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태 칼럼] 성철스님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

성철 스님이 예수님을 믿었다면?
개만 하십니까?
스님만 하십니까?

오래전 한국교회 어떤 목사님의 설교 제목이 상당히 자극적이었는데 바로 “개만 하십니까?”였다. 그 설교를 들어보지는 못했지만 설교 제목만 보아도 이 설교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필자에게도 3마리의 개가 있는데 두 마리는 사택에 한 마리는 교회에 있다. 애완용으로 키우는 것이 아니라 이곳에서는 방범용(guard)으로 개가 아주 유용(useful)하기 때문에 애견 사업이 나날이 번창하고 있다.

교회를 지키는 개(돌이)는 6개월을 사택에서 키우다가 교회에 내놓은 지 7년이 되는데도 여전히 주인(main master)은 바뀌지 않는다. 낯선 사람이 오면 위협적으로 짖어대고 주인이 가는 곳마다 따라 다닌다. 기도하려고 강단에 엎드리면 어느새 옆에 와 있고 예배시간에는 몇 시간씩 꼼짝도 하지 않고 바닥에 엎드려 있다. 어떨 땐 혼자 기도를 마치고 일어서려면 돌이가 주인을 덮치며 더 기도하라고 붙잡는데 주인과 더 오래 있고 싶어서란 것을 아는 필자의 눈에는 이내 눈물이 고이고 이런 고백을 할 때가 많다.

“내가 너처럼 예수님을 사랑하고 믿고 따르면 하나님께서 나를 그냥 두시겠냐?
내가 너처럼 하나님께 충성한다면 지구를 몇 번 들었다 놓을 수 있을 거야!”

남아공에는 가끔 집 안에 있는 개를 독살하고 약탈하는 강력범죄가 발생하는데 저녁 늦게 집으로 돌아올 때 안에서 주인을 반기는 개 짖는 소리가 들리면 일단 안심을 하게 되고 만일 개들의 반기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면 일단 긴장부터 하게 된다. 주인을 향한 개들의 충성심은 필설로 다 옮길 수 없고 오죽하면 개만도 못하다고 하는 인간을 비하할 때 흔히 쓰는 욕도 이제는 훌륭하신 애견(犬)님을 도리어 모독하는 것으로 비추어지고 있어서 쓰지 않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는데 “개가 예수님을 믿으면 어떻게 될까?” 하는 것이었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소리이지만 필자 내면에 말할 수 없는 부끄러움이 일어났었고 상당한 도전이 되는 질문이었다.

최근에는 성철스님에 관한 여러 글과 동영상들을 보았는데 다시 한 번 말할 수 없는 부끄러움과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똑같은 질문을 해 보았다.

“만약 성철스님이 예수님을 믿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만약 이분이 불자가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였다면 세례요한, 사도바울, 성 프란시스의 반열에 올려놓아도 조금도 손색이 없을 것으로 생각되며 주기철, 손양원, 한경직 목사님의 계보를 잇는 위대한 성직자로 우뚝 세워졌을 것이다.

성철스님에 대해 아는 것은 필자가 신학교 졸업할 무렵 1993년 11월 4일 향연 82세로 생을 마치셨다는 것과 생전에 남기신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란 어록이 전부였다.

그 당시에는 뜨겁던 선지생도로서, 가는 길이 달라서 그분에 대해 더 알고 싶지도 않았고 필요성도 못 느껴 그냥 지나쳤는데 늦게나마 이렇게 만난 것도 불교에서 말하는 귀한 인연(人連)이요, 우리 기독교가 말하는 성령님의 인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본명 이영주(李英柱) 법명 성철(性徹) 스님은 1912년 4월 6일(1912년 음력 2월 19일) 일제 강점기 조선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묵곡리에서 아버지 이상언(李尙彦)과 어머니 강상봉(姜相鳳)씨 슬하에 육 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청년 영주는 지병인 위장병 치료를 위해 절집 요양을 떠났다가 1936년 25세에 불가에 입도하여 경남 합천군 해인사에 들어가 대종사(大宗師) 아래에서 득도(得道)하면서 법명인 ‘성철(性徹)’을 얻었고 후에는 본명 영주를 버리고 속세와의 인연을 끊기 위해 불가의 구도에만 전념하였다.

성철 스님에게는 다섯 살 터울의 딸이 두 명 있었는데 둘째 딸이 태어나기 직전인 1936년에 출가를 하여 둘째 딸의 이름은 할아버지가 수경(壽卿)이라고 대신 지어주었으며 큰딸은 14살이 되던 해에 사망하였다고 전해진다.

태어나서 아버지를 한 번도 보지 못한 둘째 딸에게 아버지 성철스님은 상상 속의 인물이었으며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그리움, 궁금증 등 복합적인 감정도 있어 서울에서 초등학교 다닐 때 아버지와의 첫 만남을 시도했었으나 성철스님은 피붙이인 딸을 보자마자 “가라, 가!”라고 소리치며 상대해 주려 하지 않았다. 안 그래도 무정한 아버지에게 화가 나 있었던 어린아이가 아빠에게 받은 상처는 엄청났을 것이다. 그때 수경은 아버지에 대한 서운한 감정을 정리하였다.

그러나 아버지 성철 스님과 그의 딸의 묘한 인연은 계속된다. 그 후 1950년 6.25 전쟁을 피해 진주로 내려와 진주사범학교에 다니고 있었던 수경은 친구들과 함께 교회에도 다니고 있었는데 결국 그녀는 통영의 안정사에서 그의 아버지를 다시 만나 큰 깨달음을 얻고 그 가르침에 압도당하여 성철을 육신의 아버지가 아닌 스승으로 받아들이며 불필(不必)이라는 법명을 받고 마침내 그녀도 출가하게 된다. 

그러면 성철스님의 부인 이덕명 여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것이 궁금해진다. 딸 불필(不必) 스님의 출가 후 어머니는 자주 딸이 있는 석남사를 찾았으나 자신도 아버지처럼 어머니를 피했다고 하는데 그 아버지에 그 딸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더 이상 속세에 남은 인연이 없었던 이덕명 여사는 석남사 주지 인홍 스님의 권면을 받아들여 50대의 나이에 일휴(一休)라는 법명을 받고 출가한 후 16년간 정진하다가 1982년에 입적에 들었다. 이때 성철 스님은 조계종의 종정 스님이었는데 제자에게 불필(不必) 스님의 아는 사람이 죽었으니 석남사에 다녀오라며 모래를 씻은 후 광명진언(光明眞言, Mantra of Light)을 108번 외운 후 전달했다고 한다.

불교에서는 ‘광명진언’을 염송하면 부처님의 광명을 얻어 모든 업보와 죄과가 사라지고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로움으로 새롭게 태어나게 해 주는 신령한 힘을 가지고 있어, 중생이 죽어 악도에 떨어지더라도 이 진언을 외우고 모래를 무덤에 뿌리면 해탈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성철스님은 대구 팔공산 파계사(把溪寺) 성전암에서 8년간 장좌불와(長坐不臥) 가부좌를 틀고 벽을 마주 보며 수행하였던 사례를 기록하여 불면(不眠)까지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80년대 조계종 최고지도자인 종정으로 점차 명망이 높아가자 정치인과 재벌 등 여러 유력한 자들이 해인사를 찾아 성철 스님을 뵙고자 하였으나 스님은 말사인 백련암에 철망을 쳐놓고 10년을 기거하며 수행하는 스님 두어 명 외에는 들이지도 않았다.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우 1978년 구마고속도로 개통 때 해인사를 찾았지만, 성철 스님이 “세상에선 대통령이 어른이지만 절에 오면 방장이 어른이므로 3배를 안 할 바에야 만나지 않는 게 낫다”고 큰절로 내려오지 않아 만남이 무산됐다고 한다

성철스님 하면 떠오르는 것은 무소유와 기워 입은 누더기 승복과 검정 고무신이다. 스님은 산해진미(山海珍味)와 화려한 문명 세계의 온갖 혜택과 기득권을 애써 거부하셨다.

성철스님은 지병인 심장질환으로 병고(病苦)를 앓다가 해인사에서 1993년 11월 4일 향연 82세(법랍 58세)로 입적하시기까지 인간의 한계와 각 종교를 초월한 구도자의 삶을 몸소 실천해 보이신 것은 오고 오는 세대에 사람들을 부끄럽게 만들 것이며 그 업적은 길이길이 남을 것이다.

필자가 성철스님의 지나간 발자취를 돌아보는 가운데 머리에 떠오르는 적합한 성경 말씀이 두 구절 있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16:24)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막10:29~31)

만약 성철 스님이 예수님을 믿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 질문을 다시 한번 던져보게 되는 것은 참으로 아쉬움이 많이 남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을 부인하며 자기 십자가를 지고 부처님을 따랐다. 그는 자신의 신앙을 위해 집과 형제 자매, 어미와 아비, 전토를 예수님의 가르침 그대로 버렸다. 앞으로 그가 얻을 것이 무엇인가?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는 예수님께 이런 질문을 드렸다.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마19:27)

예수님의 대답은 너무나 간단명료하셨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마19:28~29)

성철 스님은 생전 종정으로 취임한 뒤 MBC 와의 인터뷰에서 “1,300만 불자들에게 한 말씀 해 주십시오.”라는 기자의 질문에 대뜸 “내 말에 속지 마라”라는 말씀을 하였고 열반 전에 다음과 같은 열반송을 남기며 떠나셨다.

生平欺狂男女群 일생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
彌天罪業過須彌 하늘 넘치는 죄업은 수미산을 지나친다
活陷阿鼻恨萬端 산 채로 무간지옥에 떨어져 그 한이 만 갈래나 되는데
一輪吐紅掛碧山 둥근 한 수레 바퀴, 붉음을 내뿜으며 푸른 산에 걸렸도다

불교에서는 개신교가 불교를 공격할 목적으로 성철스님이 죽기 전에야 불교는 구원이 없고 수미산과 같은 남을 속인 자신의 넘치는 죄업으로 무간지옥에 떨어질 것을 알고 후회하였다고 하는 이런 문자적인 해석을 듣기 아주 싫어하고 자신들만의 해석을 내놓는데 여기서 필자는 불교와 성철 스님을 조금도 폄훼할 마음이 없고 우리가 옳고 당신들이 틀렸다고 주장하고 싶지도 않다.

판단은 독자가 알아서 하면 되고 대한민국은 엄연히 종교의 자유가 있고 본인의 선택이며, 마지막 그 대가도 본인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8)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8:5~6)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남아공 정부는 Covid19과 사투를 벌이고 있고 공장과 쇼핑센터의 강도 약탈 방화로 처처에 수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있는 가운데, 성철스님의 삶과 예수님의 가르치심이 더욱 그리워진다.

성철스님을 주제로 한 칼럼을 쓰면서 목사, 선교사가 개(犬)와 종단의 고승을 동시에 입에 오르내린다는 것이 쉽지 않았고 특히 외길 인생을 사는 크리스천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으나 그의 삶을 들여다보며 놓치기에는 아까운 것들이 너무 많아서 필자 자신을 더욱 채찍질하는 의미로 또 Covid19 시대에 두려움과 무사안일(無事安逸)로 점점 위축되어 가는 한국교회 성도들을 도전하고 일깨우려는 의도로 감히 졸필(拙筆)을 들어보았다.

이 칼럼을 읽는 모든 분들에게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총과 축복이 차고 넘치기를 바라며 기도드린다.

2021년 07월 13일 남아공 김현태 선교사

남아공 김현태 선교사 / 19기 민주평통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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