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 칼럼] 사랑스러운 MK 사돈아가씨

오늘 점심은 비발디의 사계를 들으면서 함박스테이크를 먹으려는 중이다. 나 혼자서 먹는 것은 아니다. 두 사람이다. 내 앞에는 귀염성 있는 아가씨가 다소곳하게 앉아 있다. 바로 그 주인공은 휴가 기간 동안 조카들을 돌봐주러 내려와 있는 사돈 아가씨이다.

나는 대구 딸네 집으로 딸의 산간을 하러 와 있다. 그러나 실은 딸의 산간이 아니라 6살 3살인 두 손주 아이들을 케어하며 살림을 돌보아 주는 일이다. 딸은 병원에서 퇴원한 후 곧장 조리원에 들어갔다. 집근처 조리원에서 풀서비스를 받으며 딸은 몸조리를 하고있는 중이다.

큰딸이 세번째 아기를 낳았다. 딸은 비교적 일찍 결혼 했으나 결혼후 10년 가까이 아기를 갖지 못해 힘들어 했었다. 딸과 사위뿐만이 아니라 양가의 부모님과 가까운 사람들이 모두 안타까워 하였고 정말 많은 사람들이 중보하며 기도해 주었다.

그렇게 긴 시간을 기도하고 기다리며 어렵게 얻은 첫딸 로아를 낳았을 때 나의 큰딸은 천하를 얻은 것 같다고 했다. 하나님께서 큰딸의 태문을 한번 열어 주시더니 삼년 후엔 큰손녀 ‘로아’는 남동생 ‘로이’를 보았다.

그리고 이년 후… 이번에도 ‘로아’는 남동생 ‘조이’를 보았다. 한 아이도 갖지 못해서 자녀 하나 얻기를 간절히 소원하던 딸의 가정에 어느덧 세 명의 자녀가 태어나서 태의 열매가 풍성해진 것이다.

이제 마지막 출산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딸이 몸조리를 잘했으면 한다. 그러려면 위로 두 아이를 잘 케어해 주어서 딸이 걱정 없이 몸조리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딸네 집에 지난 주에 이어서 이번 주도 내려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서울에 사는 20대의 사돈아가씨가 직장에서 휴가를 받아서 한주간 동안 오빠 집인 대구에 내려왔다. 조카들을 돌봐주어서 내게도 여간 큰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다. 사돈아가씨는 오빠들과 나이 차이가 많은 막내로 태어나서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자랐다.

그럼에도 이번에 함께 지내보니 무척 의젖하고 매우 사려가 깊었다. 물론 대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중이니 성인이긴 하지만 조카들을 돌보는 실력이 보통이 아니다. 로아는 제 고모를 잘 따라서 잠도 꼭 고모하고 잔다.

오전에 로아 로이 두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 놓고 나면 아이들이 돌아오기 전까지 낮시간은 좀 여유가 있다. 대구도 바깥날씨는 너무 더워서 집안에서 에어컨을 켜고 지내는 것이 제일 시원하다. 그래서 사돈아가씨와 함께 점심을 집에서 먹을 준비를 했다.

조리원에 있는 딸과 통화를 하면서 “점심에 뭐를 먹을까?” 했더니 딸은 “엄마 집에 함박스테이크 2인분이 있어요.” 한다. 마침 밥도 2인분이 있다. 그래서 곧장 점심을 준비했다. 전에 선교 사역할때 돈가스를 많이 만들어 대학생들을 대접했던 나는 양식 만들기에도 꽤 익숙한 편이다.

먼저 큰 접시 두개를 꺼냈다. 초록잎의 상추를 한장씩 접시에 깔고 후랑크쏘세지를 칼집을 내어서 후라이팬에 구운후 초록색 상추잎에 놓았다. 초록상추잎과 불그레한 후랑크쏘세지가 조화를 이루면서 보기좋게 어울린다. 삶은 찰옥수수 한조각도 놓았다.

그 다음엔 오이를 어슷썰기로 썰어서 세개를 놓고 둥글고 노란 단무지도 잘라서 두세쪽을 놓는다. 그리고 양배추를 꺼내어 채썰어서 얼음물에 담가서 시원하게 한후에 건져서 접시에 놓고 드레싱소스와 케첩으로 모양과 맛을 낸다.

마침 향내 좋은 송이버섯도 있어서 잘라서 후라이팬에 살짝 구어서 접시에 놓았다. 이젠 밥과 함박스테이크 고기만 놓으면 된다. 기왕이면 모양도 좋게 밥을 작은 공기에 담았다가 그대로 접시에 엎으면 동그랗게 모양이 나서 세련되면서도 예쁘다.

마지막으로 이미 조리되어 있는 함박스테이크를 끓는물에 중탕을 해서 따뜻하게 한후에 꺼내어서 접시에 담으면 완성이다. 내가 요리를 준비하는 동안 사돈 아가씨가 유리글라스를 꺼내어 오렌지 쥬스를 따라서 식탁에 놓는다.

나는 솎음배추 한단을 사다가 끓여 두었던 배추된장국을 곁들여 내놓았다. 한국 사람은 양식을 먹어도 된장국으로 입맛을 마무리 짓는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드디어 식사준비를 다 했으니 이제 이 멋진 식사에 어울릴 음악을 준비하면 된다.

나는 텔레비젼에 설치되어 있는 인공지능에게 “친구야, 비발디의 사계를 들려줘” 라고 부탁한다. 곧 비발디의 사계가 거실 안에 가득히 울려 퍼지고 우리는 멋진 양식집 분위기를 내면서 식사를 한다. 내가 말했다. “흠~ 여기가 그 유명한 평리그릴 이군” 사돈 아가씨가 “정말 그렇네요”하며 웃는다.

모처럼 내 전공인 한식이 아닌 양식으로 멋을 낸 점심이었다. 양식이라는 음식의 분위기 때문인지 대화의 무드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나는 사돈아가씨와 거의 두어시간 이상 이야기를 나누었다. 문득 이제는 한사람의 성인이 되어 나와 마주 앉아 있는 사돈아가씨를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우리가 처음 만났던 곳은 미국의 시카고에서였다. 시카고에 있는 윗튼 대학교에서 있었던 한인세계선교사 대회에 사돈 아가씨는 초등학교 3-4학년인가 였을것같은데 선교사이신 부모님을 따라왔다. 나는 당시는 어린소녀였던 사돈아가씨를 처음 보았다.

당시만 해도 한국 포항에 있는 한동대학교에 다니던 내 딸과 사위는 서로 교제 중이었다. 후에 나의 사돈이 된 정선교사님 부부는 미래의 사돈이 될지도 모를 우리 부부를 미국에서 처음 만나서 인사를 나누었다.

선교사 사돈 답게도 우리는 상견례를 선교사대회에서 만나서 해외에서 한 셈이 되었다. 나는 당시 MK(선교사자녀)인 나의 세자녀의 배우자가 모두 MK(선교사 자녀)였으면 했었다. 우리가 선교사이니 사돈도 선교사이면 서로 통하고 흉허물이 없어서 좋을것 같았다.

당시 한국의 결혼 문화는 혼수 문제며 시댁에 보내는 예단 문제며 만만치가 않았다. 심지어 예단이나 혼수 문제로 결혼이 깨어져 버리는 경우도 종종 있었으니 말이다. 아무 재력도 없는 선교사 가정의 혼처로는 비슷한 환경의 선교사 자녀가 제격이라는 생각을 우리 부부는 하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우리 두 가정은 선교지는 서로 달랐지만 미국 시카고에서 상견례를 하고 자녀들은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을 했고 대구에서 직장을 잡아 살림을 시작했다. 그리고 벌써 15년이 흐른 것이다.

그때 미국 시카고에서 처음 만났던 어린소녀였던 MK사돈아가씨가 이제 성인이 되어서 가족으로 만나서 이렇게 멋진 점심을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뚝딱 하고 함박스테이크를 점심으로 준비해 내 놓는 나에게 감동하는 사돈 아가씨를 향해 내가 인삿말을 했다.

“자, 우리 귀한 MK 미혜양을 위해서 내가 준비한 요리예요. 조촐하지만 정성은 깃든 함박스테이크이니 한번 들어 보아요.” 환한 미소로 응답하며 젓가락으로 밥을 먹으려는 사돈아가씨에게 나는 ‘잠간만!’ 하고 제동을 걸었다.

그리고 얼른 수저함 설합에서 포크와 나이프를 가져다 주었다. “자, 기왕이면 양식은 양식을 먹는 포크와 나이프로 먹어야 제맛이 나지요. “ 비발디의 사계는 한참 절정을 향해 흐르고 있고 우리의 화려한 점심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그 때에 처녀는 춤추며 즐거워하겠고 청년과 노인은 함께 즐거워하리니 내가 그들의 슬픔을 돌려서 즐겁게 하며 그들을 위로하여 그들의 근심으로부터 기쁨을 얻게 할 것임이라(렘 31:13)”

나은혜 선교사(지구촌 선교문학 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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