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 칼럼] 치료자로 찾아온 루비

벌써부터 아들은 제가 키우던 말티즈종인 강아지 루비를 김포 우리 집에 가져다 놓겠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시큰둥했다. 평소에 나는 별로 강아지를 좋아하지도 않았지만 키우는데는 더더욱 흥미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치매환자인 어머니를 돌보기도 버거운데 내 손이 일일이 가야 하는 조그만 강아지 양육이라니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아들에게 손사래를 치며 안된다고 하였다.

그런데도 아들은 작년 추석에 집에 오면서 강아지 루비를 데리고 왔을뿐 아니라 강아지 용품들을 한보따리 싸들고 들어왔다. 강아지를 데리고 왔다가 추석을 쇠고는 두고 가려는 의도가 확실했다.

나는 반가운 아들이 집에 온것은 환영이었지만 키워 보지도 않은 강아지는 도대체 어떻게 키우나 걱정이 앞섰다. 아들은 루비가 적응하는 시간을 갖도록 다른때보다 더 오랫동안 집에 머물다가 대구로 내려갔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루비는 적응을 아주 잘했다. 아들이 일년이나 키웠는데도 루비는 새로운 주인인 남편과 나를 잘 따르기 시작했다. 특히 루비는 남편의 서재로 가서 남편의 책상 아래에 쭈그리고 앉아 있곤 했다.

이집의 대장이 누구인지 루비는 금새 알아차린 것이다. 그렇게 루비는 우리 식구가 되었다. 내가 외출했다가 들어오면 루비는 반갑다고 생난리를 쳐댔다. 말을 못하는 강아지니 몸으로 표현할 수 밖에 없어서일 것이다

강아지 루비는 펄쩍 펄쩍 뛰고 두발로 서서 앞발을 들고 껑충껑충 뛰기도 하고 내 주위를 뱅뱅 돌기도 하고 멍멍 짓기도 하고 아무튼 제가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총동원해서 나를 반기는 표현을 했다.

그런 루비를 보면서 나는 참 아이러니를 느꼈다. “아니 강아지가 사람보다 낫잖아 내가 지금까지 수없이 집을 나갔다가 들어 왔지만 누가 나를 이렇게 대대적으로 환영해 주었었지? 루비처럼 이렇게까지 기뻐 날뛰면서 환영해준 가족은 없었는데…

그저 남편은 자기 방에서 “왔어요?” 하거나 아무소리도 없거나 했었고 어머니 역시 당신 방에서 내가 들어오는지 나가는지도 모르셨는데… 강아지 루비에게는 나는 완전히 최고의 ‘웰컴투더홈(well come to the home)’의 대접을 받고 있었다.

그뿐인가 루비의 나에게 하는 친근한 표현은 상상을 초월한다. 루비는 다른 곳에 앉았다가도 내가 소파에 앉기만 하면 언제든지 팔짝팔짝 뛰어와서 내옆에 제몸을 착 밀착시켜 붙이고는 눕는다. 마치 “나는 당신곁이 제일 좋아요 “하듯이 말이다.

그리고는 때때로 내 옆에 누워서 발랑 배를 내보이고 눕는다 쓰다듬어 달라는 것이다. 내가 루비의 배를 슬슬 문질러 주면 아주 기분 좋아한다. 기분이 좋으면 제 혀로 사정없이 내 손을 핦아댄다.

내가 안방으로 가면 안방으로 따라오고 침대에 누우면 침대위로 뛰어 올라서 옆에 눕는다. 화장실에 가면 문앞까지 따라와서는 기지개를 쭉 펴면서 운동하는 폼을 보이기도 한다. 루비는 천부적으로 ‘친근대사’ 인듯하다

게다가 루비는 종종 고개를 바짝 쳐들고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기를 좋아한다. 새까만 눈으로 나를 계속 응시한다 마치 루비는 “저… 저는 주인님이 너무 너무 좋아요” 라고 하는 것만 같다. 그럴때마다 나도 루비를 마주 바라보면서 빙긋이 웃으며 말해준다 “루비야 사랑해”

어쩌면 루비는 사람에겐 없는 감각능력이 있는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그렇게 전폭적으로 경계심을 풀고 자신을 무장해제하고 다가오는지 루비의 친근함 표현에는 그저 감탄사만 연신 튀어나온다.

내가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어떻게 알고 그렇게 자기자신을 내게 맡기는 것일까 매일 루비의 얼굴을 잡고 물티슈로 눈곱을 닦아내고 코도 닦아준다 말하자면 세수를 해 주는셈인데 그럴때도 루비는 제 얼굴을 내게 맡기고 가만히 있는다.

토요일 오전에 루비의 미용을 해 주기로 했다. 남편이 분홍색 보자기를 가져다가 루비의 목에 보자기를 둘러서 묶어 준다. 나는 이발 가위를 들고 루비의 얼굴을 가리는 털을 조금씩 잘라 주었다.

털이 눈을 덮기도 해서 그 주변의 털을 잘라 주어야 한다. 그리고 코에 붙어 있는 털들도 떼어 내어 잘라 주었다. 입주면의 털도 정리해 주어야 음식을 먹을때마다 털이 입안으로 안들어 간다.

한참 정리를 해 주었더니 까만 눈.코.입이선명하게 보여지고 예뻐졌다. 하얀털에 까만 눈 코 입을 가진 신생아 아기의 몸무게만한 3킬로그램의 조그만 강아지가 나의 모성본능을 쉴새없이 깨우고 있다.

루비를 산책시키러 나갈때 루비같은 강아지를 키우는 이웃들을 종종 만나면서 우리의 화제는 자연스럽게 강아지 이야기를 나눈다. 루비같은 말티즈의 다른 강아지를 안고 있는 이웃과 대화를 나누었다.

“강아지 데리고 산책 다녀 오세요? “ 이웃이 대답한다. “아니오, 병원에 다녀와요” 어떤 때는 “강아지 스파해 주고 미용해 주고 오는 길이예요.” 내가 “그렇게 해 주는 데는 비용이 얼마나 드나요? “13만원 정도 들어요.”

나는 이웃의 말을 듣고 ‘유구무언(有口無言)이라는 사자성어가 생각이 난다. 할 말이 없어서다. 다만 속으로만 생각한다. “햐~ 사람 미용하는 비용 이상이 드네” 하지만 뭐 궁하면 통한다고 내가 루비의 미용사가 되어 주면 된다

집에 돌아와 대야 두 개에 따뜻한 물을 받아 놓고 루비를 목욕시킬 준비를 한다. 목욕에 이미 익숙해진 루비는 털에 물을 끼얹어 주어도 가만히 있는다. 나는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루비의 두 귀를 밑으로 내려 꼭 잡는다.

다음엔 샴푸로 루비의 털에 거품을 낸 후 빗으로 빗겨가며 털을 감겨준다. 깨끗이 씻어낸 후 이번엔 린스를 털에 발라 문질러 준 후 씻겨 준다. 물에 젖은 루비는 더 조그만 모습이다. 대기하고 있던 남편이 큰타월에 루비를 싸서는 데리고 나간다.

드라이기를 준비해 두었다가 남편이 루비의 털을 말리기 시작한다. 스파완성! 남편과 합작으로 13만원을 벌은 것이다 호호호….목욕하고 난 루비는 하얗고 부드러운 털을 뽐내며 소파에 엎드린다. 피곤 하다는 듯이…

아들이 종종 루비 소식을 묻는다. “엄마 루비 사진 보니까 털뭉치 같던데… 개미용실에 데리고 가서 미용좀 해 주세요. 전체미용하면 비싸지만 부분미용을 하면 3만원이면 되요.” 나는 “그래 알았다.”

그리고는 아들의 전화를 끊고 가위를 잡는다 오늘도 3만원 벌어보자 하면서… 벌써 여러차례 루비 털을 잘라 주었고 목욕도 두 주에 한번을 씻기고 있다 아들은 삼 주에 한번만 씻기라고 했지만 말이다.

루비는 속옷 겉옷 모두 합쳐서 하얀색옷 한가지만 계속 입는데 두주에 한번은 씻겨 주어야 할것 같아서이다. 종종 데리고 나가서 산책을 시킬땐 아들이 키울때 사 둔 여러 옷들중에 골라서 입혀 데리고 나가기도 한다.

나는 운동을 하러 나가서 보통 집앞 작은 원으로된 조깅장을 10~12바퀴(한번 도는데 3-4분) 돌면서 체력을 다진다. 루비는 처음엔 쌩쌩하게 나를 끌어당기듯이 달리기도 하지만 점점 힘이 빠지면 뒤로 뻗대면서 안가려고 한다.

그럴때는 번쩍 안아서 품에 안고서 걷는다. 루비는 다리가 네 개 이긴 하지만 그 조그만 다리로 나에게 맞추어 주려니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마치 아기를 데리고 걷다가 아기가 다리 아프면 안 걸으려고 하듯이 루비도 똑같다.

루비를 품에 안고 걸으면서 내 추억속 저 깊은곳으로 부터 밀려오는 감정이 있다. 그것은 내 아이들을 키우면서 느꼈던 감정이다. 아들을 낳아서 안고 외출을 하면서 가졌던 뿌듯한 감정이 수십년전 일인데도 고스란히 떠오른다.

아들 밑으로 두 딸을 낳아서 젖을 먹이고 품에 안아 키우면서 행복했던 그시절이 고스란히 기억이 나는 것이다. 그런 기억이 날때마다 루비를 더욱 소중하게 힘을 주면서 꼭 안아주게 된다. 마치 내아이들을 안아 주었듯이…

아… 잊고 살았던것 같은데 내 안에 아직도 빈둥지 중후군이 남아 있었나 보다. 자녀들이 다 자라서 떠난 후에 오는 상실감과 쓸쓸함…그런데 루비를 키우면서 나도 모르게 내안에 있던 ‘빈둥지증후군’ 치유가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고맙다 어여쁜 루비야

“나의 사랑 너는 어여쁘고 아무 흠이 없구나(아가서 4:7)”

나은혜 선교사(지구촌 선교문학 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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