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 칼럼] 감동을 준 수제케이크

2015년도 구정 때였나보다. 내가 서울 양천구 신월동에 살 때 였는데 아들이 설을 쇠러 대구에서 올라 왔다. 나는 근처 7분 거리에 있는 ‘서서울호수공원’을 산책하는 것을 좋아해서 아들을 데리고 산책을 하러 갔다.

당시에도 이미 30대 중반인 아들이 결혼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어서 슬며시 걱정이 되어 말을 꺼냈다. 하지만 아들은 “걱정마세요 엄마 착한 여자 데리고 올께요.” 하며 내가 꺼낸 말을 일축하고 대구로 내려 갔다.

그런데 데리고 온다던 착한 며느리를 일년이 지나고 이년이 지나고 삼년이 지나 오년이 지나도 아들은 데려 오지 않았다. 아들은 어느듯 훌쩍 40대가 되었다. 나는 아들 눈치를 보면서 마음속으로만 “아이구~ 저걸 어째 저러다 울아들 다 늙어 버리겠네”하며 애가 탔다.

그런데 지난 5월초 어린이날을 앞 두고 외손주들을 보러 대구에 내려 갔을때였다. 자녀들의 배려로 우리부부가 신혼여행을 경주로 가면서 시간이 늦어져 하루 머물렀던 ‘호텔수성’에서 하루를 머무르고 이튿날 호텔을 나왔을 때였다.

체크아웃을 하고 호텔 로비에서 아들을 기다렸다. 함께 점심을 먹기로 했기 때문이다. 조금 기다리고 있으니 그레이 색상의 소나타차가 나타났다. 아들이 타고다니는 차였다. 그런데 아들이 “엄마 누구와 같이 왔어요.” 한다.

운전석 옆 좌석에 검정색 원피를 입은 참한 아가씨가 앉아 있었다. 아들이 만나고 있는 여자친구인데 아빠 엄마가 마침 대구에 오셨으니 소개해 드리려고 함께 왔다는 것이다. 우리 부부는 갑자기이긴 했지만 기뻤다.

아들이 드디어 결혼할 생각을 하는구나 싶어서 말이다. 생각해보니 아들은 이 나이가 먹도록 연애를 하거나 가족에게 여자친구를 소개했던 적이 한번도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빠와 한살 터울로 같은 대학을 다녔던 딸도 말했다.

“엄마, 오빠가 지금처럼 집중해서 사람을 만나고 교제한적은 한번도 없었어요.” 훈남스타일인 아들을 좋아하는 여성들이 꽤 있었던걸로 알고 있는데 아들은 연애를 하지 않았다. “이젠 가정을 세워야 하는데… 너무 늦어 지는데…” 그러나 우리 아들은 부모의 염려는 아는지 모르는지 태연하기만 했다.

그랬던 아들이 자매를 만나고 있고 부모에게 소개까지 시켰으니 우리 부부의 마음이 얼마나 기뻤을 지 독자 여러분도 상상이 가실 것이다. 어쨌든지 내 아들이 결혼을 안하고 40을 훌쩍 넘기리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그런데 주변을 돌아보니 내 아들만 결혼이 늦은것이 아니었다. 친구의 아들들도 딸들도 또 지인의 아들이나 딸들도 예전 같으면 만혼중에 만혼이라고 할만큼 나이가 들어가서 30대 후반에서 40대 초중반으로 가는데도 결혼하지 않고 있는 자녀들이 많았다.

그런 현상을 보면서 이젠 나이든 아들 혼사나 과년한 딸 혼사를 걱정하는 것이 나뿐만의 염려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주변의 친구나 지인들도 자신들의 자녀 혼사가 늦어져서 다들 염려하고 있었으니 시대적인 유행이라도 된 듯 싶었다.

아무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들이 결혼하고 가정을 갖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잠언 31장에 나오는 현숙한 여인같은 며느리를 우리 가정에 보내 달라고 기도하는 일이었다. 그동안 내가 아무리 지인의 딸들을 소개해도 아들은 들은척을 안하니 방법이 없었다.

그랬는데 이렇게 참한 아가씨를 데리고 와서 소개를 하다니… 나는 그날 기분이 좋아서 비싼 것은 아니지만 대구의 한 맛집에서 아들과 아들의 여자친구에게 점심을 사 주었다. 그리곤 로아네 집으러 가서 하루를 묵고 김포로 올라왔던 것이다.

대구를 다녀 온 지 한 주가 지났을까 우리집 문앞에 택배로 하얀 스치로폼 상자가 도착했다. 이게 무얼까 하고 열어보니 뜻밖에도 케이크 였다. 누가 보냈을까? 발신인을 찾아 보아도 이름이 없다. 이상하다. 이걸 누가 보냈을까?

곧 어버이날이 다가오니 나의 자녀들 가운데 누가 보낸 것일까? 그런데 그렇다면 미리 전화를 했을텐데…어버이날 “아빠 엄마맛난것 사드세요.” 라고 문자와 함께 돈을 보낸 자녀는 있었어도 케이크를 보낸다는 자녀는 없었는데…

누가 보냈던지간에 일단 하얀 스치로폼 상자를 열어보았다. 그곳에 다시 케이크를 포장한 종이상자에 케이크는 얌전하게 들어 있었다. 그런데 그 케이크에 쓰여 있는 문구가 나를 더욱 놀라게 했다.

연한 미색 바탕의 케이크의 가장자리는 아홉송이의 빨간 장미꽃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가운데 쓰여 있는 글자가 나에게 감동을 주었다. “내년 어버이날엔 가족이 되어 만나요” 라고 케이크 위에 쓰여 있었던 것이다.

보통 생일이면 “축 생일” 성탄절이면 “축 성탄” 어버이 주일이면 “축 어버이날” 이렇게 간단하게 쓰인 케이크는 많이 받아 보았어도 이렇게 마음을 담은 긴 문구를 자세하게 케이크위에 써서 보낸 케이크는 나는 처음 받아 보았다.

더욱이 내년 어버이날에는 가족이 되어 만나자니 그렇다면 지금은 우리 가족이 아니지만 내년에는 우리 가족이 되어 있을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엿보이는 글인데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사실 우리 집에 결혼을 해서 가족을 데려올 사람은 이제 한 사람 밖에는 없다. 큰딸은 결혼해서 아들 딸 삼남매를 낳고 잘 살고 있고 막내딸도 결혼해서 배우자가 있으니 아직 결혼을 안한 아들만이 유일하게 가족이 될 사람을 데려올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 의미 깊은 수제 케이크는 아들과 결혼하려고 마음을 정한 자매가 보낸 것이 틀림 없었다. 아하~ 그러고 보니 며칠전 아들로부터 자기가 만나고 있는 여자친구가 부모님께 무슨 선물을 보내겠다고 했던 말을 들은 기억이 났다.

와~ 그렇다면 드디어 나의 하나 밖에 없는 소중한 아들이 장가를 가는 건가? 아니 결혼을 하게 된다는 건가? 갑자기 내 가슴이 쿵쿵쿵… 뛰기 시작했다. 이건 놀라서 뛰는 심장소리가 아니다.

오히려 너무 너무 기분이 좋고 설레어서 뛰는 나의 심장박동 소리이다. 자매가 보내온 케이크는 시중에 있는 일반 빵집이 아니라 수제빵집에서 맞춤으로 만들어 주는 수제 케이크여서인지 맛도 정말 깜짝놀랄만큼 맛있고 좋았다.

아… 드디어 내 소원이 올해 이루어 지는 모양이다. 십년이 넘는 세월을 아들이 언제나착한 며느리감을 데리고 오나 기다려 왔는데…올 한해 감사만 하기로 했더니 감사할 일이 자꾸만 생긴다. 우리 집 완전 대박났다.

할렐루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1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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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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