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 칼럼] 자녀에게 선물 받기

새벽기도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남편은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는 문으로 출입하는것을 좋아하지만 나는 아파트 담을 끼고 밖으로 조성된 구불구불한 길을 좋아한다. 이 길은 매우 운치있게 산책로로 조성된 길이다.

구불구불한 곡선의길을 따라 길바닥엔 형형색색의 가을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있다 빨간색, 노란색, 갈색, 푸르스름한색, 노르스름한색… 언덕위 푸릇한 잔듸위에도 수 놓은듯이 다양한 색상의 낙엽들이 떨어져 마치 커다란 양탄자를 깔아놓은 것처럼 보인다.

가을 운치가 넘치는 길을 걸어서 집으로 가면서 문득 남편이 오늘 생일을 맞은 큰딸의 이야기를 꺼냈다. “ 영화가 태어나던 날도 토요일이었는데 오늘도 토요일이네” 한다. 생각해 보니 정말 그랬다. 39년전 오늘인 토요일 나는 큰딸을 낳았던 것이다.

그때도 이렇게 남편 손을 잡고 가을 낙엽을 밟으며 걸어가서 출산을 했다. 토요일이지만 당시 고교 교사로 출근했던 남편은 내가 오전에 양수가 터졌다는 전화를 받고 부지런히 집으로 돌아왔다. 당시는 자가용이 흔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우리는 따뜻한 햇빛을 받으며 가을 낙엽이 바삭 바삭 발에 밟히는 소리를 들으면서 손을 맞잡고 걸어서 동네에 있는 조산원에 갔다. 그렇게 산모인 나는 10여분을 걸어가서 딸을 낳았다. 내가 조산원에 들어간 지 30분만에 으앙~ 하고 딸은 고고의 성을 울리며 태어났다. 완전 순산이었다.

딸아이는 신생아인데도 뺨이 장미빛으로 빛나는 아가였다. 조산원 입구에서 당시 청주 CCC의 ‘크로스라이프’자매들이 새 아가를 맞이하며 복음송을 불러 주었다. 자매들이 부르는 복음성가의 아름다운 화음이 분만실까지 들려왔다.

축복의 노래를 불러 주었던 자매들은 간호대학 선배가 운영하는 조산원에 마침 놀러 왔다가 CCC순장님의 아기가 태어난다는 소식을 듣고는 자신들이 자발적으로 즉석에서 중창으로 복음성가를 불러준 것이다. 그처럼 축복송을 들으며 태어난 그 딸이 39번째 생일을 맞았다.

오색단풍으로 단장한 우리가 사는 아파트 정원엔 나무가 많아선지 새들이 많이 찾아온다. 나비와 벌도 심심찮게 보인다. 때론 다람쥐도 보이고 야생 고양이도 겁도 없이 느릿느릿 걸어 다닌다. 최근엔 뱀까지 나타났다. 말하자면 우리는 그냥 자연속 공원 안에 살고 있는 셈이다.

사랑하는 딸의 생일날이어선지 오늘따라 가을날씨가 더없이 따사롭게 느껴진다. 딸에게서 “엄마 아빠 낳아 주셔서 감사해요.” 라고 문자가 날라왔다. 그리고는 “오늘 두분이 식사 하시고 차도 마시세요. “

그러면서 딸은 점심값이 될만한 돈과 스타벅스커피 두 잔과 조각케익구독권을 보내왔다. 남편과 나는 우리가 종종 가는 ‘린화’라는 좀 고급한 중국집으로 갔다. 점심에만 파는 칠리새우 요리와 짜장면 혹은 짬뽕의 세트 메뉴를 시켰다.

남편은 짜장면을 나는 짬뽕을 먹었다. 해물이 듬뿍든 짬뽕이 맛있었다. 그리고 역시 우리 동네에 들어온 지 얼만 안되는 스타벅스로 갔다. 날씨가 좀 더워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달달한 케익과 함께 아이스커피를 먹으니 더 맛있었다.

세월이 흘러서 어느덧 나의 아기였던 딸이 자라서 세 아이의 엄마가 되고 자신도 자녀를 낳아 키워보니 부모의 사랑의 수고가 깨달아지는 모양이다. 보통 생일하면 생일을 맞은 가족에게 선물을 보내주는 것이 일반적인 우리 가족의 축하 방법이다.

그런데 자신을 낳아주고 키워준 부모에게 감사해서 한끼의 식사라도 대접하려는 딸의 마음이 예쁘기만 하다. 나는 남편과 점심을 먹으면서 남편에게 한마디 한다. “딸이 사주는 밥이라 그런지 더 맛있네요.”

남편도 맞장구를 친다. “그러게 말이야 오늘따라 짜장면도 특별히 맛있는걸” 점심을 먹고 스타벅스로 커피를 마시러 가서도 우리는 내내 즐거웠다. “우리 돈 내고는 생전 안오는 스타벅스인데 딸 덕분에 와 보네요.”

남편도 “하하하…그러네 “ 자녀를 낳아서 키우면서 누렸던 기쁨도 대단했지만 이제 다 자라서 가정을 이루고 분가한 자녀에게 이렇게 대접받는 재미도 쏠쏠한것 같다. 앞으로도 우리 부부는 자녀들이 무엇을 선물하든지 ‘사양’은 안할 작정이다.

오래전 우리 부모님이나 조부모님은 체면이 많았다. 예를 들면 우리 할머니는 당신이 어릴때 키우다싶이 해서 유난히 사랑하는 큰 손자가 다른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고 집에 오면 반가우면서도 꼭 쓸데없는 말을 하신다.

“바쁘게 사는 젊은 사람이 뭐하러 집에는오누 어서 가야지” 하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고는 하루 이틀 오빠가 머물다가 떠나고 나면 손자의 떠나는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눈물을 훔치는 것을 나는 종종 보았다.“ 할머니는 전혀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신 것이다.

그런 경험 때문인지는 모르나 나는 자녀들이 무얼 해 준다고 할때 사양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두어 주 전에도 아들이 연락을 해 왔다 “이빠 엄마에게 실내에서도 입기 좋은 경량 패딩점퍼 하나씩 사 드리려고 하는데 필요 하세요? “

나는 “있으면 좋지 색상은 둘 다 검정색으로 사주렴” 했다. 남편과 색을 맞추어 입는 곤색의 경량패딩점퍼가 있긴 했지만 검정색으로 하나씩 더 있으면 좋을것 같았다. 선물이 도착했고 남편은 아들이 사준 경량패딩점퍼만 열심히 입는다.

전에 입던 곤색 패딩점퍼는 약간 쨍기는 기분인데 새로 선물 받은 경량점퍼는 넉넉해서 편하다고 하면서… 나도 외출할때 정장외에 가볍고 편하게 걸칠 수 있는 겉옷이 하나 있었으면 했는데 아들이 보내준 쟈켓식 경량점퍼가 딱 좋았다.

가을이 깊어 간다. 어떤 선물이든 선물은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가벼운 커피와 케이크 구독권 하나라도 누군가의 우울한 기분을 플어 주기엔 충분하다. 누군가가 나를 생각해 주는 마음의 증표가 바로 선물이기에 말이다.

이 가을엔 평소 고마웠던 사람에게라든지 아니면 그저 나의 위로가 필요할 것 같은 사람에게 작은 선물을 준비해 보내보자. 누가 알겠는가? 우리의 작은 선물에 따뜻한 사랑을 느껴서 우울에 빠져서 세상 살맛 없다던 사람이 새 힘을 얻고 용기를 얻게 될지도 모르지 않는가?

너그러운 사람에게는 은혜를 구하는 자가 많고 선물 주기를 좋아하는 자에게는 사람마다 친구가 되느니라(잠 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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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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