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옥중 서신 – 내가 지은 죄와 벌

– 박근혜 ‘그리움은 아무에게나 생기지 않습니다’ – 중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옥중 육필 메모를 엮은 책 <그리움은 아무에게나 생기지 않습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작은 몸으론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내 과오(過誤)와 죄(罪)는 크고 무겁습니다.

그에 따른 형벌이 가볍지 않아서 사방 두터운 이중(二重)의 벽에 갇혀 겨우 숨을 쉴 뿐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앞만 보고 힘들게 달려가는 뒷편에서 어떤 음모의 수상한 움직임을 간과하다가 돌연

“저 여자가 마녀야!”
하는 고함 소리에 그런가 하고 모여든 군중들의 손가락질이 저를 향하고 검은 손이 풀어놓은 사냥개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저는 사슬에 포박된 먹잇감이 되고 말았습니다.

정치마당이 오직 권력을 얻기 위한 싸움터일까요?

그들의 반칙과 속임수, 선동술에 의해 저는 철저히 무너졌지요.
저는 그저 규칙에 의해 경기하는 바보였습니다. 결과는 이긴 사람이 모든걸 가져갑니다.
빼앗아 갑니다.

진 사람은 모든 걸 잃어버립니다. 빼앗깁니다.

잘 싸우지 못한 게 이렇게 큰 과오(過誤)일 줄 모르는 바보였습니다.

이제 제게 남은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영예도 권세도, 곁의 사람도 다 떠나고 꿈마저 노여움마저 남김없이 사라졌습니다.

오직 돌팔매질과 뭇매로 얼룩진 피투성이 상처와 끝없이 모멸당하며 얻게 된 실패자의 아픔 밖에는 없습니다.

저는 승자의 환호 밖에 내동댕이쳐진 시체와 같습니다.

나를 가두고 있는 감옥은 둘입니다.

비겁한 하수인의 마수에 걸려 잡혀 들어온 감옥과 스스로 마음의 벽을 쌓아 만든 또 다른 감옥입니다.

견고히 시멘트 벽을 두른 감옥이야 두렵지 않습니다만 스스로 만든 보이지 않는 감옥은 참으로 두렵습니다.

이 두개의 감옥 안에서 눈감고 귀막고 입다물고 있습니다.

내게 형벌을 내린 죄목(罪目) 또한 둘입니다.
하나는 법복입은 사람들이 임의로 제단(裁斷)한 죄목으로서 제가 행한 일입니다.

국정농단이 되고 제거해야 할 적폐이며 그 죄는 모두 수장(首長)의 몫이라는 것입니다.

사슬에 매달아 놓고 난타하는 인민법정과 다름없습니다.

이에 대하여 저는 무죄를 주장합니다.

또 하나의 죄목은 제 자신이 엄정(嚴正)히 찾아낸 진짜의 죄목으로 난국을 수습못해 불행을 야기한 무능의 죄입니다.

나라와 국민을 위해 부지런히 일해 왔지만 나라는 파멸을 향하고 노예의 길을 막지 못한 책임입니다.

이는 분명 유죄입니다.

역사에 오점(汚點)을 찍는 중죄(重罪)로서 죽어서도 지울 수 없는 치욕스런 주홍글씨입니다.

저는 모든 것을 잃고 빼았겼습니다.
전부가 저의 책임으로 귀결지으며, 울분도 슬픔도 미련도 없이 혼자서 떠안고 가려고 합니다.

얼굴을 내밀어 말하거나 변호를 받지도 않겠습니다.

제가 해야하는 유일한 일은 침묵의 항거입니다.

저는 오늘도 독방에 정좌해 누군가에게 묻습니다.

세상이 어떻게 된거야? 세상이 이래도 되는거야?

어쩌란 말입니까?
생각이 짧았음을 후회한들 오명을 쓴들 고난의 운명을 짊어지고 가야하지 않겠습니까?

저를 석방해 달라는 선한 국민들의 청원이 있으나 저는 단연코 거부합니다.

제 한 몸 편하기 위해 석방을 구걸한다면, 그들이 억지로 꾸며낸 죄를 인정하는 꼴이 됩니다.

먼저 도둑과 강도를 퇴치해야만 그 집안에 안전과 평화가 오지 않겠습니까?

바라는 것이 있다면 이 뒤틀린 나라가 올바른 길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겉으로 정의를 말하면서 부정의를 행하는 나쁜 무리들을 물리쳐야 합니다.

국민들의 오도된 시각과 생각이 바뀌어야 하고 사실과 진실을 보고자 하는 각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만이 나라와 국민을 살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하늘이시여!

간절히 기도하옵는 바는 거짓이 횡행하는 어둠의 시대가 조속히 물러가고 진정한 국리민복을 실현할 정상국가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저 한 몸 감옥에서 순절한들 숙명이라 생각할 뿐이어서 그날이 오기만을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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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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