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 칼럼] 짜증없는 간병생활

어머니가 오늘 따라서 이상하게도 방에서 거실로 들락거린다. 토요일 오전에 나는 거실 베란다쪽에 놓여 있는 탁자에서 남편과 함께 습관을 좇아 성경을 읽고 있는 중이었다. 토요일이어서 어머니는 주간보호센터를 안가신다.

어머니는 아침에 식사부터 안드시겠다고 해서 한참 실랑이를 벌이다가 겨우 어머니 방으로 부터 어머니 손을 잡아서 모시고 나와서 식탁에 앉혀 드리고 아침식사를 차려 드렸다. 아침부터 쇠고기를 넣은 시레기국을 끓이고 가지양파멸치를 넣고 가지볶음을 만들었다. 요리를 하느라 내 이마에는 땀이 흐른다.

어머니는 아침을 안 먹겠다고 떼를 쓰시는 것과는 달리 차려 드린 아침밥과 반찬 그리고 바나나 하나까지 하나도 남김없이 다 드신다. 나는 헛웃음이 나온다. 저렇게 게눈감추듯 드실거면서 왜 아침을 안먹는다고 그렇게 떼를 쓰셨을까 싶어서이다.

식사후 양치를 해 드리자 어머니는 쉬러 방으로 들어 가셨다. 그런데 왠일인지 방에서 거실로 거실에서 다시 방으로 들락 거리시는 것이다. 나는 아무래도 어머니에게 가봐야겠다 싶어서 성경읽기를 잠시 멈추고 어머니 방으로 들어갔다. 기저귀를 한번 봐 드리려는 것이다.

아… 그런데 어머니는 기저귀에 대변을 잔뜩 보았다. 그래서 그렇게 안절부절 하면서 거실에서 방으로 들락날락 하셨던 모양이다. 나는 어머니 기저귀를 빼서 버리고 몸을 닦아 드리면서 의아했다. 아니 오늘 새벽부터 대변 기저귀를 갈기 시작해서 벌써 네번째나 대변을 본것이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가지나물이며 청국장 시레기국등 소화되기 좋은 음식을 주로 해 드려서 어머니가 저렇게 소화를 잘 시키시나 보다. 아니, 내가 음식을 너무 열심으로 잘해드리나? 어머니가 저렇게 연속해서 대변을 보시다니 말이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아기들이 똥오줌 싸고 기저귀가 축축하면 울듯이 어머니가 기저귀 갈아 달라고 거실로 방으로 들락 거리시는걸 미처 못해드려서 나는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소변도 아니고 대변을 보고 기저귀를 차고 있었으니 얼마나 불편하셨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치매로 인해 인지능력을 상실한 어머니를 모시고 살다보니 끊임없이 크고 작은 사건이 발생한다. 작년만 해도 화장실 출입은 직접 하셨었는데 이젠 그것 마저도 안되는 것이다. 엇그제도 사건은 있었다. 거실에 앉아 있던 어머니가 일어나서 방으로 들어 가신후에 일이다.

거실 바닥에 무슨 자국이 죽~ 찍혀 있는것이 아닌가? 나는 직감적으로 저 자국은 어머니가 대변을 밟아서 찍힌 자국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얼른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아니나 다를까 어머니가 화장실에서 대변을 보려고 하신 모양이었다.

그런데 양변기에 제대로 보지 못하고 대변을 양변기 발판에 떨어트리고는 나름 처리 하려고 하셨는지 여기저기 대변이 묻어 있었다. 그리곤 슬리퍼로 대변을 밟고서 거실에 앉으셨나 보다. 그래서 또 한바탕 화장실 청소며 어머니를 씻기는 일이며 난리를 한바탕 치르었던 것이다.

이것이 매일매일의 나의 어머니를 간병하는 생활이다. 그런데 참 신기한 일이 하나 있다. 내 마음이 이런 중증의 치매환자인 어머니를 간병하고 돌보는 일에도 평안을 잘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역시 처음 겪어보는 치매환자 돌보기여서 처음엔 힘들고 짜증도 많이 났었다.

그런데 어느날 어머니의 대변 기저귀를 갈면서 불만스러워 하는 나를 성령께서 찾아 오셨다 성령께서 내 마음속에 말을 걸으셨다. “너 이 똥기저귀가 더럽니? 네 죄가 더럽니?” 나는 할말을 잃었다. “그야 제 죄가 훨씬 더럽지요.” 그리고는 그만이었다.

그러나 그 날 이후 내 마음에 평안이 찾아왔다. 어머니의 대소변 수발이 전혀 힘들지가 않았다. 내가 나의 자녀인 삼남매를 키울때 기저귀 갈아대면서 짜증내거나 힘든적이 있었던가? 생각하니 전혀 그런적이 없었던것 같다.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온갖 노고를 잊게 만들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어린시절 짜증이 참 많은 아이였다. 내가 얼마나 신경질을 잘 냈던지 친정 아버지는 혀를 끌끌 차시면서 이렇게 말씀 하시곤 했다. “어이구~ 너같이 성격이 불칼날칼 같아서야 원~ 너 아주 착한 신랑 만나서 결혼하지 않으면 살아가기 어렵겠다.” 라고 하시곤 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어린시절 그런 짜증스러운 성격이 된데는 우리집 가정환경이 한몫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린 시절 나는 행복이라는 낱말을 모르고 살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우리 집은 역기능 가정이었다. 할아버지의 불같은 성격은 대단 하셨다.

농사를 지으셨던 할아버지가 밭에서 일하고 돌아와서 할머니가 조금만 늦게 저녁밥상을 들여오면 밥상을 갖다 놓기가 무섭게 화가 난 할아버지 손에 막 가져다 놓은 밥상이 들려져 마당으로 내동댕이쳐 지곤했다. 지금 세대 사람들에겐 결코 이해하지 못할 일일 것이다.

그뿐인가 우리 아버지가 어머니를 대하는 방식은 더 기가 막혔다. 아버지는 술을 드시고 들어오면 만만한 술주정 상대가 어머니셨다. 아버지는 수시로 어머니가 시집올때 해 온 장롱 설합을 빼어서 마당으로 집어 던졌고 살림을 부수었고 어머니에게 폭력을 썼다.

그런 환경이다보니 그 안에서 자라는 우리 형제들이 무얼 보고 배웠겠는가.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고 어른들이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데 손자손녀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도 아닌데 착하게 지내기를 바라는게 무리일 것이다.

4남1녀인 우리집은 내가 외동딸이지만 오빠들은 하루에 한번 이상은 나를 울렸다. 내별명을 지어서 부르고 약을 올리면 나는오빠들에게 대들고 그러면 맞고 우는 것이다. 지금와서 생각해 봐도 나란 사람은 지독한 역기능 가정에서 자란 불행하기만 한 아이였다.

그래서 나의 롤 모델은 늘 신데렐라였다. 계모 아래서 온갖 학대를 당하며 불행한 삶을 살지만 천사가 만들어준 호박마차에 유리구두를 신고가서 왕자님을 만나고 왕자님의 마음에 꼭들어 마침내 왕비가 되는 신데렐라가 바로 나의 드림이었다.

그렇게 가난하고 역기능적인 가정에서 행복이란 낱말, 안전, 평안, 존중, 신뢰, 사랑 이런 낱말들과 나는 상관이 없는 사람으로 살고 있었는데 어느날 내 삶에 변화가 일어났다. 그것은 친한 친구의 전도로 교회에 나가면서 부터였다.

예수님이 나를 사랑 하셔서 나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사실이 믿어지기 시작했을때 나는 나의 삶을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재해석을 하는 힘과 지혜를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즉 나의 삶을 온전히 주관 하시는 하나님께서 나를 미국의 부잣집에서 태어나게 안하시고 가난하고 결핍 많은 가정에서 태어나게 하셨다는 것이 순순하게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으니까 말이다.

다른 이유가 없는 것이다. 토기장이가 흙한덩이로 어떤 그릇을 빚어내든지 토기장이 마음이 아니었던가? 하나님은 나라는 진흙 한덩이를 하나님의 뜻에 맞게 만들어 내기 위해서 나를 그런 환경에서 태어나게 하신 것이다.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는 선교사의 삶을 살아가게 하시려는 뜻 말이다.

은혜 중에 가장 큰 은혜는 깨달음의 은혜라고 한다. 내가 교회를 나가면서 성경을 알아가면서 내 삶은 엄청난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우선 나는 내게 상처를 준 가족을 용서하는 것으로부터 내 안에 생명의 자유를 얻기 시작했다.

특히 아버지가 미웠던 나는 그 아버지를 용서했다 그리고 미움의 반대인 사랑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버지를 불쌍히 여기고 사랑하기 시작하자 아버지의 허물을 덮어 드리고 싶었고 아버지가 실수하고 저지른 경제적인 빚도 두번이나 갚아 드렸다.

그리고 나는 참으로 자유한 영혼이 되어 세상의 가치관을 따르지 않고 성경적인 가치관을 따라 내 삶을 세워가기 시작했다. 하나님의 가치관을 따라 사는 삶은 그것이 비록 육신적으로는 좀 고생스럽다고 하더라도 내 마음은 한없이 행복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나는 신데렐라의 꿈을 이루고 있었다. 낙천적이고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던 신데렐라에게 왕비가 되는 행운이 찾아왔던 것처럼 나에게도 여러 행운들이 뒤따라 왔다. 아니 바로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했다.

그렇게 복을 많이 받은 내가 치매 앓는 시어머님 간병을 하면서 짜증을 내서는 안될 일이다. 사실 어머니를 돌보아 드리고 간병을 하면서 나는 더욱 많은것을 배운다. 인생공부를 이보다 더 철저하게 잘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의 인생철학은 언제 어느때든지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다. 남들이 볼때는 한없이 볼품없어 보이는 일이라도 하나님이 가치 있는 일이라고 하시면 내겐 가치 있는 일이다. 치매를 앓는 어머니를 간병하며 사랑으로 돌보아 드리는 것도 바로 그런 맥락이다. 우리 어머니는 이번달도 주간보호센터에서 자랑스럽게 개근상을 받아 오셨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전13:4~7)”

나은혜 선교사(지구촌 선교문학 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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