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 칼럼] 김치맨과 겨울양식

내가 어렸을 때는 김장철이 되면 집집마다 김장을 하는것이 큰 행사 였다. 그도 그럴 것이 긴긴 겨울을 나기 위해서 김장은 필수적으로 해 두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김치 냉장고가 있는것도 아니었다.

짚으로 삼각형 모양의 집을 짓고 땅에 김치독을 여러개 묻어 두고서 그곳에 김장을 해서 김치를 넣어둔다. 그러면 땅속이라서 얼지 않고 김치를 보관 할 수 있었다. 김치를 꺼내러 손을 호호 불며 김치광으로 가던 기억이 새롭다.

그리고 그때의 생활형편은 지금에 비교가 되지 않을만큼 열악했기 때문에 겨울을 잘 나기 위해서는 겨울양식인 김장은 아주 중요했다. 그래서 식구가 별로 많지 않은 집이라고 하더라도 보통 배추 100포기를 담갔다. 식구가 많으면 200포기~ 300포기도 보통이었다.

이렇게 만들어둔 김장김치는 겨우내 생김치로도 먹고 멸치를 넣고 김치국을 끓여서 도 먹는다. 가끔 돼지고기와 두부를 넣고 김치찌개를 끓여서 먹는다. 그뿐인가 김치전도 부쳐서 먹고 멸치국수에 김치를 쫑쫑 잘게 썰어서 참기름과 깨소금을 넣고 무쳐서 얹어 먹으면 일품의 맛이다.

한겨울이 지나고 봄이 올때쯤 김치가 시어지면 가장 많이 해 먹는 것이 김치볶음이다. 고기가 들어가면 더 맛있지만 없으면 멸치를 넣고 만들어도 아주 맛있다. 김과 김치볶음 두가지만 있으면 밥한그릇을 뚝딱 해치운다.

1997년 중국 H시에 살고 있을때 그 도시의 대학에 미국에서 교환교수로 온 한국인 교수가 있었다. 나이가 많으셨는데 중국을 좋아해서 중국의 대학에 자주 교환교수로 오는 분이었다.

한국사람이 많지 않던 도시에서 한국어교수인 우리가 있다는 말을 학교에서 듣고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첫만남을 가진 후 나는 우리집으로 그 교수님 부부를 초대했다. 그 도시는 한국식당이 하나도 없던 곳이어서 손님이 오면 내가 직접 요리를 해서 대접을 해야 했다.

쇠불고기와 잡채, 닭도리탕등을 만들고 국은 고심끝에 김치국을 끓이기로 했다. 당시 나이가 꽤 있으신 교수님 부부이니 옛날에 익숙하게 먹었던 김치국을 좋아할 것 같아서였다. 과연 교수님 부부는 너무도 좋아 하였다.

김치에 대파와 멸치만 넣고 깔끔하고 시원하게 김치국을 끓여서 대접했는데 그 교수님은 두고 두고 김치국이 맛있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처럼 김치는 우리 한국인의 식탁에서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반찬중의 반찬이다.

최근 삼일에 걸쳐서 나는 우리집 소김장을 했다. 김장이면 김장이지 소김장은 뭐냐고 물으실 독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내가 이번에한 우리집 김장의 양이 김장이라고 하기엔 좀 낮간지러울만큼 아주 적었기 때문이다.

배추 6포기, 알타리 6단, 동치미무우 한단을 가지고 4가지 김치를 담갔다. 지인이 전화를 걸어 내가 김장을 한다고 하니까 얼마나 하느냐고 하기에 위와 같이 대답했더니 “그게 무슨 김장이예요. 그냥 김치담그기이지”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우선 김치를 넣어 두고 먹어야 하는 우리 집 김치냉장고가 작아서 많이 담글 수도 없다. 우리집 김치냉장고는 10킬로그램 짜리 김치통 4개만 딱 넣을 수 있다. 그래서 김치 냉장고 사이즈에 맞추어서 김장김치를 준비해야만 했다.

동치미는 물이 많기 때문에 우리집 김치냉장고용 김치통보다 거의 두배되는 큰 통에다 담갔다. 그래서 김치 냉장고에 들어가지 않아서 넣지 못하고 일반 냉장고 안으로 깊숙이 밀어 넣었다.

그제는 배추 3포기로 빨간양념의 김장김치를 담가 넣었다. 어제는 밤늦게 까지 알타리 6단으로 밥도둑이 될 알타리김치를 담그고 동시에 동치미를 담갔다. 그리고 오늘은 어제 절여둔 배추 3포기로 하얀 백김치를 담갔다.

다른 김치도 정성이 들어가지만 특히 백김치는 정성이 더 많이 들어간다. 고추가루 없는 하얀 김치를 맛있게 먹으려면 그만큼 부속적인 재료들이 많이 들어가야 맛있다. 백김치는 어머니도 남편도 다 좋아해서 늘 담가 먹는 우리집 단골 메뉴이기도 하다.

백김치 만드는 법을 잠간 소개해 보면, 배추를 4쪽을 내어 소금물에 절여서 씻는 것은 일반 배추김치를 할때나 똑같다. 그러나 양념은 좀 다르다. 나는 백김치의 국물을 시원하게 내기 위해서 다시마를 넣고 충분한 양의 물을 끓여 둔다.

다시마넣고 끓인 물이 식으면 그 물에 준비해둔 찹쌀풀, 마늘, 생강, 새우젓을 넣고 갈아 준다. 사과, 배, 양파도 따로 믹서기로 갈아둔다. 그리고 무우를 약간 굵직하게 채썰어서 소금에 살짝 절여놓고 쪽파도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무우채와 함께 절인다.

붉은 피망 노랑피망을 채썰어 놓는다. 대추도 씨를 뺀 후 곱게 채썬다. 그러면 이제 백김치 재료는 다 준비된 것이다. 밤이 있다면 넣으면 좋은데 없어서 패스했다. 이제 절여둔 배추에 흰색의 무우채와 초록색쪽파, 색갈고운 빨강색과 노랑색의 피망, 대추채를 켜켜이 넣어서 김치통에 담는다.

그다음은 김치통에 담아논 배추 한줄 위에 마늘, 생강, 새우젓, 사과, 배, 양파를 갈아 만든 액채를 소롯이 붓는다. 그 위에 또 한켜 그런식으로 배추에 고명을 켜켜로 넣어서 놓은 후 또 양념액채를 붓는다. 그런다음 랩으로 씌워서 뚜껑을 닫아 김치냉장고에 넣는다.

내가 김치 담그기에 정성을 들이는 것은 우리집에는 김치맨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남편은 김치를 잘 먹는다. 그런데 날이면 날마다 차리는 밥상에 매일 배추김치만 놓으면 식상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여러가지 김치를 담가 놓고 그때 그때 만든 반찬과 잘 어울리는 김치를 밥상에 내 놓는다. 남편뿐 아니라 나이드신 어머니도 식사때마다 차려 드린 김치는 무슨 김치이든 싹 다 드신다.

지인과 통화를 하다가 김장 준비를 한다고 했더니 식구도 없는데 뭐하러 김치를 담그느냐고, 사먹으면 간편 할텐데 라고 한다. 그렇기는 하지만 우선 사먹는 김치맛을 나부터 별로 썩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김치를 담가서 먹는 것이 현실적으로 많이 경제에 도움이 된다. 내가 담근 빨간김치, 백김치, 알타리김치, 동치미등 50킬로 이상의 김치를 사 먹는다고 하면 상당한 가격이 될 것이다.

하지만 배추 무우 고추가루 파 마늘 생강 갓등 부속양념을 다 계산해도 이번 김장에10만원 미만이 들었다. 만약 사먹으려면 3배 내지 4배는 비싸게 주고 사 먹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족의 입맛에 맞는 김치는 아닐 것이다.

삼일에 나누어서 김치를 담갔어도 김장은 김장인 모양이다. 김장증후군 피로가 내게 몰려 왔다. 하지만 나의 수고로 우리집 김치맨이 행복하고 어머니가 행복하고 밥을 차리는 내가 다양한 김치를 내놓을 수 있어 만족스러우면 충분히 가치 있는 수고이다.

김장을 마친 이튿날 아침 어머니에게 아침을 차려 드리기 위해 쌀과 보리를 섞어서 밥을 짓고 무우와 황태를 넣고 시원한 국을 끓였다. 우리 어머니는 꼭 국이 있어야 식사를 하시기 때문이다.

황태무우국과 함께 김장할 때 배추를 씻고 떨어진 배추잎을 따로 김치양념과 함께 참기름 깨소금 설탕도 약간 넣어 무쳐서 놓았다가 차려 드렸다. 어머니도 남편도 아주 맛있다며 아침식사를 했다.

올해도 아직은 내몫의 힘든 김장담그기 였지만 사랑하는 가족이 맛있게 먹어주며 행복해 하니 흐뭇한 기분이다. 내 가족의 행복이 곧 나의 행복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김장 담근 이튿날 아침이었다.

“하나님이 고독한 자들은 가족과 함께 살게 하시며 갇힌 자들은 이끌어 내사 형통하게 하시느니라 오직 거역하는 자들의 거처는 메마른 땅이로다(시 68:6)”

나은혜 선교사(지구촌 선교문학 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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