이다.

나이아가라 폭포를 미국쪽에서 보는 것보다 캐나다쪽에서 보는 것이 더욱 웅장하고 멋있다고 해서 나이아가라 폭포도 볼겸 한국으로 돌아오는 일정에 캐나다에 스톱을 며칠 동안 걸어 놓고 갔던 일정이었다.

은사 목사님의 소개로 5일인가 숙소로 머물렀던 곳은 캐나다 토론토영락교회 담임목사님 댁이었다. 물론 토론토에서 남편의 신대원 동기들도 만났고 남편의 제자인 목회자도 만났다. 그런데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어마어마한 크기의 담수호인 온타리오 호수를 배를 타고 관광했던 일이다.

온타리오호수를 배를 타고 관광을 하면서 보니까 크고 작은 수없는 섬들이보였다. 그리고 그 섬들엔 예외 없이 집이 있고 사람들이 살고 있는것이 보였다. 대부분 섬엔 요트가 매어져 있었다. 그때 그 모습은 내 눈에는 마치 지상낙원 같이 느껴지는 풍경이었다.

섬이니까 요트는 교통수단이기도 하겠지만 캐나다 사람들은 은퇴후 넉넉한 연금을 받기 때문에 이처럼 섬에 별장을 짓고 요트를 타면서 인생을 즐긴다는 것이다. 나는 그말을 들으면서 우리나라는 언제나 저런 때가 올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안내해 주는 분의 이야기로는 캐나다는 복지가 잘되어 있어서 젊을때는 수입에서 많은 세금을 내지만 은퇴하고 60이 넘으면 한사람이 거의 2,000불 이상의 연금을 받기 때문에 여유로운 노후를 보내게 된다고 한다. 젊어서는 수고하지만 노년을 행복하게 살도록 설계 되어진 복지제도인 것이다.

그런 나라들에 비해서 우리나라는 아직은 많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겠으나 하지만 전체적으로 노인들을 위한 여러 혜택들이 만들어 지고 있어서 감사한 일이다. 내가 모시고 사는 시어머님만 해도 치매환자로서 주간복지센터를 나가실 수 있는 비용을 정부에서 85%정도 감당해 준다.

그리고 기초연금도 받는 어머니는 매 달 받는 기초연금으로 한주에 5일 나가시는 주간보호센터에 식사비와 간식비로 지출한다. 그래서 어머니를 모시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그래도 많이 절감되는 편이다. 아무튼 우리집은 돈을 벌어 오는 사람은 없지만 밥 은 안 굶고 잘 살고 있다.

나이가 점점 들어가도 보고 싶은 책은 안 사고는 못배기는 남편은 기초연금을 주로 책을 사 보는데 사용한다. 나는 그런 남편에 대해서 일절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책을 사보는 것이야말로 남편의 목사로서의 자긍심이고 또 유일한 취미인것을 알기에 말이다.

우리가 사는 아파트 바로 앞에 김포시에서 운영하는 도서관이 있는것이 남편에게는 또한 행복이다. 남편은 늘 도서관을 들락거리며 책을 빌려다가 보고 가져다 준다. 두 주 동안 빌려 주니까 충분히 읽을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이다. 아마도 남편을 위해서 도서관 근처인 이곳에 집을 사게 하신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나도 이제 개인 용돈이라는 것이 생긴 셈이다. 지난 주일 기초연금을 받은 첫 십일조를 48,000원 했다. 매달 나오는 연금 24만원을 과연 나를 위한 비용이 필요할때 사용해 볼 수 있을까? 하하… 하지만 그것은 미지수이다.

기초연금은 가족들 각각의 개인 용돈에 불과하기에 말이다. 가정을 이끌어 가는데는 용돈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세금, 관리비, 전기요금, 수도요금, 의료보험료, 생활비, 대출이자 등등 기초연금 으로는 어림도 없는 우리집 경제구조이다.

코로나에 정부정책에 이런 저런 이유들로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해 있고 우리집도 예외가 아니다. 살고 있는 아파트를 담보로 상당한 금액을 대출 받아서 교회및 선교회 건물을 분양했기 때문에 이자와 원금을 내야 한다.

수입은 없고 나갈것은 많을때 어떻게 하나? 남편은 기도하면 된다고 한다. 그리고 정말 열심히 기도 한다. 남편은 기도하고 나는 현실적인 해결방안을 찾아 이리 저리 궁리한다. 마치 모세가 산에 올라 두 손 들고 기도하고 산아래에서는 여호수아가 전쟁을 하듯이 말이다.

어쩌다 보니 남편이 모세의 역활을 맡고 내가 여후수아의 역활을 맡게 된 것일까? 대개 목회자의 가정에는 아내인 사모님이 기도로 지원하고 남편인 목사님이 앞서서 교회를 이끌어 가는것이 보편적인 모델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집은 선교지로 출발하기 전부터도 선교비를 채움 받는 일은 내몫이었다. 선교지에 가서도 교회개척이든 학교를 세우는 것이든 선교회 설립이든 뭐든 내가 행동대장 역활을 맡는다.

남편은 내가 일을 벌리면 처음엔 걱정하고 말리다가 나중엔 슬며시 동조한다. 다 만들어 놓으면 자기가 반대했던것을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시침 떼고 차분히 관리하고 지켜준다. 결국 남편과 나의 은사 문제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의 은사를 인정해 주고 은사를 따라 사는것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선교사로 살아가기 시작하면서 나와 내 가족의 삶(경제)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겼었다. 하늘의 만나처럼 우리에게 부어 주시는 것으로 먹고 마시고 입고 아이들의 교육까지도 다 감당할 수 있었다.

삼남매를 사립대학교인 한동대학교에 보냈는데 셋이서 4년간 다니고 졸업하느라고 들어간 비용을 언젠가 계산해 보았더니 1억6천 5백만원 이라는 어마 어마한 비용이 지출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야~ 이런 엄청난 재정을 누가 내 주었지?

우리 가정은 선교사로 출발한 지 3년만에 주후원이 끊어졌었다. 그때부턴 부정기적인 선교후원금으로 살았기에 집안에는 단 백만원의 저축도 없는 빠듯한 삶을 살고 있었는데 저 엄청난 아이들의 대학교 학비 비용을 누가 내 주었을까?

누군 누구겠는가. 우리를 선교사로 부르시고 훈련을 시키시고 선교지로 밀어 넣으신 하나님이 하신 것이지. 그래서 나는 선교사의 길을 ‘물위를 걷는 선교사’라고 정의 한다. 믿음이 없이는 도저히 갈 수 없는 길이 바로 선교사의 삶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족이 선교지에서 돌아와서도 ‘물 위를 걷는 선교사’의 여정은 계속되고 있다. 재정은 늘 부족한데도 우리 가족은 자발적인 금식을 할지언정 쌀이 떨어져서 금식을 해 본적은 없다. 그래서 참 행복하다. 쌀이 없어 금식하면 그건 금식이 아니라 ‘굶식’ 이기에 말이다.

우리나라도 언젠가는 유럽의 잘사는 복지국가들처럼 60세 이후엔 아니 경로 우대를 해주는 65세 이후부터라도 전국민이 일인당 2천불 이상의 연금을 받는 나라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지금보다 더욱 잘사는 대한민국이 되도록 더욱 간절히 기도의 손을 모아야 하겠다.

“하나님이여 나를 멀리 하지 마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내가 측량할 수 없는 주의 공의와 구원을 내 입으로 종일 전하리이다시 71:12,15)”

나은혜 선교사(지구촌 선교문학 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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