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 칼럼] 오랜벗들과의 해후

며칠전부터 자꾸만 마음이 설레었다. 이번 주 토요일 옛고향의 친구들을 만나기로 했던 것이다. 아마 5년만에 만나는 친구들일 것이다. 청주에서 십대에 만나서 절친으로 지냈던 친구들이다.

토요일 만나기로한 친구들은 미스시절 같은 직업에 종사했었다. 당시 청주시내에는 몇개의 시중은행이 있었다. 우리는 모두 은행에 근무 했다. 이처럼 ‘은행원’ 이라는 같은 직업을 가지고 있어선지 우리는 흉허물없이 더욱 가까워졌다.

사람들은 보통 초등학교 동창이나 중고등학교 동창, 그리고 대학교동창들과 유대를 갖고 친하게 지낸다. 그러나 같은 직업을 가졌었다는 이유만으로 친구가 되어 이렇게 오랫동안 우정을 유지하는 것은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더욱이 우리 친구들은 같은 은행에 근무한 것도 아니었다. 우리 다섯명은 기업은행, 국민은행, 상업은행, 충북은행 등으로 각각 다른 은행에 근무 했었다. 그러기에 지금처럼 50년이 넘도록 우정을 변함없이 유지해온 것 자체가 특별한 것이다.

친구들은 운전을 하는 나에게 점심먹고 한강변에 편하게 갈 수 있도록 자동차를 가지고 나오라고 했지만, 토요일이라 서초동이 복잡할 것을 예상할 수 있었기에 나는 친구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지하철을 이용해서 갔다.

서초역 7번출구에서 먼저온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걸어서 200미터 거리에 우리가 오늘 점심을 예약해 둔 한정식집이 있었다. 맛갈스러운 코스 요리에 대나무통에 찰밥을 해 주는 집으로 언제나 손님이 붐비는 꽤 유명한 식당이다.

전에도 와서 먹어 보았지만 전통 있는 한정식집 답게 여전히 음식은 깔끔하고 맛있었다. 코스로 요리가 나오고 대나무통에 찰밥을 담아 비지찌개와 강된장, 그리고 여러가지 밑반찬과 함께 먹었다. 친구들이 나이 들어 가니 한결같이 한정식을 좋아한다.

우리는 점심을 맛있게 먹고 나와서 버스를 타고 한강에 있는 유원지섬인 세빛둥둥섬으로 갔다. 그곳에 도착해 카페에서 먼저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토요일 이어선지 카페에는 앉을 자리가 없도록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마침 자리 하나가 나서 다행이었다.

친구들과 커피를 마시고 나오니 유원지답게 주변에 온통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포토존이 설치 되어 있었다. 색색의 꽃들로 장식이 되어 있어서 이 섬에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기념으로 남길 사진을 찍어 가도록 배려를 해 두었다.

친구들도 보라색꽃 아치앞에서 그리고 핑크색 꽃아치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처음엔 늙어 가는 얼굴 뭐하러 찍느냐며 사진을 안 찍겠다던 친구들이 분위기를 고조 시키는 멋진 포토존을 보니 기분이 업되어서 사진을 안찍고는 배길 수 없었던 모양이다.

고즈넉한 초여름의 한강을 바라보며 벤치에 앉아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우리는 대화의 꽃을 피웠다. 벤치는 두명이 앉으면 딱맞았다. 데이트족을 위해 만들어둔 2인용 벤치인듯 하다. 오랫만에 만난 친구들은 이야기꽃을 피우며 마냥 시간 가는줄 모른다.

나는 양쪽 벤치의자에 둘씩 앉아 있는 친구들을 뒷배경으로 셀카를 찰칵 찍어 두었다. 아마도 또 시간이 흘러 흘러 가겠지 그리고 후에 이 사진은 또 하나의 즐거운 추억의 사진으로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을 자아내게 되겠지

한강의 운치를 만끽하고 나서 우리는 세빛둥둥섬을 떠나 강남으로 갔다. 고속버스 터미널 옆에 있는 신세계 백화점에 가기로 했다. 왜냐하면 친구 다섯중에 유일하게 청주에서 올라온 친구를 배웅하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쇼핑을 온것은 아니어서 신세계 백화점 옥상에 만들어 놓은 옥상공원으로 올라갔다. 아주 잘 만들어놓은 공원이 거기에 있었다. 상당히 넓은 공간에 나무와 꽃을 잘 가꾸어 놓았다. 운치있게 나무 벤치도 설치해 놓아서 삼삼오오 앉아서 쉬기에 아주 좋았다.

나는 이야기 꽃을 피우는 친구들을 보며 아이스크림이라도 사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백화점의 푸드코너로 내려갔다 주말이어선지 사람이 많고 뭐든 줄을 서고 기다리다보니 아이스크림을 포장해서 옥상으로 올라왔더니 친구들은 벌써 자리에서 일어서서 내려가려 하고 있었다.

고속버스표를 예매해 놓아서 여유있게 움직이고자 그런 모양이다. 백화점 아래 돌벤치가 있어서 그곳에 앉아서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청주로 가는 친구를 보내고 다른친구들과도 헤어지기전에 약간의 간식을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딸기, 불루베리, 체리등 토핑을 많이 얹은 아이스크림과 아몬드스틱을 먹으며 우리는 또 언제 만날지 모를 이별을 준비했다. 달달한 아이스크림의 맛만큼이나 서로를 배려하는 오십년지기 죽마고우들의 우정도 달달하기만 하다.

친구들은 모두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청주고속버스 승차장까지 몰려갔다. 나를 포함해서 네명의 친구는 서울과 경기도에 사는데 한 친구만 우리 모두의 고향인 청주에 살고 있어서 더 애틋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넌지시 청주에서 온 친구에게 말했다. “친구야 서울이나 경기도로 올라오지 그래 서 우리 더 자주 만날 수 있도록…” 친구가 웃으며 대답한다. “호호… 난 청주가 좋아” 난 할말이 없었다 고향이 좋다는 친구가 맞는거 같아서…

그래 친구야, 계속 청주에 살고 있으렴. 친구가 있어야 내고향 청주에 내가 찾아가도 만날 사람이 있어 외롭지 않지. 아…그러고 보니 이 친구는 유독 나에게 밥을 많이 사 주었던 친구였는데…

선교사인 내가 해외에서 한국에 들어 왔을때 청주에 내려가면 이친구는 좋은 양식집이나 한정식식당에서 꼭 밥을 사 주었다. 나그네같은 선교사 생활에 고향에 갔을때 오랜 친구가 대접해 주는 따뜻한 밥한끼가 얼마나 위로가 되었었는지…

세월은 오늘 친구들과 함께 갔던 한강처럼 유수와 같이 흐르고 흘러 우리는 어느듯 손주를 품에 안는 나이 들이 되었다. 검은 머리들이 어느듯 하얗게 세어 젊은 마음과는 다르게 우리의 겉사람은 자꾸 후패해져 간다.

하지만 50년을 한결같이 친구로 지낼 수 있었던 우정이 있어 외롭지 않은 것이 얼마나 축복인가. 언제 만나도 반갑고 안보면 보고싶은 친구들이 내 곁에 있다는 것이 문득 내 큰자산이라는 것이 깨달아졌다. 코로나 이후에 가장 대박난 친구들과의 만남이다.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그의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잠 27:17)”

나은혜 선교사(지구촌 선교문학 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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