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 칼럼] 오미크론을 이긴 어머니

지난 토요일 시흥에 있는 코로나 전담병원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 코로나 오미크론에 걸려 입원하셨던 어머니를 이제 모셔 가라는 것이다. 하긴 어머니가 그 병원에 입원 하신지 8일째이다.

만 7일이 되었으니 자가격리 기간은 끝났고 더 이상 오미크론 전파력도 없어졌을테니 병원에서 모셔 가라고 하는 것이 당연했다. 더 이상 입원하고 있으면 비용을 별도로 지불해야 할 것이었다.

우리 부부는 오랫만에 운전을 하면서 국제공항 가는 고속도로를 달렸다. 멋진 다리와 바다가 양 옆에 펼쳐져 있어 드라이브 코스론 그만이었다. 통행료가 좀 비쌌지만 길 이 안막히고 빨리 가기 위해 택한 길이었다.

한시간여의 운전 끝에 시흥에 있는 센트럴요양병원에 도착했다. 병원 직원이 미리 나와서 어머니를 퇴원시켜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코로나 전담병원이어서 환자 이외의 가족은 안으로 들어 갈 수도 없었다.

조금 기다리니 방역복을 입은 남자 간호사가 방역을 위해 푸른 비닐에 쌓인 어머니를 구급침대에 싣고 나왔다. 어머니는 내가 보내 드린 겉옷을 갈아 입으셨고 입에는 마스크를 쓰고 온몸을 푸른 비닐로 덮어쓴 채 나오셨다.

어머니가 보건소 앰블런스를 타고 병원에 입원하러 들어갈 때 입었던 옷은 내의부터 겉옷 양말까지 모두 폐기 처분을 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돌아올 때 입을 옷을 따로 보내라고 했던 모양이다.

우리는 정신이 없는 멍한 상태의 어머니를 받아서 푸른 비닐을 벗겨 쓰레기통에 버리고 승용차 뒷좌석에 앉혀 드렸다. 안전벨트를 매어 드리고 남편이 옆에 앉았다. 올때는 남편이 운전을 하고 왔으니 갈때는 내가 운전을 하기로 했다.

올때는 국도가 별로 막히지 않아서 통행료가 저렴한 국도로 왔다. 나는 운전을 하면서 백미러로 어머니의 상태를 계속 살폈다. 어머니는 눈을 뜨고는 있으나 초점이 없는 눈으로 주위를 힐끔 힐끔 보면서 두리번 거리셨지만 무엇을 보고 있는것 같지는 않았다.

옆에 앉은 아들도 알아보지 못하고 있었고 정신이 몽롱해 보이는 모습으로 매우 안정되어 보이지 않는 상태였다. 집으로 돌아와서 어머니를 곧 침대에 눕혀 드렸다. 그리곤 그대로 잠이 드신 어머니는 사흘간을 내리 잠만 주무셨다.

어쩌다 의식이 깨어 있으셔서 물을 숟가락으로 떠서 목으로 넘겨 드렸다. 그리고 고단백균형영양식이라는 뉴케어를 입에 빨대를 물려서 빨려 드렸더니 조금씩 드셨다. 그래서 삼일동안 뉴케어 세팩을 드셨다. 미음을 쑤어서 대기하고 있다가 입에 넣어 드렸지만 두 숟가락을 받아 드시고는 그만 이었다.

이렇게 아무것도 안 드시다가는 기력이 쇠잔해 지실텐데… 걱정이 앞섰다. 문득 오래전 돌아가신 나의 친정 할머니가 거의 40일동안을 식사를 못하시고 두유나 물만 조금씩 드시다가 결국 돌아가셨던 생각이 났다.

우리 어머니에게도 천국문이 가까운 것일까? 남편도 형제들에게 연락을 하면서 슬며시 마음을 준비 하는것 같았다. 나는 대구에 사는 큰 아들을 올라 오라고 했다. 장손인 아들은 오래전 돌아가신 시아버님의 임종을 지켰던 손자였다.

당시 우리 부부는 선교지에 있었고 아들은 한국에 나와서 한동대학을 다니고 있었다. 마침 방학중이라 할머니 집에 와 있다가 우리 대신 할아버지의 임종을 지켰었다. 그 어머니의 장손자가 집으로 오고 있었다.

어머니 방에 전에는 미등만 켜 드렸는데 좀더 밝은 스탠드등을 어머니 방에 밝혀 놓았다. 어머니의 상태를 수시로 살피기 위해서였다. 한밤중에 일어나 어머니 방에 들어가 보면 계속 깊은 잠에 빠져 있으셨다.

그런데 아들이 김포 우리집으로 오는날 기적이 일어났다. 집에 오신지 삼일밤낮을 잠만 주무시던 어머니가 의식을 회복 하시고 정신이 맑아 있었다. 나는 반가워서 얼른 죽을 데워 왔다.

맑은 김치국과 함께 한입 한입 어머니 입에죽을 넣어 드렸다. 어머니는 다 받아 드셨다. 신기했다. 준비해 둔 죽 한 그릇을 다 드신 것이다. “아… 어머니가 이제는 사시겠구나…” 나는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그리고 한숨을 주무시고 나서 나는 다시 흰죽을 쑤었다. 흰쌀을 불린 후 참기름을 두르고 쌀을 달달 볶다가 끓는 물을 넉넉히 부어서 죽을 끓였다. 그러면 참기름에 볶다가 끓인 흰죽은 고소해서 입맛을 돋구워 준다.

첫번째 죽을 드신 지 서너시간이 지나서 다시 죽 한그릇을 다 비우시더니 어머니는 힘이 나셨는지 거실로 나오겠다는 시늉을 하신다. 그리고 거실에 나와서 두어시간 이상 텔레비젼을 보시는 것이 아닌가?

마침 대구에서 올라온 아들이 생각보다 멀쩡해 있는 할머니를 보고는 “제가 할머니 위해서 진짜 간절히 기도 했거든요.” 한다. 이처럼 기도는 기적을 일으킨다. 장례 준비를 해야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상황에서 어머니는 다시 살아나신 것이다.

텔레비전을 두세시간이나 보시고 쉬러 둘어가시기전 나는 다시 흰죽을 한번 더 드렸다. 이번에는 김치국과 함께 달걀장조림도 잘게 썰어 죽에 얹어 드렸는데 다 드셨다. 오늘 세번이나 식사를 하셨으니 이젠 원기가 회복되기 시작하실 것이다.

이번 코로나로 정말 많은 노인들이 돌아 가셨다고 한다. 기저질환이 있던 노인들은 면역력이 약해져 있어서 코로나까지 걸린 후 에 바이러스를 감당을 못하고 생명을 마감한 분들이 많다는 것이다.

내가 어머니에게 그동안 매 식사때마다 두알씩 드시게 했던 비타민C의 영향도 이번에 어머니가 다시 살아나시게 된 중요한 요소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비타민C의 효능은 죽어가는 사람도 살린다고 하지 않는가?

고난 주간을 보내고 부활절 주일을 맞이하게 되는 시점에서 어머니의 회복은 단순한 회복이 아니라 내게는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모습으로 느껴졌다. 죽음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부활의 능력으로 우리 어머니를 살려 주신 것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요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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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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