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 칼럼] 온정

며칠전 어머니의 여름 바지를 샀다. 하나는 연한 카키색으로 하늘하늘하고 촉감이 부드러운 바지이고 다른 하나는 청바지 이다. 그런데 청바지는 아랫단의 올을 풀어서 멋스러운 분위기를 내었다. 어머니가 다리가 길으셔서 8부 청바지가 되어 더 시원스러워 보였다.

어머니를 모시는데 있어서는 내 몸으로 때우는 일, 즉 간병해 드리고 음식 의복 수발만 드는것이 다가 아니다. 부모님을 모신다는 것은 경제적인 부담도 함께 지는 것이다. 즉 돈이 들어갈 일이 적지않다는 것이다.

토요일인 오늘은 하루 종일 어머니를 케어 하면서 보냈다. 오전에는 목욕을 시켜 드렸고 점심을 먹은 후에는 병원엘 모시고 갔다. 92세인 어머니의 뼈가 약해져서 뼈를 튼튼하게 하는데는 먹는 약보다 주사가 훨씬 효과적이라고 해서 병원에 모시고 간 것이다.

뼈를 튼튼하게 보호하는 주사는 의료보험이 안되어 6만원 가량의 비용이 나왔다. 밖에 나온김에 어머니의 머리를 커트하고 파마를 해 드리려고 모시고 미장원에 갔다. 어머니는 치매를 앓으시면서도 미용을 해 드리면 좋아 하신다.

미용실을 다녀오면 예뻐진다는것을 아시는 것이다. 병원도 미용실도 다 지근거리(至近距離)에 있지만 걸음을 걷기가 쉽지 않은 어머니를 모시고 다니려면 자동차를 이용해야 한다. 더욱이 요즘처럼 뜨거운 날씨에 어머니를 걷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어머니를 모시는데 아주 잘 사용되어지는 이 자동차는 내가 선교지에서 비자제한을 당해 나온 후 두번째 얻은 자동차이다. 물론 첫번째 얻어서 6년이나 탔던 자동차는 지금의 차가 아니다. 내가 ‘세순이’라는 애칭으로 부르던 소형 세피아2이다.

2007년 한국으로 돌아 왔을때 나는 무릎이 아파서 계단을 오르내리기 힘들어서 자동차가 꼭 필요했을 때였다. 당시 나는 매주 토요일 안양의 갈멜산 기도바위에 기도하는 목회자팀이 있어 함께 기도하러 가곤 했었다.

목사님들에게 기도제목을 나누던 중에 나에게 자동차가 필요하다는 기도제목을 듣고 어느 목사님이 본인교회 성도님의 자동차를 얻을 수 있게 해 주셨었다. 무료로 얻은 것이다. 그 자동차를 운전해서 전국의 여러곳을 나는 운전을 하고 다녔다. 나는 운전을 상당히 즐기는 편이다.

그러다가 6년쯤 되었을때 자동차는 폐기처분을 할 상태가 되었다. 운전석 차문이 열리면 닫히지를 않는 것이다. 오른손으로 운전하며 왼손으로 문이 열리지 않도록 차문을 꼭 잡고 운전을 하고 다녔다.

그러던중 주일예배를 드리고 성도의 교제를 나누던중 우연히 자동차 이야기가 나왔다. 내가 운전석문이 열려서 한손으로 문을 잡고 한손으로 운전을 하고 다닌다는 말을 들은 어느 집사님이 기막혀 하더니 뜻밖의 제안을 했다.

“저… 목사님 제가 타던 소나타골드가 우리 어머니집이 있는 부산에 있는데 가져다가 타시겠어요?” 하는 것이 아닌가? 기도 응답이었다. 나는 남편과 함께 부산에 가서 그 자동차를 가지고 서울로 올라왔다.

당시 13년 정도된 2000년식 소나타 골드는 9만킬로 정도를 탄 차이지만 양호하고 시트열선까지도 되어 있는 사양도 가장 좋은 중형차였다. 색상도 내가 좋아하는 흰색이었다. 나는 또 ‘황금소돌이’라는 예명을 지어 주고 그 차를 열심히 타고 다녔다.

올해로 21살이 된 우리집 황금소돌이는 오늘도 우리 가족을 위해 충성스럽게 봉사하고 있다. 집안에 나이든 어른을 모시고 사는 사람은 자동차가 필수이다. 아무리 가까운 거리라도 어머니를 모시고 가려면 자동차가 있어야 하니 말이다.

큰딸이 이제 20년 넘은 노후된 자동차는 사고 날 수도 있어 위험하다고 폐차하라고 종종 이야기 하지만 새차가 생기지 않는한 자동차를 없앨 수는 없다. 필요하기 때문이다. 어머니 뿐만 아니라 이제 손에 들고 다니는 것이 점점 힘들어지는 나도 시장을 보러가도 자동차가 없이는 안된다.

자동차를 제공해 준 집사님은 이비인후과를 경영하는 의사 선생님이다. 얼마전 통화를 하다가 내가 “집사님이 주신 자동차 지금도 잘타고 다니고 있어요.” 했더니 그 집사님은 “아유~ 목사님 아직도 그 차를 타고 다니세요?” 한다.

나에게 그 차를 준지가 벌써 8-9년이 된 상황이니 그 집사님이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닐것이다. 하지만 우리 황금소돌이는 이제 16만킬로 조금 넘게 탔으니 하나님의 은혜로 세번째로 새로운 차가 생기기 전까지는 타고 다녀야만 한다.

내 마음 속에 꼭 타고 싶은 차가 있으니 아마 머지 않아 그 차가 나타날지도 모르겠다. 어머니를 모시는데 자동차가 꼭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우리집 자동차 족보와 내력이 다 나왔지만 비록 헌차라도 자신이 아껴 타던 차를 몇백만원을 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팔지 않고 남에게 그냥 준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제 어머니의 바지 이야기를 다시 해보자. 그렇지 않아도 바지를 하나 사 드려야 하는데 하던 참이었을 때 어머니를 위해 쓰라면서 특별한 후원을 한 분이 있었다. 그분은 나와 통화를 하다가 어머니를 모시는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어머니 모시는데 들어가는 기저귀값이라도 하라면서 금방 20만원을 보내왔다.

그래서 여유로운 마음으로 어머니 바지를 두개 사 드렸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 어머니의 뼈를 튼튼하게 하는 주사값과 파마값을 합해서 10만원이 들은 것이다. 다른때 같았으면 수입도 없는데 지출할 일이 생기면 신경이 쓰였지만 오늘만큼은 여유롭게 돈을 지출했다.

어머니를 위해서 쓰라고 보내온 따뜻한 마음의 후원자가 있어서 그런 것이다. 후원해준 20만원이 어머니의 새바지를 사드리게 했고 뼈를 튼튼하게 하는 주사를 맞혀 드렸고 예쁘게 파마를 해 드렸고 한달치 기저귀까지 구매했으니 참 야무지게 사용되어진 셈이다.

남의 어머니를 내 어머니 생각하듯 모시는데 드는 비용을 선뜻 지출해준 그분에게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시기를 기도 하였다. 자동차를 주신분을 위해서도 나는 거의 운전대를 잡을때 마다 기억하며 그분을 위해 축복하고 기도할 때가 많다.

이처럼 따뜻한 온정이 세상을 더 살맛나게 만들어 준다. 오늘 파마를 해 주신분도 교회에 나가는 집사님 가정인데 우리가 목사인것을 알고는 파마비를 할인해서 받는다. 벌써 몇번 째나 매번 파마비용에서 만원을 빼주고 있다. 그 역시 이웃의 따뜻한 온정이다.

그러고보니 내가 어머니를 모신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주위의 따뜻한 온정들로 인해서 내가 어머니를 더 잘 모실 수 있는것 같다. 어머니의 파마가 끝났다고 전화가 와서 모시러 갔더니 손님들이 다 돌아가고 어머니만 나를 기다리고 있으셨다.

미장원 원장 부부와 잠간 대화를 나누었다. 조금 이야기를 나누던 원장님 부부가 자녀들 이야기를 하다가 놀란다. 우리 아이들이 벌써 40세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렇게 놀라는 것이다. 그분들은 내가 매우 젊은 줄 알았다고 한다. 50대 중반쯤 되었을까 했다는 것이다.

미용실 원장님이 나에게 “고생을 안하셨나봐요 얼굴이 저렇게 환하게 밝으신것 보니…” 한다. 내가 “하하… 몸은 고생하지만 마음이 고생을 안하거든요. 내 마음이 늘 천국이니 얼굴이 어두울 이유가 없지요.” 미용실 원장님 부부가 함께 고개를 끄덕인다.

인사를 하고 어머니를 자동차에 태우고 집으로 모시고 와서 저녁으로 냉모밀을 만들어 드렸다. 냉모밀은 우리 어머니가 좋아 하시는 음식이다. 산뜻하게 미용을 하고 당신이 좋아하는 냉모밀을 맛있게 드시는 어머니를 바라보면서 옆에 앉아 식사를 하던 남편의 얼굴에도 흐믓한 미소가 살며시 번진다.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막 12:31)”

나은혜 선교사(지구촌 선교문학 선교회 대표)

The following two tabs change content below.

편집국

시니어 타임즈 US는 미주 한인 최초 온라인 시니어 전문 매거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