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 근 칼럼] 6.25참전기념비 건립 공사현장을 다녀오며…

육군학사장교 남가주동문회 민동규 회장(왼쪽에서 네 번째)이 6.25참전비 건립위원회 노명수 회장에게 후원금을 전달하고 있다(왼쪽에서 세 번째가 필자). 

어제는 한인동포도 많이 사는 오렌지카운티의 풀러튼에 세워지는 6.25참전기념비 건립 공사현장에 초대되어 다녀왔습니다. 육군학사장교 남가주동문회(저는 7대, 8대 회장을 역임했고 현재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에서 자발적으로 참여한 회원들의 모금액을 전달하기도 했고 공사 진행 상황을 건립위원회 회장님과 건축현장 소장님의 설명으로 들었습니다.

참전비 건립 회장님에게 총 예산이 얼마이고 현재 얼마나 모금이 됐는지 물었습니다. 백만불 조금 더 되는 액수가 예산인데 모금액은 정확히 말씀은 안하시고 거의 근접했다고 대답하셨습니다. 한국정부도 참여했냐고 물으니 23만불을 내기로 했다고 합니다. 원래 계획으로는 9월에 완공하기로 했었는데 항구에서 하역이 늦어지는 등 팬데믹으로 인해 주문한 자재를 제시간에 받지 못해 피치 못하게 늦어졌고, 참전비가 건립되는 부지의 나무를 절대 자르지 말라는 시의 명령으로 설계도를 계속 수정하였다고 합니다. 현재 예정으로는 11월 11일에 개막식을 열 예정인데 불확실하다고 합니다.

사진에서 보면 참전비 앞에 있는 KOREAN WAR MEMORIAL 이라는 표지석 뒷면에 후원금을 보내신 단체와 후원자의 성함을 후원금액에 따라 별표로 구분해서 새겨 넣을 예정이라고 합니다.

제가 35년 미국에 살면서 주변분들이나 신문과 방송을 통해 들은 바로는 미국의 참전용사들은 자기들이 전세계의 여러 나라에서 싸웠지만 한국인들처럼 은혜를 갚으려는 노력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국민들은 보지 못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저도 25년간 운영한 비데오샵에서 손님 중에 참전용사 4명이 있었는데, 25년간 비데오 렌탈금액이 아무리 올라도 무조건 1불만 받게 했습니다.

칼럼리스트 황근.

그 중에 한 분은 50년 6월 25일이 결혼 1주년 기념일인 분도 계셨습니다. 한 분은 필리핀계 미군으로 해병대 장교로 인천상륙작전에 투입되었다가 해안에서 총상을 입어 제대로 싸우지도 못했다고 분해하셨는데 자기 친동생이 군의관으로 부산에 있으면서 한국인과 (간호장교인지 간호사인지 확실치 않은데) 결혼까지 하게 되어 지금 제수씨가 한국인이라고 하셨습니다. 또 한 분은 16세에 나이를 속이고 군에 갔다가 참전하게 됐는데 장진호 전투에서 철수하면서 중공군의 포탄파편을 엉덩이 맞아서 그 때까지 다리를 절고 있었고 나중에 콜로라도에 사는 아들네 근처로 이사를 가셨습니다. 또 한 분은 2000년 6월에 한국에서 보내온 대통령 감사장을 들고 오셨습니다. 6.25 발발 50주년 행사로 참전군인들에게 한국 대통령 이름으로 보낸 건데 한글로 보내와서 한국 공무원들이 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백인을 보면서 영국인인지 프랑스인지 구분 못하듯이 이 분들도 처음에는 제가 한국인인지를 모르신 것 같았습니다. 제가 한국말로 전화하는 걸 들으시고 한국인이냐고 물으면서 자기소개를 해서 저도 83년과 84년에 팀스피리트 훈련에 참가한 경험을 얘기하며 급속도로 친해졌습니다. 제가 제대로 다 알아듣지를 못하면서도 별얘기를 다 나누었습니다. 특히 장진호 전투 때 한국 정말 추웠다고 몸서리를 치며 얘기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한국이 원조 받는 나라에서 원조 주는 나라로 변한 유일한 국가이고, 이런 발전이 있기까지 많은 현명한 지도자와 근면한 국민이 있어서 이룬 성과이지만 은혜를 잊지 않고 갚으려고 기를 쓰는 정서와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려는 정 많은 심성이 하늘도 감동하게 한 결과라고 저는 믿습니다.

어제 참전비 건립 회장님과 사무총장님도 언급하셨지만, 6.25 때 미군의 재빠른 참전 결정과 희생이 없었으면 지금 한국인들은 북한 사람과 똑같은 현실에서 김일성 일가를 신으로 모시면서 자유민주주의가 뭔지도 모르며 먹고 살기에 사력을 다하며 살고 있을 거라는 밀씀에 100% 공감했습니다.

어제 다녀오고 나서부터 계속 주변분들에게 참전비 건립 모금에 동참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망하지 않는 한 참전비는 영원히 자리를 지키며 우리 후손들에게 자유의 귀중함을 가슴에 새기게 할 것이고 아울러 희생자들의 순국을 애도할 기회를 제공할 겁니다. 나중에 참전비를 방문하는 자손들에게 이런 기념비에 우리 아빠도, 우리 할아버지도 일조했다는 자긍심을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정말 뿌듯한 기분이 드는 하루였습니다.

황 근(육군학사장교 남가주동문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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