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 칼럼] 마지막 상견례의 복(福)

얼마전 대구에 내려갔었다. 아들의 결혼을 앞두고 예비며느리의 가족들을 만나는 날이기 때문이다. 바로 상견례를 하는 날이다. 요즘은 상견례를 하기 위해 새로 좋은 옷을 해 입고 신경을 쓴다고 큰딸이 말해 주었다.

이무래도 처음 만나는 사돈이 될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가 어려운 자리인것은 분명한 모양이다. 그래서 가능한 서로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해서 옷도 신발도 다 신경을 쓰는 것은 어쩌면 지당한 일이다.

우리 부부는 옷이라면 비록 수년간 입은 옷이지만 주일날 예배 드릴때 입는 옷이 제일 좋은 옷이다. 남편도 나도 주일날 입었던 옷차림으로 평소와 똑같이 입고 구두도 수년은 신은 구두를 신고 사돈이 될 며느리의 가족들을 만나러 갔다.

그래도 나는 동네 미장원에서 머리를 드라이하여 단정하게 했다. 남편도 이발을 새로 했고 염색까지 해서 꽤나 젊어 보이는 모습이 되었다. 사돈될 분이 우리보다 10년이상 젊다고 하니 배려를 한 것이다.

예로부터 결혼을 인륜지대사라고 하였다. 사전에는 “인륜지대사: 인간이 살아가면서 하는 큰 일. 일반적으로는 혼인을 의미.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음. 종족보존을 위해 인간이 해야할 가장 중요하고 우선순위의 일이기 때문.” 이라고 나와 있다.

나는 그 중요한 인륜지대사를 세번째 치르려 하고 있는 중이다. 큰딸이 십여년전 결혼 했고 작은딸이 4년전 결혼했다. 그리고이제 마지막으로 노총각이라고 할 수 있는 아들이 결혼하게 됨으로서 이제 상견례도 마지막이 되는 셈이다.

대구에 살고 있는 아들이 상견례를 위해서 대구의 어느 한정식집을 예약해 놓았다. 그리고 아들은 차를 가지고 KTX로 동대구역에 도착한 우리 부부를 맞이하러 나왔다. 아들의 차를 타고 상견례를 할 장소로 갔다.

한정식집 이층에 있는 상견례할 방은 전망이 좋은 곳이었다. 도심속인데도 창문으로 시내가 흐르고 시냇가에 무성한 푸른 나무들이 심겨져 있어서 보기좋았다. 우리가 먼저 도착했다 조금 기다리니 예비며느리 가족도 도착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코스를 따라 나오는 한정식으로 식사를 시작했다. 꽤 여러가지 음식이 나왔다.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면서 식사를 마쳤다. 이젠 자리를 옮겨 커피를 마시러 갔다. 아들과 예비 며느리가 전망좋은 커피숍으로 안내를 하였다.

두 가족이 한 자리에서 서로 가족이 되고 사돈이 되는 인연을 맺기 위해서 첫인사를 나누는 자리였다. 거제도가 고향인 사돈은 우리에게 결혼식 전에라도 거제에 한번 오시면 좋겠다고 초청을 하였다. 거제도는 우리 가족과도 무관하지 않은 곳이다.

북한 함흥이 고향인 우리 어머니가 72년전인 1950년 12월 22일 흥남부두에서 당시 항공유를 나르던 상선이었던 ‘메러디스빅토리’호를 타고 거제 장승포항 으로 와서 한국으로 오셨기 때문이다.

메러디스빅토리호는 미군이 흥남철수작전에 마지막 193번째로 투입한 배였다. 피난민이 몰려들자 배에 실려 있던 25만t의 군수물자를 바다에 버리고 1만4천 명의 피란민을 대피시키는 ‘사상최대구출작전’으로 미군상선인 메러디스빅토리호의 임무가 바뀌었다.

메러디스빅토리호는 1950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에 한반도 남쪽 거제도 장승포항까지 안전하게 도착했다. 메러디스빅토리호는 인류 역사상 전쟁 중 민간인을 구조한 위대한 항해를 한 배로 기념하고, 특히 가장 많은 사람을 태운 상선으로 기네스북에 올랐다.(인터넷뉴스Domin.com)

그래서 우리어머니의 삶스토리에는 언제나 거제가 등장했다. 고향인 함흥을 떠나 부모님과 6동생을 이북에 남겨두고 극적으로 탈출한 과정중에 있었던 거제도이야기를 어머니는 결코 빼놓을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집에 들어오는 어머니의 장손자며느리가 어머니가 그렇게도 잊지 못하는 거제도 출신인것이 결코 예사롭지가 않다. 어머니가 그렇게도 그리워하는 이북에 두고온 부모님중 어머니의 성씨인 나씨인 나를 며느리로 맞으신것처럼 말이다.

화기애애한 커피타임을 마치고 우리는 한복집으로 갔다. 혼례한복을 맞추고 대여하는 꽤 규모가 큰 한복점이었다. 예비사돈과 나는 결혼식날 입을 한복을 여러벌 입어 보았다. 저고리 색상만 다르고 같은 스타일의 파스텔톤의 한복으로 결정을 했다.

이렇게 하여 나의 일생에 마지막이 될 상견례를 잘 마쳤다. 그리고보니 나의 삼남매 가운데 큰딸이 결혼할 때는 상견례를 특별히 하지 못했던 기억이 났다. 왜냐하면 사돈네도 우리도 선교사이기 때문에 상견례를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격식을 갖춘 상견례는 아니더라도 사돈내외를 만나기는 했었다. 그곳은 선교사가정답게도 미국의 윗튼대학교에서였다. 선교사인 우리는 세계한인선교사대회에 참석하러 각자의 선교지에서 미국을 갔다가 만남을 가졌던 것이다.

그리고 두 가정은 윗튼대학의 학생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하면서 자녀들 이야기를 나누었다. 양가의 자녀들이 한동대생으로 캠퍼스커플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만난것이 곧 큰딸이 결혼할 가족과의 첫만남이었으니 상견례인 턱이다.

마흔이 넘도록 결혼을 안해 내 속을 태우던 아들이 드디어 일생을 함께할 짝을 만났다. 이제 내 인생의 숙제가 또 하나 풀려졌다.얼마전에는 그동안 십년여 세월을 내손으로 친히 모시면서 돌보고 살던 어머니가 요양원으로 가셨다.

인생공부 힘들어도 인내하고 살다보면 하나 하나 문제가 해결되어 진다.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내인생의 모든 퍼즐들이 맞추어져 나간다. 내인생의 화폭을 짜시는 거룩한 손에 의해서 나의인생은 하나의 멋진그림으로 완성되어져 간다.

내가 사람을 순금보다 희소하게 하며 인생을 오빌의 금보다 희귀하게 하리로다(사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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