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 칼럼] 토마토와 선견지명(先見之明)

평소보다 좀 일찍 잠자리에 들었더니 나는 이른새벽인 세시에 잠이 깨었다. 어머니가 주무시는 방으로 가서 기저귀를 교체해 드렸다. 침대패드까지도 다 젖어 있어서 옷과 패드를 다 갈아 드리고 꼭두새벽부터 빨래감을 한보따리 들고서 베란다로 갔다.

너무 이른 새벽이라서 세탁기를 돌려도 될까 잠시 생각에 잠겼지만 오물 묻은 이부자리와 옷을 빨리 깨끗하게 하고 싶어서 세탁기에 빨래감을 넣고 버튼을 눌렀다. 베란다니까 아래층집에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진 않을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조금 있으니 남편도 일어나서 자신의 서재로 들어간다. 그리고는 기도 하기 위해서 컴퓨터를 켠다. 나는 따뜻한 물 한잔을 머그잔에 담아서 가져다 주고는 거실로 나와 있는데 남편이 나를 부른다. “여보! 이리와 봐요.” 나는 무슨일인가 하고 남편의 서재로 들어갔다.

“내가 당신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는 제목인데 한번 읽어 봐요. 그리고 더 추가할 제목이 있으면 이야기 해 줘요.” 한다. A4 두장 반 정도에 나를 위해서 남편이 매일 기도하는 기도제목이 빽빽하게 적혀 있다. 한번도 나에게 자신이 나를 위해 기도하고 있는 내용을 보라고 한 적이 없는 남편이었다.

나는 내심 나를 위해 저렇게 기도해 주는 남편이 있으니 나는 잘될 수 밖에 없겠구나 하는 흐믓한 심정이 되어서 다시 거실로 나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내가 문득 깨달아지는 것이 있어서 남편의 서재로 들어갔다.

“여보, 내가 왜 전에도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예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했잖아요? 했다. 남편은 벌써 알아듣고 “그랬지, 예를 들면 우리가 선교지에 있을때 주말에 하던 한글학교 아이들에게 당신이 영국 갔다 오면서 선물을 기가 막히게 딱맞게 준비해 왔던 일이라던가…”

남편은 내가 미래를 예견하여 한 일들 가운데 그 일이 가장 뇌리에 남아 있는 모양이었다. 왜 안그렇겠는가? 남편은 천상 교육자이니 말이다. 40세에 신학대학원을 입학하기 전까지 남편은 고등학교 교사로 16년을 일했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기 위해 교사직을 버렸으니 백묵을 집어 던지고 신학교에 들어 간 것이다. 남편은 그렇게 생각했단다. 내가 신학교에 들어 왔으니 이제 목사로 살아야 할테고 다시는 백묵을 집을일이 없겠구나 라고 말이다.

그러나 우리 생각은 하나님의 생각과 다르다는 것을 얼마 안가서 곧 깨닫게 되었다. 남편이 목사안수를 받고 선교지로 파송받아 간 선교지는 자유롭게 복음을 전할 수가없는 사회주의 나라였다.

그래서 선교사도 직업을 갖고 있어야 안전하게 신분 보장을 받으면서 전도할 수가 있었다. 남편은 결국 현지대학교에서 한국어 교수가 되어 외국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기 위해서 다시 백묵을 잡았다.

나는 선교지에 와 있던 주재원들의 자녀들을 가르치기 위한 주말한글학교를 만들었다. 매 주 토요일 아이들을 모아서 학년별로 한국에서 국어교과서를 공수 해다가 아이들을 가르쳤다. 물론 주재원 가운데 선생님들을 뽑아서 학년마다 담임을 세워서 가르친 것이다.

나는 교장이 되어 한글주말학교를 운영했다. 그러던중에 프랑스에서 내가 속한 교단 선교회 임원들의 회의가 있어서 참석하게 되었다. 프랑스에 갔다가 회의를 마치고 나는 프랑스 리옹에서 테제베(시속270km의고속전철)를 타고 영국 런던으로 갔다.

영국에서 한주간의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기 위해서 런던공항으로 나갔다. 런던공항면세점은 자질구레한 소액으로 살 수 있는 물건들로 가득하다. 지인에게 들은말로는 영국을 다녀가는 사람들이 유로화를 한푼도 남김없이 다 쓰고 가게하기 위한 상업전략이라고 한다.

그래선지 아이들 학용품이며 필통이며 여러가지가 죽 나열되어 있는 면세점이 일반시장을 방불케하였다. 나는 주말학교 아이들에게 선물을 좀 사야겠다고 생각을 하고는 학용품가게에 들어섰다. 교장선생님이 외국출장 다녀 오면서 빈손으로 가면 안될것 같아서였다.

큰 여유는 없었지만 나는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패션 연필을 샀다. 장신구가 달려 있는 멋진 연필이어서 값도 싸지는 않았다. 우리 주말학교 아이들의 숫자를 정확하게 알고 있던 나는 아이들 숫자에 맞추어 연필을 주문했다.

그런데 다음 순간 내 마음에 연필을 하나 더 주문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런데 계산상으로는 연필을 하나 더 살 이유가 전혀 없었다. 정확하게 아이들에게 한 개씩만 주만 되는데 내 마음은 자꾸만 하나를 더 사는쪽으로 기울었다. 결국 연필 하나를 더 사서는 포장을 하게 했다.

그런데 아이들에게 선물로 줄 연필 하나를 더 사도록 내 마음이 이끌린 이유를 그리 오래가지 않아서 곧 알게 되었다. 나는 런던에서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서 홍콩가는 비행기를 갈아탔다. 일단 홍콩까지 비행기로 가서 다시 배를 타고 가야 하는 여정이었다.

내가 앉은 기내좌석 바로 옆에 한 부인이 예닐곱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 아이를 데리고 앉았다. 나는 세시간반쯤 걸리는 비행시간이어서 가는 동안 이 부인에게 전도를 하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그런데 그녀는 이미 예수를 믿고 있는 사람이었다. 근무하던 직장에서 사표를 냈고 그동안 딸아이에게 소홀했던것 같아 아이를 즐겁게 해 주려고 홍콩에 놀러가는 길이었다. 홍콩엔 미국의 디즈니랜드 보다 규모가 작긴 하지만 디즈니랜드가 있었다.

홍콩디즈니랜드가 개장하고 나서 우리 부부도 막내딸을 데리고 한번 가보았었다. 내 옆에 앉은 부인은 홍콩의 호텔도 예약을 해 두었고 여행할 준비를 잘 하고 출발했던 일정이었다. 나는 내가 살고 있는 곳의 이야기를 그냥 들려 주었다.

그런데 그녀가 갑자기 나를 따라가면 안되겠느냐고 했다. 그날 날씨도 안좋아서 비가 억수로 쏟아지고 있었다. 그런데 홍콩의 일정을 바꾸어 나를 따라서 한번도 가보지 않은 곳을 처음 만난 나를 따라서 가겠다고 하는 것이다.

나는 극구 만류했다. 날씨도 무척 안 좋고 홍콩의 호텔까지 다 예약해 두었는데 나따라오면 우리집 손님방에서 자야 할텐데… 불편할 거라고 말이다. 더욱이 홍콩은 무비자 이지만 내가 가는 곳은 내륙이라서 나를 따라오려면 삼일비자라도 내야 하는데 비용이 만만치 않다고 말렸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마음을 굳힌 모양으로 굳이 나를 따라서 가겠다고 한다. 결국 그녀는 삼일짜리 여행비자를 홍콩공항에서 냈고 나는 모녀를 데리고 함께 J시에 들어 갔다. 우리 교회 성도들이 환대하며 사천성요리집을 예약해 두어서 저녁을 먹고 즐거운 시간을 갖었다.

이튿날은 토요일이었다. 오전에 주말학교가 있으니 집에서 쉬라고 했더니 그녀는 자기 딸에게도 주말학교 경험을 시켜 주겠다면서 굳이 내가 하는 한글주말학교에 딸아이를 데리고 왔다. 수업이 끝나고 돌아가는 아이들에게 나는 영국에서 사온 선물을 하나씩 주었다.

그때서야 나는 왜 런던공항에서 내가 연필을 하나 더 사도록 인도함을 받았는지 알게 되었다. 나는 모르고 있었지만 하나님은 홍콩으로 가는 비행기에서 만날 모녀를 알고 계셨고 그들을 우리집에 보낼 계획을 가지고 있으셨던 것이다.

엄마 따라 와서 처음 참석해본 해외한글주말학교에서 다른 아이들은 다 선물을 받는데 그 아이만 선물을 못 받았다면 얼마나 아이에게는 상처가 되었을까… 그걸 미리 알고 선물을 하나 더 준비하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더욱이 그녀는 한국에서 앞으로 직장을 얻도록 하나님께 40일을 작정하고 기도하고 있던 중이었고 우리 집에서 자고난 이튿날 새벽이 딱 40일이 되는 날이었다는 것이다. 나는 그녀 한사람을 놓고 새벽기도회를 인도했고 그녀는 응답을 받았다며 몹시 기뻐하였다.

이처럼 우리는 미래일을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미래를 준비하도록 선견지명을 주시는 것이다. 이번 제주여행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준비물에 각자 먹을 간식을 준비해 오라는 내용이 있었다. 나는 집에 사다 두었던 참크래커 한상자와 넛트를 여행짐속에 넣었다.

그리고 과일을 좀 가져가고 싶었다. 껍질을 깎아야 먹는 과일 보다는 씻어서 그냥 먹을 수 있는 찰토마토가 싱싱한것이 있어서 그걸 가져 가기로 했다. 각자 자기가 먹을 간식만 가져 오라고 했지만 룸메이트와 함께 먹으려면 두개는 가져 가야지 싶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예의 그 느낌 왠지 세개를 가져가야 할것 같은 마음이 드는 것이다. 두개면 될 것 같은데… 하면서도 나는 토마토 세개를 잘 씻어서 팩에 담고 손닦을 핸드타올까지 세장을 챙겨 넣었다. 남으면 두었다 먹으면 되지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제주의 숙소에 머물게 되었을때 원래 나와 다른 한사람 이렇게 둘이 쓰도록 되어 있었다. 그런데 다른방을 배정 받았던 한 분이 우리방에서 함께 자겠다고 하면서 셋이서 쓰게 되었다. 침구는 마침 세사람분이 준비되어 있었다.

이튿날 아침 우리 세사람은 빨갛게 잘익은 찰토마토를 하나씩 나누어 먹었다. 그때 나는 내가 왜 토마토 세개를 준비해서 가지고 와야 했는가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생각이 나서 남편에게 제주에서 있었던 토마토 세개 이야기를 해 주었다.

남편은 내 말을 다 듣더니 “잠간 이리와 봐요” 하면서 나를 위해 기도하는 내용이 있는 곳을 컴퓨터에서 찾다가 글 한줄을 발견하고 나에게 그것을 읽어 보라고 하였다. 그곳에 과연 뭐라고 쓰여 있었을까?

그곳엔 “아내에게 선견지명(先見之明: 어떤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앞을 내다보고 아는 지혜)이 있게 하소서” 라고 쓰인 또렷한 한줄의 글이 들어 있었다. 비단 토마토 세개를 준비한 것 뿐이겠는가? 그리스도인이 된 후 나의 삶엔 이러한 크고 작은 선견지명으로 인한 축복이 가득하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렘 29:11)”

나은혜 선교사(지구촌 선교문학 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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