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 칼럼] 선한이웃(1)

지난 토요일 집앞으로 배달된 커다란 포장의 택배를 보고 남편 K선교사가 깜짝 놀란다. “여보! 아주 큰 택배상자가 왔어 이게 무얼까?” 나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이기에 “응~ 내가 주문한 거예요. 어머니가 쓰실 성인용 기저귀예요.”

실로 기저귀는 인간사에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물건이다.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치고 기저귀를 안차고 자라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테니까 말이다. 더욱이 지금은 세상이 좋아져서 기저귀의 질은 또 얼마나 좋아 졌는가?

40여년전 내가 결혼해서 자녀들을 키워낼 때만 해도 천 기저귀를 사용해서 아기들을 키웠다. 갓 태어난 아기를 위해서는 신생아용의 부드러운 가제같은 천으로 된 기저귀를 따로 준비해서 사용했다.

그러나 아기가 자라나서 백일이 지나면 배변량이 많아지면서 거즈같은 신생아용 기저귀로는 안된다. 튼튼한 재질의 광목을 끊어서 신생아용보다 훨씬 길게 잘라서 30~40개를 만들어서 빨아 삶아서 준비해 두었다가 사용한다.

그래서 아기 키우는 집엔 대개 방안에 가로질러 빨랫줄이 매여져 있고 방안엔 길다랗고 하얀 기저귀가 널려 있는게 보통이었다. 지금처럼 기저귀를 사다가 쓰고 버리는 시대라면, 이중 덮개문으로 되어 있어 냄새가 안새나가는 커다란 쓰레기통 하나만 있으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기저귀를 빨아서 사용할때 였으니 아기 기저귀를 빨아서 말린 후에 접어 두는 일이 큰일이라면 큰일이었다. 기저귀는 미리 미리 빨아서 준비해 두지 않으면 않되었기 때문에 빨래가 잘 안 마르는 비라도 오는 날이면 더욱 신경이 쓰이곤 했다.

빨아 말린 기저귀는 평평하게 잘 펴서 접어야 한다. 혹여라도 아기의 부드러운 몸에 닿을 기저귀가 조금이라도 불편할까봐 아기엄마는 기저귀천을 옆으로 죽죽 당겨 가면서 주름이 안지게 잘 펴서 접는다. 엄마의 사랑을 잔뜩 담아서…

또 배변을 처리하는 기저귀 이니까 빨아서 써도 혹 아가 몸에 해가 될까 싶어서 소독이 되라고 기저귀를 늘 푹푹 삶아서 사용한다. 그만큼 아기를 키우는 일은 정말 손이 많이가고 일이 많았다. 이런 엄마의 정성을 통해 한 사람이 버젓한 인간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사실 나도 그때는 기저귀란 아기를 키울때사용하는 것인줄로만 알았다. 사람이 늙어서 다시 아가처럼 되어 기저귀를 찰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던것 같다. 그런데 나는 지금 작고 귀여운 갓 태어난 아가가 아니라 덩치가 큰 ‘어른아가’를 돌보고 있다.

며칠전 손자 조이를 돌봐주러 대구에 갔을때가 생각이 났다. 곧 8개월이 되는 조이의 기저귀를 갈아 줄때면 작고 통통하고 부드러운 아기의 피부가 사랑스럽기만 했다. 아기때는 오줌을 싸든 똥을 싸든 다 예쁘고 귀엽다.

그냥 예뻐서 어쩔줄 몰라하며 “우쭈쭈~ 우쭈쭈~”하고 아기를 어르면서 기저귀를 갈아준다. 그래선지 기저귀를 갈아주는 엄마 앞에서 아기는 무척 당당하다. 마치 “내 기저귀를 갈아주는 특권을 엄마에게만 드린거예요 으흠~ “ 하는듯이 말이다.

하지만 어른아가는 완전히 다르다. 아무리 알츠하이머병(치매)을 앓고 있어도 어느정도의 체면은 있는것 같다. 치매로 인해 때때로 어머니는 기저귀를 안 갈겠다고 화를 내시기도 하지만 대개는 기저귀를 교체해 드릴때 어머니는 나에게 미안해 할때가 더 많다.

그리고는 어머니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신다. “에구~ 내가 빨리 죽어야지” 후후후… 아마 여러분도 모두 아는 이야기일것이다. 노인이 빨리 죽고 싶다는말과 처녀가 시집 안가겠다고 하는말, 그리고 장사꾼이 물건을 팔아도 안남는다고 하는 말이 진실이 아니라는것 말이다.

그러면 나는 어머니의 말을 얼른 받아준다. “어머니 걱정 마세요. 때가 되어 하나님이 부르시면 가기 싫어도 가실때가 와요. 주님이 정희야 며느리랑 그만 살고 이제 나랑살자 하시면서 천국으로 데려 가실때가 올거예요 호호호…”

그렇게 너스레를 떨어가며 기저귀를 교체해 드리고 물티슈로 몸을 닦아 드리는 일이 일상이 된지도 한참이다. 그런데 이 기저귀값이 정말 만만치가 않다. 기저귀가 잘 만들어져 있는만큼 기저귀에 따라 가격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어른아가에게 사용하는 기저귀는 꼬마 아가에게 사용하는것처럼 간단하지가 않다. 어른의 경우 보통 속기저귀, 언더웨어(팬티기저귀), 취침할때 사용하는 찍찍이를 붙이는 겉기저귀 안심깔개등 이렇게 다양한 기저귀를 준비해 두고 사용해야 한다.

왜냐하면 아가랑 다르게 어른아가는 배변량이 많기 때문이다. 속 기저귀까지 사용해도 자칫 넘치면 침대위의 패드며 이불이며를 다 빨아야 한다. 어른의 오줌은 아가랑 다르게 냄새가 지독해서 이불이나 패드에 조금만 묻어도 얼른 빨지 않으면 안된다.

아무튼 이젠 우리집의 생필품이 되어버린 성인용 기저귀는 늘 준비해 두어야 하는 중요한 물건이 되었다. 좀 저렴할까 하여 당근마켓에서 몇번 성인용 기저귀를 사서 써 보기도 했지만 기저귀 종류도 다르고 구입하기가 불편해서 이젠 주로 쿠팡에 주문해서 사용한다.

지난번 내가 쓴 수필 ‘ 푸쉬킨의 시(诗)와 장례비”를 읽은 나의 장신대원 동기 목사님이 어르신 기저귀 값을 하라며 계좌이체를 좀 해 주어서 이번엔 마음 놓고서 성인용 기저귀를 많이 주문했다. 20개들이 속기저귀 14팩을 샀으니 양이 상당했다.

마침 세일을 해서 많이 저렴하기도 했지만 14팩을 사야면 택배비가 무료여서 넉넉하게 주문한 것이다. 아무튼 기저귀값은 친구 목사님이 보내 주었으니까 기저귀 구입비 때문에 마음 졸이지 않아도 되었다. 이런 ‘선한이웃’ 때문에 어머니를 잘 모실 수 있게 되어 오늘도 감사가 넘치는 날이다.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벧전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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