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 칼럼] 정의로운 삶을 산 부자(父子)

시카고 오헤어국제공항(O’Hare International Airport)의 유래

누구라도 부모가 되어 보면 자식들이 어떻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미래의 꿈을 가지게 된다. 내 분신과 같은 사랑하는 자녀가 이 세상에 꼭 필요한 존재가 되어 사람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고 살기를 바라는 것이 부모로서의 인지상정일 것이다.

심지어 자신은 비록 어쩌다보니 강도요 도둑의 삶을 사는 사람일지라도 자신의 자식만은 자신과 같은 삶이 아니라 정직하고 바르게 살기를 원한다고 한다. 자기 자녀만큼은 당당하고 떳떳하게 살아가기를 소망하는 것이다. 그것이 모든 인간의 내면에 있는 선(善)을 추구하는 진정한 모습일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엔 원하지 않는 직업, 원하지 않는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도 많다. 삶이란 그래서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내가 고향 청주에 살던 젊은 청년시절에 운동을 좋아하던 나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출근 하기전에 테니스를 치러 코트에 나가곤 했다.

자전거를 타고 법원 안에 있던 테니스코트에 나가면 테니스를 치기 위해 온 여러 사람들을 만났다. 청주의 명사들이 여러명 테니스를 치러 오곤 했는데 그중에는 채씨 성을 가진 당시 청주 시장님도 있었다. 아주 건강하고 유쾌한 분이었다. 자신은 젊게 살고 싶어 젊은 사람들과 어울린다는 분이었다.

어느날 이분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인상적이어서 지금도 기억이 난다. 그분은 여러명의 자녀들을 두고 있었는데 자녀들에게 기술을 한가지씩 가르친다는 것이다. 전공이 무엇이든지간에 전공과는 상관없이 기술을 배우도록 한다는 것이다.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자수성가해서 한 도시의 시장까지 된 그분의 철학은 사람은 한가지 기술은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자녀들의 취향에 따라 피아노나 바이얼린 같은 전문 악기를 다루는 일에서부터 혹은 미용같은 기술을 배우게 하였다.

인생을 살다보면 무슨일을 만날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그 시장님은 말했다. 멀쩡히 다니던 직장에서 정리해고 될 수도 있기 때문에 그런 경우를 대비해서 생업을 이어갈 수 있는 한 가지 기술은 꼭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 시장님의 지론이었다. 직장을 그만 두어도 음악학원을 차리거나 미용실을 차리면 적어도 생계를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시 시장님의 인생철학과 남다른 자녀교육 방법은 나에게 적지 않은 인상을 남겨 주었다. 그런데 요 며칠전에 지인이 나에게 보내온 ‘오헤어 국제 공항(O’Hare International Airport)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또다른 자녀 교육 이야기에 감동이 되었다. 더욱이 미국 시카고의 오헤어 국제공항은 나도 두세번 이용했던 공항이기 때문에 더 관심이 갔다.

시카고 윗튼대학에서 4년에 한번씩 세계한인선교사 대회및 세계한인선교대회가 열렸다. 나는 선교사로서 그 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시카고를 몇 번 갔던 일이 있었다. 시카고를 갈 때마다 ‘오헤어 국제공항(O’Hare International Airport)’을 이용했었다.

오헤어 국제공항의 원래 이름은 오차드 디포트 공항 (Orchard Depot Airport)이다. 그런데 시카고 시민들은 2차 세계대전의 가장 위대했던 영웅 중 한 명 이었던 ‘에드워드 헨리 오헤어 Edward Henry O’Hare (1914~1943)소령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 공항의 이름을 바꾸었다.

도대체 오헤어 소령은 무슨 공훈을 세웠기에 사람들은 미국 중서부에서 가장 큰 중요한 국제공항인 시카고 (Chicago)의 오차드 디포트 공항 (Orchard Depot Airport)을 1949년 9월 19일에 ‘오헤어 국제공항(O’Hare International Airport)’으로 바꾸면서까지 그의 이름을 붙여서 영원토록 기억하고 싶어 했을까? 자, 이제 그 이야기를 들어보자.

“1941년 12월 7일, 일본 해군이 선전포고도 없이 진주만을 기습해 태평양 전쟁이 시작됐다.부치 오헤어(ButchO’Hare) 중위는 태평양 전쟁 당시 미 해군 전투기 조종사로서, 남태평양의 렉싱턴 항공모함에 배치되어 있었다.

어느 날 그가 속한 비행 중대가 임무수행 명령을 받았다. 전투기의 이륙 직후, 오헤어 중위는 연료 계기판을 보고 정비사가 연료 탱크를 꽉 채우지 않은 것을 알았다.

임무를 마치고 모함으로 돌아올 연료가 충분하지 않아, 오헤어는 이를 편대장에게 보고했고, 결국 오헤어는 항공모함으로 돌아가라는 지시를 받았다. 혼자 모함으로 돌아가고 있던 중 오헤어는 뭔가를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적국인 일본의 대규모 비행편대가 모함을 공격하러 저고도로 날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아군 전투기들은 모조리 출격해 남아있는 게 없으니 모함은 거의 무방비 상태였다. 소속 편대에 연락해 돌아가 함대를 구하도록 할 시간도 없었다.

심지어 모함 함대에 위험이 닥치고 있다는 경고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긴박한 상황이었다. 오헤어가 할 수 있는 것은 단 한 가지 ㅡ 어떻게든 모함 함대로 향하는 일본 비행편대의 기수를 돌리게 하는 것 뿐이었다.

그는 주저할 틈도 없이 일본 비행편대를 향해 하강해, 날개에 탑재한 50인치 기관포를 내뿜었다. 기습에 놀란 적기를 한 대씩 차례로 공격했다. 적의 무너진 진형 사이를 누비며 탄알이 다 떨어질 때까지 될 수 있는 한 많은 적기에 총탄을 퍼부었다.

오헤어는 필사적으로 일본 비행편대가 미군 함대에 이르지 못 하도록 모든 방법을 다 동원했다. 마침내 상황이 좋지 않다고 판단한 일본 비행편대는 기수를 돌렸다.

오헤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누더기가 된 그의 전투기와 함께 항공모함으로 겨우 돌아올 수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그는 상황을 자세히 보고했다. 오헤어가 탄 비행기에 탑재된 카메라의 필름이 사건의 전모를 구체적으로 밝혀주었다.

오헤어 중위 혼자 모함과 거기에 승선해 있던 장병 2,800명을 구해낸 것이다. 적기 9대를 혼자서 물리치고 항모에 착함한 오헤어의 와일드 캣 주위로 온 장병들이 몰려들어 환호했다. 오헤어가 몰았던 F-15호기는 좌측 날개에 총알구멍 하나만 있을 뿐, 기체가 멀쩡했던 것이다.

오헤어는 이 공로로 전쟁 영웅으로 인정받아 최고 무공훈장인 의회명예훈장(Congressional medal of honor) 등 여러 개의 훈장을 받고, 중위에서 단숨에 2계급을 특진, 소령으로 진급했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진면목은 이것이 다가 아니다. 오헤어 소령의 아버지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오헤어의 아버지는 아이랜드 출신의 실력있는 변호사였다. 그런데 그의 변호 실력을 이용해서 악한 일에 이용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세계적으로 악명이 높았던 시카고의 마피아 두목 ‘알 카포네’ (Alphonse Gabriel Al Capone /1899~1947) 이다. 그는 26세의 젊은 나이에 시카고를 주 무대로 밀주 매매, 매춘 그리고 살인을 일삼는 갱단인시카고 ‘아웃 핏 (Chicago Outfit)’의 두목이 된 후, 미국 서부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대조직으로 성장하였다. “

알카포네는 “1927년엔 ‘한 해 총수입이 1억 달러인 세계 최고의 시민’ 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한 거부가 되었다. 또한 그 시절 알 카포네는 아인슈타인, 헨리 포드와 함께 시카고의 젊은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 중 하나가 되었다.

당시 알 카포네는 이지 에디 (Easy Eddie)란 애칭으로 불리던 아이랜드 출신의 유능한 변호사를 고용하고 있었는데, 그는 해박한 법률 지식으로 악랄한 범죄자인 알 카포네를 변호해 그가 감옥에 가는 걸 막아주곤 했다.

알 카포네는 그 의리에 보답하고자 에디 변호사에게 큰 돈을 지불했다. 직접적인 수고비 뿐만 아니라 사업 배당금 조로 하인까지 딸린 성채 같은 맨션에서 식구 전체가 호의호식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 저택은 시카고의 거리 한 블록을 몽땅 차지할 정도로 컸다.

그런 에디 변호사에게 사랑하는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그는 아들이 평생 모든 면에서 최고를 누리며 살게 할 수 있는 경제적 부를 쌓아놓은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양심의 가책과 함께 깊은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아들이 자기처럼 돈의 노예가 되어 악독한 범죄에 연루된 더러운 삶을 살지 않고, 깨끗한 양심으로 행복한 삶을 살도록 일깨워줘야 할, 아버지로서의 무거운 책임감이 강하게 생긴 것이다. 깨끗하고 빛나는 가문의 이름과 모범이 되는 좋은 아버지의 모습을 아들에게 물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얼마 후, 에디 변호사는 고심 끝에 아주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당국에 알 카포네의 흉악한 범죄 사실을 모조리 고발하고, 여태까지 저지른 자신의 잘못을 자백함으로써 더러운 이름을 깨끗하게 씻어버려야 하겠다는 결단이었다.

마피아 두목을 고발할 경우 치뤄야 할 대가가 어떤 것인지 잘 알면서도, 결국 에디 변호사는 오로지 자신의 죄과를 회개함으로써 이름을 깨끗하게 하고, 아들에게 정의감을 알려주기 위해,사법 당국을 찾아가 알 카포네의 끔찍한 범죄 사실을 낱낱이 폭로했다.

에디 변호사의 증언과 증거 자료 덕분에 사법 당국은 오랜 기간 잡지 못했던 범죄 조직의 두목을 탈세 혐의로 구속할 수 있었다. 시카고는 드디어 알 카포네 일당의 악행에서 벗어나 안전을 되찾게 되었다.

하지만 그 해가 끝나기 전에, 에디 변호사는 시 외곽의 한 외딴 거리에서 온 몸에 총알 세례를 받고 삶을 마감했다. 그는 인생의 가장 큰 대가를 지불하고서야 아들에게 위대한 ‘정의’의 선물을 남길 수 있었다.

알카포네 조직의 변호사였던 ‘이지 에디’의 정식 이름은 에드워드 조셉 오헤어(Edward Joseph O’Hare /1893~1939) 였고, 에드워드 헨리 오헤어 소령은 바로 그가 목숨을 걸고 정의감을 일깨워주려 했던 그의 사랑하는 아들이었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 父傳子傳)이라는 말이 있다. 일생 부를 누리며 살 수 있었지만 사랑하는 아들에게 불의를 통하여 번 돈을 물려주기 보다는 아들이 인생의 가치를 공의와 정의에 두고서 바르게 살아가는 정신을 물려 주고 싶었던 아버지의 목숨을 건 위대한 결단이 돋보이는 보기드문 이야기이다.

변호사인 아버지 에드워드 조셉 오헤어의 정신을 이어받은 아들 에드워드 헨리 오헤어소령은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급박한 상황에서 자신을 바친다. 이들 오헤어 부자(父子)의 삶은 진정 모든 사람들에게 공감과 존경을 불러 일으켰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행동으로 아들에게 보여준 아버지 에드워드 조셉 오헤어는 정의를 위해 목숨을 버린 용감한 사람이었으며, 그아들 에드워드 헨리 오헤어는 아버지의 그 정신을 고스란히 이어 받은 것이다. 아아… 만약 내가 시카고 오헤어 공항에 다시 가게 된다면 감흥(感興)이 전혀 새로울것만 같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시 37:5~6)”

나은혜 선교사(지구촌 선교문학 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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