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 칼럼] 치매 어머니 맞돌보기

우리집엔 새벽부터 소란이 벌어진다. 어머니 방에 들어선 내가 남편을 부른다. 비상사태가 일어난 것이다. “여보~ 빨리 비닐봉투 하나 들고 어머니 방으로 들어오세요~” 누워서 변을 본 어머니의 뒷처리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남편이 비닐봉투를 꺼내들고 달려온다. 뒷처리는 내가 하지만 남편은 옆에서 변이 묻은 기저귀를 받아서 비닐봉투에 넣어주고 티슈로 계속 닦아내는 오물묻은 티슈를 비닐 봉투에 담아서 꼭 묶어 버려주는 일만 도와 주어도 내가 훨씬 수월해 지기 때문이다.

새벽에 한바탕 대변기저귀 처리하는 소동을 벌였는데 어머니는 아침을 드신후 또 한바탕 대변을 기저귀에 보았다. 나는 또 남편을 불렀다. “여보~ 비닐봉투 가지고 빨리 오세요~” 어머니는 이젠 화장실 드나드는 것도 귀찮아 졌는지 아예 누워서 소대변을 다 본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했던가? 최근에 남편이 어머니 시중을 드는 일을 돕기 시작하면서 내가 좀 수월해졌다. 전에는 나혼자서 어머니 돌보는 일을 처리 하곤 했었다. 특히 변처리를 할때는 그때마다 얼마나 힘이 들든지 땀이 이마에 송글송글 맺히곤 했다. 그만큼 일이 많은 때문이다.

그런데 나에게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자꾸 기분이 우울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고 집안에 환자를 두고 어디든 훌쩍 떠나 여행을 다녀올 처지도 아니었다. 그래도 견디다 못하면 한 이틀밤쯤 대구에 다녀오는 것이 전부였다.

간병에 지친 마음을 위로 받기 위해 대구의 딸네 집엘 다녀 오는 것이다. 이쁜 로아와 로이와 놀면서 한 이틀 보내면 그래도 마음이 많이 충전되는 것을 느끼곤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머니 간병을 하는데 있어서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나에게 있었다.

나는 그동안 치매환자인 어머니를 돌보는 것은 며느리인 내가 다 끌어안고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가 여성이니 천상 여자인 내가 다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렇게 간병을 혼자 감당하려고 하면서 나는 서서히 몸도 마음도 지쳐 갔던 것이다.

그러다가 주변의 권고도 있었지만 나도 이 일은 나혼자 끌어안고 가야 할 일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어머니가 아무리 여성이라도 환자이다. 그러니 간병은 아들도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런 깨달음이 있은 후에 나는 남편의 도움을 요청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랬더니 치매환자인 어머니 돌보기가 훨씬 수월해 짐을 느끼고 있다. 특히 어머니의 소변기저귀 가는 일은 혼자서도 충분히 감당이 되지만 대변은 문제가 다르다. 누군가 옆에서 신속히 도와 주지 않으면 여기 저기 변이 묻혀지기 쉽상이다. 환자가 가만히 있지 않고 움직이니 말이다.

냄새는 또 얼마나 지독한지 빨리 배변한 기저귀를 빼어서 비닐봉투에 담아 꼭 묶어 버려주는 사람이 있어야만 다른 한 사람은 환자 몸을 닦고 나머지 뒷처리를 그나마 편한 마음으로 할 수 있게 된다.

내가 혼자 감당하곤 했으니 어머니 간병의 심각성을 잘 모르고 처음엔 소원했던 남편도 이젠 그 심각성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잘 도와준다. 아내인 내가 힘들어 지쳐 있는 모습을 간간히 보아 왔으니 그도 그렇게 변한 것이다.

하지만 얼마전만 해도 남편은 어머니가 여성이어서 어떻게 할 수 없다는 점잖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나는 남편과의 대화를 통해 어머니를 모시는 것이 단순한 수발이 아니라 환자를 모시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리의 현실을 똑바르게 직시해야 함을 이야기 했다.

병원에 입원한 환자에 남자 여자가 따로 없듯이 환자는 돌보아 주어야 할 대상인것이다. 그와같이 우리가 모시고 사는 어머니도 이미 심각한 치매 환자이기 때문에 환자를 돌보는 마음으로 부부가 함께해야 한다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지 않으면 돌보던 사람이 병이 날 지경이니 말이다.

아무튼 남편 K선교사가 치매환자 시어머님 돌보기에 나와 함께 동참하고 돕기 시작하면서 나는 마음에 많은 위로가 되었다. 무엇보다도 현실적으로 실제 일처리면에서도 큰 도움이 되었다.

거의 매일처럼 빨아야 하는 어머니의 옷과 침구도 내가 세탁기에 넣어 돌리면 남편은 건조기에 넣어 말리고 꺼내온다. 우리집 베란다가 좁아서 세탁기와 건조기를 이층으로 설치했다. 아래칸에 있는 세탁기는 내가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었지만 윗칸에 있는 건조기는 키가 작은 내가 사용하기가 불편했다.

의자를 놓고 올라가서 쓸 수는 있지만 아무튼 불편했다. 또 무거운 세탁물을 꺼내는 일이 힘에 부치기도 해서 이젠 세탁물을 꺼내오는 일은 남편이 맡아 준다. 세탁물을 꺼내 오고 건조기의 먼지털기를 남편이 처리 하면 나는 꺼내온 세탁물을 접고 정리하는 일을 한다.

부부간에 집안일 협력이 이렇게 중요한 것을 예전에 미처 몰랐던것 같다. 또 음식을 만들고 설겆이 하는 일도 그렇다. 어차피 남편은 요리는 잘 못하기 때문에 식사 준비는 내가 한다. 전에는 밥도 내가 하고 설겆이 하는 것도 다 내 몫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밥을 먹고 나면 당연히 설겆이는 남편이 한다. 전에 모든 일을 나혼자 할때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호사스러운 감정이 몰려온다. 나도 대접받고 있다는 생각 과 존중 받고 있다는 감정이 들면서 마음이 편안해진다.

설겆이 하는 남편을 뒤로 하고 나는 커피 한잔을 들고 소파에 앉아서 보고 싶은 유튜브를 보거나 음악을 듣노라면 행복감이 밀려온다. 세상에…밥먹고 누군가 설겆이를 해 주니 내 몸이 이렇게 해피해 지는걸 예전엔 왜 몰랐을까? 아마 나도 나이가 들기 때문일 것이다.

치매환자 어머니의 식사 수발도 그렇다. 밥은 내가 차려 드리지만 어머니가 식사를 마치시고 나면 어머니를 얼른 화장실로 모시고 가서 틀니를 빼어 세척하고 손을 씻기고 입을 헹구는 일을 남편이 해주기 시작하면서 내가 얼마나 편해 졌는지 모른다.

처음에 나는 남편이 식사중인데 먼저 식사를 마친 어머니의 양치를 해 주러 남편이 밥먹다 말고 일어나는 일이 미안하게 여겨 졌었다. 나는 여전히 밥을 먹으면서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 미안스런 마음을 당연한 마음으로 바꾸는 중이다.

어머니를 먼저 양치시켜서 어머니 방으로 들어가시게 하고 남편은 어머니가 흘린 식탁 바닥을 물티슈를 뽑아 깨끗이 닦는다. 어머니는 아기처럼 언제나 밥을 흘리기 때문에 식탁밑 카펫트를 걷어 치운지는 오래 되었다.

치매는 92세 어머니를 점점 ‘아기화’ 되게한다. 이젠 턱받이를 해 드리지 않으면 음식물을 옷에다 잔뜩 흘려서 꼭 턱받이를 해 드려야 한다. 영락없는 아기인 것이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갓난아기 였을때는 부모가 키워주어야만 자라날 수 있다.

그래서 우리가 어버이날 부르는 노래는 자녀를 키워내는 부모를 기리는 마음이 절절한 꼭 맞는 노래이다. “낳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 하시네~”

이 세상의 어느 인간도 이러한 부모의 헌신과 희생없이 저홀로 쑥쑥 자라난 사람은 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 모든 것을 잊고 산다. 아니 굳이 기억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저마다 저 잘나서 자랐고 공부했고 성공했다고 여기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치매 어머니를 돌보는 일은 부모님의 은혜를 잊고 살던 나에게 다시 부모님 은혜에 감사 하도록 기회를 주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 어머니가 치매로 인해 아기처럼 되어가면 갈수록 내 마음엔 어머니를 향한 긍휼과 연민이 가득해져 감을 느낀다.

어제만 해도 목욕을 안한다고 떼를 쓰는 어머니에게 나는 지고 말았다. 죽어도 목욕을 안하겠다는 것이다. 어떤땐 밥을 안 먹겠다고 떼를 쓰고, 어떤땐 주간보호센터에 안가겠다고 떼를 쓴다. 어머니의 그런 모습은 꼭 어린아이 다름아니다.

어머니의 나이 92세에서 90세를 빼면 딱 맞을것 같은 어머니의 행동이다. 대부분 어머니의 떼쓰기에 내가 져 주지만 두가지 만은 나도 절대 양보하지 않는다. 하나는 어머니가 식사를 안하겠다고 떼를 쓸때이다.

남편은 내가 집에 없을때 어머니가 밥을 안먹겠다고 하면 점잖게 따라 준다. 나는 집에 돌아와 남편에게 한마디 한다. “여보 다른것은 몰라도 어머니 밥을 거르게 하는 것은 절대 안돼요. 노인의 힘은 밥인데 젊은사람 한끼 굶는것과는 다른거예요.”

어느듯 간병학원 다녀본 적도 없는 나지만 전문 간병인이 다 된 모양이다. 환자에 대한 이해도가 상당히 높아져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떼쓰는 어머니에게 허용하지 않는 다른 하나는 어머니가 주일날 교회에 안가겠다고 할 때이다.

어머니와 십여분을 실랑이를 벌이더라도 나는 어머니를 꼭 모시고 주일예배에 간다. 교회까지는 집에서 걸어가도 오분 거리 이지만 어쩔 수 없이 차를 운전해서 어머니를 모시고 간다. 어머니는 다리가 약해져서 이젠 걷는 것도 점점 힘들어 하시기 때문에 가까운 거리이지만 차에 태워 모시고 가는 것이다.

선교지에서는 전도하기 위해 현지인들을 위해 봉사하던 내 삶을 하나님은 이제 고국에서 늙으신 시어머니를 위해 봉사하도록 계획 하셨다고 나는 믿는다. 무슨 일이든 하나님이 하라고 주신 일이면 제일 좋은 일임에 틀림없다.

만약 나와 같은 입장에 있는 가정이 있다면 부부가 꼭 함께 하면 좋을 것이다. 아내를 도와주는 남편이야말로 가장 현명한 남편이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 아내가 있어야 집안이 환히 빛나기 때문이다. 아내는 곧 집안을 비치는 해(아내—>안해)이기 때문이다.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3:7)”

나은혜 선교사(지구촌 선교문학 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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